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를 보면서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우주나 행성에 대한 이미지 외에는 대체적으로시각적으로 평온한 영화다. 또 하나는 시선을 잡아 끄는 특수효과 대신에 상대성 이론에 대한 꽤 진지한 접근법에 놀랐다. 그럼에도 꽤 재밌게 볼 수 있다는 데 놀랍다.
우리는 21세기 양자역학 시대에 살고 있어서 20세기 상대성 이론이 더 이상 충격이 아니다. 뉴튼의 절대 공간과 절대 시간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전면 부정하는 상대성 이론. 시간은 더 이상 선형적이지도 않고 동일하지도 않다. 중력의 크기와 공간의 차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은 가변적이다. 중력의 크기가 다른 행성에서 파도는 한 시간만에 칠 수도 있고 다른 행성에서의 한 시간은 지구 시간으로 수 년과 같을 수 있다, 는 어디서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말을 시각화한다. 특히 실제 파도가 쳐서 그 파장을 보여주기 보다는 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킬 듯이 위로 올라가는데서 이미지를 멈추고 스크린이 아니라 머리속에서 파도의 후폭풍을 상상케하는 방법에 두근두근했다. 롤러코스터를 탈 때, 급속도로 하강하기 위해 뜸 들이면서 서서히 올라가는 단 몇 초가 가장 두렵듯이, 상상은 최고의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
2.
그런데 양자역학에서 주로 다루어지는 불확정성의 원리는 "관찰자가 관찰 대상을 변화시킨다. 관찰 행위가 어떤 것이 관찰되고 어떤 것이 관찰되지 않는지를 결정한다." 상대성 이론을 보면서 나는 자꾸 불확정성 원리가 떠 올랐다.
인간이 우주로 가는 이유는 뭘까. 아폴로13호가 달 착륙 성공은 이제는 공공연하게 부정된다. 냉전시대에 구소련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프로젝트가 바로 우주탐사였다고, 말해진다. 냉전 종식은 하이젠베르크가 아인슈타인한테 보낸 도전장 만큼 획기적이다. 반공영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첩보영화에서는 적도 새로 설정해야하고 나사의 임무도 국력 입증이 더 이상 아니다. 나사의 새로운 임무는 지구의 종말에 대비해 지구를 대체할 행성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소수의 훈련된 사람들한테, 인류 구원은 대의명분으로 약하다. 거시적 동기는 개인을 추동하는 힘이 되기 힘들 수 있다. 이 영화의 서사는, 그래서 가족 서사로 이루어져 있다. 인류 구원보다는 자신의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우주 미아가 될 위험을 기꺼이 무릅쓸 수 있다. 지구를 대체할 후보행성에서 만난 맷 데이먼이 이런 말을 한다. 그 행성 탐사는 로봇이 할 수 없고 사람이 해야한다고. 죽음이 순간에 찾아오는 공포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데 로봇한테는 죽음 앞에서의 공포를 프로그래밍할 수 없다고. 쿠퍼가 위험한 탐사에 적합한 이유가 바로 죽음의 순간에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릴 거고 그게 쿠퍼를 살게 할 거라고.
쿠퍼는 한 때 우주비행사 훈련을 받았다. 아마도 냉전시대에 교육을 받았던 그는, 탈냉전 시대에 과학적 지식을 농기구 고치는데나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중력의 이상으로 나사의 비밀기지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다시 우주선에 오른다. 우주선에 오르는 순간 쿠퍼는 그 누구보다도 살 의지가 강해진다. 지구에 지켜야할 아이들이 있으므로. 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는다. 살 땅이 없어질 거라는 상실감보다는 곁에 있어야할 존재의 부재가 더 큰 상실감을 만든다. 쿠퍼는 우주에서 지구를 지키려고 애쓰지만 그 노력이 과연 아이들을 위한 것일 수 있는지.
3.
영화는 한편으로 해피엔딩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해피엔딩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상대성 이론으로 시공간의 얽힘을 알고 5차원의 공간에서 3차원 공간으로 귀환한다. 물론 지구에 있던 딸이 아빠보다 더 나이가 많고 늙어서 젊은 아빠 앞에서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총명한 어린 딸이 자신보다 더 늙어서 죽는 걸 지켜보는 걸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지. 시간은 선형적이지도 않고 물질적이라면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것이다.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 속해있느냐에 따라서.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실제로 자신이 속한 공간과 시간에서만 부재할 뿐이고 다른 공간과 시간에서는 얼마든지 현존 할 수 있다.
4.
매튜 맥커너히는 심히 거슬렸다. 발성이 지나치게 말을 씹어먹는 편인데, 긴장되고 단호한 순간에 그런식으로 말하니까 무게감이 사라진다. 충분히 좋은 배우인데 이런 식의 발성이 절박함을 지닌 우주비행사 역에는 안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