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오전 11시 쯤 부터 읽기시작했는데 4시 쯤 다 읽었으니까 단숨에 읽었다. 결말이 어떨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결말은 정의의 손을 들었다. 그러나 정의란 뭘까?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뭘까? 사법 시스템은 법 해석과 집행을 위한 것이다. 법은 문학도 예술도 아닌데 단순명료하지 않다. 해석이 필요하단 말은 모호하단 말도 되는 게 아닌가.

 

차례가 시작되기 앞 쪽에 사건은 실화가 아니라고 했지만 완전한 허구라기에는 아주 현실적이다. 뉴스에서 종종 듣는 재개발 지역이 등장하고 저항하는 철거민들, 철거 용역과 경찰의 개입. 무력 충돌에서 빚어지는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진실 공방. 두 사람의 죽음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열여섯 살 아이가 죽고 그 아이를 죽인 경찰을 아이 아버지가 죽였다. 모두 우발적이고 이들 모두, 피해자다. 죽은 경찰은 윗선의 지시로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고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라는 기소된 아이 아버지는 아이를 살리려고 했을 뿐이다. 법은 결과만을 놓고 과정을 추적한다. 심정이나 정황 등은 법 테두리에서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심리적 정황이 아닌 물리적 증거로 입증을 하는 게 변호사나 검사의 일이고 물리적 증거에서 정황을 찾아내는 일이 판사의 일처럼 보인다. 물건은 소유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증거물도 마찬가지다. 원고나 피고의 입장에 따라 증거물은 이용될 소지가 있다. 판사는 그 덫을 잘 피할 수 있는 재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내 생각이고 소설은 판사의 역량이나 자질보다는 법을 둘러싼 권력에 대한 복종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경찰이 실수로 어린 아이를 죽였고 이 사건을 맡은 검사는 공권력을 보호하려한다. 검사는 말한다. 그 누구의 지시도 받은 적이 없으며 자신의 판단이었다고. 많은 일들이, 실제로 조직적 음모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과잉 충성과 복종 때문에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럼 왜 개인은 지시나 명령을 받은 적도 없는데 충성과 복종을 하나.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멤버쉽의 원리와 같지 않을까. 멤버쉽에 가입하면서 우리는 그 제품만을 사용하겠단 서약을 하고 얼마 안 되는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선사받는다. 마일리지나 포인트는 판매자들의 무형의 덫이어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그 회사의 제품이나 특정 가게를 이용한다. 마일리지 발급자가 갑이 되고 고객이 을이되는 상황을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소설 속 검사도 자신이 충성을 바치면 되돌아올 마일리지를 생각했을 지 모를 일이다.

 

재개발 지역 철거민을 쫓아내는데 공권력이 투입되어 지주의 권리는 보호가 되는데 철거민의 생존권을 위해 공권력을 요청할 수 없는 건 반칙이 아닌가. 법은 땅의 최종 주인이 누구인가에만 관심이 있다. 최종 땅 주인이 그 땅을 취득한 과정을 살피는 건 법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그 과정을 호소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시당한다. 무시당한 이들은 억울하지만 방법이 없다. 법이 그러니. 운이라도 따라주면 이 소설처럼 언론의을 받고 국민재판으로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으니 때라도 잘 타고 나야하는 수 밖에 없다. 법치 앞에서 일반인은 행운이나 비는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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