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07 시리즈를 극장에서 본 건 아마도 두번째이지 싶다. 처음은 고딩 때 듀란듀란 팬질을 했던 친구 덕분에 영화를 보러 갔었던 거 같다. 듀란듀란이 나오는 줄 알고 갔는데 끝에 A veiw to kill 주제곡을 부르는 장면이 삽입돼서, 이 뭥미? 했었다. 영화는 물론 기억 안난다.ㅋ 내가 기억하는 본드는 로저 무어. 냉전 시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터라 TV 명화극장에서 첩보 영화를 줄창 했더랬다. 어린 시절 KBS, EBS 방영 영화를 열청하는 어린이로 로저 무어의 느끼함을 선택의 여지 없이 보곤 했었다. 그러다 고딩 때 극장을 다니는 능동적 관객이 되기 시작하면서 007 시리즈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쯤 돼 버렸다. 이번에도 장맛비처럼 비 오는 토요일 친구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보게 됐는데 영국 영화라 그런가, 안 봤으면 후회했을 영화다. 일단 본드가 느끼하지 않다.ㅋ
본드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가, 느끼한 거 말고 또 있다. 기억 속의 본드는 언제나 불사조였다. 수 명 혹은 수십 명의 무장 집단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면서 유머도 잃지 않는다. 슈트를 다릴 수도 없을 거 같은 오지에서도 본드는 짐 하나 없이 다니는데 늘 누군가 다려준 듯한 슈트를 입고 총질을 한다. 부상을 당하기는 하지만 부상은 현지 원주민 여인과의 로맨스를 위한 휴가 정도일 뿐이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인물이며 영화나 만화 속에나 있을 법한 인물이라 호감도 급하락을 부추긴다.
2. 스카이폴에서 본드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아주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휴머니즘의 차원이 아니라 실재할 수 있는 인물이다. 본드가 열심히 달리고 얼굴에 핏줄이 터질 것처럼 힘을 썼지만 임무에 실패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본드는 체력, 집중력도 딸린다. 총을 쏘면서 과녁도 빗나간다. 임무 실패하고 부상도 입고 어떤 섬에서 회복기를 지나면서 본드는, 로마 시절 글래디에이터의 모습 같다. 관객들 앞에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운명. 한 바에서 전갈을 손에 얹고 전갈에 쏘이지 않고 위스키를 원 샷하는 장면에서 그를 둘러싼 원주민들은 내기를 하며 그의 행동을 즐기는데 정적 본드의 표정은 무뚝뚝하면서도 만감이 교차한다.
냉전 시절 본드가 영웅적 활동을 펼쳤다면 냉전이 끝나고 공공의 적을 가시화하는 게 어렵다. 런던에 있는 본부를 지휘하는 국장은 곤경에 처한다. 무엇을 위한 비밀 요원인지 청문회도 해야한다. 비밀첩보원의 존재 기반과 역할 자체가 의문시 되는 시기가 돼 버렸다. 이점이 아주 흥미롭다. 비밀요원이 국가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당위성이 사라져 버린 시점에서 새로운 적을 출현 시키는 게 불가피한데 국장은 모호한 말을 한다. 적은 그늘(혹은 그림자)속에 언제나 있다고 한다. 국장 자신도 확신이 없지만 오랫동안 자신이 해 온 일에 대한 의심없는 맹목적 사수랄까.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 보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를 때가 있기 마련이다.
아무튼 공공의 적이 사라진 지금, 스카이폴에서 적은 전 비밀요원이다. 국장한테 복수 하려고 비밀첩보원을 위협하는 인물,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이 등장한다. 요원을 도구화하는 체제에 증오심을 품고 돌아온 돌연변이다. 실바는 모세포에서 떨어져 자가 증식을 통해 돌연변이가 되었다. 사실 이념적 갈등은 대다수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 좋은 소수 지배계급이 프레임화했기 때문에 생겼다. 국장을 비롯한 냉전기를 살아온 이들이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집단 욕망과 개인의 왜곡된 이해는 이제 일반인의 눈으로 재프레임화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하기도 한다. 실바는 국장에게 "네 죄sin를 생각해봐"란 메시지를 계속 보낸다. 이 점도 흥미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