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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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과 더블 리뷰.  

자전거 여행 2는 김훈의 세번째 기행 산문집이다. 첫번째 기행 산문집의 제목은 『풍경과 상처』다. 그 글에서 김훈은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김훈, 『풍경과 상처』, 문학동네, 1994, 서문)라고 말한다. 하여 김훈은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같은 책)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김훈의 모든 기행 산문은 마침내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迷妄)속에서 한 줄 한 줄"(같은 책) 씌어진 것이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기행 산문집에서 김훈은 사진작가 이강빈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이 산하를 누비며 조선 선비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가망없는 희망과 (아마도 소설 『칼의 노래』를 쓰게 만든 계기가 되었을)충무공의 이야기를 담는다. 그에게 풍경은 풍경 그 자체라기 보다는 그의 내면에 담긴 숱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은 캔버스였을 것이다. 그의 기행문에서는 염전에서 소금을 캐는(말리는? 만드는?) 노동자의 이야기와 (어쩌면 황희 정승의 일화와도 닮아보이는) 소를 키워 농사짓는 농부, 김용택 시인의 마암분교 아이들을 만난다. 그에게 풍경은, 아름다운 산세나 맑고 깨끗한 물이 아닌 그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인지도 모른다. 상처로 옹이진 사람들의 이야기.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다. 그는 풍경을 바라보며 "맑고 빛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언제나 큰 기쁨입니다."(곽재구, 『포구기행』, 열림원, 2002, p89)라고 말한다. 그에게 풍경은 "서울살이에 지치고 지쳤을 때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을 찾아가 창문을 다 열어 젖히고 하룻밤 내내 파도소리를 듣고 나면 다시 서울로 회귀할 힘이 생긴다"(같은 책, p.95)는 그런 것이다. 그의 기행문에도 김훈의 기행문에서처럼 갯벌에서 조개를 잡고, 소리를 하며 살아가는 민초들이 나오고 조선시대 기생 월섬과 제주도의 이중섭이 나오지만 김훈의 사람들과 다르다. 김훈의 사람들이 김훈의 풍경을 완성하는 풍경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면 곽재구의 사람들은 곽재구가 보고 있는 풍경속에 살아가는, 풍경과는 따로이 떨어진 존재들이다.

하여 김훈의 풍경이 김훈만의 캔버스가 된다면, 그래서 김훈의 기행문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이야기가 된다면 곽재구의 풍경은 완성된 풍경이다. 그래서 곽재구의 기행문은 그림에 대한 감상문이 된다.

두 사람의 여행지는 우연히도 겹치는 곳이 많다. 같은 염전과, 같은 산과, 같은 바다를 보아도 한 사람은 '상처'를 보고 한 사람은 '큰 기쁨'을 본다.

하여, 모든 풍경은 아름답고, 모든 글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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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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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을 했었다는, 노동운동을 했었다는 알 수 없는 근거에서 나오는 이상한 으스댐을 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그녀의 초기 소설들은 나를 몹시 짜증나게 했다. 게다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류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설익고 유치한 페미니즘은, 그 소설을 읽었을 때 고작 고2였던 나를 질리게 만들었었다. 그야말로, 아유, 잘난척은. 잘난 것도 하나 없는 게. 라고 중얼거리게 했달까. 나에게 공지영은 싸구려였다.

그녀가 역시나 싸구려에 불과했던 『착한 여자』이후 더이상의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도 아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그러고 보면 난 또 이렇게 싫어하면서도 그녀의 소설은 꼬박꼬박 챙겨 읽었다. 음. 라면에는 라면의 맛이 있는 법이고, 난 라면을 좋아하지만, 라면이 좋은 음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이 책을 읽은 건, 김훈의 책에서 이 책의 부분을 발췌해 놓은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고아원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안아주는 이야기. 보모가, 그 아이들을 안아 주지 말라고 말리는 그 이야기를 읽었던 탓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애원을 하는 이야기. 그 사람을 죽여달라고.

어쩔수 없이. 인정해야 할까보다.
그녀. 글 참 잘 쓴다.
누군가의 글쓰는 재능을 인정하며 고까워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에잇 짜증나지만, 너 글 참 잘쓴다, 라고 인정한다.

끝내, 라면도 맛은 있지. 라고 사족을 붙이고 마는. 나의 인색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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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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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광고가 알라딘에 떴을 때, 나는 아주 세속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눈을 반짝거렸다. '섹스'라는 어감만으로도 모자라서 '미들'의 섹스라니! 게다가 카피는 더욱 기가 막혔다. 양성인간이 나오는 '미들 섹스'라는 제목의 이야기가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니 뭔가 아주 우아하고 품격높으면서도 감각높은 에로티시즘의 문학을 기대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나중에 역자 후기에서 역자가 말했던 "'미들 섹스'라는 제목과 양성인간이라는 소재가 가지고 있는 함정"에 나 역시 풍덩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나는 기묘한 느낌에 빠졌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그리고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을 보았던 기억들이 기묘하게 얽혀들면서, 어쩌면 현대의 미국이 사랑하는 몇가지는 이 소설에 녹아들어있는 앞서 나열한 몇가지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퍼 리의 소설은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퓰리처상 수상작이고, 샐린저의 소설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중의 한편임이 분명할 테니까.

