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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밤 ㅣ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45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경호 엮음 / 범우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열아홉 살에 대학입시 면접을 보면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해서 즉흥적으로 에리히 레마르크라고 했던 적이 있다. 아마도 열여덟 무렵 <개선문>을 읽고 감동받아 뱉어낸 말일 것이다. 그리고는 레마르크를 잊고 살다가 몇 년 전 적립금에 눈이 어두워서 레마르크의 <리스본의 밤>을 펼쳤는데 별로 감흥이 없어서 적립금은 고사하고 내 십대의 기억마저도 의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레마르크에 끌린 점이 무었이었던가...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떤 책은 십대에 인상적이었는가하면, 어떤 책은 인생의 굴곡(?)을 경험 한 후에야 다가오기도 한다. 레마르크는 전자의 경우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아무튼, 지금부터 두 달 후 나는 리스본에서 인천행 새벽 비행기를 탈 것이다. 새벽 비행기라하니 뭔가 사연있어보이지만 사실은 구차하게도 할인 항공권 시간에 맞춘 것이다.-_-; 이 책을 다시 펼쳐 든 이유는 바로 이것. 이번 독서의 중심은 리스본 방문을 앞두고 왜 제목이 <리스본의 밤>인가, 밝히는 거 였다. 안타깝지만 못 찾겠다. 다 안 읽었고 앞으로도 다 읽을 가능성이 요원해보인다.
레마르크는, 알려져있듯이, 전쟁을 소재로 소설을 쓴 작가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 모를 한 남자, 슈바르츠다. 게슈타포한테 쫓겨서 몇 년을 슈바르츠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몇 년을 위조한 여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이 남자는 여러 도시를 떠돌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려 시도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나는 고향을 떠나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서울을 떠나는 일에 적극적이고 서울을 떠나는 일에 설레면서 새벽까지 폭풍검색을 자처한다. 아이러니하다. 떠나려고 애쓰는 이가 돌아오려오 애쓰는 이의 이야기를 읽는 건. 그러나 돌이켜보면,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떠나는 것과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는 이의 삶은 비슷해 보이면서도 전혀 다른 궤적이다. 슈바르츠는 대체로 불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멋진 말을 했다.
"지난 5년간의 도망생활을 통해 내가 지니고 온 것은 예민해진 감각, 삶에 대한 의지, 범법자가 갖는 조심성과 체험뿐이고 다른 것들은 완전히 파산 상태였던 거지요. 국경과 국경 사이의 그 숱한 밤들, 보잘것 없는 식사와 몇 시간의 수면뿐이었던 생존만을 위한 권태감, 그 모든 것들은 거실 무지방을 넘는 순각 사라진 것이었지요. 비록 파산을 하기는 했으나 부채는 없습니다. 나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 경계를 넘는 동안 5년이란 세월이 준 자아는 자살을 한 것이었지요. 따라서 그건 단순한 귀환이라고는 할 수가 없는 것이었지요. 나는 죽었고 다른 자아가 살아남았는데, 그건 책임이 따르지 않는 세월이 준 선물이었지요. 중압감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88쪽)
슈바르츠에 내 삶을 시뮬레이션해보면 , 실제 내 삶은 슈바르크의 삶과는 백팔십도 다른 위치에 있다. 나는 언제나 떠나기를 갈망하면서도 제자리에 있고, 늘 돌아올 수 있고, 실제로 돌아온다. 나는 이것을 그리스의 비극에 대항하는 르네상스식 인간이라고 격상해서 말하고 싶다. 하지만 실은 내가 겁쟁이라는 것. 내가 떠나는 삶을 갈망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비겁하게도)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다른 자아를 얻는 행운은 영원히 거세된 것이지도......(나는 금성좌인데도 왜 토성좌같은 멘탈을 소유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