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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여름이
김연수 지음 / 레제 / 2023년 6월
평점 :
읽은 날 : 2024. 1. 21
『어린왕자』로 유명한 프랑스 소설가 생떽쥐베리는 “모든 것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마침내 완성된다”는 말을 했다. 대표작을 꼽을 수 없을만큼 모든 소설이 다 대표작이 될 소설가 스티븐 킹은 초고에서 10%를 덜어내는 것이 자기 글의 수정 목표라고도 했다. 모든 좋은 글은 덧붙여 쓰는 것이 아니라 쓴 것을 삭제하는 데서 완성되는 모양이다.
김연수의 단편집 두 권을 연달아 읽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와 이 책. 전작이 전형적인 단편소설집(8편이 실렸다)이라면 이번 책은 무려 20편의 짧은 엽편 소설을 모았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가파도의 창작 레지던시에 머물던 중에 제주도 대정읍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열었고(창작 레지던시에 묵던 작가들의 의무였단다), 그때의 경험 이후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산문보다는 소설을 더 많이 쓰게 됐다. 강연회보다는 막 지은 짧은 소설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낭독회를 더 자주 하게 됐다’(p.297) 고 한다. 짧으면 십분, 길면 한 시간이 넘도록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그렇게 가볍지 않은 내용들을 담고 있음에도 소설집은 경쾌하게 넘어간다. 주변부의 서술들을 깍아낼 수 있을만큼 쳐 낸 뒤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것 같은 글들이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글도 있지만 전개의 어느 한 부분만을 뚝 잘라낸 것 같은 글도 있고, 결말 없이 절정에서 느닷없이 툭 끝나버린 것 같은 글도 있다. 그 이후는 당신의 상상에 맡깁니다, 하듯. 그야말로 ‘소설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적합한 글이다.
마치 스타카토 같다. 음표 위에 점을 뚝뚝 찍어 끊어 노래하는. 앞 뒤 음표와 상관없이 단독자로 존재하는 음. 그럼에도 소설은 전체적으로 다정하다. 그 다정함 덕분에 단독자로 존재하는 음 하나 하나가 어울려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든다.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조지 오웰이 광부들의 세계에 대해 말한 것도 다정함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이유없이 다정할 때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의 삶의 플롯이 바뀝니다.
(p.113)
소설과 산문을 혼동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아마도 2020년 봄-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무렵에 연수씨는 여든이 넘은 어머니를 잃은 것 같다. 소설집의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았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어머니를 잃은 중년 아들의 사모곡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픔을 의연하게 바라보고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다정하게 위로하려는 것으로 읽혔다. 뭐, 그참 저참 나 스스로도 위로를 하고 말이다. 세상에는 내가 죽고 난 뒤에도 너무나 많은 여름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럴진대 어머니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삶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통조림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사실 겉에 붙은 라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에 대해 말할 때도 그의 본성이 아니라 드러난 태도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과거는 밀봉된 채 선반 뒤에 올려놓은 통조림과 같아. 그래서 우리는 라벨만 보며 얘기하는 거지. 하지만 거기 통조림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p.78-79)
작가에 대해, 그 작품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지만, 실은 우리가 통조림에 대해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뿐, 그 작가의 내면에 가 닿지는 못한다. 짐작만 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연수씨, 다정한 작품 고마워요.
어머니를 잃은 이후에 쓴 소설이라 그런가 실존과 인식에 관한 글들이 많았다. 삶과 죽음, 살아있음과 인지에 관한 생각을 해 볼만한 그런 글. 여전히 그의 문재는 빛을 발하고.
우리가 감각 하는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크거나 절대적으로 작은 것이 없어. 멀고 가까운 것만 있는 거야. 그러니 어떤 대상의 크기는 우리가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 있어. 그 위치가 우리의 의지를 뜻해.
<풍화에 대하여> p.137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별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거기 까만 부분에> p.238
아마도 세월호 희생자에 관한 이야기이지 싶었던 <거기 까만 부분에> 라는 소설은 아름다웠다. 김연수만이 써 낼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도 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울지 않고, 찡그리지 않고, 회피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읽은 세월호 관련 글이기도 했다.
고등학생 시진이가 죽었다. 엄마는 시진이가 남긴 흔적을 찾으려 애쓰다 어느날 시진이를 수목장 한 나무 앞에 놓인 주희가 쓴 편지를 발견한다. 거기에 시진이의 사진 이야기가 있었고, 엄마는 그 사진을 주희에게서 얻었다. 하지만 거기에 시진이는 없다. 그저 새까만 부분만 있을 뿐. 그러나 주희는 그 새까만 부분에 있는 시진이를 볼 수 있다.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있는 것,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비단 별만일까.
“한번 깨어나게 되면 제 쪽으로는 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렇게 마른 상태에 대해 알게 되죠. 그러면 이전까지의 삶이 젖은 상태였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고요. 마른 상태일 때의 저는 생각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플롯으로만 보입니다. 기승전결, 모든 일들은 어떤 결론으로 향하는 과정이지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다만 안심과 침묵만 남습니다.”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 p. 105
아내의 의료과실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공황장애를 겪게 된 코메디언 신기철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슬픔과 울음도 진실이고 이야기 속에 있다는 것도 진실이다. 이야기는 끝이 있는 거니까. 그 이야기에 젖지 않고 들어가는 것, 그것이 그 상실을 겪고도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인 거다.
리뷰를 쓰면서 생각했다. 연수씨, 당신 어머니를 잃고 참 많이 힘들었구나. 이제는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서 보이지 않으나 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