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3 -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리스본, 뽀르투 편 유럽 도시 기행 3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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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text와 콘텍스트context, 그야말로 유시민스러운 유럽도시기행1,2,3by 유시민

 

부제 : 당신과 나는 같은 것을 보았을까.

 

읽은 날 : 유럽도시기행 1 2020.4.24. 2026.7.9.

유럽도시기행 2 2026.7.16.

유럽도시기행 3 2026.7.17.

 

유시민의 신간 유럽도시기행 3편이 나왔다고 알라딘 알림이 와서 예약구매를 걸어놓고 책이 오기를 기다리며 1,2권을 꺼내 다시 읽었다.

 

콘텍스트context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들은 건 고등학교 때였다. 그때 콘텍스트는 배경지식이라는 말로 풀이되었다. 텍스트(지문)을 제대로 잘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 당시 언어영역(지금의 국어영역)의 출제원칙은 교과서 외 출제였고, 처음 보는 지문을 해석하기 위해 요구되는 콘텍스트, 배경지식은 일종의 상방보검尙方寶劍처럼 취급되었다. 우리는 콘텍스트가 뭔지도 모르면서 전설 속의 엑스칼리버처럼 여겼다. 그 단어 자체를.

 

어쨌든, Anyway, 텍스트와 콘텍스트는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하나의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풍부한 콘텍스트가 있어야 한다. 충분한 콘텍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같은 텍스트를 보지만 전혀 다른 텍스트를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유시민의 유럽도시기행은 콘텍스트로 넘쳐난다. 그러다보니 그야말로 뭐라 말하기 곤란한 책이 되었다. 관광 안내서, 여행에세이, 도시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보고서, 인문학 기행, 그 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은 그 모두이기도 한 이 책”(유시민, 유럽도시기행 1, 생각의 길, 2019, p.6 저자서문)은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가장 유시민스러운책이다. 유시민은 엑스칼리버를 휘두르는 아서왕처럼 유럽의 역사와 문화, 건축과 인문학 콘텍스트를 자유자재로 휘두른다. , 이 사랑스러운 수다쟁이.

 

물론 1권에서 유시민의 검법은 아직 충분히 익지 않았다. 손에 든 엑스칼리버를 정말 이렇게 저렇게 휘둘러도 되나? 망설이는 사이 쾌도난마로 휘두르지 못한 머뭇거림이 글의 여기저기에 남았다. 그 고민과 스스로 내린 결론이 2권의 서문에 나온다.

 

나는 도시의 건축물·박물관·미술관··광장·공원을 텍스트text’로 간주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데 필요한 콘텍스트context’를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인지 소화하기 어렵다거나 거기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고 하는 독자가 적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다. 그렇지만 무엇을 크게 바꿀 수는 없었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 2, 생각의 길, 2022, 저자서문

 

2권에서부터 유시민의 검법은 물이 올랐다. 쾌도난마가 따로 없다. 1권에 남아 까슬까슬 거슬리게 했던 그 머뭇거림이 사라진 유시민의 글은 읽는 이도 고민 없이 즐겁게 그 검술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그래, 이게 유시민이지. 동서고금의 역사와 지식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 손에 익은 지식소매상의 솜씨로 써 내려간 인문 기행이다. 문장은 유려하고 읽기 쉽게 넘어간다. 지식을 전달하고 있으나 지루하지 않다. 지루하면 유시민이 아니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유홍준 교수가 처음 했는지, 아니면 유홍준 관장 역시 누군가의 말을 인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쨌든 그 말을 유홍준 교수의 책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처음 접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무언가다.

 

유시민이 1권에서 쓴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모친과의 대화는 이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묘사한다. 유시민의 베르사유와 루이16세는 이러하다.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을 때 베르사유에 있었던 루이 16세는 15년 재위 끝에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그는 성격이 나약하고 우유부단했으며 정치와 행정에 무능했다. 그러나 특별히 목이 잘릴 만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기는 어렵다. 좋지 않은 시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왕좌에 있었을 뿐이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 1, 생각의 길, 2019, p.292 파리편

 

그러나 1994, 유시민이 모시고 가서 보여드린, 유시민 어머니의 베르사유와 루이16세는 달랐다.

 

베르사유 궁전을 보고 나온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여기 살던 임금이 목 잘려 죽었다고?” “.” 한마디 덧붙이셨다. “그럴 만도 하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 1, 생각의 길, 2019, p.293

유시민 어머니의 감상이 틀렸다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결론이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다. 유시민도 베르사유라는 텍스트가 상징하는 지극히 인간답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소거한, 생산적인 활동과는 동떨어진 삶을 영위했던 당시의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한다. 다만 그 마지막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은 이가 루이 16세라는 사실에는, 루이 16세가 일정부분 억울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을 뿐.

 

콘텍스트의 유무는 텍스트의 해석에 때로는 결정적이거나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고 새롭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루이 16세는 베르사유에 살았을 뿐 베르사유에 책임이 있지는 않으니까. 삶은 그렇게 단순하고 즉각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베르사유의 콘텍스트가 말하고 있지 않나.

 

그와 동시에 또한 유시민은 위대한 텍스트는 콘텍스트 없이도 전달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포스터를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의 방 침대 벽에 붙였더니 딸이 악몽을 꾸는 데 그 그림 때문인 것 같다며 치워달라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며 말한다.

 

그림이든 노래든 소설이든, 콘텍스트 없이도 강력한 감정을 전달하는 텍스트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게르니카>가 바로 그런 텍스트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 3, 생각의 길, 2026, p.72

 

3권에서 유시민은 꽤 여러번, 그 콘텍스트 없이 느끼는 감동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때로 그 콘텍스트의 부재는 오히려 감상과 해석의 자유를 열어주기도 하니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그러하고, 피카소가 그린 <시녀들> 오마주 작품들이 그러하다.

 

해석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텍스트라 하고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콘텍스트라고 한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라>는 아무 콘텍스트가 없는데도 분명한 감정을 전달했다.

유시민, 유럽도시기행 3, 생각의 길, 2026, p.342

 

포르투 여행의 마지막날, 비가 많이 내려 어쩔수 없이 선택한 포르투갈 국립 미술관에서 유시민은 아무런 콘텍스트 없이 바스꼰셀로스와 아우렐리아 드 수자를 만난다. 물론 책에서는 그들에 대한 설명(콘텍스트)을 추가하고 있지만, 이 화가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유시민은 엑스칼리버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도 그 작품들은 그에게 충분한 감동과 어떤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이 예술이다.

 

3권 이베리아 반도 여행편에서 유시민은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문장은 유려하고 정보도 감정도 충분하게 전달된다. 1편의 머뭇거림과 2편의 쾌도난마를 거친 3편의 종횡무진은 유시민식 글쓰기의 정점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유시민 답다.”

 

그래, 이게 유시민이지. 그래서 내가 유시민을 좋아하지. (유시민의 말을 오마주했다. 흉보지 마시길.)

 

2026.7.17.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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