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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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제일 주요한 기능은 묻혀있던 작가나 작품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나아가 어떤 비평가의 글을 읽고 나면 그 작품 혹은 그 작가를 찾아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글이, 좋은 비평글이라고 믿는다. 신형철의 글은 바로 이런 면이 있다. 찾아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석은 기술이기 때문에 비평은 직업이 될 수 있다. (...) 해석자는 이미 완성돼 있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잉태하고 있는 것을 끌어내면서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은 일종의 창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만, 잠재적 유에서 현실적 유를, 감각적 유에서 논리적 유를 창조해낼 수는 있다. (...)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구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신형철 비평글이 두 권째인데 무척 재미있게 읽힌다. 그 이유는, 해석에 대한 저자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보통 비평글은, 그 작품을 읽거나 보지 않으면, 읽는데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독자가 작품을 봤다는 가정하에서 쓰기도 하지만, 이런 가정 때문에 많은 독자들을 배제시키고 특정한 독자들만을 대상으로하는 게 비평글의 타고난 숙명이라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형철의 글은, 작품을 안 보고 안 읽어도  비평글 자체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있다. 그의 말대로 작품을 다시 쓰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 그는 어떻게 작품을 다시 쓰나? 비평글에서 감정적인 문장은 에세이처럼 느껴지기 쉽다. 그러나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감정이 배제되면 학술논문처럼 돼 버려 어떤 정보만을 전달하기 쉽다. 신형철은 논리와 감수성이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글을 쓴다. 이 역시 해석에 대한 저자의 태도 덕분인 거 같다. 수전 손택이 해석에 반대하며 "해석 대신 우리한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erotics"이라고 했다. 즉 해석자한테 가장 필요한 게 작품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인데 신형철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가진 애정이 행간 사이에서 걸어나와 내게로 오는 거 같다.

 

이 책은 <씨네21>에 연재했던 글모음이다. 나도 대부분 봤던 영화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 과연 내가 그 영화를 본 게 맞나, 의심할 정도로 섬세하게 독해를 하고 있다. 나는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태도 보다는 '깔' 준비를 하고 영화를 봤었던 게 아닌가. 일차원적 관객이라는 자괴감이들기도 한다.

 

사람을 비롯한 세상 만물에 애정어린 시선을 가진 자의 온기가 더욱 필요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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