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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읽은 지는 이 년쯤 됐을거다. 선거전 실천지침이라 맥락이 이어지지 않아 읽고 만 책이었다가 이번 선거를 생각해보며 다시 정독했다. 인지언어학자가 선거전략으로 언어에 대한 인지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가령, 진보주의자들이 서빈들에게 더 좋은 정책 프로그램을 제시해도 지는 이유가 언어 프레임화를 통한 개념 만들기에 실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구체적 정책에 표를 던지기 보다는 이미 내재된 프레임화된 가치에 표를 던지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이 이긴다고. 레이코프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그럴듯하고 또 한편으로는 단순한 가설같기도 하다.
먼저 그럴듯한 이유는, 지난 대통령 선거의 경우다. 대학다닐 때 노동운동을 하고 졸업해서도 줄곧 민노당 (당비만 내는 명목상) 당원이었던 진보적(?) 친구가 명박에게 표를 던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주가 이천 포인트까지 상승이란 말에 놀아났다. 나는 경악을 금치못하고 어떻게..어떻게..니가, 란 말을 반복했다.(나는 투표도 안 했지만;;) 내가 투표를 안 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선택이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친구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직장에서는 중간 관리자의 입장이다. 그는 장래 꿈이 은퇴해서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가끔씩 친구들 불러 고기 구워먹으며 사는 거라고 했다. 젊은 나이에 세상 다 산듯한 꿈에 놀라기도 했지만 동시에 친구가 받고 있는 압박감을 에둘러 읽을 수 있다. 명박은 그의 미래의 꿈을 성큼 당겨줄 수 있는 로또같은 거 였다. 사실 1등이 되긴 힘들지만 그 1등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줬다. 개뻥인 걸 친구도 알지만 혹시나 하고 로또를 사는 심정이었을 거다. 게다가 명박은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정책에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모델인 사람한테 표를 던진다고 했다. 내 친구의 경우를 보면 레이코프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미국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경우, 정책 차별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방선거 기간동안 후보자가 너무 많아 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길에서 선거운동하는 홍보차량에 적힌 캠페인을 보면 우리는 아주 행복한 국민처럼 보인다. 그들 모두 목표는 똑같다. 복지에 힘써서 모두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들겠단다. 어느 당에 속해있든 모든 후보자들의 주장은 똑같다. 모두 프레임만을 제시했다. 레이코프의 말대로 프레임화하는 데 모두 몰입하는 거 처럼 보였다. 기이하게도 언어화된 프레임이 동일하고 유권자로서 혼란과 지루함을 동시에 느꼈다. 결국 적극적 유권자로 행동해서 정책을 수소문하지 않으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 도래한다. 프레임화가 과연 유권자들의 표를 잡을 수 있을까? 물론 레이코프가 말하는 건 차별화된 프레임화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읽은 한 칼럼 이야기다. 한 할머니가 고대에 힘들게 모은 재산을 기부했는데 왜 여성인데도 소외된 이름없는 여성단체에는 기부하지 않고 기부금 많이 받는 데다만 기부를 하는걸까라는, 기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레이코프의 말에 따르면, 이게 진보주의자들이 실패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실제 상황을 해결하는데 집중해서 사람들 머리 속에 인지된 프레임을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당면한 문제해결보다는 사람들에게 기부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심는데 주력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름난 기업도 기부하는 곳에 이름 없는 개인도 기업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는 의식에 지배를 받는다. 음...
그렇다면 진보주의자들의 임무는 이런 가치를 전복시키는 일이다. 소외된 곳에 시선을 두는 게 훨씬 더 도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는 일이라고 가치를 재설정하는 일인데 이런 가치를 설정할 수만 있다면 진보가 패배해도 좋고, 진보니 보수로 편을 가를 필요가 없는 이상적 사회가 도래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