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반부를 보면서 의문이 있었다. 왜 이런 지루한 영화를 만들었나, 게다가 3D로. 나이드시더니 촉이 무디어지셨나, 고작 톱니바퀴 속에 들어가는 착시를 위해 3D를 이용하다니 제작비 낭비네..하고 (속으로) 툴툴거렸다. 후반부에서 왜 3D여야 했는지 완전 공감하며 눈물 흘릴 뻔했다. 이 영화는 모험 액션 영화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은 조르주 멜리에스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의 아버지쯤으로 불리는 감독이다. 조르주 멜리에스를 모르는 이들한테도 멜리에스의 일대기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달한다.

 

심통 사나운 할아버지가 혼잡한 기차 역에서 조그만 장난감 가게를 하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한 소년이 아버지의 유품인 글 쓰는 로봇을 수리하려 애쓰며 역 시계탑에서 살고 있다. 소년의 꿈과 할아버지의 포기가 충돌을 한다. 할아버지의 심통의 원인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멜리에스의 일대기도 꿈처럼 재현된다. 3D의 위력은 이제 서서히 드러난다. 후반부에서, 기록영화처럼 멜리에스의 영화 제작 과정과 남아있는 필름을 볼 수 있다. 스콜세지 영화에서 멜리에스 영화를 3D로 볼 수 있다니!!! 달을 향해 날아가는 로켓은, 요즘 같으면 관객을 향해 발사했겠지만, 당시 멜리에스는 달을 향해 발사했다. 그래서 우리는 로켓의 불 대신 눈,코,입을 가진 오동통한 달의 실룩거림을 볼 수 있다. 3D를 이렇게 사용하실 줄이야. 의미있는 기술 사용이다!

 

2. 21세기에 우리는 입체 영상에도 더 이상 안 놀란다. 하루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게 당연하니까. 여러 면에서 다양하고 풍요롭지만 내용도 반드시 비례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 역사 초창기에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상상력은 현재의 상상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우월하다. 뤼미에르 형제는 기차가 달리는 장면을 처음 만들었다. 관객들은 스크린에서 거대한 기차를 전면에서 감상하면서 기차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같은 충격적 경험을 했다.우리는, 기차를 정면만이 아니라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 볼 수 있지만 놀라지 않는다. 기차가 나를 향해 돌진하는 느낌을 상상하며 웃을 뿐이다. 스콜세지 감독은, 그 느낌을 전해주려했다. 초창기 영화가 주었던 그 충격이 어떤 것인지 멜리에스의 영화를 통해 느끼게 해준다. 스콜세지 감독이 3D로 제작한 이유다.

 

3. 요즘 만사에 늘어져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것만 같아 자괴감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구체화하면서 처음 읽었던 책이 멜리에스 일대기였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멜리에스를 읽어나가면서 대책없이 꿈을 꾸었던 시절이었다. 꿈은 생각만큼 달콤하지 않았고 결국 꿈에서 빠져 나와 잘 살고 있다가도 문득문득 허전할 때가 있다. 빠져 나온 꿈을 돌아보는 일도 누추해서 부러 꿈을 돌아보지도 않으려 애쓴다. 영화 속 멜리에스처럼. 그런데 꿈은 깨졌던 이루어졌던 여전히 꿈일 수 있다. 꿈을 잃은 이에게 꿈을 찾아주는 영화다. 그러니 영화는 "꿈의 공장"이다.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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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평이 좋아서 좀 기대를 했는지, 역시나 별로 였다. 그저 미국 영화다. 가족을 다루는 미국 영화는 비슷한 면이 있기도하고 내가 미국식 가족 이야기를 안 좋아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가족내 갈등이 비교적 가볍게 다뤄지고 가족 드라마가 거치는 단계를 공식대로 간다. 갈등이 무겁게 다뤄져야하는 건 아니지만 가벼움이 어떤 고민 속에서 파생되어서 경쾌함으로 승화되는 면이 없다. 영화니까, 하는 몰입을 방해는 가벼움이다.

