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우물 1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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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성애와 이성애의 구분 기준은 전적으로 생물학적 원리에 근거한 건 아닐까. 사회적 성 역할은, 알려졌다시피, 학습된다. 이 책의 주인공인 스티븐의 부모는 아들을 원했고 딸이란 생물학적 성에 맞춰 기르기보다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들이 학습할 수 있는 교육을 받도록 길러졌다. 스티븐은 자라면서 여자 아이들이 흥미롭다고 여기는 주제들에 관심이 없는 걸 괴로워했다.  

2.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기준은 까다롭다. 각자 다른 부분에 끌리기 때문이고 외로움을 어느 강도로 느끼는 지도 사람에게 끌리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스티븐은 남자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거북해했지만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와의 대화나 우정에는 편하게 느낄 뿐 아니라 우정이 깨지자 견딜수 없는 '고독의 우물'로 빠진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받침대는 공감의 힘이다. 혈육이 아닌 누군가의 절대적 지지를 주고 받는 게 사랑이다. 스티븐이 성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할 때도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다르게 보지 않고 넘치는 사랑을 베푼다. 아버지가 죽은 후 스티븐의 번민은 깊어지는데 절대적 지지자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큰 탓일 수 있다.  

스티븐의 첫 연인은 남편이 있는 이성애자였다. 그녀가 스티븐에게 의지를 한 이유는 남편한테서 정서적 유대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핑거 스미스>를 보면 운명이 뒤바뀐 두 여인이 사랑을 하는데 그 사랑을 단순히 동성애 코드로 분류할 수 없다. 그들이 자란 환경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힘겨운 일을 함께 극복하고 현상을 바라보는 각도가 같은 사람이 공교롭게도 동성이었다. 여러 음모와 배신 속에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우연히도 동성이고 육체적으로 혈기왕성하고 성적 호기심이 많았다...그럼 동성애도 이런 상황이 배제되면 사라질까..글쎄..
 

스티븐의 경우를 보면, 후천적인 요소가 중요하지만 선천적 요소의 영향력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스티븐은 여성스럽게 예쁘지는 않아도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스티븐을 흠모하는 남자가 스티븐한테 고백을 하자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다고 묘사한다. 이건 환경적인 측면보다는 태어날 때 성향하고도 관계있어 보인다. 

3. 이 소설은 두 권으로 이루어져있는데 1권은 스티븐의 성 정체성에 관한 혼란이라면 2권은 후천적 성을 받아들인 과정을 묘사한다. 동성애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이성애적 사랑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소설 역시 그렇다. 스티븐이 사랑하게 되는 두 연인, 특히 두번째 연인을 바라보는 관점은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서술이 된다. 나는 왜 동성애에서도 이런 구도가 나타나는지 궁금하다. 이 책이 쓰여진 후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여전히 동성애자들의 사랑은 이성애자의 사랑 구도와 비슷하게 묘사된다. 

4. 절대적 지지를 주고 받는 사랑에 대한 내 경험의 한계 때문에 올 수 있는 의문들인데 이성애자의 사랑이 그런 절대적 지지를 주고 받도록 되어있는 건가. 그래서 동성애자들도 이성애적 사랑의 구조를 취하나...이런 의문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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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그림자 - Shadows in Paradis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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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감정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강도가 충격적이지 않다. 그러나 평소에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인해 안 하던 일을 하면 사람들은 놀란다. 이 영화 속 주인공이 후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쓰레기 수거 트럭 운전수이고 늘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주어진 일에 성실하고 취미로 영어회화를 배우는 모범 소시민이다. 

베인 팔에서 피가 흘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남자한테 따뜻하게 관심을 보여준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허둥대고 양복도 입고 식사도 설레며 준비한다.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선뜻 받아주지 않아 핀란드식으로 방황(?)을 하고 결국 여자가 남자의 마음을 받아주는 평범한 이야기지만 표현방식이 평범하지 않다. 

