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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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 『아무튼, 술』by 김혼비



읽은 날 : 2025.1.5.



주말에 제주를 다녀오느라 비행기를 탔다. 최초의 동력 비행기가 1903년,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 본 건 그로부터 한세기가 거의 다 지날 무렵인 1998년,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뜬금없이 비행기라는 걸 한번 타 보고 싶다는 이유로 탔다. 서울-부산 간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렇게 잦지는 않게, 그렇지만 그렇게 드물지도 않게 비행기를 탄다. 그런데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늘, 이 거대한 쇳덩이가 하늘을 난다는 사실이 무슨 마법 같고 놀랍기만 하다.



유체역학이니, 양력이니, 공기의 저항이니, 엔진 출력으로 일으키는 베르누이의 원리니, 뉴턴의 제3법칙이니 이런 걸 내가 다 이해할 수도 없지만, 이해한다 해도 나의 단순한 감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걸 과학으로 백날 설명해봐야 나에게는 그저 마법 같은 일의 하나일 뿐이다. 이 감탄은 이해와는 별개의 어느 지점에 있다. 그야말로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일이라고 할까.



비행기 옆좌석에 앉은 남편에게 소곤거렸다. “당신은 이 비행기가 난다는 사실이 신기하지 않아? 난 이륙 순간마다 항상 놀라.” 남편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그도 나와 같은 본투비 문과이니까, ‘지금 내게 비행기가 뜨는 과학적 이유를 설명해 달라는 말이냐?’ 라는 표정이 되는 것도 당연하고, 이 나이가 되어서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옆에 앉은 남편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어처구니없는 것도 당연하다. 가는 비행기에서 하는 말을 오는 비행기에 또 한다. 매번 진지한 놀라움을 담아. 마치 비행기라는 걸 처음 타 보는 사람처럼.



하지만 그처럼 신기한 걸 어쩌랴. 친절한 인터넷과 백과사전 덕분에 뜨는 이유는 안다. 실제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니까 경험도 했다. 안 믿을 도리가 없고, 이게 마법의 일종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그럼 뭐하나, 신기한 건 신기한 거지. 나는 도리어, 나와 같은 놀라움을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게 더 신기하다. “비행기보다 몇백 배는 큰 항공모함이 물 위에 떠 다니는 건 안 신기하냐”, 길래 아주 하찮은 것을 보는 표정으로 “물의 부력도 모르냐?” 라는 대답도 해 줬다. 아니 어쨌든 물은 형태와 밀도를 가지고 있잖아. 공기는 밀도가 없냐? 라고 묻는다면, 다시 과학 원리로 들어가야 하는데, 안다고, 안다니까. 아는 것과 납득이 되는 건 별개의 문제더라고.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나에게 이, “비행기는 대체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 류의 질문과 동급의 질문이 “어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 이다.



아버지가 술을 안드시는 집에서 자란 나는, 아마도 그 체질을 물려받았는지 술을 마시지 못한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술 분해효소가 없는 간을 가지고 태어난 게다. 그러다보니 술자리에 갈 일이 별로 없고, 누가 주정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더구나 나는 창밖이 어두워지면 무조건 집에 들어가야 맘이 편해지는 집순이여서, 어쩌다 참석하게 되는 술자리에서도 끝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술을 제대로 마시는 사람을 본 건 형부였는데, 말술인 우리 형부는 술버릇이 매우 얌전했다. 앉은 자리에서 소주 두 병을 마시고도 술자리가 끝나면 조용히 씻고 잤다. 심지어 아내가 거슬려 할까봐 침대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바닥에 자리를 깔고 자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형부와 처제로 얼굴을 마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형부의 술버릇은 그처럼 얌전하다.



