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지음, 박순철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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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미술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이고 전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이고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 과정 반영이 적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드가가 물감이 아닌 파스텔이란 소재에 몰두하고 추상화에서 볼 수 있는 물감과 다른 소재의 결합을 가끔 보지만 아름답진 않다. 그들의 시도 속에 들어있는 의도를 읽을 수는 있어도 언어나 물감으로 이루어진 작품만큼 감동을 받기는 힘들다. 즉 현대미술은 미술이 마땅히 지녀야하는 시적 이미지에 미치치 못한다고, 여긴다. 무수한 '이즘ism'을 무시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술에서 감상 전제조건으로 '이즘'이 선행돼야한다면 무시당해도 마땅하다..뭐 이론 논리다. 설치미술이나 개념미술 행위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감동을 느끼긴 힘들다. 이 책의 저자는 나 같은 관람자를 위해 비슷한 관점에서 현대미술사를 유머러스하게 정리한다. 

폴록이 뉴욕 미술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과정은 다소 과장된 면도 있다. 진실의 여부를 떠나 내가 의문을 갖게 된 부분은, 그럼 미술이라는 장르가 후원자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가, 이다. 이 저자는 폴록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페기 구겐하임이 없었다면 폴록의 그림들은 지금쯤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가가 죽은 후, 또는 작가의 재능을 대중화하는데 매개자는 꼭 필요하다. 그 매개자가 공교롭게도 그림을 소유할 수 있거나 또는 그림을 소유할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들과 친한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한 작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럼 한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  

현대미술계에서 부상하는 작가들의 배경을 파헤치는 게 신랄한데 유화 작가들에 대한 배경에는 신랄하지 않은데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물게하는 책이다.  

덧. 번역도 재치있다. uptown을 윗동네로 번역하니까 참 묘하게 비웃는 거 같으면서도 내용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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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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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이 플라톤 삐딱하게 읽기였고 2권은 맑스 삐딱하게 읽기다. 칼 포퍼가 이 책을 쓴게 1963년이니까 맑스는 태풍의 눈이었을 것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지금은, 맑스의 이론을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은 없을 거고. 이런 시차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기는 간극은 칼 포퍼의 논리를 매력적이게 보이게 하는 데 장애가 된다. 하지만 고전은 현대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 책 역시 거꾸로 본다면, 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의 허점을 짚을 수도 있겠다.  포퍼는 저술 당시 계급 없는 이상 사회란 공산주의가 오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성향이 배여있다. 포퍼가 지향하는 자본주의의 장점이 오늘날에는 다시 단점이 되고 있다.  

포퍼가 대안이라고 말하는 건, 매우 유토피아적이다. 자본주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식으로 체제가 발전하면 된다고 하는 데 맑스의 이론이 심리학을 배제한 과학에만 근거를 두어 실패한 것과 같다. 맑스 이론의 허구성을 이제는 왠만하면 다 안다. 피보나치 수열이 논리적이지만 자연에 적용될 수 없는 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전제만 될 수 있을 뿐이다. 맑스의 계급이론이 실패한 건 인간 심리라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 때문이다.   

포퍼는 자본주의에서 종종 일어나는 부작용을 제어하려면 법률에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부지런함을 갖춰야한다고 지적하다. 근데 이게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법률이라는 건 소수의 인간이 만든다. 물론 표면적으로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법이 다수를 보호하기 보다는 다수를 규제할 때가 더 많다. 법을 어기는 사람이 다수가 아니라 법을 아는 소수라는 걸 주목하면 법이 과연 이상적 대안일까, 하는 의문이다.  

그러면 인간에게 자율은 없는가? 없는 거 같다. 아담과 이브처럼 경쟁할 필요가 없는 사회라면 모르겠지만-하긴 이브도 규율을 따르지 않아서 벌 받지 않았는가-다수가 모인 사회에서는 진화론적 관점이 그럴듯할 수도 있게 보인다. 미국발 금융공황을 보면 자율보다는 축적에 대한 욕망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현대 경제는 유형의 자본재만이 아니라 무형의 사회적이고 개인적 심리가 얽혀있다. 부동산 값이 오르고 금융파생 상품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연쇄적인 이런 사회에서 포퍼의 대안은 초라해 보인다.  

