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F
시게마쯔 키요시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문학은 유난히 어머니를 다룬 작품이 많다. 언젠가 그 현상에 대해 “아버지 부재 현상”을 겪고 자란 세대들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과연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일제시대와 6.25 전쟁, 베트남 파병, 중동 파견근무 등등을 거치며 우리의 아버지들은 자의든 타의든 부재자가 되고 아버지가 없는 자리를 메꾸는 어머니들은 두 명 분을 혼자 해 내며 자녀들에게 평생 애틋한 존재로 자리하게 된다.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이나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비롯한 일련의 소설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가족사 소설”이란 어머니를 다룬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1996년 나온 『아버지』(by 김정현)라는 소설이 엄청난 히트를 친 것 역시 그 동안 아버지를 다룬 소설이 지나치게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시게마츠 키요시의 이 소설은 그런 점에서 신선하다. 총 일곱편의 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에서는 주로 아버지의 고뇌와 아버지의 애정을 다룬다. 이 소설들에서 어머니의 위치는 희미하다. 사랑을 찾아 집을 나가고(〈어머니 돌아오다〉), 왕따를 당하고 있는 딸의 모습에 발만 동동 구르며(〈셋짱〉), 존재는 있되 생각은 없는(〈주먹〉) 모습을 보인다. 어쩌면 어머니(또는 아내)의 모습이 이렇게 부정적이고 희미하게 묘사되는 것은 소설의 화자가 남편 또는 아들이 선택되고 있기 때문인 듯도 싶다.(1인칭 시점이 아닐 때 역시, 작가는 남편의 시선으로 상황을 묘사해 내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생각할 때, 이 소설은 남편 또는 아들의 아내 또는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보여주는 것이 되어 일본 가정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 같기도 해서 여성의 입장에서 불공평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점에서 우리 소설들을 미루어 보면, 지나치게 아내 또는 어머니의 입장만을 옹호해 온 단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여 이 소설은 내게, 내 아버지의 모습이나 내 아버지의 고뇌를 돌아보게 하였다. 여자이고 딸이라는 한계로 인하여 아버지를 제대로 보고 있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딸들과 친구가 되고, 딸들에게 이해받고, 아들에게 동정받는 어머니들의 모습 뒤로 쓸쓸히 늙어가는 우리들의 아버지. 그들의 젊은 시절 고뇌는 “남자답다”라는 말에 강제로 함몰되어 버린 약한 감정과 두려움, 외로움 등등이 아니었을까.

그래. 남자든 여자든, 아버지든 어머니든, 남편이든 아내든. 결국은 사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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