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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소년 1
이정명 지음 / 열림원 / 2013년 5월
평점 :
“사막을 건너려면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해. 첫 번째는 지도를 버리고 별자리를 따라가야 한다는 거야. 사막의 모래바람은 몇 시간만에도 지형을 휙휙 바꿔버리니까 지도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러니까 수시로 바뀌는 지형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북극성을 따라가야 하는 거야. 두 번째는 비록 혼자일 때도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 거야.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 더 이상 갈 이유를 잃어 버리게 되지. 하지만 누군가가 함께 있고, 그의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계속 갈 수 있어. 마지막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쉬어 가야 한다는 거야. 쉬지 않으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니까. 이 세 가지만 기억해 두면 아무리 메마른 사막이라도 건너갈 수 있단다.”
천국의 소년2, 이정명, 열림원, 2013, p.166
사막의 이미지는 각종 문학작품에서 다양하게 변주된다, 라고 쓰고 보니 그렇지 않은 자연물이 있나 싶다. 바다가 그렇고 숲이 그렇고. 대개의 경우 사막은 불모지, 고난과 역경, 건너야 할 장애물 등으로 묘사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배경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처럼.
이정명은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의 작가다, 라고 쓰고 보니 또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경계는 어디인가, 과연 그런 경계가 있기는 있나, 경계선을 긋는 기준선은 어딘가 싶기도 하다. 한때는 이런 경계가 명확했다. 그러니까 단편소설을 소설의 본령으로 꼽고, 신문연재소설을 폄하 해서 ‘전작장편’(일간지나 월간문예지에 연재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출간되는 장편소설)이 책의 광고문구가 되기도 했던 시기에 말이다. 대본소 소설이라는 것이 있어서 도서관이 아닌 집 근처 만화방이나 책 대여점에서 유료로 빌려 읽는 책들. 그 대본소 소설은 무료인 도서관에는 거의 들어와 있지 않았다.
아. 도서관과 돈으로 금을 그으니 명확해진다. 무료로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이 있는데도 돈을 내고서라도 빌려 보게 되는 책이 대중소설이다. 미치고 환장하도록 재미있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요소는 ‘재미’다. 우리나라 최초로 소설을 써서 재벌이 된 사람이 『황제의 꿈』등의 대본소용 대중소설을 쓴 소설가 이원호 선생이라고 했던가.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 내가 순수소설과 대중소설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의 작가로 꼽는 몇몇 작가들의 공통점이 그것이다. 재미. 문학의 가치 어쩌고 저쩌고를 떠나 환장하게 재미있는 글을 써 내면서도 언어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작가. 나에게는 박범신이 그렇고 공지영이 그렇고 이정명을 그 목록에 추가한다.
소설은 정신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장대한 스케일의 사건들이 펑펑 터진다. 그 사건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면서도 그 사이사이 문장의 아름다움이 예사롭지 않다.
아포리즘 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어로 '정의'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aphorism은 명언, 격언, 잠언, 금언, 속담 등 삶의 교훈을 간결하게 표현한 말을 가리키는데 문학의 대가들은 자신의 아포리즘을 묶은 책을 한권쯤은 가지고 있다. 우리가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게 되는 부분이 그 아포리즘일 것인데, 이정명의 책에는 꽤 많은 밑줄이 그어진다.
“중요한 건 그분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냐. 우리를 사랑하는 존재가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단다.”
천국의 소년1, 이정명, 열림원, 2013, p.107
이런 문장들 말이다.
자폐증을 가진 아스퍼거 천재 수학자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인물들은 특이하되(특별하다가 아니다) 개성이 없고, 그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사건을 헤쳐나가는 주인공이 딱히 매력있지도 않다. 주인공 외의 인물의 존재감은 희미하고 (여주인공은 더욱 그렇고)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말초적인 재미만을 추구하는 소설이 되지 않게 중심을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저 문장들이다. 그리하여 소설을 다 읽고 나면, 2권의 중반부에 나오는 저 사막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길모가 영애를 찾아가는 길은 사막을 건너는 것과 같다. 방법이 없다. 사막의 지형이 그렇듯 수시로 변화해 버리니까. 당연히 지도도 없다. 사막 여행자가 따라갈 수 있는 것이 북극성 하나이듯, 길모가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영애 하나다. 비록 혼자일 때도 혼자가 아니라 상상하면서.
이 사막 은유를 보고나면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에서 파이가 진짜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함께 항해를 한 것인가 아닌가를 고민하게 만들 듯, 이 소설의 주인공 길모가 정말로 그 많은 일들을 ‘길모의 진술’대로 한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햐. 이 작가 글 잘 쓰네.
이정명의 소설은 『뿌리깊은 나무』이후로 이게 두 번째 인데, 이 소설을 읽고 이정명의 다른 소설들도 주문을 했다.
거 봐. 사람의 지갑을 여는 건 ‘재미’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