덕분에 나는 술에 대해 매우 관대한 사람이 되었다. 미혼의 친구들이 남편의 조건으로 꼽는 대표적인 것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이었는데, 그건 내 남편감의 요구조건에 있지 않았다. 술이 뭐, 뭐가 어때서. 마실 줄 알면 좋은 거 아냐? 가끔 가는 술자리에서 무알콜의 음료를 홀짝이며 술에 ‘적당히’ 취한 사람들을 보는 일은 재미있었다. 사람을 반듯하게 죄어놓는 나사가 한 바퀴나 반 바퀴쯤 풀려(나사가 빠지면 안 된다.) 살짝 느슨해진 사람들은 평소보다 유쾌했고 웃음이 헤퍼졌고, 너그러워졌다. 취옹(醉翁)의 경지가 이런 것이로구나, 나로서는 평생 도달하지 못할 어떤 부분이라 부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술에 관한 한 아주 해맑은 상태로 남편을 만났고 결혼을 했다. 술버릇을 알아보고 어쩌고 할 계제가 아니었다. 내가 술을 못 마시니 우리의 데이트는 늘 밥과 커피였고, 어쩌다 남편(그땐 남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난 늘 창밖이 어두워졌으니 집에 가야 하는 8시 신데렐라였으니. 그런 깐으로는 참으로 운이 좋게도(이게 운이 좋은 거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땐 몰랐지.), 남편도 술버릇이 형부만큼이나 얌전했다. 술을 먹고 들어오면 조용히 씻고 자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까지, 아니, 내가 시부님의 주사를 직관하기 전까지, 남편은 자기 아버지의 알콜릭을 숨겼다. 정확하게 말하면 굳이 말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아버지는 술 문제가 좀 있었어.” 라고 말을 했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리고 시부 본인까지, 시아버님의 알콜 문제는 기를 쓰고 숨기는 일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시댁과 다섯 시간 거리의 서울에 살고, 정해진 날에만 내려가거나 내려가기 하루 이틀 전에는 시댁에 미리 연락을 해 두니까, 우리가 갈 때는 시아버님도 술을 드시지 않았다. 술을 먹지 않았을 때의 시아버지는 그냥 평범하고 무뚝뚝한, 은근히 살가운 데도 있는 경상도 시부일 뿐이었다. 다만 친정과 시댁의 명절 풍경이 너무도 달라서 신기하긴 했다. 친정은 명절이 되어 자식들이 오면 술판이 벌어졌다. 술은 형부와 사촌형부 둘이 마시고, 가끔 엄마도 곁에서 한 두 잔을 받아 마시고, 나머지 딸들과 아버지는 다른 음료를 마시며 유쾌한 명절이 지나갔다. 내가 결혼한 뒤에는 술 멤버(울 남편 말이다)도 늘었다. 그런데 시댁의 명절은 술이 한 방울도 없었다. 남편도 술을 먹는데, 시숙님도 술을 먹는다고 손윗동서에게 들었는데, 멀리 살다 명절이라고 간만에 만난 형제 둘이 소주는커녕 맥주 한잔 기울이는 법도 없었다. 신기했다. 명절인데 왜 술이 없냐? 고 물었을 때, 남편이 한 말이 그 말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술 문제가 좀 있었어. 그래서 엄마가 술을 싫어해.”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결혼 10년이 지난 어느날 시댁 방문 스케줄이 꼬이는 실수로 직관하게 된 시부의 주사를 보고야 알았다.



흉했다.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흉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어이없는 질문 목록이 하나 추가되었다.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의 다음 줄에 “어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가.



술과 나는 아예 인연이 없으리니 하고 살던 내가 술을 처음으로 배운, 아니, 그러니까, ‘취기’라는 즐거움을 처음으로 배운 곳은 마트다.(웃기겠지만 팩트다.) 이마트나 코스트코 같은 대형 마트의 시음 코너. 40살이 되기 직전이었다. 코스트코의 와인 코너 앞에는 와인 시음 매대가 있다. 시음 와인은 매주 달라지고, 시음을 하겠다고 가면 소주잔 사이즈의 종이컵 바닥 1/4 정도를 채워 준다. 딱, 한 모금.



남편과 둘이 1층 매장에서 각종 공산품을 골라 카트에 담고 무빙워크를 타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보이는 게 와인 코너다. 매번 거기서 딱 한 모금의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인지를 하게 된 거다. 마트에 가서, 와인 한 모금을 시음하면 딱 기분좋을만큼 취기가 돈다는 사실을. 그렇다, 나는 딱 한 모금의 와인에도 취하는, 알콜에 관한 한 매우 가성비가 뛰어난! 사람인 거다. 술을 못한다는 말보다야 알콜 가성비 좋다는 말이 훨씬 듣기 좋지 않은가. 그게 뭐가 됐든 ‘좋은 게 좋은 거’ 니까.



그걸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한 모금의 와인을 마시고 난 뒤의 내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많이도 말고 딱 0.5센치 만큼만 땅에서 떨어졌다. 감각의 모서리가 아주 조금 무뎌져 살짝 몽롱해진 느낌은 오, 와, 사람들이 이래서 술을 먹는군! 하고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 취기는 마트 식품 코너의 쇼핑을 마칠 때쯤 완전히 사라져 계산할 때 나는 매우 명료하고 청명한 정신상태로 돌아온다. (이거 봐, 나 술도 이렇게 금방 깬다니까!)숙취 따위 있을 리 없는 나 혼자의 짧은 취생몽사醉生夢死다. 같이 장을 보러 가는 남편만이 아는 나의 음주벽이다.



