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평이 좋아서 좀 기대를 했는지, 역시나 별로 였다. 그저 미국 영화다. 가족을 다루는 미국 영화는 비슷한 면이 있기도하고 내가 미국식 가족 이야기를 안 좋아하는 면이 있기도 하다. 가족내 갈등이 비교적 가볍게 다뤄지고 가족 드라마가 거치는 단계를 공식대로 간다. 갈등이 무겁게 다뤄져야하는 건 아니지만 가벼움이 어떤 고민 속에서 파생되어서 경쾌함으로 승화되는 면이 없다. 영화니까, 하는 몰입을 방해는 가벼움이다.

 

영화보러 와서 남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지나치게 고민하고 싶은 관객도 없을테니 갈등 세 스푼에 유머 한 스푼 반이란 계량컵으로 찍어낸 영화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지난 주엔가 K-POP이란 잔인한 쇼에서 박진영이 한 참가자한테 아이디어만 있지 퍼포먼스의 영혼이 없다는 지적을 했는데 딱 그 기분이다. 이 영화와 비슷한 가족 드라마, 동성 부부의 가족사를 다룬 <에브리바디 올 라잇>, 암 환자가 겪는 주변과 가족간의 갈등을 주제로한 <50/50>도 다 그저그랬다.

 

핏줄로 상징되는 조상의 뜻과 추억을 지킨다는 작은 축과 뇌사 상태로 안락사에 있는 아내의 애인을 찾아 작별인사를 시킨다는 큰 축으로 가족이란 울타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제시한다. 가족은 군도를 형성했다 멀어져가는 개체로 이루어져있다, 고. 아주 공감하는 말이지만 디테일을 참 공감 안가게 표현한다. 딸과 아내의 애인을 찾아나서는 남편한테서 철 없는 십대 보습을 본다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단편 중 <다른 남자>가 있다. 비슷한 소재지만 전혀 다른 울림을 준다. 아내가 죽었고 아내한테 애인이 있었다는 걸 한 통의 편지를 받고, 남편은 알게 된다. 남편은 증오와 질투로 애인을 만나고 싶었고 파티를 열어 아내의 애인을 초대했다. 아내의 애인은 전혀 모른 채. 남자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서 그와 대화를 하면서 그의 초라한 성품을 보고는 오히려 아내의 애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이렇게만 쓰니 아주 별 볼 일 없는 소설같지만 아내의 애인을 만나기 전과 후의 남자의 심경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질투와 증오에서 연민으로 바뀌는 남자의 심리 변화를 통해 아내에 대한 남자의 감정선 변화를 우회적으로 세련되게 말한다. 이런 세련된 방법을 미국 영화는 절대 할 수 없는 걸까, 안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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