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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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주문하면서 좀 구체적인 메뉴얼을 나도 모르게 기대했다. 원고지 10장을 쓰기위한 실천 지침..뭐 이런 거. 실천 지침보다는 원론적이어서 실망+분노가 끓어올랐다.-.-;  원고지 10장을 쓸 수 있게 연습하면 스무 장, 서른 장도 쓸 수 있다는 게 요지다.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원론은 대충 알고 있어도 실행이 안 되서다. 결국 글쓰기 책을 기웃거리게 되는데 이런 책을 읽느니 차라리 몇 줄이라도 쓰는 게 유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거다. 저자가 한 말은 모두 맞은 말이고 글을 쓰는데 필요한 부분들이긴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관점들이 내가 원하는 관점과는 거리가 있는 게 문제다.  

몇 권의 글쓰기 관련 책을 읽은 후, 결론은 똑같다. 직접 쓰는 수 밖에 없다. 구성, 시점, 문체는 다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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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 승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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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증명을 배울 때(고작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같은 거 였지만) 참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수업 전에 예습까지해서 수업 시간에는 손 번쩍 들고 발표도 하고 그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은 개기일식 때처럼 컴컴해졌다. 점점 흥미를 잃었고 문제풀이만이 아니라 수 자체에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집합이나 함수 개념이 필요없지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사칙연산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1만원, 1십만원, 1백만원의 0을 세는 게 아주 낯설어서 액수를 착각해서 멍청한 소동도 가끔 벌인다. 수학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건 다 학교교육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문제를 잘 푸는 게 수학이 아니라 존재하는 수의 질서를 찾아내는 게 수학이란 학문인 걸, 책을 접하면서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언어란 기호 대신 숫자를 이용해서 만물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근사한지...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우아한 이유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인데 수학은 달 같아 내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원제처럼 수를 사랑한 사람들을 다루었다.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폴 에어디쉬를 중심으로 수학계의 거성들을 다룬다. 이런 류의 수학자사를 몇 권 읽은 터라, 왜 나는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나를 생각해봤다. 수학자의 삶을 다룬 책을 읽는다고 해서 수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나 없던 숫자 개념이 생기거나 하지 않는다. 수학적 기본 개념을 재밌게 설명하고 있긴하지만 중학교 과정만 마치면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도 많다. 그러니까 다시 달 이야기를 해야겠다. 달에 갈 수 없으니까 달에 관한 책을 읽고 달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를 만든다. 또는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이 아랍어의 곡선에서 뜻을 읽어내기 보다는 곡선의 리듬과 율동을 읽어내고 예쁜 그림처럼 보는 거나 같다.  

수에 능한 사람들은 타고 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읽을 수 없는 단위의 수를 조합과 상관관계를 알아내는 게 수학자들의 일고 엄청 큰 수를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결론. 어찌보면 언어란 어렵지만 만만해 보이는 유일한 인간의 도구가 아닌가, 하는 무엄한 생각도 든다.  

