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하버드가 갖는 아우라 때문인지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을 뒤늦게 읽었다.  

학제에서 우리의 사고 패턴은 이렇다.  

다음 중 칸트의 도덕철학과 관련 있는 것은? 

1. 지하철에서 앉아있는데 내 앞에 할머니가 와서 서 있었다. 피곤했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리를 양보했다. 

2. 자살하고 싶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는 상대적 행복감을 느꼈다.  

3. 동생이 산에 갔다가 실종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알려야하지만 충격받을까봐 알리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4. 심장병에 걸린 딸을 둔 아버지가 딸의 수술비 때문에 자신의 콩팥 하나를 팔았다.  

답은, 없다. 이런 문제를 출제한다면 출제자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임해야한다. 답이 없는 문제를 내다니 자질까지 문제가 될 것이다. 언뜻 보기에 모두 선행으로 보이는 일들이 왜 칸트의 목적론에 안 맞는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칸트가 한 말의 요점이다. 요점만이 시험에 나오니까. 요점 중심 사고에서 샌덜의 화법은 갈짓자다. 샌덜의 요점은(아, 난 한국식 교육 틀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 고민하는 삶이다. 공공의 선이란 기준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으니까 무엇이 최선일까를 늘 고민하라고 한다.

한 기업 회장이 C대학을 인수해서 대학을 기업처럼 경영하고 있다. 수익성이 있는 학과와 과목 중심으로 통폐합이 되고 취직과 직결되지 않는 교양과목은 이미 폐지했다고 한다. 막상 취직하고 난 후 조직에서 자존감을 갖도록 도와주는 과목들은, 취직에 도움이 안 되는 교양과목이라고, 나는 믿는다. 모두가 쏠리는 일만이 아니라 하찮은 일도 의미 있을 수 있으니 그럭저럭한 삶도 의미있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기능만을 익힌다면 왜 대학엘 다녀야하나..... 

하버드 교수가 쓴 책을 소유한다고 해서 하버드생의 지성에 다가갈 수 없으며 미셀 오바마와 똑같은 향수를 쓴다고 해서 미셀 오바마의 지성을 얻는 게 아니다. 하버드생의 지성의 실체를 고민한다면 하버드 교수의 강의를 듣지 않아도 칸트적 지성으로 들어가는 길일 것이다. 책과 향수를 소유하고 강의 동영상을 소유하는 것 만큼 쉽진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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