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참 신기한 일들이 많은데, 나에게는 독일이라는 나라도 그런 신기한 나라중의 하나다. 그 실리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나라에서 니체, 하이데거, 야스퍼스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나왔고 대부분의 철학의 본거지이자 발상지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역설적이다. 실생활이 지나치게 합리적이기에 정신세계가 그렇게까지 발달을 한 것일까? 『소설의 이론』을 쓴 루카치가 공산주의 국가인 헝가리 출신이라는 것만큼이나 신기한 일 중의 하나다. (정말이지 『소설의 이론』은 놀라운 책이다. "사람들의 마음에 심연이 생기면 소설이 발생한다" 라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비유를 공산주의 국가의 사람이 쓸 수도 있는 건가?)

호어스트 에버스는 독일 출신의 작가다. 그의 자서전 또는 일기 격인 이 책에서 나타나는 그의 생활은 우리가 상상하는 독일인의 합리적이고 깔끔하고, 정확한 생활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원칙중의 하나가 새 양말을 신었을 때는 피자를 시켜먹지 않는다(왜냐면, 시켜먹고 전혀 치우지를 않으니까. 새 양말을 신고 있다가 먹다 남긴 피자를 밟는 것만큼 낭패인 일도 없다.)는 것일 만큼 그는 게으르다. 심지어 그는 죽는 것조차 게을러서 하지 못하는(p.56)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자신의 게으름을 그다지 창피하게도 나쁘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먹고 살 일만 해결이 된다면, 그러니까 먹고 살 최소의 조건만 갖추어 진다면 그는 평생이라도 백수로 살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별로 나빠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소설가 김훈이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 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 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 같고 검사늘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 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 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 둘이 노는 거다. 」
문학인, 2002년 가을호, 시공사, 2002,  P262∼277


호어스트는 김훈 식으로 이야기하면 노는 것의 신성함을 알아 혼자 잘 놀고 있는 사람이다. "놀고 있다." 하니 비아냥 같은데ㅡ 수사적 표현이 아닌 말 그대로의 놀이다. 그래서 그는 파괴되지 않은 인간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뭐.

그처럼 살아라 하면, 살 수 없겠지만 이렇게 사는 사람하나 보는 것도 꽤나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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