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기대 없이 봤는데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니 거의 엉엉 울었다고 해야겠다. 몇 년 전 시튼의 <동물기>를 찾아 헤맸던 때가 있다. 유년기에 읽었던 늑대와 곰의 이야기는 마치 우직한 사람의 이미지로 내게는 남아있다. 후각이 발달해 바람 결을 따라 먹이 냄새나 적의 냄새를 분간하는 것도 SF처럼 멋졌다. 배우자에 대한 정절과 사랑도 절절했다. 이 모든 게 말이 없는 동물이기에 상상의 여지가 있어서 내가 좋을대로 생각한 것 같다. 말하는 인간 세계에 말 없는 늑대소년은,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동화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이 이야기도 기본 플롯은 "세상에 없는 사랑"이므로 사랑의 삼각형이 등장한다. 순이를 좋아하는 두 인물이 있다. 말이 많아서 저렴해 보이는 지태와 말이 없어서 충직해 보이는 늑대 소년 철수. 철수한테 언어를 빼앗아 버린 건,  영리한 장치다. 말을 할 수 없어서 철수는 자신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수난을 당한다. 근력이나 골밀도가 코끼리같아도 이건 동물 세계에서나 먹히는 수단이다. 말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인간 사회에서 과도한 물리적 능력은 괴물이다. 그러니 순이와 동네 사람들, 관객은 철수의 온순함을 알고 있기대 몇 몇 악당 혹은 그를 괴물 취급하는 사람들한테 보호해야한다는 정의감이 발동한다. 학대 받는 약자한테 동정심이나 애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물며 충성을 하는 철수가 아닌가. 순이가 훈련시킨대로 기다릴 줄도 알고 글자도 배우고. 순이가 위험하면 변신해서 악당을 물리치기도 하고. 착한 철수가 받는 대가는 순이의 사랑이고. 이 사랑이 이성간에 일어나는 감정일 수도 있지만 청소년기의 순진한 이들로 설정되어 있어서 오히려 반려견과 주인의 애정같은 느낌도 있다. 내가 통곡을 하게 된 이유도 19년을 가족 구성원으로 함께 했다 결국 안락사를 당한, 우리 강아지가 생각나서다.

 

개를 키워 본 사람만이 아는 게 있다. 개도 눈빛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 가족도 개를 앉혀 놓고 말을 가리키곤 했다. 엄마, 아빠, 언니..물론 개는 입에서 멍멍 하는 개의 언어만 말할 뿐이다. 그러나 눈망울을 보면 곧 입에서 멍하는 소리 대신 언젠가 정말로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말할 거 같은 확신이 든다. 순이가 철수한테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게 욕심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 상황이다. 판타지는 상황이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있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거다. 모든 애견가들은 늘 판타지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이 영화를 지극히 있을 법한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생체 실험 실패로 변이된 늑대 소년, 악랄하고 찌질한 지태, 그리고 순이, 순자의 엄마. 이 분 아줌마 캐릭터 전문인가. <이웃사람>에서도 세상에 무서울 거 없는, 거침없는 아줌마로 등장해서 웃겼는데 여기서도 그 재밌는 캐릭터시다.

 

허구적이었던 건 47년 전 한 시골 마을을 무대로 벌어지는데 그 풍광과 햇빛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방식이, 마치 BBC 고전극에서 볼 수 있는 목가적 풍경이다. 부유한 성주 소유의 땅에서 벌어지는 유유자적해 보이는 부러운 풍경이다. 한국전쟁 직후라면 아이들도 좀 꼬질하고 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 시대에 있을 거 같은 아이들과 시골 풍경이 동화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엔딩 시퀀스. 엔딩 시퀀스 때문에 영화는 확 깼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순이란 할머니는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 주름을 보고, 이런 괴물이 있나..하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플래시백이 영화 내용이다. 그리고 엔딩은 다시 순이 할머니. 할머니가 늑대소년 철수를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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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24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 소녀 감성이신가봐요.^^ 근데 저도 이 영화의 예고편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아직 영화는 못 봤지만요.) 박보영과 송중기라면 사실 내용이 영 거지같아도 좋은 거 같기도 하구요. 근데 조성희 감독이 상당히 기대를 많이 받았던 감독인데, 생각보다는 평이 좋지는 않더군요.

