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 Wel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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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책도 건성으로 본 지 어언 한 달도 넘은 거 같다. 토요일 오후에 교보는 아비규환같아서 나갈 생각을 하니까 끔찍해서 월요일 오후로 미뤄두고 집에 주저앉아서 쓸데없는 짓만 하다가 본 영화다. 별 기대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면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싶은 욕구를 일깨우는 영화다.  

이라크 출신의 쿠르드 족인 비랄이란 열일곱 청년의 짧은 생을 통해 많은 걸 말한다. 영국해협을 건너기 위해 칼레까지 삼개월동안 걸어왔지만 결국 영국해협을 건너지 못한 채 칼레에 불법체류자로 남게 된다. 바다만 건너면 되는데....결국 그는 수영해서 건널 생각을 하고 칼레시 수영장에 강습을 받으러다니다 수영교사와 우정이 싹튼다.  

사람이 한 사람을 의심하는 단계에서 신뢰하는 단계로 이동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는데 똑같은 값을 지불해도 불법체류자란 딱지는 테레리스트와 비슷한 레벨의 위험 경보를 울린다. 물론 그 위험 경보는 보는 사람이 매긴 경보 수위일 뿐이다. 수영교사인 시몽은 처음에 비랄을 위험한 불법체류자로 봤지만 곧 그의 비밀을 안다. 영국해협을 건너려는 그의 유일한 동기는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비랄의 아버지뻘인 시몽은 청년의 순수한 패기에 반한다. 아내를 사랑하면서 잡지 못하고 이혼서류에 서명을 한 시몽은 인생이 즐거울 리 없다. 집에 돌아와도 텔레비전 리모콘이나 돌리고 있고 냉장고에서 맥주나 꺼내 홀짝인다.  

시몽이 왜 아내를 잡지 못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그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헤쳐갈 동기를 갖지 못했다. 자신의 삶에서도 관찰자 같았던 그가 비랄의 순수한 충동에 지지를 보내는 게 완전완전 이해가 갈 뿐 아니라 공감 백만배다.  

여자친구를 만나려는 비랄은 꿈을 결국 이루지 못한채 죽는다. 불법체류자에 대한 프랑스의 차가운 시선은 미국이 불특정 다수를 테러리스트로 모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 시몽은 비랄 대신 영국으로 가서 비랄의 여자친구를 만난다. 비랄은 죽었지만 시몽한테 삶에 대한 태도를 선물하고 갔다. 시몽이 비랄처럼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시몽은 비랄의 죽음을 기억할 것이다. 비랄의 육체적 죽음은 시몽한테 정신적으로 강렬한 현존으로 남아있을테니. 

한해가 또 다 가고 있어도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친구들 얼굴보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서 살다보면 사람에 대한 무성의한 태도 (나를 포함해서) 에 익숙해진다. 사람에 대한 무관심은 육체적 죽음보다도 더 삭막하다. 무서운 건 육체적 부재가 아니라 정신적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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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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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버드가 갖는 아우라 때문인지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을 뒤늦게 읽었다.  

학제에서 우리의 사고 패턴은 이렇다.  

다음 중 칸트의 도덕철학과 관련 있는 것은? 

1. 지하철에서 앉아있는데 내 앞에 할머니가 와서 서 있었다. 피곤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리를 양보했다. 

2. 자살하고 싶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는 상대적 행복감을 느꼈다.  

3. 동생이 산에 갔다가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알려야하지만 충격받을까봐 알리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4. 심장병에 걸린 딸을 둔 아버지가 딸의 수술비 때문에 자신의 콩팥 하나를 팔았다.  

답은, 없다. 이런 문제를 출제한다면 출제자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임해야한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다니 자질까지 문제가 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모두 선행으로 보이는 일들이 왜 칸트의 목적론에 안 맞는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칸트가 한 말의 요점이다. 요점만이 시험에 나오니까. 요점 중심 사고에서 샌덜의 화법은 갈짓자다. 샌덜의 요점은(아, 난 한국식 교육 틀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고민하는 삶이다. 공공의 선이란 기준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으니까 무엇이 최선일까를 늘 고민하라고 한다.

