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디어드리 배릿 지음, 김한영 옮김 / 이순(웅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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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니코 틴버겐이 만들어낸 용어, 초정상 자극supernormal stimuli 개념으로 흥미롭게 글이 시작한다. 우리말로 하면 이게 뭔 개념인가 하는데 영어를 보면 쉽게 감이 온다. 동물을 진화시킨 게 자극인데 실물보다도 더 정교하고 때깔 좋게 만든 모조품이 실물보다도 더 본능을 강하게 자극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시뮬라시옹 개념과 비슷하니 니코 틴버겐은 동물학계 장 보드리야르로 비유할 수 있겠다. 시작은 아주 흥미롭지만 글을 읽다보면 그래서...하는 의문에 이어 실망으로 이어진다. 도입부의 초정상 자극이 인간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는 원론적 내용이 끝까지 이어진다.   

요즘 미디어는 초원의 동물들처럼 자극적인 남자와 여자를 찬양한다. 남자는 복근이 필수고 얼굴은 곱상해야하며 겉으로는 차가우면서도 속은 따뜻해서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쳐야한다. 게다가 부자면 동물계에서 사자가 누리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여자는 늘씬한 팔등신이어야하고 군살 따위는 키우지 않으며 꿀피부에 애교와 상냥함도 필수다. 눈을 돌리면 어디나 이런 남자와 여자들있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미디어에서는 넘쳐나는 남자와 여자는 현실에서는 희귀종이다. 현실 속 남자와 여자는 실제 이성에 끌리기 힘들 수 있다. 가상의 인물이 되기 위해 피부과와 성형 외과에가서 카드를 긁는다. 카드를 긁기 위해 시간을 저당잡히고 초정상 자극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인간 세계에서 초정상 자극은 물질문명의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인 걸 저자는 지적한다. 초정상 자극을 극복하는 일은 반초정상 자극, 즉 정상자극으로 돌아가라고. 주름과 흰머리를 받아들이고 피부과과 성형외과에 들이붓는 돈의 일부라도 건설적인 일을 위해 쓰거나 도움이 절실한 이들과 공유하면 좋을텐데.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진화는 자극이 필수이다. 자극받지 않는 본능은 퇴화하니 이런 초정상 자극을 인간이 만들며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 역시 진화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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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y of the 20th Century (Paperback, 25th, Anniversary)
Museum Lidwig Cologne 지음 / TASCHEN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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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사진집을 받아보고 나는 왜 사진집을 샀을까? 첫째 소유욕 때문이고 둘째는 사진집을 들여다보고 좋은 사진들이 갖고 있는 구도나 이미지를 흉내내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주 두툼한 간략한 사진의 역사를 알 수 있고 백과사전식이어서 찾아보고 싶은 사람의 사진을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백과사전이 많은 내용을 한꺼번에 모아두는 장점이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 책 역시 개괄적 사진집이라 한 작가의 경향을 알기는 힘들다. 구입을 살짝 후회하게 되는 지점이지만 사진집치고 저렴한 가격에 손을 뻗지 않을 수 없다!

내게 사진은 아주 원초적 장르로 다가온다. 만 레이처럼 초현실주의자들이 사진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 그림에 가까운 사진들보다는 브라사이나 앗제처럼 풍경을 그대로 기록한 사진이 좋다. '그대로'란 말은 물론 셔터를 누르는 이의 시선이 들어가 있으니 부적확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풍경이나 사물을 변형시키지 않은 사진들이란 말 되겠다.  

이 사진집을 보다가 그림같은 효과를 내는 사진들을 보게 된다. 인화방식에 따라 여러 질감이 있다고 들었다. 사진의 세계도 알려들면 넓고 깊으니 일단은 눈으로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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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 The Front Li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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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닐 때 반공방첩이란 국가 모토 아래서 6.25 기념 글짓기나 포스터를 과제로 제출해야했다. 어린 마음에는 그저 짜증스러웠을 뿐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주제로 6년이나 포스터와 글짓기를 해야하니. 지도부가 물론 반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군인출신들이어서 명령에 복종하는 식의 교육과정이었다. 공산당은 무조건 무찔러야한다는 식의 세뇌교육이었다. 머리가 크고 현상을 양쪽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빨갱이의 개념이 모호했고 서서히 그 말도 잊혀져갔다.

