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2 - 혼돈의 시대 - INFERNAL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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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봐도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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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야가와가의 가을 - The End of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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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야가와의 가을>은 좀 더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이 영화도 역시 삼대가 살고 있는 고하야가와가의 이야기다. 다만 1대인 아버지가 옛사랑을 다시 만나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게 좀 다르다. 시대가 변해서일까, 자식들과 홀아버지 사이에 애증이 있다. 특히 결혼한 딸이 아버지한테 갖는 애증은, 과거 아버지의 한량 기질 탓에 어머니가 겪었던 고통을 암시한다. 철 없고 한 없이 낙천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딸 간에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웃음을 유도해서 경쾌하다. 사소하고 자잘한 일은 당사자들한테는 심각할지 몰라도 지켜보는 이한테는 피식거릴 웃음의 소재가 되는 게 우리 일상일 터이니.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결혼 전인 시누이와 남편을 여의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올케 사이에 우정이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서브 플롯처럼 따로 진행된다.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도 두 사람은 다른 공간(시누이의 다락방, 해변가, 장례식에서도 맨 뒷줄에서 행렬에서 뒤처진다)에 종종 배치된다.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주고 받는다. 때로 자신의 마음을 자신도 모르는데 두 사람은 서로에게 멘토와 같은 존재로 담소를 나누며 그 해답을 찾는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두 여인한테 교훈을 준다. 마음 가는대로 할 것. 아주 쉽고 익숙한 말이지만 실행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말이어서 아버지의 죽음으로 두 여인은 용기를 얻는다. 인생 무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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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 Earl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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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식사 풍경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영화가 계속 되면서도 별 특별한 사건은 없다. 한 집에 삼대가 살면서 겪는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는다. 노부부, 결혼 한 아들 부부와 손자, 그리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 이야기의 큰 틀은 딸, 노리코의 결혼에 대한 세대 간의 입장 차이를 보여준다. 이제 더 바랄 게 없다는 노부부의 쓸쓸한 얼굴, 여동생의 결혼 추진을 하나의 일처럼 추진하는 오빠, 그리고 친자매 이상으로 살가운 사이 시누이와 올케. 

노리코가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가족들은 각기 다른 세계관이 드러나지만 모두 한결같이 노리코의 행복을 걱정한다. 내가 흥미롭게 본 건 노리코의 결혼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노리코가 마음을 주고 결혼하기로 작정한 사람과 둘이 마음을 주고 받는 장면은 전혀없다. 두 사람의 사랑이나 애정보다는 주변 식구들의 걱정과 기쁨으로 노리코의 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50년대 시대 상황이 한 번 보고 결혼하던 시절이라도 영화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낯설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당시의 상황이 어떻든 결혼 당사자 사이게 애틋한 눈빛이라도 교환하게 하지 않나. 뭐 이런 것도 영화가 제시해 온 틀에 사고가 지배당해 그럴테지만 결혼 이야기를 두고 두 사람의 심리가 아니라 식구들의 심리로 가족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도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덧. 왜 제목이 맥추인가, 영어 제목은 초여름인데, 찾아봤더니 맥추는 보리를 추수하는 음력 4월이란다. 보리 추수도 가을에 하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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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연인들 - Regular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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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루톨루치 감독이 <몽상가들>에서 68혁명을 낭만적으로 스크린에 담은 데 대한 프랑스 감독의 항의라고나 할까. <몽상가들>에도 나왔던 루이 가렐이 똑같이 등장하지만 같은 소재인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색조다. 2004년작이란 정보를 접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 중간에 이 영화 60년대에 만들어진 건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60년대 분위기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아무래도 주인공도 같으니 <몽상가들>과 비교를 안 할 수 없다.  

<몽상가>가 뮤직 비디오처럼 예쁘고 소비사회에 알맞는 향수를 부추긴다면 필립 가렐이 만든 <평범한 연인들>은 68이란 시대정신이 저항한 소비사회의 미덕은 모두 제거했다. 낡아서 삐걱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이 앉으면 답답할 정도로 좁은 스튜디오에서 인물들을 주로 클로즈업이나 미디엄 쇼트로 잡는데 영화는 계속 긴장감을 준다. <몽상가>들에서는 시위장면에서 조차 파리의 거리는 고풍스러운 배경으로 스펙터클화 되지만 이 영화는 파리의 아름다움 보다는 파리의 일상성에 주목한다. 벽과 골목에서 종종 스틸사진처럼 카메라가 정지하지만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벽과 골목으로 일반화해 버린다. 감독은 파리가 이방인들에게 향수와 이국적 상품으로서 소비되는 걸 거부라도 하는 것같다. 아름다운 파리 거리 좀 보여주지, 이렇게 야박하게 장소를 익명화하다니...이방인한테는 좀 아쉽다.  

