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현감 귀신체포기 1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이가서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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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책을 많이 읽어줬다는 점이다. 동생과 나를 양 옆에 뉘고, 엄마는 목이 쉬도록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 엄마의 목소리 속에서 나는 전우치가 되고, 도토리가 되고, 엄지공주가 되어 하늘을 날았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홍길동보다는 전우치가 매력적이다.

김탁환은 그다지 뛰어난 소설가가 아니다, 확실히. 역사와 그 실존인물에게서 이야기의 모티프를 가져와 소설을 꾸며낸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은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과 공통점을 가지지만, 이인화 반의 반만큼도 재미가 없다. 역사 소설의 제 1 가치는 아무래도 재미라는 점에서, 김탁환의 매력은 떨어진다. 소재를 빌어와 그 소재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아무래도 더 쉬웠을 텐데. 이인화가 66년생, 김탁환이 68년생, 이인화는 대구출신, 김탁환은 진해출신, 둘다 서울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출신의 소설가이자 교수. 비슷비슷한 프로필의 비슷한 이력을 걸어온 두 남자가 비슷한 곳에서 소재를 빌어와 소설을 쓴다.
헌데 이인화가 훨씬 탁월하다.

김탁환의 소설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섬세함이다. 묘사의 섬세함도, 사건의 섬세함도 모두 떨어진다. 이인화가 『영원한 제국』에서 그러하였듯, 김탁환도 몇몇 소설에서 추리소설의 기법을 차용하고 있지만 섬세함도 떨어지고 박진감도 떨어진다.

그대신 김탁환은 당시의 풍속을 잘 그려낸다. 마치 자신이 그 시대에 살다 나온 사람마냥 당시 사람들의 심리를 매우 설득력있는 필치로 그려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방각본 살인사건』. 또 사람들에게서 사라진, 하지만 당시엔 분명 존재했던 것들을 그려낸다. 김탁환의 소설에서 우리 역사의 변방에 존재했던 인물들은 생명을 얻고 소생한다.

뭐, 김탁환에 관해서는 그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독특한 면도 분명 있고, 좋은 면도 분명 있지만 대단한 다작의 작가라서 그럴까, 섬세함이 떨어진다고. 이야기의 힘도 떨어진다고. 한번에 쭈욱, 읽어내리게 만드는 집약력이 없다고.

그러다 이 소설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전우치가 부주인공(조연이란 말로도, 주인공이라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이다.)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는 말에 끌려 읽었는데, 오호! 김탁환이 가진 소설의 힘이란 이런 곳에 있었구나 싶다.

김탁환의 전생인 '아진'의 모험기인 이 이야기는, 모두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고, 요재지이에서나 등장할 법한 인물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하여, 매우, 재미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전우치를 제외한 인물들의 매력도나 흡인력이 떨어지는 것은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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