 

영화보러 와서 남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지나치게 고민하고 싶은 관객도 없을테니 갈등 세 스푼에 유머 한 스푼 반이란 계량컵으로 찍어낸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지난 주엔가 K-POP이란 잔인한 쇼에서 박진영이 한 참가자한테 아이디어만 있지 퍼포먼스의 영혼이 없다는 지적을 했는데 딱 그 기분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가족 드라마, 동성 부부의 가족사를 다룬 <에브리바디 올 라잇>, 암 환자가 겪는 주변과 가족간의 갈등을 주제로한 <50/50>도 다 그저그랬다.

 

핏줄로 상징되는 조상의 뜻과 추억을 지킨다는 작은 축과 뇌사 상태로 안락사에 있는 아내의 애인을 찾아 작별인사를 시킨다는 큰 축으로 가족이란 울타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시한다. 가족은 군도를 형성했다 멀어져가는 개체로 이루어져있다, 고. 아주 공감하는 말이지만 디테일을 참 공감 안가게 표현한다. 딸과 아내의 애인을 찾아나서는 남편한테서 철 없는 십대 보습을 본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단편 중 <다른 남자>가 있다. 비슷한 소재지만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아내가 죽었고 아내한테 애인이 있었다는 걸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남편은 알게 된다. 남편은 증오와 질투로 애인을 만나고 싶었고 파티를 열어 아내의 애인을 초대했다. 아내의 애인은 전혀 모른 채. 남자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서 그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초라한 성품을 보고는 오히려 아내의 애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렇게만 쓰니 아주 별 볼 일 없는 소설같지만 아내의 애인을 만나기 전과 후의 남자의 심경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질투와 증오에서 연민으로 바뀌는 남자의 심리 변화를 통해 아내에 대한 남자의 감정선 변화를 우회적으로 세련되게 말한다. 이런 세련된 방법을 미국 영화는 절대 할 수 없는 걸까, 안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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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 영화는 좀 귀엽다. 프리츠 랑의 <M>을 봤을 때 나름 무시무시한 세트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부감으로 뜨는 무서운 장면에서 경박스럽게도, 풉,하게 된다. 무성 영화는 무서움이나 슬픔도 경쾌함을 좀 주는데 그 이유는 음악 탓인듯 하다. 대사 대신 인물의 표정을 도와주는 게 음악이다. 음악이 아무리 으스스해도 사람 목소리가 지닌 날카로움과 견주기에는 대체로 감미롭다. 내 무성 영화에 대한 생각이 이러해서 인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아주 사랑스럽다. 판타지적 해피엔딩을 삐딱하게 보는 편이지만 이 영화 결말만큼은 헤벌쭉하게 된다.

 

영화의 미래는 3D일 거라는 21세기에, 영화의 미래는 유성 영화라는 20세기를 흉내낸 영화가 왜 좋은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의 얼빠진 표정을 카메라는 풀샷으로 잡는다. 스크린이 좀 높이있어서 관객들의 고개는 15도쯤 올라가 있고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들과 웃음로 입가가 올라간 표정을 여러 번 보여준다. 영화의 의무는 본래 이런 것이었다. 관객이 한 곳을 보고 표정을 짓게 만드는 것.

 

21세기 인들은 귀로는 음악을, 눈으로는 동영상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무성 영화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인물의 표정을 놓치거나 가끔 나오는 대사 크레딧을 놓친다면 영화 감정선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어찌보면 무리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영화인데 순순히 따르다보면 감각의 본래 기능이 갖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상물 홍수 속에서 아이같은 순진함을 끄집어내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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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전에 본 영화라 무언가를 끼적이기에는 가물가물하지만 손아람의 <소수의견>을 읽고 끼적이고 싶어졌다. 이 영화는 좋은 사진이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란 인터뷰어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보도 사진의 미학과 윤리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폭력과 무법이 널부러져있는 길을 헤매며 사진 기자들이 얻은 순간의 기록은, 시선이란 권력 앞에서 때로는 상품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실제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장에서도 연민이나 애도가 아니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하는 운명이, 사진 기자들이다. 이들은 낮에는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내에서 수 많은 죽음을 맞이하고 죽어가는 이들의 사진을 찍어댄다. 죽어가는 이를 구해내는 건 이들의 일이 아니다. 죽어가는 이가 있다고 알리는 일이 사진 기자들의 일이므로 죽어가는 이들을 렌즈를 통해 바라만 본다. 많은 고용직들이 낮에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집을 찾는 것처럼 이들도 밤마다 바에 가서 술마시고 농담하는 평범한 백인이 된다.

