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의 말이 책의 서두에 있어도 가장 나중에 읽고, 에세이를 읽을 때는 작가의 말이 말미에 있어도 가장 먼저 읽는다. 이 책을 읽을 때도 그랬다. 그리고 그 작가의 말이 나의 마음에 확 와 닿았다. 그래서 이 책의 리뷰는 이 책의 말미에 실린 김영하의 작가의 말의 일부를 따오는 걸로 시작해야 한다. 


2012년 가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보다 많은 것이 낯설었다. 사 년 남짓 해외를 떠도는 사이에 한국 사회는 또 많이 변해 있었다. 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는 없다. 그 전이 어땠는지부터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워낙 빨리 변화하는 나라여서 기준점으로 삼을 만한 것이 거의 없다. 


p. 207, 작가의 말


2014년 여름에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일단은 나의 포지션이 변해 있었다. 미취학 영유아 둘을 데리고 떠났던 나라에,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와 곧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일곱살 아이 둘을 데리고 돌아왔으니까. 나의 스위치를 애엄마 모드에서 학부모 모드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다. 남의 이야기같던 사교육 시장은 눈이 핑핑 돌아갈 정도로 어지러웠다. 이곳이 내가 떠났던 그 나라 맞나 싶었다. 낯 설어도 이렇게 낯 설 수가 없었다. 


김영하는 변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지만 나는 적어도 한가지는 구체적으로 적시할 수 있다. 떠나기 전만해도 외제차 옆은 주차를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원칙이었는데 불가능할 정도로 외제차가 넘쳐났다. 세대에 한대꼴로 외제차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아우디와 벤츠 사이에도 주저없이 차를 넣는다. 피할 수가 없으니. 김영하라면 이 현상에 대해 뭐라고 설명을 할까. 뭔가 시크한 어조로 한국 경제의 현황에 버무려 멋들어진 설명을 내놓지 않았을까. 사 년 남짓 해외를 떠돌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 남자는 무엇이 가장 낯설었을지 궁금하다.


나는 김영하의 시크한 어조를 좋아하는데 김영하의 chic는 세련되고 멋있다기보다는 냉소적이다. 세상에서 한발쯤 발을 빼고 영화 관찰하듯 보는 느낌이랄까. 언제나 김영하는 그랬다. 그 사건의 현장에 뛰어든 당사자나 경험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위치를 견지한다. 그런 어조는 소설을 쓰는데 유용하게 쓰였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관찰자의 전달은 명쾌하고 산뜻했다. 그는 구질구질하게 휩쓸려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작가의 말에 그대로 설명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뭔가를 '본다'고 믿지만 우리가 봤다가 믿는 그 무언가는 홍수에 떠내려오는 장롱 문짝처럼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우리 정신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생각의 가장 훌륭한 도구는 그 생각을 적는 것이다. 


p. 208-209, 작가의 말


그러니까, 김영하의 보는 방식은 곧 본 것에 대해 홀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다. 그 현상에 휩쓸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가 된다. 관찰을 하고, 그 관찰에 대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야말로 놀라운 화학변화가 일어난다. 하나의 현상이 김영하라는 촉매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재탄생 되는 과정을 보는 것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이건 그야말로 연금술이다. 글을 읽는 내내 야~ 진짜 똑똑하거든 이 작가는.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해내냐. 하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한때 김국진이 우리나라 최고의 개그맨이었을 때, 누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김국진을 혼자 방에 가두어 놓고 뭐하고 있나 몰래 관찰하고 싶은 느낌이라고. 이 생각을 현실로 옮기면 미저리 버금가는 호러물이지만, 상상만을 하면 최고의 개그물이 된다. 때때로 나는 김영하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 똘똘한 남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나? 뭐 이런 느낌. 


이 책을 출간 된 직후에 읽었다. 그러니까, 2014년 9월에. 그리고 한강의 소설 <소년이 간다>를 읽고 나서 다시 꺼내 읽었다. 이 챕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호메로스는 이미 이천팔백여 년 전에 그런 믿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알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p. 115-116,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것은, 광주의 이야기가 왜 역사나 다큐가 아닌 영화나 소설로 기록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진실을, 진심을 가장 잘 전달하는 최고로 효과적인 매체이니까. 내가 김영하를 여전히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이런 똑똑한 통찰력 때문이다. 이 낯선 세상에 아직까지는 반드시 필요한 촉매라서. 이 낯선 세상을 이해하고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주니까.


ps.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책에 이어 '읽다' 와 '말하다' 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약 석달 간격으로 출간할 예정이라는데 석달 지났다! 작가와 출판사는 약속을 지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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