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수덱 Josef Sudek 열화당 사진문고 25
이안 제프리 지음, 문광훈 옮김, 요제프 수덱 사진 / 열화당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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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필름 상태가 나빠 그런지 사진집이라고 하기에 사진 해상도가 형편없이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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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보급판)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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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지리멸렬하고 책도 영화도 지리멸렬하고 감정도 지리멸렬하다. 모든 게 지리멸렬한 시기인데 필시 내게 문제가 있겠거니 하면서도 지리멸렬을 끝낼 궁리도 하기 귀찮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웃음은 희미해지고 대부분 무표정한 채 지내니, 이리 지내서는 안 되겠어서 위안을 좀 얻고자 두꺼워서 미뤄두었던 책을 들었다.

 

"사람의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한 사람은 죽음으로 향하면서도 저녁노을이 비추는 생활을 그리워하고, 다른 두 사람은 향락을 추구하지만 저녁노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842)

 

송강이 자살을 하려고 기찻길에 누워있는 동안 송강의 아내 임홍과 동생 이광두가 정분이 나서 육욕에서 허우적거리는 대목에 들어있는 글이다. 위화의 소설은 작가의 판단이나 주관을 나타내는 말이 거의 없는 편인데 이 장면에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목이 메이는 구절이다.

 

위화의 소설은 아주 사실적이다. 누군가는 얻어 맞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 배를 곯지만 당사자 외엔 모두 잘 산다. 사람이 살아가는 건 희비극을 넘나드는 일로 누군가는 비극적 성품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희극적 인물, 다시 말하면 지극히 현실 타협적 인물들은 가지 각색 모욕을 견딘다. 형제에 등장하는 비극적 인물은 송범평과 그의 아들 송강이다. 이들은 현실과 타협할 줄 모르고 자신의 자존감을 죽음으로 지켜낸다. 위화가 두 사람의 죽음을 묘사하는 방식은 꺼이꺼이하는 울음 속에서도 희죽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문화대혁명 기에 송범평이 맞아 죽을 때 콘택트 렌즈 착용한 걸 잊고 눈물 때문에 눈물을 손으로 훔치다 렌즈가 돌아가기도 했다. 부전자전으로 송강 역시 그 아비를 닮아 고지식한데 세월과 생활고로 젊은 날의 총기가 사라지고 아내 임홍을 위해 개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송범평과 송강 이외에는 대체로 희극적 인물들인데 그 때 그 때 잘 적응해서 문화혁명기도 잘 넘기고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중국사를 버텨낸다. 송강의 배다른 형제 이광두는 배짱 하나는 두둑해서 자본주의의 개척자로 거듭난다. 언뜻보면 양아치과(?)이기도 한데 의리파다. 이광두는 자신이 계획한 일을 그럴 듯하게 말하는 재주가 있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추진력도 갖췄다. "처녀미인선발대회" 에피소드는 아주 해괴하지만 핍진성이 있다. 처녀 미인에 대한 사람들이 품는 심리를 이용해서 마을 전체를 사업체로 바꿔 버린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어서 사기꾼도 꼬이고 처녀가 순정을 바치는 일도 일어난다. 사람이 모이면 성격도 드러나서 마을 사람들의 활약도 재밌다.

 

전체적 에피소드는 "니밀헐"하게 어둡지만 그 모든 일에도 세상은 돌아가고 살아 남은 사람은 산다. 그것도 아주 잘. 누군가한테 과거나 현재나 미래가 똑같지만 누군가한테는 과거는 전설이 돼 버리고 또 누군가한테는 과거는 향수가 된다. 모두에게 미래는 불확정적이고 현재는 거나하게 술 한 잔 걸친 것처럼 부산스럽고 우아하지 않다. 비틀거리며 온 힘을 다해 밤 길을 똑바로 걸으려는 취객처럼 현재가 다가 온다. 위화의 인물들과 며칠 간 울고(정말 많이 울리는 책이다) 웃으며 내 현재를 잘 추스려보자, 하면서 책장을 덮었다.

 

일하기 싫은 병에 걸렸고 그럼 뭐 하고 싶은 게 있냐하면, 그렇지도 않으니 내가 갈짓자로 걸어도 아무 상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가 현재로 바뀐 날, 과거가 될 내 현재를, 나는 분명히 마뜩잖게 여길 것이다. 그러니 조금만 똑바로 걸어 보려고 노력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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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 존 파울즈 일기 1949-1965
존 파울즈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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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가, 아니 모든 사람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인정하기 싫지만) 일종의 관음증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가 참 궁금하다. 왜 이런 게 궁금할까. 한가해서? 지루해서? 스펙터클을 원해서? 셋 모두가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들의 사적 기록을 보관해서 출판한 책들을 유난히 애정하는 편이다. 존 파울즈의 광팬은 아니지만 존 파울즈의 작품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사적인 삶에 대한 호기심이 역시나 발동했다.

 

파울즈가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이십대 중반에 프랑스, 그리스에서 영어 선생으로 체류할 시절의 일기들이다. 후반부에 스페인 여행 일기도 있다. 일기문이기도 하지만 몹시 수다스럽고 사적인 일들과 심경이 담겨있다. 큰 흐름을 보면 프랑스와 그리스, 짧은 스페인 여행에서도 파울즈의 짝사랑이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편집을 아마도 이런 흐름에 맞춰 한 것도 같고.

