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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평점 :
읽은 날 : 2024. 6. 20.
그날을 기억한다. 5월 하순의 화창한 날이었고, 오전이었다. 둘째가 태어난지 만 6개월을 꼬박 채우고 이유식의 세계로 들어선 지 며칠 안되어 입에 들어오는 쌀죽의 낯선 맛에 혀를 날름거리며 뱉어내던 날. 아이는 범보 의자에 앉아 있었고, 나는 TV를 켜 놓고 실리콘 수저로 이유식을 먹이고 있던 중이었다. TV화면 하단에 커다란 글자로 떠오른 노무현 전대통령 위독. 이라는 글자. 그 순간의 당황을 기억한다. 위독이라는 글자가 서거라는 글자로 바뀌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주 지독한 거짓말에 호되게 당한 느낌이었다. 방송국에 전화를 해 이런 오보를 내도 되나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이분에게 끝내 단 한 표도 주지 못했는데. 하는 후회가 뒤를 이었다. 20년이 훌쩍 흐른 뒤에도 그 주지 못한, 주지 않은 한 표가 내 가슴에 이렇게 무거운 후회로 남을지 몰랐지.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알아듣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단절은 이 땅 지식인의 유구한 전통이요 고질병이다. 고려말 정몽주의 어머니인 영천이씨가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시조 「백로가」의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는 구절이나(물론 이건 간신, 역적과 한 무리가 되지 말라는 말이기도 하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작자 미상의 시조 한 구절(출전 영조 말 김천택 『청구영언』) 도 그 단절의 궤를 같이한다. (물론 이건 남말 하지 말라는 논어의 말을 풀어 쓴 시조이기도 하다.) 그 단절의 전통은 유유히 이어져 2007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논쟁에 한창 참여했던 진중권의 마지막 한마디 “말을 해도 알아 듣지를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이 말을 끝으로 진중권은 그 논쟁에서 깔끔하게 하차했다)로 이어졌고, 심지어 노무현 정권 내내 최전방에서 싸웠던 유시민조차 노무현이 자연인으로 돌아가는 순간 자신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지식소매상’으로 글을 쓰며 살 것”을 천명했다. (뭐 그 이후에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호한 형태로 정치를 기웃거리기는 하지만, 노무현 탄핵사태 당시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자 또는 알아 들었음에도 알아듣지 못한 척 하는 자와의 논쟁이란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박정희를 찬양하는 아버지에게 『프레이저 보고서』를 가져다 드렸더니 아버지는 아무나 막 하는 말을 믿을 수야 있냐, 하셨고, 그게 미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라고 했을 땐 잠시 침묵한 뒤 “얘, 미국에도 빨갱이가 쎘단다.” 하셨다. 그 이후 나는 아버지와 정치논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씩 웃는다. 박근혜 찬양을 하는 외할아버지에게 다인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할아버지, 박근혜는 나쁜 사람인데요, 엄마가 그랬어요.”(세월호 직후의 일이다.) 했을 때 아버지는 어린 손녀에겐 차마 뭐라고 못하고 뒤돌아 “에미가 되어서 딸을 빨갱이로 키우냐!”고 일갈하셨다. 그때도 난 그저 씩 웃으며 그랬다. “아부지 닮았나 보지요, 아부지가 키운 딸도 빨갱인데.” 그 뒤로 우리 아버지는 당신이 키운 셋째딸이 빨갱이 남편을 만나 빨갱이 딸들을 키우고 있음을 알고 포기했다. 물론 지금도 간간히 잽은 날린다. 난 그저 웃으며 ‘아부지 전(제 남편은, 제 딸은) 노빠(문빠, 유빠, 조빠)입니다.’ 라는 말로 대화를 잘라먹어 버린다. 단절이다.
단절은 편안하다. 비난의 빌미조차 주지 않음으로 나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으니 안전하다. 감정이 다치지 않으니 관계도 평온해진다.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사람의 멍청함 때문에 답답하고 알아 듣지 못한 척 하는 사람의 뻔뻔함 때문에 화 날 일이 없으니 감정이 소모될 일도 없다. 그냥 내가 읽고 싶은 글만 읽고 내가 하고 싶은 말(그 중에서도 안전한 말)만 하면서 안전하고 편안한 평화 속에 그냥 내 갈 길을 가면 된다. 이 땅의 낙향을 선택한 많은 선비들이 그러하였듯. 그러다 정히 안되겠으면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듯 모가지를 내걸거나 이 땅을 떠나면 끝이다. 많이들 그랬다. 「수오재기(守吾齋記)」를 쓴 정약용처럼 ‘나(吾)’만 지키면 되는 거다.