넙치 2012-11-25 16:17   좋아요 0 | URL
지금은 생활인지만 저도 한때는 소녀였던지라..;;
저는 이만하면 상업영화로서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사실 진부한 플롯인데도 보면서 진부하다는 생각 별로 못했으니. 영상도 아름답고 두 주인공의 비주얼도 아름다워요.
 
The Death of the Moth and Other Essays (Paperback)
Woolf, Virginia / Mariner Books / 197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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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지식인 서재 추천 책이다. 그의 선택은 완전 만족도 보증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별로 안 읽었는데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고통(?)이 있어서 좀 망설였다. 교보에 가서 <댈러웨이 부인>원서를 좀 들춰봤더니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하면 난이도 '하'쯤 된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내 편견으로는 이렇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작가의 글은 훨씬 쉬울 때가 많다. 얼마 전 조셉 콘래드의 <로드 짐>을 원서로 읽다가 어려워서 몇 챕터 읽다가 그만두었다. 문장 구조만 긴 게 아니라 어휘도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족히 열 단어는 된다. 그러니 가독성은 현저히 떨어지고 독서에 대한 불꽃은 점점 스러졌다. 그래서 두 권으로 번역 된 민음사 책을 읽었는데 역시나 원어가 주는 그 강한 감정적 호소를 느낄 수 없어 역시나 읽다 말았다. -.-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난해함으로 악명 높은데 이 글은 그 악명이 한글 번역본에서만 해당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도 있다. 달랑 이 한 권으로 판단하는 건 무리가 있겠지만 아무튼 이 책은 각기 다른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서 챕터별로 랜덤하게 읽어도 무방하다. 게다가 정말 산문이 아름답다. 시적 산문이라는 찬사를 받는데 독자의 주머니를 열기 위한 거짓이 아니다. 울프가 이끄는대로 최면에 걸려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제목에 등장한 <나방의 죽음>과 <거리 떠돌기Street haunting>를 보면, 글쓰는 이가 글감이 없다고 말하는 건, 자신이 글을 쓸 관찰력이 없다는 걸 고백하는 거다. 책을 읽다 고개 들어 나방이 불에 달려 드는 걸 지켜 보는 찰라, 연필을 사러 문구점까지 이르는 길에 보게 되는 사람들을 지켜보느라 자신이 왜 문구점에 와 있는지 잊어버리는 엉뚱함에 읽는 이를 초대하는 힘. 그 탓에 마지막에 울프가 "아, 맞다. 연필을 사러 왔었지."라고 말하는 순간에 마치 마법을 푸는 주문으로 현실에 돌아오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흥미로웠던 에세이는 예술에 관한 에세이들.<Craftsmanship>, <The Humane Art>, <The art of Biography> 이다. <장인정신>은 인간이 언어를 다루는 일에 관한 소고인데 작가만이 아니라 모든 상징 언어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소쉬르가 시니피앙 시니피에를 질서정연하게 구별해서 줄 세우려고 했던 것을, 울프는 해방시킨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을 강조하는 탈구조주의자고 말할 수 있겠다.

 

"There is one great living master of this language(a sign language) to whom we are all indebted, that anonymous writer-whether man, woman or disembodied spirit nobody knows-who describes hotels in the Michelin Guide. He wants to tell us that one hotel is moderate, another is good, and a third the best in the place. How does he do it? Not with words; words would at onece bring into being shrubberies and billiards tables, men and women, the moon rising and the long splash of the summer sea-all good things, but all here beside the point. He sticks to signs. That is all he says and all he needs to say. Baedeker carries the sign language still further into the sublime realms of art. (p.200)......But the words in that sentence are of course very rudimentary words. They show no trace of the strange, of the diabolical power which words possess when they are not tapped out by a typewriter but come fresh from a human brain....Why words do this?......They do it without the writer's will..(p.202)"

 

옮겨 적고 싶은 명문이 많지만 그건 노트에 손글씨로 하기로 하고. 한 문장만

The alliance of the intense belief of genius with the easy-going non-belief or compromise of ordinary humanity must, it seems, lead to disaster and to disaster of a lingering and petty kind in which the worst side of  both nature is revealed. (p.123)

 

