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셔니스트 - The Illusioni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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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더니티 담론이 한창이던 때 자크 타티는 소비주의에 의심을 눈초리를 보냈다. 개인은 익명으로 묘사되고 도시는 차가운 거대한 금속이처럼 움직인다. 언제나 꿈의 도시인 파리조차도 그의 영화에서는 찬바람이 쌩쌩분다. <윌로 씨의 휴가>에서는 (한국인한테는 로망인) 프랑스인들의 의무적 바캉스를 통해 단조로움을 조롱한다. 그가 딸한테 쓴 편지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타티의 영화들처럼 거의 대사 없이 음악과 인물의 움직임만으로 감성을 깨운다. 마치 타티가 살아돌아와 직접 감독하고 지휘한 영화같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영화 역시 기계문명과 소비문화 속에서 개인은 소외되고 변두리에서 알콜 중독이 되거나 구걸을 한다. 삼류 마술사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가수들이나 본 쇼 공연 막간에 잠깐 시간을 때우기 용으로 사용된다. 그래도 그는 어디든 간다. 스코틀랜드 지방을 여행하면서 어린 소녀를 만나고 마술사는 어린 소녀의 소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된다. 어린 소녀가 신발, 외투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마술사는 잠시지만 진짜 마술사라도 된 기분이다.  

그러나 소녀를 기쁘게 하는데 삼류 마술사의 수입은 형편이 없어 대형 백화점 윈도우에 갇혀 신상품을 소개하는 마술 쇼를 벌이는 일을 잠시한다. 거대한 소비문화 속에 꿀꺽 잠식당한 영혼을 마술사는 견디지 못한다. 결국 그는 마술사는 없다는 메모를 남기고 소녀를 떠나지만 시골에서 대도시로 온 소녀는 또 다른 마술사를 만난 것처럼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 물건을 사도 사도 허기진 도시에서 소녀는 잠시 허기를 잊을 수 있는 사랑이라는 마법에 걸릴 것이다. 마법은 언젠가는 풀리기 마련이지만.  마술사는 마술이 필요한 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마술사는 없지만 마술사 같은 마음을 지니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게 그의 일이다.

2. 이런 쓸쓸한 이야기를 동화적 감성을 더해 아름답게, 말그대로 그려냈다. 부활한 윌로 씨의 걸음걸이나 등이 구부러진 각도, 머리를 숙일 때 목이 기우는 각도, 바지단과 신발 사이에 보이는 양말..영화를 보는 것 같다. 또 기차 여행을 하면서 차창 밖을 보며 감탄하는 표정에 감탄 또 감탄. 정처없이 기차에 올라 탄 마술사가 떠난 에딘버러 도시는 하나 둘 불이 꺼진다. 더 이상 마법이 없는 도시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회색빛으로 남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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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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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미술책이라기 보다는 르 클레지오란 저자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전기글 쯤 된다. 그림은 그냥 부록이고. 그림책을 살 때, 구매 심리는 화가의 일생만을 원하는 게 아니라 플러스 알파를 얻기를 기대한다. 일생은 좀 간략하고 그림을 보는 각도를 얻고 싶을 때 그림책을 산다. 물론 내 경우에.  

그림 읽어주는 책, 혹은 화가에 관한 책을 독자 마음에 들게 쓰는 일은 소설 쓰는 일보다도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럼 난 그림 분석을 원하는가. 그렇진 않다. 그림을 분석만하는 책은 상상력을 방해하고 금방 지루해진다. 일대기와 그림 분석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 어우러진 책을 원하는 거 같다. 이 책은 이런 내 구매 심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은 책이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일대기가 심층적이지도 않고 비슷한 말을 반복한다. 자료수집 부족일 거 같기도 하고.ㅋ 전기문이 그렇지만 작가의 절대적 상상력을 요구하는데 실제 인물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르 클레지오의 상상력은 부실하다.   

그만 투덜거리고, 

프리다가 주로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 이유는 늘 병마와 싸우느라 침대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4,5월은 가벼운 교통사고와 저질 체력이 감당 못해 큰 후유증으로 이어져 사경까지는 아니어도 밤 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체력은 급저하되고 한약으로 연명하는 시간을 보냈다. 머리는 혼미해지고 밥 맛은 없고 독서가 왠 말이냐, 극장도 못 가고, 커피도 끊고 맥주도 끊는 아주 암울한 두 달을 보냈다. 커피와 맥주가 없는 삶을 살려니 죽을 맛이다. 책은 주문만 해 놓고 쌓아놓기만 했다. 방전된 체력으로 무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깨닫고 있을 때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를 읽었다. 오랜 투병 생활 중에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니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아름답지 않다. 나는 일반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묘사한 그림에 끌리는 단순한 관객이다. 그러나 서경식 씨가 말했듯이 왜 아름다움만 그림의 대상이 돼야하나. 추함이나 고통 또한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고통을 그린 것이고 그 속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힘이 꿈틀댄다. 조각난 신체 부위를 널어놓는다거나 피가 여기 저기 있는 그림은 말보다도 몇 만 배는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웟는지. 약한 몸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고통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예술은 예술가의 행복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고통에서 탄생한다. 칼로한테 고통은 그림의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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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y 2014-12-08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지금 이 책을 빌려서 읽고 있는데요, 읽다보니까 비슷한 말을 자꾸 반복하는건 사실이더라고요. 중간중간 그림에 대한 설명이 나오기는 하는데, 글과 그림이 따로 있어서 그림에 대한 이해가 아쉽달까요. 아무튼 이 책과 관련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들려 공감하고 가게 되네요.