 

모든 것에도 올인한다기 보다는 머리로 생각하는 인간형인듯 한데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바로 이런 이성적 관찰을 분출하는 통로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가진 짧은 연애담에서 파울즈는 스스로를 자기중심적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비인간적이라고 본다. 자신마저도 분석하는 기질이며 이를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런 사람이 꽤 종종 자연에 감동과 위안을 받는다. 일기의 많은 부분이 산책하는 길에서 본 식물들, 새에 관한 묘사에 할애한다. 집에서도 부모나 친척과 섞이기 보다는 손님처럼 부모를 판단하는 버릇이 있다.(나도 종종 그렇지만;;;) 그의 장점이자 단점은 어디에도 몰입하지 않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

 

카뮈의 <작가 수첩>에 몹시 감명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 비슷한 느낌을 기대했었는데 파울즈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계속 읽기 좀 힘들기도 하다. 2권은 안 읽을 거 같다. 내 사고가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관찰자의 자세와 언어화에 대한 성실함을 일깨우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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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4 0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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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0 15: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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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란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순간에 두 자매, 저스틴과 클레어가 종말을 맞이하는 방식이 아주 다르다. 피할 수 없다면 의연하게 맞서는 저스틴 VS 피할 수 없더라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으로 아들을 데리고 허둥지둥 질주하는 클레어.

 

두 사람은 종말 전은 어땠을까.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저스틴의 결혼식을 지루할정도로 성스럽고 세세하게 준비하는 클레어. 동생에 대한 애정이 넘쳐서라기 보다는 어떤 의식에 대한 강박을 지닌 세속적 인물이다. 보기 드문 대저택에 걸맞는 미장센을 지휘하는데서 클레어는 삶의 보람을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결혼식 주인공인 저스틴은 두 시간이나 늦게 식에 나타나고 정갈해서 숨 쉬는 호흡까지도 박자를 맞추어야 할 거 같은 분위기에 질식할 것 같다. 한 순간, 익숙했던 모든 것들에 버럭 화가 나고 역겹다. 테이블 세팅을 두 팔을 휘둘러 밀어버리는데서 어떤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저스틴은 알고 있는 인간 관계를 휙 쓸어버린다. 자신의 육체만을 탐하는 남편, 자신의 승진을 발표하는 사장, 모든 일에 삐딱한 시선을 가진 엄마, 속물인 형부. 지구가 사라진다는데 형식적(우리가 사교적이라고 부르는) 인간 관계가 뭐가 중요한가.

 

저스틴의 신경질적인 모습은 익숙하다. 우리도 저스틴처럼 일상의 크고 자잘한 모든 일을 밀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픈 충동과 욕망을, 가끔씩 느낀다.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기에 저스틴처럼 호기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대신 머릿속으로 지구 멸망과 준하는 상황을 종종 만들어 폭파한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이미지만큼 깔끔하게는 아니지만. 저스틴의 히스테릭한 기질과 클레어의 속물 근성은 한 인간의 양면이다. 우리는 대체로 클레어처럼 행동하고 평소에는 무의식에 저스틴을 가둬둔다. 저스틴이 의식으로 나오는 순간 현실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곧 다시 클레어로 변해 현실을 수습하는 행동을 반복하니, 우리는 두 캐릭터를 조종하는 감독이다. 오늘은 저스틴이 의식으로 나온 날로 지구가 멸망해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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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3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존 카사베츠의 영화는 지켜보기 아주 힘겹다는 고정 관념을 밀어내는 영화. 여섯 살 꼬마와 마피아 조직원 여자 사이에 연대감을 장르 영화 형식을 빌어 말한다. 남장 여자처럼 거칠기만한 글로리아가 친구의 죽음으로 친구 아이를 떠맡게 된다. 어른은 삶을 사는 자신만의 방식을 갖기 마련이다. 글로리아는 마피아 조직원으로서 살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방법을 보여준다. 식당에서 호텔에서 택시 기사를 대하는 태도로 과거의 거친 삶을 넌지시 비춘다.

 

여섯 살 꼬마의 눈에 거친 글로리아는 낯설지만 흥미롭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어른 여자가 스치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꽤 매력적으로 지켜본다. 게다가 꼬마는 이제 고아여서 의지할 사람도 없다. 글로리아는 유년기를 기억하기에는 많이 살았고 꼬마의 눈높이를 헤아리기에는 너무 바쁘다. 마피아 조직원들이 노리는 꼬마를 살리려고 뉴욕 뒷골목을 누비느라 정신없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눈높이를 맞춰가는 과정이 진지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갖은 구박에도 굴하지 않는 꼬마의 똘망한 말투가 안 잊혀진다.

 

지나 롤랜즈는 추격당하는 중에서 하늘거리는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매일 갈아 입을 옷이 든 가방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달리고 역을 종횡으로 누비며 골목을 살핀다. 버스, 지하철, 좁은 호텔방에서 카메라는 사선으로 인물을 잡아내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은 암시를 주는 앵글을 자주 사용한다. 인물을 크게 잡는데 가운데 두는 게 아니라 옆 쪽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를 주변을 보여주는데 시선은 인물보다는 프레임 주변을 살피게 돼서 인물과 같이 호흡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음악은 어찌나 서정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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