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 -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 승산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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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증명을 배울 때(고작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같은 거 였지만) 참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다. 수업 전에 예습까지해서 수업 시간에는 손 번쩍 들고 발표도 하고 그랬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은 개기일식 때처럼 컴컴해졌다. 점점 흥미를 잃었고 문제풀이만이 아니라 수 자체에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집합이나 함수 개념이 필요없지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사칙연산도 제대로 못하는 실정이다. 1만원, 1십만원, 1백만원의 0을 세는 게 아주 낯설어서 액수를 착각해서 멍청한 소동도 가끔 벌인다. 수학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건 다 학교교육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학입시에 필요한 문제를 잘 푸는 게 수학이 아니라 존재하는 수의 질서를 찾아내는 게 수학이란 학문인 걸, 책을 접하면서 뒤늦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언어란 기호 대신 숫자를 이용해서 만물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근사한지...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우아한 이유는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인데 수학은 달 같아 내게 아름다운 세상으로 남아있다.  

이 책은 원제처럼 수를 사랑한 사람들을 다루었다. 헝가리 출신의 수학자 폴 에어디쉬를 중심으로 수학계의 거성들을 다룬다. 이런 류의 수학자사를 몇 권 읽은 터라, 왜 나는 비슷한 종류의 책을 읽나를 생각해봤다. 수학자의 삶을 다룬 책을 읽는다고 해서 수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거나 없던 숫자 개념이 생기거나 하지 않는다. 수학적 기본 개념을 재밌게 설명하고 있긴하지만 중학교 과정만 마치면 이해할 수 있는 개념들도 많다. 그러니까 다시 달 이야기를 해야겠다. 달에 갈 수 없으니까 달에 관한 책을 읽고 달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를 만든다. 또는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이 아랍어의 곡선에서 뜻을 읽어내기 보다는 곡선의 리듬과 율동을 읽어내고 예쁜 그림처럼 보는 거나 같다.  

수에 능한 사람들은 타고 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읽을 수 없는 단위의 수를 조합과 상관관계를 알아내는 게 수학자들의 일고 엄청 큰 수를 자유자재로 배치하는 건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결론. 어찌보면 언어란 어렵지만 만만해 보이는 유일한 인간의 도구가 아닌가, 하는 무엄한 생각도 든다.  

교육부는 이런 류의 책을 중고생 필독서로 정해야한다. 수학이 지겨운 건 개념없이 문제풀이만 가르치기 때문인데 이런 재밌는 개념서들을 청소년기에 접한다면..사회가 달라질지는 확신이 없지만 적어도 개인의 삶은 조금쯤은 달라지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예시를 하라고 하면 대답이 궁색해진다.수학에서는 불확실한 추측이나 가설을 허용하지 않으니 수학책을 읽고도 이런 불확정스런 생각 밖에 못하는 게 내 한계지만..글쎄..몇 년을 문제풀이에 집중하는 대신 한 문제에 대한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수와 관련없는 상황들에서도 결론으로 이르는 과정들에 열중하는 삶을 중요시하는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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