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시자들>도 그렇고 <숨바꼭질>도 그렇고 한국영화 스릴러 장르는 이제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거 같다. 아주 정교하진 않아도 스릴이 파생하는 지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다만 범인에 대한 정보가 중간에 드러나고 그 이후에는 좀 긴장감이 덜 한 면이 있다. 이것도 몇 년 지나면 개선되어서 웰메이드 영화가 나올듯.

 

2. 이 영화는 그럴듯하지만 말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낡은 아파트 사이에 벽과 벽이 허술한 점, 범인이 여자인데도 남자보다도 힘이 세다는 점. 물론 살인을 할 때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보통 때와는 다른 괴력이 나온다고 한다. 있음직하지만 범인은 연쇄살인범인데 초반에는 아주 지능적으로 보이지만 정체가 드러난 후에는 별 계획없이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힘이 나오는 게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 특히 손현주와 격투씬(?)에서는 더욱 리얼리티 감소. 게다가 인물들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자신이 뛰어다니는지.ㅋ 뭐 사건을 이어가기 위해서인데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엄마라면 자신이 뛰어가기 전에 먼저 경찰이나 누군가한테 도움을 청한 후 뛰어가야하는 거 아닌가. 아님 그 순간에 판단력을 잃고 달려가는 모습이 진짜 모성인가. 모성의 리얼리티가 뭔지 모르겠다.

 

3. 스릴러로서 허술한 점이 많은데도 이 영화는 꽤 미덕이 많다. 먼저 익명성에서 생길 수 있는 그럴듯함이다. 아파트란 공동주택과 택배기사로 분장한 범인의 모습이란 소재는 흥미진진하다. 허름한 아파트와 최신식 아파트가 이야기의 주요 배경이다. 최신식 아파트의 장점은 익명성을 보장한다. 키를 소유할 수 있다면 암묵적으로 그 공간에 대한 사용자로 권리를 부여받는다. 즉 출입통제 시스템은 공간에 사는 사람을 믿기 보다는 출입시스템을 통과하는 작은 키를 믿는다. 스릴은 여기서 파생된다. 입구를 통과하고 비밀번호로 현관문을 열어야하기에 우리는 대체로 집이 안전하다고 믿지만 그 비밀번호란 게 그렇게 믿을 만한 게 아닌 건 공공연한 사실. 편혜영의 단편 중에 이런 익명성을 풍자한 소설이 있다. 키를 안 가지고 담배를 사러 나온 주인공이 자신의 집에 들어갈 수 없는 아이러니를 섬뜩하게 그렸다.

 

반면에 낡은 복도식 아파트는 최신식 아파트와 다르다. 입구 통제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긴 복도를 걸어가면서 몇 호에 누가 사는지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 영화는 여기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옆집과 벽을 공유하는 구조를 통해 이웃집과의 경계를 허물고 이어진 공간으로 만들어버린다.그래서 주인공이 베란다나 벽장 벽면으로 다가갈 때마다 등장할 다른 풍경에 침을 꼴깍 삼키는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4. 전반부에서 범인은 택배기사로 변장을 한다. 매연에 찌든 파카와 두툼한 솜바지, 그리고 커다란 오토바이용 헬멧. 택배기사의 모습은 일상적 풍경이어서 무심히 넘어간다. 헬멧 안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건 현대인이 아닐터이니. 범인은 이 익명성을 이용한다. 영화 후반에 공포가 조성되고 보이지 않는 헬멧 에 대한 공포가 일어나 아파트 주민들이 경계를 하고 택배기사들은 곤란함을 겪는 소동이 일어난다.

 

5. 범인과 범인을 쫓는 인물 사이에 접점이 있다. 두 사람 다 트라우마가 있다. 범인은 집에 대한 애착이 도를 넘어 집착으로 발전하면서 집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연쇄살인도 아무렇지 않은 캐릭터다. 얼마전 까지 있었던 한국인의 초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집을 사려고 막대한 대출을 받고 파산한 하우스푸어쯤이 아닐까, 하고 추론해볼 수 있다. 범인을 쫓는 이는 입양아로 친자인 형의 컴플렉스를 이용해서 재산을 가로챘다. 그리고는 죄책감에 결벽증을 갖고 사는 남자. 손이건, 바닥이건, 공공 화장실 변기건 닦아야하는 캐릭터. 외적 평온함과 달리 내적으로 쫓기고 불안한 사람. 이 캐릭터 역시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고.

 

6. 쓰다보니 할리우드 스릴러들이 밀도는 높은데 괴리감이 좀 있는 볼거리가 있는 영화라면 이 영화는 밀도는 좀 떨어져도 일상과 가까운 소재라 섬뜩함이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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