나도 그랬다. 한때 네이버 메인에 줄줄이 올라오던 정치 관련 뉴스를 지뢰 피하듯 피해가며, 한쪽 눈 슬쩍 감아가며, 그저 바라옵건대는 내가 사랑하는 그분(들)도 나처럼 이딴 더러운 말 보지 않고 넘어가시기를, 이 나라는 법치국가고 이 땅의 정의는 살아 있으리니 하였다. 그리고 그 천진한 믿음과 이기적인 ‘수오(守吾)’가 그분의 등을 밀었다.
정치를 소재로 한 인터넷 정치 싸움은 그 어떤 형식으로도 결국은 진흙탕 개싸움의 형국이 되고야 만다. 그야말로 똥이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라며 그 싸움을 피했더니 내가 사랑하는 그분(들)은 최전방에서 끼얹어지는 더러운 오물을 홀로 맞아야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검찰에 출두하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해맑은 미소와 그 뒤에 그분의 변호사로 서 있던 문재인 대통령의 의연한 미소, 그리고 그 두 분의 배경에 서 있던 버스에 달라붙은 계란의 흔적을 전율없이 떠올리지 못한다. 법과 정의를 믿었던 그분들은 미소 지을 수 있었고, 나는 그 계란을 막아주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사진 한 장에 울음이 터질 줄 알았더라면 안 그랬지.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는 점에서 가볍고,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 무겁다. 그래, 돌이킬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은데, 들을 말도 많고, 해야 할 말도 많고, 당신에게 내 사랑을 전달하지도 못했는데. 수신인을 잃어 보내지 못한 그 사랑은 그대로 천근의 무게로 심장을 누른다.
내 사건의 수사가 ‘공소권 없음’-피의자가 사망할 경우 검사가 내리는 결정-으로 마무리 될 것이라고 희망하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다.
조국, 『조국의 시간』, 한길사, 2021, p.279
내가 조국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주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사람이 어떤 사람에게 이런 이유로 감사를 표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것은 이런 일련의 일들을 겪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살아 있다, 그걸로 됐다. 살아만 있으면 희망은 있는 거니까. 유시민이 이 책의 면지에 쓴 말대로 ‘희망은 힘이 세다’. 훗날 조국은 자신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조국 사태 당시 자신의 선배들이 다들 “그들이 원하는 건 ‘공소권 없음’이야.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마.” 라는 응원을 보냈음을 말했다. ‘버텨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2016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에게 어느 시민이 이미 한 말인 바, 그 말을 다시 한번 빌어 쓴다. 버텨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는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왜 죽었어, 왜 죽었어. 라는 말과 함께 지독한 후회로 가슴을 뜯고 싶지는 않았다. 조국(어쩜 이름도 조국이야.) 대전에는 열심히 참전했다. 결과가 무엇이 되었건 아무것도 안했다는 후회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유시민의 이 책, 이 즈음의 행보는 유시민 또한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나는 유튜브 프리미엄을 사용중이고, 구글 창을 열거나 구독해 둔 채널에서 새로운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컴퓨터 화면의 오른쪽 아래에 알림이 줄줄이 뜬다. 유시민은 요즈음 아주 열심히 활동 중이다. 그 알림 덕에 6월에 읽은 이 책이 떠올랐다. 다시는 후회하지 않으려고 참 열심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구나 싶었다.
6개월 전, 2024년 3월에 유시민은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채널에서 운영하는 「알릴레오 북’s」시즌 5의 4회에서 한양대 정준희 교수와 『저널리즘 선언』이라는 책에 대한 대담을 하며 명확하게 말했다. “왜 그렇게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있느냐, 왜 균형을 취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 세상이 이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니 내가 기울어졌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누군가는 반대쪽으로 해야, 나는 균형을 못 잡지만 세상이 균형을 잡는 데는 1이라도 기여하게 되지 않겠나.”
