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길
이스마엘 베아 지음, 송은주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6.25를 겪으신, 33년생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전이 가장 나쁜 건, 나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향해 총을 겨누게 되는 거라고. 그 일이 반복되다보면 적과 아군의 분별이 없어져서 결국 양민 학살이 일어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좋은 전쟁이란 아예 성립될 수 없는 말이지만, 그래도 세계대전때, 언어가 다른 이국의 병사를 향해 총을 갈기던게 좀 더 견딜만하지 않았을까(아, 도대체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까지 한동네 아래 윗집에 살던 사람이 하나는 국군에 징집되고 하나는 북한군에 의용군으로 끌려가서 뜬금없이 전장에서 마주쳐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총을 쏠까, 쏘지 않을까, 쏘지 않고는 지휘관에 의해 죽을테고, 쏘면 나의 영혼이 죽을텐데, 도대체가. 

이 책의 저자, 이스마엘 베아는 정부군 소년병이었다. 정부군이건 반군이건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어쩌다 정부군에 소년병으로 끌려갔을 뿐이고, 반군에 끌려갔더라면 그는 반군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군에 소속되었거나 반군에 소속되었거나 그 이후의 행보는 동일하다. 마약과 강간, 학살. 전쟁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한다고 해도, 인간의 모든 기본적인 신뢰를 깡그리 깨 부순다는 점이 참 나쁘다.  

부모가 죽었다면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를 보호해야 할 정부가 소년을 납치해 마약을 먹이고 학살과 강간을 저지르게 만들다니. 어느날 청와대를 점령해버린 쥐새끼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지,라고 말로는 그래도 나의 진심은 아무리 쥐새끼라도, 아니, 쥐새끼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머지 제정신 가진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다. 반군과 똑같은 짓을 하는 정부군이라니, 나에겐 이 부분이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충격이다. 아마도 나는 헐리우드식의 건전하고 용맹하고 국민을 철저히 보호하는 정부라는 개념에 너무 익숙해져있나보다.  

글의 내용은 더할나위없이 참혹한데도 서술하는 태도는 냉정하다. 이스마엘의 감정 어느 부분은 분명 파괴되었고, 그 파괴가 역설적으로 이스마엘을 살렸다. 그 감정이 온전하게 남아있었다면, 이스마엘의 영혼은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일종의 방어기제의 작용이었을까. 그래서 이 글은 냉정하고 담담할수록 가슴아프다. 어떻게 이런 일들을 이렇게 담담하게 서술할수가 있니, 이건 이스마엘에 대한 연민이다. 비난이 아니라. 어떻게 이 아이를 비난할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이스마엘은 남의 이야기를 하듯,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감정의 개입없이 서술함으로써 최고의 현장감과 역설적인 비현실감을 동시에 이끌어낸다. 차라리 거짓말이기를, 과장이기를 바라게 되지만 때때로 현실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곳에 있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에라리온 내전에 대한 최고의 르포이고, 가장 현실적인 기록이다. 그리고 이 현실적인 기록은 말한다. 

전쟁은, 랩퍼를 꿈꾸던 12세 소년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노라고. 나는 그저, 평범하고 천진한 소년이었을 뿐이라고. 그 천진하던 소년이 마약 중독자가되고, 학살자가 되고, 살인마가 되는 그것이 전쟁이라고. 이래도 당신들은 전쟁을 할 참이냐고.  

왜 하필... 소년이었을까. 왜 이렇게 어린아이들이었을까. 인간이 진화하는 만큼 인간의 잔인성도 진화하고 도덕성은 퇴화하는 모양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되지만 그래도 책 뒤 저자의 천진하고 밝은 미소는 희망을 제시한다. 회복의 희망을.  

제발.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사라지기를. 

무기 만들어 파는 니들이 제일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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