교육부는 이런 류의 책을 중고생 필독서로 정해야한다. 수학이 지겨운 건 개념없이 문제풀이만 가르치기 때문인데 이런 재밌는 개념서들을 청소년기에 접한다면..사회가 달라질지는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개인의 삶은 조금쯤은 달라지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예시를 하라고 하면 대답이 궁색해진다.수학에서는 불확실한 추측이나 가설을 허용하지 않으니 수학책을 읽고도 이런 불확정스런 생각 밖에 못하는 게 내 한계지만..글쎄..몇 년을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대신 한 문제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수와 관련없는 상황들에서도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들에 열중하는 삶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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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 Gerr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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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무렵의 역광을 받으며 두 남자가 탄 차가 아스팔트 위를 달린다. 가도 가도 건물 따위는 안 보인다. 보이는 건 황토색 흙과 듬성등성 난 나무들. 가끔씩 말 없는 두 남자의 정면 샷이 보인다. 그들의 머리 뒤로 숨 넘어가기 직전의 황금볕이 눈부시다. 이 오프닝씬이 5분 이상 지속된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나도, 이 영화는 틀림없이 좋은 영화라고 속으로 생각한다.(역시 그랬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참담함이 처음에는 거짓말 같다. 길을 잃었다고 인정하기에 자연은 너무 아름답다. 사람들이 다 가는 길과 반대편 길을 택한 결과가 사막 한 가운데서 생사를 넘나들 운명이라는 걸 두 사람은 몰랐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사방은 비슷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걸어도 걸어도 모래는 똑같다. 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할지 대로가 있는 길로 가야할지 절박한 건 둘 다인데 갈팡질팡이다. 두 사람이니 의견을 모으지만 결과는 낭패다. 시간은 흐르고 입은 바싹 마르고 체력은 고갈상태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기보다는 힘겹게 한 걸음씩 전진한다. 어떤 최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아, 일상의 고통도  이렇지 않을까. 매일 무한 반복되는 일과 가끔씩 다른 가지를 뻗은 나무들처럼 벗어나고 싶다는 압박감 속에서 벗어날까봐 두려워서 꼭 움켜쥐고 있는 일상. 정작 자신을 옭아매는 건, 그러니까, 자신이다. 일상의 속성은 반복성 때문에 지루하면서도 관성의 법칙으로 궤도를 벗어나면 안절부절 못하게 만든 게 아닐까.

나는 이 영화에서 반복되는 일상성이 가져다주는 권태와 우울을 봤지만 동성애자인 감독은 아마도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비극을 담지 않았나 추측해봤다. 감독이 아니라면 할 말 없지만 분명한 건, 감독은 카메라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카메라를 펜으로 삼아 내면일기를 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서사나 미장센이 영화에서 빠져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객이 느끼게하는 데 천재성을 발휘한다.   

덧. 영화 속에서 게리가 아니라 제리라고 부른다. 우리말 표기법이 '게리'로 굳어져서 게리라고 했나본데 아이러니하다. 영화 속에서 제리라고 하는데 게리란 타이틀은 다른 영화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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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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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8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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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0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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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3: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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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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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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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윌 헌팅 - Good Will Hunt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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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암스, 둘 다 싫어하는 배우다. 맷 데이먼이 턱시도 입은 모습을 보면 한 때 때려주고 싶게 표정이 얄밉다.(인터넷에 돌아다는 사진 밖에 못봤지만)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리가 짧다. 큰 얼굴과 상체가 하체로 시선이 가는 걸 막아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다리 짧은 걸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다리 짧은 것만 보인다.-_-; 그런데 이 영화 시나리오 쓴 사람이 맷 데이먼과 벤 애플릭이란 걸 알고 맷 데이먼의 짧은 다리를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맷 데이먼이 썼을 거라고 추측되는 대사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에 마음이 왕창 기울었다. 고아로 자란 천재 청년이 방어벽을 허물고 세상의 거친 파도를 향해 노를 젓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그린 줄거리인데 뻔하지만 울었다.;; 숀(로빈 윌리암스)이 윌한테 묻는다. 소울 메이트가 있냐고. 윌은 대답한다. 니체, 칸트, 러셀..등등. 숀은 그들은 죽었고 죽은 사람말고 너한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누구냐고..윌은 주춤거린다. 지식이나 책이 줄 수 있는 건 사람이 줄 수 없지만 사람은 책이나 지식이 전달할 수 없는 걸 전달한다. 설레임. 책이 설레임을 줄 수 있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겠지만 책이 주는 설레임은 일방적이다. 그러나 사람이 주는 설레임은 양방향이다. 책은 결론을 정해놓고 독자를 맞이하지만 사람은 상대에 따라 선택도 결론도 바꾼다. 윌의 절친 척키(벤 애플릭)는 니체나 칸트가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내가 네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니가 공사판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없을 때 정말 행복할거야."  실천이성이나 판단이성 따위는 모르고 사는 낙이 일 끝난 후 바에 기웃거리며 여자나 꼬셔보려는 친구인 척키는 윌의 단단한 마음을 바꿨다. 