그 밖에 더 많은 에세이는 짧은 작가론이다. E.M.포스터, 헨리 제임스,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등등 알 수 있는 사람은 요정도인데 그들의 작품을 안 읽어서, 울프의 글을 읽기 쉽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에 대한 언급이 꽤 자주 등장해서 찾아 봤다. 그의 이력과 가족사도 종종 언급된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책 읽기에만 몰입할 수 있는 재력이 없었다면 기번이 <로마쇠망사>를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울프는 말한다. 한 사람이 당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 작업을 할 수는 없다. 다만 후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건 후대의 몫이다. 당대를 위해 생계에 신경 쓰지 않고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울프는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중요시한다. 어찌 이리 현명하신지...

 

덧. 울프의 에세이 언급된 작가들의 책을 앞으로 읽을 목록에 추가 해 두었지만 실행할 자신은 없다. 아무튼 더 많은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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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1. 포항 바닷가에 민박을 하며 생활을 꾸리는 한 가족이 있다. 지적 장애인 아빠, 초등학생 두 딸, 순영과 순자. 그리고 건달 작은 아빠. 인천 공항에서 포항까지 한 미국인 부녀를 에스코트하는 건달 망택(이천희)을 따라가다 누가 봐도 힘들 거 같은 한 가족을 맞닥뜨린다. 타고난 가정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아버지를 봉양하고 건달 작은 아빠의 구박과 학대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순영.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하면서 바비 인형처럼 되겠다는 순자는 집을 지옥으로 여긴다. 친자매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다. 순영이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라면 순자는 남을 밟고서라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한다.

 

상황2. 오프닝에서 미국인 남자와 바비 인형처럼 눈 크고 마르고 예쁜 딸이 순영이를 입양하러  한국에 왔다. 미국인은 인종차별주의자고 순영을 미국에 데려가는데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두 딸한테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빠다. 이 미국인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초상이기도 하다. 내 가족 혹은 내가 익숙한 것에는 온화하고 선한 태도로 대하지만 낯설고 다른 것, 특히 약자들한테는 악인의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 있는 작은 딸은 선천성 심장병이어서 이식할 심장을 찾아 한국에 올 정도로 부성애를 과시한다.

 

상황3. 아메리칸 드림을 꿈 꾸는 소녀 순자. 순영 대신 미국에 가고 싶어한다. 미국은 바비가 태어난 나라고 병신 아빠를 안 봐도 된다. 언니가 해 주는 밥상이 아니라 우아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거라고 상상한다. 미국에 가면 자신의 집과는 다른 신나는 일들이 기다릴 거라고 믿는다. 공상이 반복되면 강한 믿음이 생겨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비극이 일어난다. 미국에서 자신의 운명이 어찌 될 지 모른 채 바비 인형처럼 환하게 웃으며 출국장에서 순자는 손을 흔든다.

 

상황4. 이 모든 일을 꾸민데는 두 자매의 작은 아빠 망택이 있다. 순자의 목숨을 돈을 받고 팔자마자 차를 사러 간다. 그는 모든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망택도 순자의 입양 목적을 나중에 알았다. 후회하기엔 망택은 너무 막장 인간이다. 일말의 양심이 눈 앞에 생긴 돈을 물리칠 정도는 아니다. 순자 순영 자매의 집에서 이 아이들의 실제 보호자는 망택이지만 그는 두 자매를 살뜰하게 돌볼 의지가 없다. 보호자의 보호를 받아야할 아이들한테 학대만 해 줄 수 있다. 그 학대를 견디는 건 아이들의 몫이다. 입양은 옳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황은 열악하다. 그러나 입양 후까지는 알바가 아닌 게 문제다. 망택도 입양 후, 아이들의 삶을 막연히 지금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이야기인데 아주 이야기가 어둡고 답이 안 나온다. 올바르지 못한 기성 세대가 어린 아이들을 학대하는데 영화 속 어른이 있는 게 사실이니 어쩌나. 물리적으로도 약해서 순영은 깡마른 사지와 몸을 가지고 있다. 작은 아빠가 끌면 질질 끌려가는데 누구 하나 말려주는 어른이 없다. 왜 그러냐고 묻는 어른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현실인지도 모른다. 신음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내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히듯 우리는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에 더 민감해서 귀찮아질 소리들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른 세계는 희망이 없을 때처럼 보일 때가 많다. 순자나 순영이 희망을 품는 장면을 보면 절망을 품게 되는 거 보면 어른한테 희망은 아이같은 순진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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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04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리뷰 올리고 알라딘서재를 둘러보니 넙치님 리뷰가 올라와 있어서 깜짝 놀랐네요.^^ 이상우 감독 전작들의 느낌이 묘하게 살아있으면서도 말씀하셨던 대로 그 무거운 느낌이 또 상당히 절제되어 있어서 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아..그 음악이 킹스턴 루디스카의 음악이었군요. 카메라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데, 그 세 부녀가 춤추다가 망택이 들어오면서 카메라가 뒤로 죽 빠지는 장면..마치 환상극장이 닫히는 듯한 인상이 들었고, 느낌이 좋았어요.