이 소설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는 어떤 상황들을 한편으론 객관화 시키고 한편으로는 주관화 시켜 자신의 내면을 말하고 있음에도 남의 말 하듯 덤덤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샐린저와 닮았다. 칼리오페(또는 칼)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택하고 있지만 실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칼리오페를 만들어 낸 변종 유전자와 그 유전자를 있게한 주변의 환경들이다. 이 소설은 양성인간이 태어나게 만드는 유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소설이라해도 괜찮다.

엄격한 족외혼의 전통이 동성동본 불혼이라는 관습으로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칼리오페의 존재는 엄청난 충격이다. 형제간에 태어난 자녀로도 모자라서 그 혈족(육촌)들이 다시 결합한다는 과정은 충격을 넘어서는, 아니, 충격이 과다하다보니 이제는 충격이랄 것 조차 없는 무엇인가가 된다. 게다가 서술자의 그 담담함이라니. 내 상식으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해 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황당함을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같이 담담해져 버린달까.

할아버지 세대의 그리스 이민 초기의 사회상과 영화 언터처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던 금주법과 비밀 술집등 미국 개척기의 이야기, 포드 자동차와 디트로이트의 풍경,『호밀밭의 파수꾼』에서 보여주던 고급학교의 어떤 모습과 그 사회와 문화, 당시 미국 10대들의 생활들이 잘 묘사되어 있는 책이다.

읽다보면 내내, 현대의 미국은 이런 것을 사랑하는(또는 그리워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랑하는 것에 상을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이치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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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城) - 김화영 예술기행 김화영 문학선 4
김화영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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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들은, 해석할 수 있을 만큼만 재미있다.
이윤기의 『무지개와 프리즘』리뷰에서 썼던 말이다. 김화영의 이 예술기행문집을 읽다가도 그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누군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루브루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노트르담의 사진도. 그에게 파리는, 그저 파리였다. 그러나 김화영의 루브루는 앙리 2세로부터 시작하여 루이 14세까지의 역사이고, 프랑스 문화 예술의 상징지이고, 나폴레옹의 문화 약탈의 상징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거대할 뿐인 노트르담, 파리의 상징일 뿐인 그 성당이, 김화영에게는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의 노트르담이었다. 나폴레옹의 개선문은 빅토르 위고의 장지였고, 아, 팡테옹에서의 추억.

비어있는 빈 땅에서, 프랑스 혁명 당시 민중의 분노를 볼 줄 알고, 조그마한 성에서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속삭이는 말을 듣고.

아. 그에게 보이는 세상이란, 참으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이고, 보이는 만큼만 나에게 말을 건다. 알고 보는 세상이란. 얼마나 많은 비밀로 가득한 선물상자 같은 것인지.

프랑스 기행문임에도, 프랑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책. 천재를, 어찌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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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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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편의 소설이 실린 단편집을 세 번째 소설 〈피에스타〉에서 give up해 버렸다. 맙소사. 자존심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연애소설의 대가’라는 수식어에 속아 읽어보지도 않고 줄줄이 구입해 버린 야마다 에이미의 다른 소설들이 책장에 꽂혀 나를 비웃었다. 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줘 버려야겠다, 생각했다.

요시모토 바나나나 에쿠니 가오리 류의 소설을 기대했던 나에게 야마다 에이미는 좀 쎘다.

읽다가 버려둔 소설은 늘 찜찜하다. 뭔가, 숙제를 덜한 것 같고, 수학 문제를 풀다 젖혀둔 것 같고. 게다가 누군가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그래도 끝까지 읽어봐요. 괜찮은데.” 라고 말을 해 버리면 어쩔 수가 없잖은가. 다시 펼쳐야지. 단편집이 좋은 이유가 뭐겠어. 도저히 못 읽어! 라 외쳤던 <피에스타>는 그냥 넘겨버리고 다음 단편 <공주님>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오호, 이게 대박이다!

첫 소설 〈메뉴〉의 첫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목을 메고 죽은 어머니의 아래에서 요구르트의 맛을 음미하는 유치원생이라니, 뭔가 대단히 쿨 하지 않은가. 스스로를 ‘히메(공주)’라 칭하는 〈공주님〉의 여주인공 진짜 이름이 ‘히메코’였다니. 역시나 대단히 쿨하다.

오, 멋져, 멋져, 라고 읽기는 하는데, 읽고 난 다음이 뭔가, 독특한 느낌이다. 유쾌하진 않지만 가볍고, 경박하진 않지만 즐거운 일련의 인물들은,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매우 무겁고 불행한 인물로 읽힌다. 그야말로 공주님 또는 도련님답게 고개를 꼿꼿이 들고 살아가지만 뭐랄까, 자존심으로 인하여 자신의 상처를 죽어도 드러내지 못하겠는 유치한 치기가 ‘쿨’한 행동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비친달까.

어쨌든, 오, 멋지다.

ps. 일문 번역에는 확실히 김난주가 발군. 김옥희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단편집『도마뱀』에서도 그랬지만 역시나 중언부언 알아듣기 힘든 스타일로 번역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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