숀은 "니 잘못이 아니야, 아들아."라고 말해서 윌의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눈물을 뽑아내 두껍게 쌓은 짐을 덜어주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결국 애정어린 관심이다. 남녀간의 사랑이든 주변 사람과의 교감이든, 사랑의 본질은 결국 같다. 타인을 위해 나를 버릴 수 있는 마음으로 이끄는 것이다. 내가 늘 12월 같은 심장을 지니는 건 타인을 위해 나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일거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더 추워지는 거 같아서 눈물이 났다. 영화 속 가짜 이야기에 흘리는 거짓 눈물이 아니라 사람을 자꾸 밀쳐내는 내 모습이 보여서 진짜 눈물을 흘렸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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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1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멧데이먼은 짧은 다리때문이라고 치고 로빈윌리암스는 왜 싫어하세요?

넙치 2010-07-12 12:53   좋아요 0 | URL
입술이 너무 얇아서요..하핫;;;
그보다는 영화 속에서 훈훈함을 만들어내는 착하고 선한 이미지가 저는 이상하게 싫더라구요;;

반딧불이 2010-07-13 00:29   좋아요 0 | URL
ㅎㅎ 이유가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럼 넙치님께서 좋아하시는 배우는 누규??

넙치 2010-07-13 10:33   좋아요 0 | URL
ㅎㅎㅎ스티브 부세미, 주드 로요!
스티브 부세미는 보면 볼수록 정이가요, 주드 로는 존재 자체만으로 빛이나는 외모에요, 제겐.ㅋㅋ

반딧불이 2010-07-13 22:55   좋아요 0 | URL
ㅋㅋ..주로 연기파, 개성파의 유인원과를 좋아하시는군요~
근데 넙치님 남자분이세요? 여자분이세요?

넙치 2010-07-14 16:54   좋아요 0 | URL
거시적 관점보다는 미시적 관점으로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면 그만인 거 같아요.ㅎㅎ
저....여자에요.^^;;

바루보기 2010-08-25 0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방금 굿윌헌팅을 봣ㅆ습니다. 술과함께.....나름 감동을 받아서리... 저는 아버지에게 항상 뚜드려 맏고 억압받아서인지 멧ㄷㅔ이먼에 여자친구에게 하소연 하듯 소리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서러워서 ........그냥 마음의 위로가 되엇어요.그리고 윌리엄스에 니 잘못이 아니란 말에 항상 억눌러 왔던 마음ㅇㅣ 위로 받는것 갇아 펑펑울었네요....
저는 항상 외로웠나봐요.....ㅡㅜ 몰랐는데 암튼 감사합니다 님의 감상평을 읽으닠ㅋㅋ

넙치 2010-08-26 02:06   좋아요 0 | URL
단지 영화일 뿐이지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때로는 있는 거 같아요. 감동 속에서 감동의 실체를 들여다보면서 외로운 시간들이 조금씩 채워지기도 하고 잊혀지는 거 같아요.영화를 보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The Godfather (Mass Market Paperback)
마리오 푸조 지음 / Signet / 198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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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달, 스크린에서 처음 보고 홀딱 반해서 책까지 집어들었다. 소설과 영화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마련이지만 코폴라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콜레오네 가족사는 거의 책과 똑같다. 차이점이라면 마이클(영화에서는 알 파치노)의 비중이 꽤 크고, 책에서는 성공한 할리우드 배우들의 공허함이 어울리지 않게 꽤 비중있게 다뤄진다. 책은 전반적인 마피아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 암흑가는 또 다른 사회고 사회가 정해준 법에 따라 살기를 거부하는 왕국으로 묘사됐다. 콜레오네 가족 이야기가 중심이니까 매춘이나 마약, 도박으로 돈을 버는 '가족'보다는 콜레오네 가족의 운명을 대체로 이야기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용철 씨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삼성이 체제를 운영하는 방법과 몹시 흡사하다. 이건희도 돈 콜레오네의 팬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삼성이 인맥을 관리하는 기술은 마피아가 사용하는 기술과 똑같다. -.-: 

거의 4일 동안 479쪽이나 되는 책에 몰두할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강하다. 우리말로 읽었다면 끝까지 다 못 읽었을 수도 있을 정도의 문체지만 영어라는 낯선 언어가 책을 끝까지 읽게 한 힘이기도 하다. 문학적이기 보다는 장면을 연상하게끔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 (대부분 암흑가의 속어들이지만;;) 플롯의 투박함이 외국어라도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 작가가 이민2세라는 걸 볼 때, 미국적 사고방식의 극단이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있다.  