이제 나는 술자리에서 딱 반 잔의 맥주를 받아 둔다. 그리고 그 술자리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그 반 잔의 맥주를 핥듯이 아껴가며 마신다. 첫 모금에 취했다가, 한 1-20분 뒤에 취기가 깼다가, 다시 한 모금을 마시고 취했다가, 또 깼다가 하며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취생몽사를 즐긴다. 그 알딸딸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이 취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뒤에도 ‘어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라는 나의 오랜 질문은 답을 찾지 못했다.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 상태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도 갔다가 발리도 갔다가 부산도 갔다가 하는 것처럼,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나요.” 라고 묻게 되는 어떤 지점에 나는 서 있다. 술이라는 건 기분이 좋으려고 마시는 것 아닌가요. 술만 마시면 기분이 나빠지고 시비를 걸게 되고, 술에 취해 사고까지 치는 경험을 하고, 심지어 술을 마시면 폭력성향이 나오기까지 한다면, 아니, 술을 안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술 취한 내가 저지른 사고는 술이 깬 내가 처리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반복하는 건 너무 바보같지 않나요. 그같은 일을 몇 번 하고 나면 술이 깬 나는 두 번 다시 술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거 같은데.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 이번 술에는 절대 주사를 부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더 놀라운 것은 주사가 있는 사람과 술을 같이 마셔주는 사람이다. 흉하지 않나??? 아,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느냐고요.



성석제는 “내가 아는 한 어떤 음식도 냉면처럼 열렬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지 못하다”(성석제, 『소풍』, 창비, 2006, p.149)라고 말했지만, 냉면보다 훨씬 열렬한 신도를 거느리고 있는 게 바로 ‘술’ 같다. 이건 술에 관한 책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 명약관화하다. 한창훈은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썼고, 김혼비의 이 책에도 언급되는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는 ‘음식’ 산문을 가장한 ‘안주’ 산문집을 표방하다 6년 뒤 아예 『술꾼들의 모국어』라는 제목의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가장 잘 쓰는 작가로 내가 꼽는 성석제도 음식 에세이 『칼과 황홀』의 한 챕터 전체를 술에 관한 글에 할애했다. 윤대녕의 맛 산문집 『어머니의 수저』에도 술에 관한 꼭지는 두 개나 있다. (주제가 소주, 맥주, 청주, 막걸리다.)『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로 유명한 구스미 마사유키는 『일단 한잔, 안주는 이걸로 하시죠』와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술을 주제로 한 에세이집을 두권이나 냈고, 하라다 히카의 소설은 제목이 아예 『낮 술』이다. 작가들이 그 빼어난 글솜씨로 술에 관한 예찬을 하는 것을 읽다 보면, 술을 먹을 줄 모르는 게 너무나 억울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술이란, “우리를 조금씩 허술하게 만”들어 “평소라면 잘 하지 못했을 말을 술술 하는 순간”을 불러오는(p.166) 그런 것이다. 세상에는



아무런 힘이 없어 누군가의 귀에 가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툭 떨어지는 말일지라도, 때로는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런 쉬운 말밖에 없을지라도, 이런 쉬운 말이라도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김혼비, 『아무튼, 술』, 제철소, 2019, p.61-62



그런 말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의 힘으로 한 시기를 건너갈 수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반듯하게 죄는 나사가 살짝, 반바퀴에서 한바퀴쯤만 풀어지는 순간을 나는 기대한다. 그 술기운을 빌려서 하는 말이, 때로는 그 순간을 버티게하는 유일한 힘이 될 때가 있으니까. 그런 순간들 없이 사회적 약속과 규범을 반듯하게 잘 지켜 “지나고 보면 상대도 나도 적정선 안에서 ‘나이스’했”기에 결국 “지나고 보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p.167)게 되는 그런 관계를 나도 숱하게 맺어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선을 명확하게 긋는 사람이라는 평을, 상대를 긴장시키는 사람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어려운 사람이라는 말도 들었다. 아닌데, 나 만만한 사람인데, 라고 혼자 중얼거리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안다. 적정선 안의 ‘나이스’ 한 관계 맺기를 디폴트로 했던 후유증이다. 나도 술을 마시고 나사를 풀 줄 알았다면 그런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마시지 못하는 술을 기어코 마시고 싶어하는 이유다. 술도 마시지 못하는 내가 술 예찬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런데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나나요? 라고 묻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5.1.6.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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