넙치 2012-11-05 14:15   좋아요 0 | URL
찌찌뽕이군요.ㅋ
이상우 감독, 전 처음 봐서 검색을 좀 해봤더니 영화를 꽤 여러 편 만들었더라구요. 저처럼 영화를 만든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 이번에 좀 세게 갔다는 인터뷰를 읽었어요. 전작들이 어떤지 모르지만 <바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풀 수 없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잘 담아내서 좋았어요. 연출력과 시나리오도 좋고. 연출법이 굉장히 이국적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음악은 저도 몰랐다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알았아요.


맥거핀님 글 읽으러 가야겠습니다.^^

Indigo 2012-11-07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상우 감독님 서포터즈 블로그로 소중하게 스크랩해갈게요~~ 감사합니다.
 
복안의 영상 - 나와 구로사와 아키라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97
하시모토 시노부 지음, 강태웅 옮김 / 소화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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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와 공동 각본을 쓴 이의 글이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쯤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시나리오 작법서 혹은 감독(지망생)들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다. 복안은 여러 개의 눈이란로 공동 작업을 의미한다.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시나리오란 읽는 게 아니라 촬영을 위한 설계도로 혼자 쓰는 게 아니라 협업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책을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는데 자신이 참여한 <라쇼몽>, <살다>, <7인의 사무라이> 작업 시절과 공동 각본 작업이 사라진<란>, <가케무사> 작업 스타일을 기술한다. 저자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참여한 시절에 보여줬던 팀워크가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주장한다.  

 

<라쇼몽>, <살다>, <7인의 사무라이> 시절 각본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꽤 자세히 묘사한다. 신출내기 작가였던 자신이 원안을 작성하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수정을 하고 오다구..하는 당시의 거물급 시나리오 작가가 방향을 설정하는 작업을 했다. 저자는 이야기꾼이고 아키라 감독은 촬영을 염두에 두며 그림을 그려가면서 인물의 특징을 완성했고 오다구는 전체 흐름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검열(?)했다. <7인의 사무라이>가 탄생하기 전에 <사무라이의 하루>를 기획했다. 말 그대로 사무라이의 일상을 담으려 했는데 시대극이라 사소한 일에도 고증이 필요했다. 사무라이가 도시락을 지참하고 성을 올라 사무를 본다는 설정인데 영화가 엎어진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 때문이다.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삼는데 밥을 두 번만 먹어서 도시락을 지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역사 기록도, 역사 전문가도 사무라이가 도시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밝혀낼 수 없기에 영화는 <사무라이의 하루>는 완성 될 수 없었다. 영화는 일종의 판타지라고 생각해버리는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대극은 만들어 진 후에 허점을 늘 노출하지만 제작자들은 최대한 고증을 하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지 않았기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눈에는 허점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아키라 감독 팀은 이 사소한 논란도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에 영화 기획을 접었다.