 

사진 기자들은 하이에나일 수도 있고 죽음의 숲에 들어간 매의 눈을 지닌 이들일 수도 있다. 종군 기자들의 임무는 현장을 포착하는데서 끝난다. 취득된 사진이 어떻게 사용될 지는 또 다른 문제다. 특종이라고 할 만한 사진이 세계 주요 언론사에 뿌려질 때 사진의 위력은, 이미 사진 기자의 것이 아니다. 매체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는 아주 오묘해서 때로는 혐오감을 내비추면서도 때로는 사진을 무차별적으로 소비한다. 사진과 기사가 다루는 건 제3자의 불행이다. 독자는 타인의 불행을 바라보며 분개할 수 있는 권한을, 사는 것같기도 하다.

 

개인적 연민에서든 정의감에서든, 대량 학살을 만드는 폭력은 알려져야한다. 종군 기자들의 윤리 의식과는 별개로 보도 의무 수행만으로도 가치있다.그러나 정말 그럴까, 하고 질문하는 영화다. 생각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좀 자극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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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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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11시 쯤 부터 읽기시작했는데 4시 쯤 다 읽었으니까 단숨에 읽었다. 결말이 어떨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결말은 정의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정의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뭘까? 사법 시스템은 법 해석과 집행을 위한 것이다. 법은 문학도 예술도 아닌데 단순명료하지 않다. 해석이 필요하단 말은 모호하단 말도 되는 게 아닌가.

 

차례가 시작되기 앞 쪽에 사건은 실화가 아니라고 했지만 완전한 허구라기에는 아주 현실적이다. 뉴스에서 종종 듣는 재개발 지역이 등장하고 저항하는 철거민들, 철거 용역과 경찰의 개입. 무력 충돌에서 빚어지는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진실 공방. 두 사람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열여섯 살 아이가 죽고 그 아이를 죽인 경찰을 아이 아버지가 죽였다. 모두 우발적이고 이들 모두, 피해자다. 죽은 경찰은 윗선의 지시로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라는 기소된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살리려고 했을 뿐이다. 법은 결과만을 놓고 과정을 추적한다. 심정이나 정황 등은 법 테두리에서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심리적 정황이 아닌 물리적 증거로 입증을 하는 게 변호사나 검사의 일이고 물리적 증거에서 정황을 찾아내는 일이 판사의 일처럼 보인다. 물건은 소유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증거물도 마찬가지다. 원고나 피고의 입장에 따라 증거물은 이용될 소지가 있다. 판사는 그 덫을 잘 피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내 생각이고 소설은 판사의 역량이나 자질보다는 법을 둘러싼 권력에 대한 복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이 실수로 어린 아이를 죽였고 이 사건을 맡은 검사는 공권력을 보호하려한다. 검사는 말한다. 그 누구의 지시도 받은 적이 없으며 자신의 판단이었다고. 많은 일들이, 실제로 조직적 음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과잉 충성과 복종 때문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럼 왜 개인은 지시나 명령을 받은 적도 없는데 충성과 복종을 하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멤버쉽의 원리와 같지 않을까. 멤버쉽에 가입하면서 우리는 그 제품만을 사용하겠단 서약을 하고 얼마 안 되는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선사받는다. 마일리지나 포인트는 판매자들의 무형의 덫이어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 회사의 제품이나 특정 가게를 이용한다. 마일리지 발급자가 갑이 되고 고객이 을이되는 상황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소설 속 검사도 자신이 충성을 바치면 되돌아올 마일리지를 생각했을 지 모를 일이다.

 

재개발 지역 철거민을 쫓아내는데 공권력이 투입되어 지주의 권리는 보호가 되는데 철거민의 생존권을 위해 공권력을 요청할 수 없는 건 반칙이 아닌가. 법은 땅의 최종 주인이 누구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최종 땅 주인이 그 땅을 취득한 과정을 살피는 건 법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그 과정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한다. 무시당한 이들은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 법이 그러니. 운이라도 따라주면 이 소설처럼 언론의을 받고 국민재판으로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으니 때라도 잘 타고 나야하는 수 밖에 없다. 법치 앞에서 일반인은 행운이나 비는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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