한 기업 회장이 C대학을 인수해서 대학을 기업처럼 경영하고 있다. 수익성이 있는 학과와 과목 중심으로 통폐합이 되고 취직과 직결되지 않는 교양과목은 이미 폐지했다고 한다. 막상 취직하고 난 후 조직에서 자존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과목들은, 취직에 도움이 안 되는 교양과목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두가 쏠리는 일만이 아니라 하찮은 일도 의미 있을 수 있으니 그럭저럭한 삶도 의미있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기능만을 익힌다면 왜 대학엘 다녀야하나..... 

하버드 교수가 쓴 책을 소유한다고 해서 하버드생의 지성에 다가갈 수 없으며 미셀 오바마와 똑같은 향수를 쓴다고 해서 미셀 오바마의 지성을 얻는 게 아니다. 하버드생의 지성의 실체를 고민한다면 하버드 교수의 강의를 듣지 않아도 칸트적 지성으로 들어가는 길일 것이다. 책과 향수를 소유하고 강의 동영상을 소유하는 것 만큼 쉽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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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의 해변 - The Beaches of Agnè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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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할머니(이 영화를 보고 났더니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다) 영화는 <방랑자>로 처음 접했다. 상드린 보네르의 표정은, 영화 내내, 불만이 가득했다. 역동적이면서도 저항적이어서 할머니의 영화들을 여성주의 영화겠거니 편견을 갖게 됐다. 근데 요즘 아녜스 할머니 영화를 보니까 내 생각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편견이라는 게 증명된다.

이 영화는 아녜스 할머니의 살아온 이야기다. <낭트의 자코>에서 남편 자크 드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이 영화는 할머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오프닝은, 바람이 몹시 부는 해변에서 거울 여러 개를 아무렇게나처럼 보이지만 실은 거울이 또 다른 거울 속 이미지를 잡을 수 있게 배치하느라 분주하다. 구부정한 등을 하고 스탭들한테 활기차게 여러 가지를 지시한다. 작업 과정을 보면서 집중력과 힘에 놀랄 수 밖에 없다.  

조곤존곤 과거를 회상하는데 꼭 옛날 이야기를 듣는 거 같다. 대학을 다니다 문득 마르세이유로 떠나 고기잡이 뱃일을 3개월 할 정도로 의지력과 강단이 있고 설치 미술 전시회를 하면서 공연을 할 때, 천진한 표정은 오래 잔상이 남는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 글로는 부족해서 영화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할머니...머릿속 상상을 재현하는데 불가능은 없다고 믿는 것 처럼 보인다. 상상이 수정을 거쳐 어떤 물리적 결과로 나와서 몇 십년이 흘러도 그 기분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할머니의 재능에 입을 다물 수 없다. 더불어 할머니의 동료는 고다르, 크리스 마르께 등 쟁쟁한 감독들의 여담도 보너스로 들을 수 있다.   

마지막에 "영화는 집이고 나는 그 집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집도 할머니도 더 이상 안 늙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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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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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푸앵트 쿠르트란 작은 어촌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영화인데 구성이 독특한다. 

두 편의 영화를 따로 찍어서 한 영화로 편집해 놓은 것 같다. 한 편은 어촌 마을의 일상을 다루었다. 허름하고 위생상태가 엉망인 어촌에서도 생명이 얼마나 생동감있게 파닥거리는지. 변변한 침대도 없는 좁은 집에 눈이 말똥말똥한 아이들, 이팔청춘의 남녀는 서로 자석처럼 끌린다. 프랑스 남부의 활기와 번잡함이 생에 대한 강한 파장을 일으킨다.  

촬영방식은 영화내용보다 더 감동적이다. 카메라가 뒤에서 쭈욱 앞으로 들어가거나 뒤로 빠진다. 인물은 종종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가고 사람이 빠진 자리에 고양이, 또는 바람의 흔적을 알리는 물건들, 햇볕과 볕이 만든 그림자가 프레임을 채운다. 마치 여행 스냅사진 같다. 사진을 전공한 바르다가 만든 첫 장편영화라고 하는데 바르다가 카메라를 다루는 방식은 아주 매혹적이다. 마을의 일상도 다큐멘터리같은 느낌이 난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중심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옮기는 것 뿐인 것 같다. 