법이든 돈이든, 사람들 머리를 숙이게 할 수 있다면 뭐든 괜찮다는 논리다. 작가는 대체로 이런 논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돈 콜레오네가 처음으로 살인을 할 때나 돈 콜레오네가 죽고 마이클이 뉴욕 함흑가의 '돈'(보스)가 되기 위해 여동생의 남편까지 살해할 때, 그 정당성을 독자에게 설득한다. 법은 타락해서 그들의 목숨을 지켜줄 수 없고 자신의 목숨을, 그리고 가족을 편안하게 살리기 위해 왜 살인하면 안 되는가, 하고. 제도권에서 억울함을 구제받지 못한 사람을 폭력이나 무력을 동원해 구제하는 게 뭐 나쁜가, 하고 역설한다. 그러면서도 정작 돈 콜레오네나 마이클은 모두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들이 거부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아이러니아닌가.  

 "He(the Don) doesn't accept the rules of the society we live in because those rules would have conedemed him to a life not suitable to a man like himself, a man of extraordinarily force and character. What you have to understand is that he considers himself the equal of all those great men like Preseidents and Prime Ministers and Supreme Court Justices and Governors of the States. He refuses to love by rules set up by others, rules which condemn him to a defeated life. But his ultimate aim is to enter society wih a certain power since society doesn't really protect its members who do not have their own individual power. In the meantime he opertates on a code of ehtics he considers far superior to the legal sturctures of society."(p.390)

타타클리아 쪽에서 뇌물을 받고 뒤를 봐 주는 경찰(결국 마이클 콜레오네한테 살해당하지만)의 에피소드를 보면 경찰이 뇌물을 받는 게 뭐가 나쁜가, 한다. 그의 월급은 박봉이고 집 대출금과 아이들 대학학비를 충당할 수 없다. 박봉을 받는 경찰이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지 말란 법있나, 하면서 경찰의 뇌물수수를 정당화한다. 그가 뇌물을 받는 이유는 가족을 돌보기 위해서다. 국가나 사회는 가족을 돌보지 못한다. 가족을 돌보는 건 가장이 할 일이고 살인든 마피아의 끄나풀이든 가족만 편안하게 보살필 수 있다면 다 용서될 수 있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마이클의 운명이나 '돈'의 운명이나 운명은 하나고 그들은 그들의 운명에 따라 성실했다. 그들의 악행을 천사같은 아내들이 교회에 구원을 빈다. 과연 그 구원이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돈의 아내가 마이클의 아내는, 구원을 믿고 싶어한다.   

영화와는 다르게 전반적인 관찰자 시점은, 돈의 양자고 고문 변호사인 탐 헤이건이다. 탐은 아이리쉬지만 다른 인물들처럼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을 그 누구보다도 더 철저하게 지키는 인물이다. 배신을 할 수 있는 총명함을 갖춘 사람이 충성까지 갖출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우직하다.  

코폴라 감독은 마피아를 지나치게 미화한 걸 싫어했다고 하는데 어떤 면에서 영화가 장황한 소설보다 더 빼어난 점이 있다. 소설이 작가의 목소리를 읽을 수 있지만 윤리적인 면이나 일반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관점에서 적응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가족을 부양할 책임을 다 하기 위해서 돈을 버는 방법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작가의 이데올로기는 거부감이 없을 수 없다. 물론 작가의 이데올로기가 현재 한국 회에서도 깊숙이 스며있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가능하다면 인정하길 미루고 싶은 사실이다. 이런 면에서 <대부>란 영화나 소설이 부인할 수 없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사실을 마주하는 기분이란...쾌감도 있고 불쾌감도 있다.  

아무튼 즐거운 나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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