자신이 편향되었음을 인지할 때 그 편향을 유지하는 것이 지식인의 스탠스에서는 힘들다. 상대 진영의 단점을 보는 만큼이나 내가 속한 진영의 단점도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탓할 일이다. 보이는 것을 어째, 젊고 순진했던 젊은 날의 유시민은 그리하여 이쪽진영 저쪽진영 모두에게 욕을 먹었다. 순결했기에 뻔뻔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이제 유시민은 “내가 뭔데, 아니 내가 좌우 균형을 잡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냐?”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사실 인간에게 중립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해 두고, 상대가 규칙을 지키지 않는 링 위에서 규칙을 지켜가며 싸운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개싸움에는 개싸움의 룰이 있는 법.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와 함께 대통령 후보 토론에 나갔던 문재인은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국정원 요원 셀프 감금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박근혜가 끊임없이 들고 나오자 매우 당혹한 얼굴을 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대통령 후보로서의 정치인 문재인이 아니라 법조인 변호사 문재인이었다. 그는 아직 수사 중에 있는, 확정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자체에 허둥거렸다. 그의 상식으로 그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 그의 법리 상식에 위배되는 일이었고 법조인의 윤리에 반하는 일이었다. 방어를 해야 함에도 그는 그 사건에 관해 입을 열지 못했다. 순결하고 아름다운 법조인이었으나 그는 그 선거에서 패배했다.
개싸움의 룰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개싸움은 못 이긴다. 저들은 말도 안되는 ‘빨갱이’ 논리를 공산세력이 다 무너진 지금도 들고 와 공격 도구로 요긴히 써 먹는데, 여기서 논리를 펼치고 중립을 잡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럴 때 입을 막는 건 박근혜가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에게 구구절절 써 보낸 편지다. 만나고 싶어요 외치는. 그런식으로 싸우고 싶지 않을 뿐인 거지.(대체 이런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하지만 그런식의 싸움밖에 가능하지 않으니까 그냥 입을 닫고 단절하는 거고, 그 단절이 결국은 너무 가슴 아픈 결과를 가지고 오니까 싸우지 않을 수 없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조국사태 때, 침묵했던 많은 사람을 기억한다. 조국에게 돌을 던졌던 사람도 기억한다. 그리고 열심히 ‘편향되어’ 조국의 편에서 열렬히 싸웠던 사람도 기억한다. 유시민과 김어준이다. 노무현을 보내고 누구보다 많이 울었을 사람, 다시는 후회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을 사람. 이 책은 그 다짐의 결과물이다. 그는 자신이 편파적임을 인정한다. 더 나아가 그게 뭐? 왜? 뭐가 잘못됐어? 라고 말한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지형을 가진 언론판에서, 기계적 균형을 지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기까지 한다.
김어준은 편파적이다. 하지만 편파적이 되는 과정은 공정하다. …… 김어준은 편향되었다는 비난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데 기여했다.
……
한국 언론은 언제나 권력 가진 자, 돈 많은 자, 많이 배운 자, 기득권자의 편을 들었다. 스스로 균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세상의 균형을 파괴했다. 지금도 그렇다.
p.122-123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싸움처럼 무의미하고 무가치해보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김어준의, 유시민의 편향은 기성 한국 언론이 먼저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다. 한국 언론이 세상의 균형을 파괴해 버린 탓에 노무현이 죽었다. 유시민과 김어준은 조국마저 죽이지는 않으려고 노무현 때와는 달리 기를 쓰고 싸웠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가슴을 쥐어뜯는 후회는 한 번도 이미 넘치니까. 예전엔 슬쩍 피했던 그 개와 드잡이질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개가 사람을 문다고 사람도 개를 물 수는 없으니 사람답게, 내 손에 쥔 나의 무기로 싸우는 거다. 그래서 유시민의 영리함과 예리함과 똘똘함은 볼 때마다 문득문득 서러워질 때가 있다. 네, 우리, 이제 후회하지 말아요.
편향에 관한 고 이윤기 선생의 산문 일부를 첨가한다.
그날 나는 참 재미없는 논쟁을 오래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동기생 몇 명이 가세했는데 그들의 관점은 강고했다. 여성이 너무 세게 나오는 바람에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그는 뭘 그렇게 깐깐하게 구느냐고 힐난했다.
나는, 굽은 작대기를 바로잡으려면 반대쪽으로 좀더 구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했던 것 같다. 막판에는 ‘빨갱이’ 소리까지 들었다.
이윤기, 『내려올 때 보았네』, 비채, 2007, p.88-「휘어진 작대기를 바로잡으려면」中
2024. 10. 27.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