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영화는 좀 귀엽다. 프리츠 랑의 <M>을 봤을 때 나름 무시무시한 세트에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 부감으로 뜨는 무서운 장면에서 경박스럽게도, 풉,하게 된다. 무성 영화는 무서움이나 슬픔도 경쾌함을 좀 주는데 그 이유는 음악 탓인듯 하다. 대사 대신 인물의 표정을 도와주는 게 음악이다. 음악이 아무리 으스스해도 사람 목소리가 지닌 날카로움과 견주기에는 대체로 감미롭다. 내 무성 영화에 대한 생각이 이러해서 인지 모르지만 이 영화는 아주 사랑스럽다. 판타지적 해피엔딩을 삐딱하게 보는 편이지만 이 영화 결말만큼은 헤벌쭉하게 된다.
영화의 미래는 3D일 거라는 21세기에, 영화의 미래는 유성 영화라는 20세기를 흉내낸 영화가 왜 좋은가.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들의 얼빠진 표정을 카메라는 풀샷으로 잡는다. 스크린이 좀 높이있어서 관객들의 고개는 15도쯤 올라가 있고 일제히 한 곳을 바라보는 눈동자들과 웃음로 입가가 올라간 표정을 여러 번 보여준다. 영화의 의무는 본래 이런 것이었다. 관객이 한 곳을 보고 표정을 짓게 만드는 것.
21세기 인들은 귀로는 음악을, 눈으로는 동영상을 보는데 익숙해져 있다. 무성 영화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인물의 표정을 놓치거나 가끔 나오는 대사 크레딧을 놓친다면 영화 감정선의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어찌보면 무리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영화인데 순순히 따르다보면 감각의 본래 기능이 갖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전환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보면서 영상물 홍수 속에서 아이같은 순진함을 끄집어내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