또 한 편은 두 남녀의 이야기다. 파리 출신의 여자와 라 푸앵트 쿠르트 출신의 남자가 헤어지기 위해 만난다. 두 사람이 마을 곳곳을 산책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오히려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확인한다. 편집이 알랭 레네인데 알랭 레네의 냄새가 강하게 나는 쇼트들이 가득하다. 정지된 화면 속에서 의도된 클로즈업과 신체부위 분할. 표정없이 대사를 주고 받는 두 인물사이에 거리두기는 <지난해 마리앤바드에서>를 만들기 위한 습작같다.  

연인 역시 마을의 일부여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떼어내서 돋보기도 들여다보는 방식이다. 전체적 큰 그림이 마을 전체라면 남자와 여자의 얼굴을 보고 이들은 말이야..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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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Paperback, Revised) - Penguin Classics
잭 케루악 지음 / Penguin Books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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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특성을 한 마디도 정의한다면 '충동'이라고 말하고 싶다. 충동이 있어야할 자리에 계획이 자리잡는다면 젊음과 안녕을 한거다. 나이들면서 쌓이는 경험은(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를 예측하게끔 몰아간다. 결과가 가져다주는 득실을 무게질하는 삶으로 접어든다면 딘 모리아티와 살의 우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딘은 살이 억제하도록 배웠던 충동을 부활시키는 인물이다. 딘을 만나러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혼자 여행을 한다. 파트 원인데 딘과 함께 한 여행 기록인 파트 투 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다. 늘 망설였던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펌프질한 딘을 찾아가는 여정은, 딘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존의 익숙한 것들을 툭툭 털고 두 발로 걷는다. 물론 춥고 힘들다. 히치하이크를 하면서 전진과 굶주림 해결에만 집중하는 아주 단순한 삶은, 도시인한테는 비참해 보일지 모르지만 방랑 중독자들한테는 중요하고 그것만 해결되는 행복하다. 히치하이크를 하지 못한 밤새 떨거나 걷기도 하지만 두려움은 없다. 중요하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지.  

"..I was beginning to get the bug like Dean. He was a con-man, he was simply a youth tremendously excited with life and though he was a con-man, he was only conning because he was so much to live and to get involved with people who would otherwise pay no attention to him....."

이렇듯 딘 일당과 살의 공통분모는 호보의 삶에 대한 충동이다. 호보들한테 소유권의 개념은 없다. 돈이 있는 사람이 샌드위치와 담배, 맥주를 사고 돈이 없는 사람은 같이 먹으면 된다. 다음에 돈이 생기면 자신도 똑같이 샌드위치와 맥주를 살테니까. 가진 게 없기에 더 쉽게 나누고 집과 집안을 채울 살림살이에 대한 욕망 대신 등을 펴고 하룻밤 누울 곳만 있으면 되니까 저축할 필요도 없다. 차비가 없으면 히치하이크를 하고 히치하이크를 못하면 걸으면 된다. 그들에게 휴식은 간단하다. 심신이 회복되면 그들은 또 길을 나선다. 딘이 카미유랑 가정을 이루고 정착해 잠깐 사는 동안 딘은 파괴된다. 일을 하다 손가락이 부상을 당하고 깁스 잘못해 감염되서 절단하고 골수염에 걸린다. 살기 위해서 방랑자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딘에 대한 절대적 찬사를 보내는 살의 시선은, 살 자신은 딘과 같은 진정한 호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일 거다. 마지막 장에서 오페라를 보러가면서 떠나는 딘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앉아있는 뉴요커가 살이다.  

아주 음울하고 추적추적한 게 요즘 날씨랑 아주 어울리며 멜랑콜리에 빠지는 걸 자극한다. 호보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경하지만 나 역시 살 같은 도시인이다. 방랑벽은 마약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어서 올해가 가기 전에 길을 떠날 것이지만 설렘이나 흥분이 예전 같지 않다. 그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와서 똑같이 살기 위해서고, 떠나기 전에는 이러저러한 준비계획을 세워야한다. 숙소와 이동수단을 걱정하면서 최소한이라도 예약하고 떠나야 안심인 여정은 호보의 무소유 정신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오히려 도시인이라면 꼭 갖춰야하는 덕목인 멋진 휴가 개념이기에 떠나는 게 홀가분한 게 아니라 머리가 아프고 고단하다. 난 이렇게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하니...삶에 대한 충동글이나 자꾸 찾아 읽고 있겠지만. 살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에게 정해진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게 나 자신이긴 하지만 나 자신을 바꾸는 게 가능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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