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2월 들어서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극장에 가지 못했던 지난 시간은 암흑기로 죽을 맛이었다. 올해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책도 잘 못 읽고 영화 보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내겐 비교적 일상이어서 하찮다고 생각했었다. 하찮은 시간을 박탈당해보니 그 하찮음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깨닫게 되었다. 사치부릴 수 있었던 지난 시간들에 새삼 감사하는 겸손한 마음이, 기특하게 들었다. 올 한 해 마무리를 겸손하게 할 수 있다니, 행운이다.
2.
음...영화는 현대사를 감성적으로 압축해서 담았다. 한국전쟁, 파독광부, 월남전 파병, 그리고 이산가족상봉에 이르기까지 거시적 역사 속에 한 개인을 코믹하게 위치시킨다. 인물을 코믹하게 배치하면서 역사를 다루지만 그 무게를 덜어내고 좋게 말하면 감정에 호소하고 나쁘게 말하면 신파로 흐르는 조금은 뻔한 스토리로 흐른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이산가족상봉이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가족을 찾고 부르는 사람들을 보여줬다. 잔인한 역사의 아픔을 이해하기에는 어렸던 터라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었다. 지금보니, 꽤 희화화했는데도 웃음 속도 아픔이 보인다. 감독이 사건을 다루는 범위를 보면 영리하다. 연말 가족영화로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게 가족애를 다룬다.
3.
이 영화의 영어제목이 "아버지를 위한 서정시ode to my father"이다. 덕수는 꼬마일 때부터 아버지의 부재를 대신하는 아버지였다. 덕수는 결혼 전에는 동생들과 어머니를 위해 살고, 결혼해서도 아내와 아들, 그리고 역시 동생들과 어머니를 위해, 즉 평생 아버지로 살았다. 가장의 삶이란 가장이 안 되면 그 무게를 모를 거 같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남에 간 에피소드를 보면 힘겨움은 본인 이외의 인물에게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위험이나 어려움은 말로 전해들으면 그 무게가 현저하게 가벼워진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 아들이어도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인 것 같다.
4.
아무튼 12월 처음 본 영화고 감독의 의도대로 눈물도 흘렸다. 또 거짓 눈물일지라도. 눈물을 흘렸다고, 친구한테 문자를 보냈더니 "사는게 눈물겹다"란 답장을 받았다. 머쓱했다. 진짜 눈물 앞에서 거짓 눈물이 부끄럽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