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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삶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3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지음, 이승수 옮김 / 민음사 / 2010년 7월
평점 :
이탈리아는 내게 좋은 느낌이 아니다. 한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개인적 기억에서 파생할 수 밖에 없는데 내가 본 이탈리아는 끔찍까지는 아니어도 번잡하고 치열해서 여행객으로서 한가함을 누리고 싶은 기분을 잡치게 했던 곳이다. 첫 방문 때 너무 좋았던 곳을 다시 더듬어갔던 베네치아에서는 최악의 숙소 전쟁을 치뤘고 카프리 섬으로 가는 배를 타고 내릴 때 아수라장이었고 로마에서 탔던 모든 버스는 만원이어서 목적지에서 내리기위해 운전기사한테 소리쳐야 했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본 낭만적 피렌체를 기대한다면 더더욱 실망거리로 차 있는 게 이탈리아다. 게다가 유로로 바뀌기 전 화폐인 리라를 한 다발씩 가지고 다녀야했다. 카드가 안 되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관광객들이 현금을 소지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정책으로 나라가 구제하지 못한 가난을 메우는 거라고. 소매치기는 극성이었고 정부가 알면서 묵인한다는 말이 여행객들 사이에는 떠돌 정도였다. 이탈리아에서 열흘 남짓한 시간은 심신의 고갈이었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내 짧은 체류로 가진 기억 조각들 보다 몇 만 배는 치열한 장면들로 소설은 시작한다. 어디나 쓰레기와 진창, 배설물이 있고 주인공 톰마소와 그 친구들은 한마디로 양아치다. 이들이 양아치로 살아가는 이유는 양아치로 살아가지 않는 법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눈 뜨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도둑질을 하고 밤새 거리를 쏘다니며 술을 마신다. 어울리던 누군가가 안 보이면 감옥에 간 거고 어느 날 출소해서 다시 건달로 살다 비명횡사하기도 한다. 인간으로서 품위나 우아함은 커녕 최소한의 존엄마저도 지키기 힘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홍수가 난다. 판자집들은 폭우에 쓸려간다. 계속되는 사건사고 속에 아프다는 절규조차 사치다. 재난 속에서 톰마소의 선행도 죽음으로 보답을 받는다. 절망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숨찬 재앙의 연속들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나 집을 잃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파졸리니의 의도이기도 할 것이다. "그곳엔 그리스도의 도움도, 성모 마리아의 도움도 없었다."란 문장이 파졸리니의 의도를 잘 말 해준다. 마치 무슨 르포를 보고 있는 것 같이 생생하며 빨리 책표지를 덮고 싶었다.
이탈리아에는 파졸리니와 달리 낙천적 관점의 작가도 많다. 많은 유럽 출신의 화가나 작가들이 비유럽적 정서와 상황에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이방인이 본 이탈이아는 주로 영감의 샘을 자극했지만 파졸리니는 비관적 관점을 취했다. 그가 이탈리아인이어서 그랬을까. 어떤 사람은 즐거움과 고통 중에서 고통에 더 시선을 둔다. 이 또한 개인적 체험과 관련이 있다. 글 속에서 작가의 그림자를 찾는 게 성숙한 독자가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글과 작가의 삶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믿는다. 파졸리니의 삶도 톰마소의 삶처럼 치열하고 개떡같았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