맑스가 헤겔의 관념론에서 등을 돌리고 과학론을 대안으로 봤다면 21세기는 다시 관념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같은데 관념을 규제 또는 좀 더 우아하게 사용할 방법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찾지 못할 방법을 찾으려고 발버둥치는 게 이론의 역사고 인간 역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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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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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바쁘지만 정신은 온전히 노동에만 집중하는 걸 거부한 채 권태롭기만하다. 미셀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에 보면 권태로 몸부림치던 여인이 다음 날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아주 섬뜩한 구절을 읽은 후, 나는 권태, 지루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의식적으로 자제한다. 그래도 문득문득 삶의 의미를 떠올리는 순간 팔다리 힘이 쫙 빠진다. 그리하여 이 주 전, 점을 보러 갔다. 친구가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춘다기에 눈을 반짝거렸다.  

결과는 내 어리석음만 확인했다. 생년월일과 시를 불러주고는 내가 이 낯선 사람한테 대체 뭘 기대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멍청한 질문도 했다. 제가 집중력이 없지 않나요, 하고. 잠시 권태를 잊어볼까 했지만 부질 없는 짓이었다. 내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계속 이렇게 살 것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알랭 드 보통이 더 유익하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는 나도 꽤나 할 말이 많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대체로 지겹고 힘들고, 가끔 즐겁고.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해준다. "일에서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행위의 목적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연대감을 찾아 위로받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주 전에는, 내 미래를 알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한 낯선 사람이었고. 알랭 드 보통은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방법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위로를 해 준다. 이 에세이에서 다루는 열 가지 직업군과 그 직업군에 속하는 무수한 세부직을 보통의 안내대로 탐사하면 기쁨은 그러니까 가끔 있고 대체로 슬픔이 있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다. "수단의 진지함과 목적의 하찮음"이란 말에서 연대와 위로를 얻기에 충분하다. 다만 알랭 드 보통처럼 우리는 논리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이어서 두서없는 푸념을 늘어놓곤 하는데 그 푸념도 일리가 있다는, 끄덕거림만으로도 잠시 슬픔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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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내 곁에 - Closer to Heav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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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표 감독이 만든 전작들 <너는 내 운명>, <그놈 목소리>에서 보여준 시선에 동의를 하기 쉽지 않다. 같은 소재로 이렇게 만들었으면 깔끔했을텐데..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서사에 강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디테일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건 철철 넘치는 휴머니즘이다. 뻔한 줄 알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게 하는 소질이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도 큰 기대 없이, 그러나 김명민이 나온다니 궁금했다. 언제 극장에 갈 수 있나 조바심치다 오늘 보고왔다. 늦은 시간이라 동네 극장은, 여전히 커플들 천지고 혼자 이런 멜러물을 보는 게 좀 청승맞게 보일 수 있겠다, 싶었다. 혼자놀기 달인인 내가 이런 시선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수는 없지 마음을 고쳐먹었지만 끝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민망했다. 코끝은 빨갛고 눈은 충혈되고. 

 이 영화 역시 좋은 소재, 좋은 배우로 박진표식 영화로 만들었다. 감정의 절제없고 주인공들은 동화 속에 사는 거 같아 지나치게 발랄하고 눈물은 계속 뽑아주시고. 영화 초반부에 하지원과 김명민의 닭살행각은 지루하고 공감이입 절대 안됐다.-.- 박진표 감독은 닭살 행각을 참 좋아하는 거 같다. 백종우가 입원하면서 지루함이 조금 덜어졌다. 6인실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각기 다른 상황은 생기없는 영화에 활기였다. 뇌사 상태의 환자들과 그 보호자의 애타고도 힘든 상황을 어찌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가늠하는 척 할 뿐이지. 김명민의 연기야 신들린 것처럼 최고지만 덜 빛나는 역을 하는 거 같아 안타깝다. 사실, 시나리오가 별로지만. <무방비 도시>도 많은 걸 쿨하게 말하려다 실패한 시나리오여서 김명민이 파닥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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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살림지식총서 182
홍명희 지음 / 살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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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볼까, 해서 주문했는데 워밍업으로 괜찮은 책이다. 이 작은 책에서 많은 걸 기대한다면 터무니없고 바슐라르에 대한 호기심을 배양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내가 갖고 있는 바슐라르 책들은 오래된 책이어서 글자 크기가 아마 8포인트쯤 되는 거 같은데 독서의욕을 떨어뜨린다. 다시 사고싶다는 생각이...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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