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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평점 :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게 아마도 3주 전 쯤일거다. 소설을 3주 동안 읽었단 말은, 안타깝게도 흡입력이 없다는 반증이다. 김중혁의 단편집 <펭귄 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 모두 재미있게 읽은데다 씨네21에서 연재하는 칼럼을 재밌게 읽은 터라 장편이 나왔다길래 오호-했다. 단편에서 빛났던 순발력이 장편으로 늘어지니까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이 소설도 단편으로 나왔으면 참 재밌게 읽었을 거 같다.
김중혁 단편들과 칼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고통분모는, 사람이 한 가지에 집중할 때 생길 수 있는 창의성이다. 단편집 중 지도를 읽는 사람, 메뉴얼을 읽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물건들에 영혼을 불어넣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사물에 영혼은 불어 넣는 건 지속적 관심이다. 안 필요할 때도 지도를 보고 메뉴얼을 읽는 사람은 세상을 지도 속에서 보고 메뉴얼에서 보는 경지에 이른다. 한 가지에 미칠려면 이 정도는 되야하지 않나, 하는 모범을 보인다.
김연수와 답글 형식으로 쓴 칼럼에서도 김중혁의 성격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연수와의 나눈 잡담을 옮기면서 소설가를 수직선 위에 배치하는 도표를 함께 그려 놓은 글이 있다. 난 이런 식의 사고에 완전 반하는 편이다. 정리를 잘 못하는 편이라 그래프나 표를 이용하는 글을 보면 완전 부럽다. 김연수가 다음 호에, 지면이나 채우는 쓸데 없는 짓이라고 했지만 난 김연수의 노력이 묻어나는 장황한 문장보다는 별로 시간 들이지 않고 그렸을 도표가 더 인상적이다.
<좀비들>이 형편없는 건 아니지만 장편으로서 갖는 유기적 호흡이 아쉽다. 지훈을 둘러싼 인물들이 필연으로 나왔다기 보다는 그냥 뚝 떨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기시감이 많이 든다. LP판에 대한 찬양이나 지훈의 직업이 안테나 감식하는 거며 뚱보130이 역사연표를 외우는 거며..김중혁스러운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을 한다는 게 또는 문화라는 테두리에서 창조자라는 데 참여하는 사람은 참 어려울 거다. 처음에 신기해서 환호하다가도 반복되면 금방 익숙해져서 지겨운 단계에 이르는, 나 같은 관객의 변덕을 이겨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