 

저자는 아키라 감독의 초반부에 보여준 이러한 태도를 장인 정신으로 본다. 후반부에 이런 공동 각본 시스템이 사라지면서 <가케무사>, <란>을 실패작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이 시기의 아키라를 예술가로 부른다. 저자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다. 우리가 영화를 감독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거 보면 우리는 아키라 감독의 편이다. 저자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 아니라 공동의 예술이라고 보고.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시나리오 작가, 특히 원안자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엔딩 크레딧에 이름 한 줄 나오는 게 전부지만 제작 과정에는 원안자나 시나리오 작가가 없었다면 영화 자체가 나올 수 없다. 영화를 보는 감독, 시나리오 작가, 관객의 관점 차이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어떤 영화는 연출력은 좋은데 시나리오가 부실해서 왜 전문 작가를 쓰지 않아서 아깝게 영화를 망쳤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시나리오 작가가 읽는 글을 써 낸다면 감독은 보는 글을 써야하므로 감독 스스로 주제만 설정하고 써 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환상적 파트너를 만나는 일도 쉽진 않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시나리오 작가나 원안자에 대한 역할 인식이 부족해 최고은 작가의 죽음도 있었고. 주워 들은 이야기지만 작가 지망생들은 원안자가 되는 걸 두려워한다. 단물만 빨리고 버려진다고. 또 공동 각본가로 크레딧이 올라가면 영화판에서 독립 시나리오 작가로 살아나갈 수 없다고 경계한다. 누구의 잘못이길 따지기 전에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모두의 의식 부족이기기도 하고 관객이 영화를 배우의 것으로 보는 쏠림 현상 탓이기도 하다. 뭐 내가 여기서 영화계를 논할 생각은 아니라 저자가 주장했듯이 공동 시스템 구축이 받아들이기 쉬운 건 아니라는 말이다.

 

며칠 전 <용의자X>를 봤는데 아주 지루했다. 방은진 씨의 연출가 욕심은 욕심으로 끝나는 거 같고 류승범만 배우로서 유일하게 살아있었다. 시나리오도 튀는 대사 하나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주력하는 지루한 전개고 조진웅이나 이요원 모두 좋은 배우지만 감독은 이들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전혀 고민하지 못한 듯. 더 놀라운 건 엔딩 크레딧에서 공동 각본 작업이었다, 세 사람, 감독까지 네 사람인데 어떻게 단선적인 지루한 시나리오를 쓰나, 머리가 여럿 모이는 게 문제가 아니네,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니 저자의 공동 시스템보다는 역량있는 개인이 모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는 결론 짓는다.

 

아키라 감독의 성실하고 철저한 작업 스타일이 복안複眼을 유의미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감독의 눈이 복안 보다도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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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1-04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찾아서 읽으신다더니 정말 읽고 계시네요.^^ 저도 소개글만 읽고 막연히 어떤 내용일까 싶었는데, 글을 보니 더 잘 이해가 되네요. 시나리오가 부실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 저도 좀 시나리오에 신경을 쓰시지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이 꽤 있었어요. 최근에 본 것 중에는 <간첩>..정말 막판에는 이야기가 거의 손 쓸 수 없는 지경이 되더군요. <용의자X>는 보지 않았지만, 좋은 원작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가 별로인 모양이군요.

넙치 2012-11-05 14:19   좋아요 0 | URL
김영진 씨의 감성을 평소에 흠모해 온 터라 김영진 씨 추천책이라 냉큼 집어들었어요.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지지부진한데 이 책은, 역시나 재밌었어요.

<간첩> 볼까 말까 했는데 안 본 게 다행ㅋ <용의자X>는 시나리오도 별로고 연출도 디게 디게 별로에요. 그에 비하면 변영주 감독이 <화차>를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저절로 비교가 되네요.
 

 

 

 

 

 

 

 

 

 

 

 

1. 007 시리즈를 극장에서 본 건 아마도 두번째이지 싶다. 처음은 고딩 때 듀란듀란 팬질을 했던 친구 덕분에 영화를 보러 갔었던 거 같다. 듀란듀란이 나오는 줄 알고 갔는데 끝에 A veiw to kill 주제곡을 부르는 장면이 삽입돼서, 이 뭥미? 했었다. 영화는 물론 기억 안난다.ㅋ 내가 기억하는 본드는 로저 무어. 냉전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TV 명화극장에서 첩보 영화를 줄창 했더랬다. 어린 시절 KBS, EBS 방영 영화를 열청하는 어린이로 로저 무어의 느끼함을 선택의 여지 없이 보곤 했었다. 그러다 고딩 때 극장을 다니는 능동적 관객이 되기 시작하면서 007 시리즈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쯤 돼 버렸다. 이번에도 장맛비처럼 비 오는 토요일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보게 됐는데 영국 영화라 그런가, 안 봤으면 후회했을 영화다. 일단 본드가 느끼하지 않다.ㅋ