한국은 종전이 아니라 휴전중인 나라다. 하지만 휴전이 아니라 종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이 일어났고 휴전이 돼서 전쟁은 역사 속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연평도 폭격이 있었을 때 프랑스에 있는 외국인 친구한테, 너랑 식구들은 괜찮니?하고 묻는 메일이 왔다. 외국인들이 볼 때 서울이나 연평도나 거기서 거기고 우리는 휴전중이니 사소한(?) 잡음도 전쟁재개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연평도 폭격이 뉴욕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진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는 폭격의 무서움이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전쟁의 무서움을 극도로 주입받았지만 무서움은 주입받는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시각차를 그린다. 후방에서 휴전 회담을 지켜보던 방첩대 출신 강은표와 50만명이 죽는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김수혁은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강은표한테 전쟁은 추상적인 명령일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던 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갈 수 있는 게 전쟁이란 걸 몰랐다. 무수한 죽음을 목도한 김수혁은 이념이나 명령이 아니라 전쟁터에 있는 한 적을 죽이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두려움과 마주한 이들은 휴전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싸우기 싫다고 우는 군인들의 마음을 휴전 회담자들은 모른다. 휴전 회담자들한테 전쟁터의 피비린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머나먼 추상일 뿐이다.   

전쟁 속에서 피어난 우정이나 휴머니즘을 그리는 전쟁 영화는 좀 비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휴머니즘에 감동 안 할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이 영화는 휴머니즘을 필요한 만큼만 사용했고 많은 부분을 전쟁을 직접 겪는 이의 두려움에 할애했다.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고 전쟁이 일으키는 폭력은 희생자만 만든다. 인간이 아무리 적응을 잘 하는 동물군에 속한다 하더라도 전쟁은 적응하기에 바람직한 상황이 결코 될 수 없다. 전쟁이 종종 예술의 소재로 다뤄지는 이유도 전쟁의 폭력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폭력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라는 일종의 지침이자 메시지다.  

힘겹게 휴전을 기다리다 마침내 휴전이 발표되고 효력이 발휘되기 열두 시간 전에 무참히 죽어간 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휴전중이라는 사실이 마른 하늘에 치는 번개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연평도 폭격사건을 뉴스에서 봤을 때보다도 백만배는 섬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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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 The Front Lin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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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우리는 종전이 아니라 휴전 중임을 일깨워 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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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16
존 버거 지음, 박범수 옮김 / 동문선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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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피터 버크의 <이미지의 문화사>가 이미지를 역사적 증거로서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법과 그 주의사항을 말하고 있다. 피터 버크의 관점을 읽으면서 동의하지 못한 채 내내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존 버거의 글을 읽으면서는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건 이미지를 역사학적 관점에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드러난 역사적 관점이었다. 이미지를 둘러싼 컨텍스트가 내 관심사지 컨텍스트 안에 있는 이미지를 위치시키는 게 아니었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큰 깨달음이다!  

이미 알려져있듯이 시선은 하나의 권력이다. 첫 챕터에서 존 버거는 왜 시선이 권력인지를 우리가 동물을 구경하는 이유를 통해 말한다. 동물을 구경하는 시선 속에 우리는 동물을 타자화하고 바라보는 대상 뿐 아니라 바라보는 주체인 우리 역시 사회 배경 속에서 은연중에 타자화 된다고 설명한다.  

버거는 이미지를 사회 컨텍스트에서 타자화 시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녹여서 능동적으로 바라볼 지 좋은 예시들을 선사한다. 아주 주옥같은 글들과 반짝이는 시각이다. 이 반짝임은 해박한 지식에 근거한다. 주절주절 늘어놓는 게 아니라 간결하게 짚고 넘어가서 더 알기를 원하는 독자한테는 능동적으로 더 찾아 읽기를 묘하게 부추긴다. 밀레에 관한 글을 꽤 여러 군데서 읽었지만 버거의 글처럼 또렷하게 기억할 수 없다. 조르주 드 라 투르에 관한 글들 역시 잊기 힘들 것이고 조르주 드 라 투르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될 그 어느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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