넙치 2014-12-14 21:35   좋아요 0 | URL
비루한 기억력 탓에 희미하게만 기억이 나네요. ^^;
 
싱글맨 - 아웃케이스 없음
톰 포드 감독, 니콜라스 홀트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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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독에 몸부림치는 한 남자를 시적으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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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카피하다 - Certified Cop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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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1.
한 대상이 예술품이라는 판정은 누가 내리며 그 기준은 뭔가. 찾아 보는 이가 많고 보면서 감흥을 얻는 모든 것은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원본보다도 더 그럴듯한 복제의 풍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철 지난 담론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예술품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결국 예술은 삶의 파편일 뿐이다. 그렇다면 원본인 삶과 사랑도 원본과 복제가 있을까. 영화는 원본과 시뮬라크르에 대한 지루한 대화 사이에 한 남자와 여자의 삶에 관한 대화를 끼워넣는다. 여자가 예술품이라고 여기는 삶은, 남자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는 삶이다. 남자한테 예술적 경지의 삶은 자신의 영역을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게 굳건하게 막는 일이다. 길을 걸으면서 두 사람의 삶을 막 시작한 신혼부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는 중년부부, 걸음을 옮기는데 서로의 팔이 필요한 노부부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 누구의 삶도 가짜가 아니지만 누구의 삶이 예술적인지 알 수 없다. 누구의 삶이 예술의 경지라고 말하는 건 순전히 구경꾼의 입장이므로 실제로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예술의 조건 따위 보다는 그 순간의 소소한 즐거움에 더 관심이 있을 터이다. 문 밖에 놓인 의자에 앉아 함께 볕 쬐며 지나가는 사람들 보는 즐거움은 예술품을 보는 것보다 더 가치있을 수 있다.  

영화 속 남자와 여자는 일상에 대한 근본적 시각의 차이를 좁히지 못한다. 남자는 사소한 습관도 버릴 수 없으며 여자는 남자의 그런 점이 못마땅하지만 지친 마음을 내려놓을 곳이 남자라고 여긴다. 두 사람이 실제 부부였는지 아님 처음 만난 사람인지 모호한 경계 속에서 여자의 고단한 삶이 퍼즐처럼 조금씩 드러난다. 
 

2.

처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영어로 대화를 한다. 마을 광장에 있는 조각상을 보고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여자의 모습에서 숭고한 예술적 기품이 들어있다고 여자가 말한다. 한 중년 남자가 남자에게 슬그머니 충고를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든 지금은 그저 여자의 어깨에 손을 가만히 얹어주기만 하면 된다고..남자는 주춤거리며 여자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리고는 두 사람의 대화는 여자의 모국어인 불어로 바뀐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시 의견을 달라지는 지점에서 남자는 자신의 모국어 영어로 여자는 불어로 대화를 한다. 사람의 관계는 이런 게 아닐까.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 친숙해졌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낯선 외국어가 돼버리는. 아무리 친근한 사람 사이에도 모국어와 외국어 사이에 존재하는 극복할 수 없는 뉘앙스의 벽이 늘 존재한다. 두 언어 간에 존재하는 뉘앙스의 벽이 무너지는 건 인간 세계에서 가능하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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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 중독자의 고백 펭귄클래식 105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명복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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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제목의 도발성 때문이다. 아편 중독자의 고백이라니...나는 태생상 뭐든 중독자가 못 된다. 저울이 늘 균형을 이루어야 마음이 안정되기 때문에 양쪽 접시의 추를 같게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니 추의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사람들의 심리에 관심과 애정을 쏟게 된다. 중독이라는 게 한쪽을 버려야만 가능하다. 그게 자신의 영혼이나 육체를 갉아먹어도 쏠림의 성향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균형을 버릴 수 없는 성향인 것처럼.  

일 중독자, 알콜 중독자, 마약 중독자, 아편 중독자..어떤 매체가 됐든 중독이란 건 내게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미국영화나 소설을 보면 마약 중독자의 심리나 신체 현상을 다룬 작품이 꽤 있다. 나이가 들면서 그들이 마약에 의존하게 되는 배경을 유심히 보게 된다. 중독 후유증으로 겪는 물리적 고통과 맞서는 처절함을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보려고 하는 편이다. 물론 현실보다는 쾌락을 좇는 경우도 있는데 쾌락의 절정을 추구하는 행동도 내 눈에는 그럴듯해 보인다..이렇게 말하면 내가 기회가 주어지면 마약 중독자의 길로 들어설 여지가 있을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기회가 주어져도 나는 아마 중독자가 되지는 못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아편의 심각성에 대해 알리고자 쓴 글이라고 한다. 아편은 20세기 초반까지만해도 만병통치약으로 공공연하게 처방되었다고 한다. 머리 아파도 아스피린처럼 복용하고 가정 상비약으로 둘 정도였다고 한다. 저자는 위통 때문에 아편을 복용하다가 중독자가 되었고 아편을 끊고나서 그 경험을 통해 아편상습 복용에 대한 위험을 알리고자 했다. 흔히 아편은 쾌락을 위해서라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동경하는 중독자의 모습은 아니지만 글에 통찰력이 배어있다. 아편을 주제도 쓰고 있지만 아편이 유행하는 당시의 영국의 사회상을 단편적으로 다룬다.  

아편 중독자로서 거리 생활을 할 때 만난 어린 소녀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걸 목격하고는 이렇게 말한다. "런던에서 행해지는 자선 행위가 좀 더 신중하게 베풀어졌다면, 법이 개입해 그녀를 보호하고 보상도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런던의 자선 행위는 깊고 강력하지만 소리도 없이 지하로 스며드는 강물을 따라가고 있어서, 집도 없고 가난한 부랑아들에게는 분명 쉽게 접근하기가 불가능하다. 런던 사회의 외부 환경 구조는 거칠고 잔인하며 배타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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