 

본드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느끼한 거 말고 또 있다. 기억 속의 본드는 언제나 불사조였다. 수 명 혹은 수십 명의 무장 집단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면서 유머도 잃지 않는다. 슈트를 다릴 수도 없을 거 같은 오지에서도 본드는 짐 하나 없이 다니는데 늘 누군가 다려준 듯한 슈트를 입고 총질을 한다. 부상을 당하기는 하지만 부상은 현지 원주민 여인과의 로맨스를 위한 휴가 정도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이며 영화나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라 호감도 급하락을 부추긴다.

 

2. 스카이폴에서 본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아주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할 수 있는 인물이다. 본드가 열심히 달리고 얼굴에 핏줄이 터질 것처럼 힘을 썼지만 임무에 실패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본드는 체력, 집중력도 딸린다. 총을 쏘면서 과녁도 빗나간다. 임무 실패하고 부상도 입고 어떤 섬에서 회복기를 지나면서 본드는, 로마 시절 글래디에이터의 모습 같다. 관객들 앞에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운명. 한 바에서 전갈을 손에 얹고 전갈에 쏘이지 않고 위스키를 원 샷하는 장면에서 그를 둘러싼 원주민들은 내기를 하며 그의 행동을 즐기는데 정적 본드의 표정은 무뚝뚝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냉전 시절 본드가 영웅적 활동을 펼쳤다면 냉전이 끝나고 공공의 적을 가시화하는 게 어렵다. 런던에 있는 본부를 지휘하는 국장은 곤경에 처한다. 무엇을 위한 비밀 요원인지 청문회도 해야한다. 비밀첩보원의 존재 기반과 역할 자체가 의문시 되는 시기가 돼 버렸다. 이점이 아주 흥미롭다. 비밀요원이 국가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당위성이 사라져 버린 시점에서 새로운 적을 출현 시키는 게 불가피한데 국장은 모호한 말을 한다. 적은 그늘(혹은 그림자)속에 언제나 있다고 한다. 국장 자신도 확신이 없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해 온 일에 대한 의심없는 맹목적 사수랄까.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 보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공공의 적이 사라진 지금, 스카이폴에서 적은 전 비밀요원이다. 국장한테 복수 하려고 비밀첩보원을 위협하는 인물,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이 등장한다. 요원을 도구화하는 체제에 증오심을 품고 돌아온 돌연변이다. 실바는 모세포에서 떨어져 자가 증식을 통해 돌연변이가 되었다. 사실 이념적 갈등은 대다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좋은 소수 지배계급이 프레임화했기 때문에 생겼다. 국장을 비롯한 냉전기를 살아온 이들이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집단 욕망과 개인의 왜곡된 이해는 이제 일반인의 눈으로 재프레임화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기도 한다. 실바는 국장에게 "네 죄sin를 생각해봐"란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이 점도 흥미로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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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10-2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에 봤는데, 재미있더군요. 근데 본드 씨는 여전히 잘 안죽던데요.^^ 저는 시작 부분 액션씬을 보면서 저러고도 안 죽는단 말인가..했는데, 안 죽더군요. 본드도 본드고, 암튼 악당 캐릭터도 말씀하신대로 흥미롭긴 했습니다. 뭐 공포의 끝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등장하더니만, 예상보다는 상당히 짠한 악당이더라구요.

암튼 영화를 본 후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본드의 수트발과 오프닝입니다. 물론 007의 오프닝은 매번 간지가 넘쳐흐르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그 오프닝은 거의 역대최고급입니다.

넙치 2012-10-30 14:25   좋아요 0 | URL
ㅋㅋ 불사죠 여전하죠.ㅋ 근데 다니엘 크레이그 얼굴이 기름기 쫙 빠지고 표정도 진지해서 살아남았는데도 불사조처럼은 안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ㅋ저는 저렇게 몸을 쓰는데도 슈트에 주름하나 없고 찢기지도 않는 게 신기.ㅋㅋ

하비에르 바르뎀의 광인 연기를 좋아하는데 막장까지 가는 거 안스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