우리한테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시위 장면인데 어둠 속에서 차량이 뒤집어져 있고 차 뒤로는 불길이 보인다. 시위의 격렬함이 소란과 역동성이 아니다. 두 서너명의 경찰과 두 세사람의 시위 학생의 실루엣으로 프레임 안에 또 프레임이 있을 거란 확신을 심어준다.  한 시위학생인 프랑스와는 경찰한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치는 이야기가 한 시간 가량 이어진다. 프랑스와의 심리 상태를 따라서 지붕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프랑스와가 릴리를 만나 헤어지는 이야기가 두 시간 동안 지속된다.  

5월 이후에 시대정신은 프랑스와란 개인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뚜렷한 목적 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부자 친구가 대 주는 아편을 피우고 모임에서 어슬렁거린다. 릴리란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프랑스와의 내적 갈등은 서서히 드러난다. 릴리는 눈 앞에 닥친 집세를 걱정하고 미래를 위해 기성세대 질서로 들어갈 것인지 고민한다. 프랑스와는 릴리의 고민을 부정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패배감 탓에 무기력하다. 릴리를 잡을 수도 릴리에게 무언가를 제안할 수도 없게 의기소침하다. 릴리는 알 턱이 없고 시간은 흐르고 친구들도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지 앞으로의 일을 조금씩 말하기 시작한다. 릴리를 잡고 싶지만 고작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문 열쇠를 베개 밑에 숨기고 질 좋은 아편에 불을 정성스럽게 붙이는 정도다.

프랑스와는 시를 쓰지만 시가 위안인지는 모른다. 어떤 것에도 애착을 보이지 않는 척하는 태도는 결국 자신을 옥죄고 고민을 피하고 하는 심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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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 The Lov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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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면서 이지적인 체 한다. 사실 조금만 둘러보면 인간이 얼마나 감정적이며 지성과 이성을 지키느라 안간힘 쓰는지 금방 드러난다. 여러 분야에 존재하는 각종 규제는, 실은 인간은 전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부인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법이 일부일처를 법으로 규제하고 간통을 법제하는 기준에 대해 논쟁을 벌이는 일은, 인간의 본성이 이성적이라기 보다는 감정적이라는 걸 에둘러 말하고 있다. 감정을 누르는 성문화된 최소한의 규범이 존재해야 인간은 이성적 존재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험과 일탈은 용기 있는 자만이 떠날 수 있다. 어떤 충동적 행동이나 설명할 수 없는 열정에 온 몸과 마음을 불사르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유전가 있다고, 나는 비겁하게 믿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지방 소도시에 사는 미모의 유뷰녀, 잔느가 길에서 만난 한 남자, 베르베르와 눈이 맞아 남편과 어린 딸을 버리고 가출하는 이야기다. 잔느가 만난 지 하루 밖에 안 된 남자를 따라 모험을 떠나는지 잔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 밖에 모르는 남편 때문에 권태를 느끼고 파리의 화려한 사교생활에 시간을 탕진한다. 파리에서 유행하는 옷을 입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파티를 하지만 잔느의 권태감을 온전히 붙잡지 못한다. 폴로 선수를 애인으로 두었지만 잔느는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잔느의 내면적 권태는 안절부절로 대체될 뿐이다.  

자동차 고장으로 우연히 길에서 만나 동행을 하게 된 베르베르와 시골길을 달리며 잔느는 활짝 웃고 수다스러워진다. 베르베르를 만나기 전까지의 잔느와 다르게 명랑하다. 너무 유쾌해보여서 다른 공간에 속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영화의 절정은 베르베르와 잔느가 밤 두 서너시간동안 거니는 몽환적이면서도 애로틱한 부분이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이름만을 부르며 연못을 건너고 수풀 속에서 손을 잡고 산책한다. 이들 사이에 생긴 친밀감은 운명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두 사람의 베드씬은 이 후 많은 영화들에서 재생산 돼었다! 새벽에 남편과 친구들이 보는데 두 사람이 손 잡고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잔느는 "지난 밤과 같은 행복이 다시 찾아올 지 의문이지만 불안해도 후회는 없다"라고 말한다. 잔느의 내면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동화처럼 그들은 행복했다,가 아닐 확률이 높지만 잔느는 동화의 끝이 아니라 동화의 과정을 선택했다. 모험과 일탈이라는.   

1. 60년대를 주름 잡았던 잔느 모로가 더 젊었을 때 영화인데 전혀 보지 못했던 앳된 모습이 있다.  

2.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외설적이라고 극장주한테 벌금형이 선고 되었다고 한다. 미국 재판사에서 외설 기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영화란다. 극장주가 반발해서 항소했고 결국 외설적이 아니라고 판결을 받았단다. 외설적이라고 판결을 내린 판사의 주관적인 말은 바로 "척 보면 안다" 였다는 유명할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규제해도 감정적인 인간의 본성을 막을 수는 없다.  

2-1. 지금 보면 이 영화는 전혀 외설적이지 않다. 이 영화가 외설적이라면 난 <아이 엠 러브>가 더더더 외설적이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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