등장인물들의 무표정 뒤에 음악들은 유연하게 흐른다. 대사 역시 단촐한데 일상적이다. 근데 이게 아주 웃음을 만든다. 주절거리지 않으면서 툭툭 던지는 인물들의 간결한 한 마디가 상황을 함축한다. 게다가 인물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 더 웃음을 촉진한다. 일부러 상활을 설정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유머를 끌어내는 게 이 영화의 커다란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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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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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읽고 느낀 점이 적은 사람은 머리속에 든 게 없는 사람이며 사고력의 크기가 작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는 내 머리속에 든 게 적으며 내 사고의 한계를 또 한 번 마주해야했다. 물론 내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정민 선생이 썼듯이 모든 사물은 텍스트며 텍스트에서 독서의 가치를 느끼는 건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이다.  

몸이 안 좋아서 악몽같은 4월을 보내고 있는데 불광불급은, 정말로 머나먼 이야기같다. 신체적 고통 때문에 전혀 다른 의미에서 미칠 것 같기는 하다.-_-;; 가장 화나는 일은 극장에 갈 수 없다는 것이며 컴 앞에 있는 시간도 일 할 때로 최소한 줄이고 책도 읽을 여력이 없다. 밥 벌이는 계속 해야하기에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 차창 밖으로 보면 벛꽃은 만개해서 세찬 바람에 벌써 꽃잎을 떨구기도한다. 꽃이 연둣잎으로 바뀌기 전에는 기운차리고 예쁜 치마입고 팔랑거리며 거리를 걷고 싶다.  

집 앞 극장에서 <대부>를 다시 상영하고 있는데 이걸 놓치는 게 가장 억울하다, 고만 나는 표현할 수 있다. 조선의 문장가들이었다면 명문을 만들어 자신의 입장을 에둘러 표현했을 터이다. 글은 점점 내게서 멀어져도 읽는 것만이라고 곁에 있는데 감사했는데 요즘 같아서는 읽는 것도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고 불행하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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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4-1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 어디가 많이 아프신가봐요? 중병은 아니실 것으로 믿고 가벼운 계절병쯤으로 생각하면서 속히 쾌차하시기 빕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어느것에도 미치지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었습니다.
육신의 병보다 증세도 없이 끝없는 잠복기만 있는 중병을요.

넙치 2011-04-16 15:07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계절병은 아니지만 중병도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 괜찮을 거 같아요. 저 역시 선천적으로 '불광'을 타고나서 이 책을 읽는 동안 샐쭉해지는 시간이었어요.
 
킹스 스피치 - The King's Speec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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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간의 사랑이나 연애를 다룬 영화보다는 우정을 다룬 영화가 나는 더 좋다. 로맨틱 코미디는 세대를 초월한 공식을 가지고 있다. 남녀간에 사랑이 애틋하기 위해서는 장애물이 있고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영화는 주로 담고 결론은 선남선녀들의 해피엔딩이다. 실제 인생은 해피엔딩도 아니며 극적이지도 않다. 실제 연인들 사이에 놓인 장애물은 알콩달콩한 재미를 선사하는 대상이 아니라 영혼을 좀 먹는 실체다. 뭐 이렇게 말하지만 정말 큰 이유는, 내 삶이 알콩달콩한 연애 따위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언제부터인가는 연애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상상력마져도 증발해서 연애사를 담은 영화를 보면 내가 왜 이런 공허한 화면을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_-;
 

하지만 우정은 다르다. 친구들과 가끔 십 년후, 혹은 더 미래를 상상하면서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 것 같다고 말하곤한다. 이따금씩 영화 보고 책 읽고,  가끔 여행가고, 일은 힘 닿을 때까지 하면 좋고....엄마, 아빠가 곁에 없을 먼 미래(사실 상상이 되진 않는다-.-)에 가족처럼 남아있을 몇 사람은 친구다. 그래서 우정을 다룬 영화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한다. 누구나 단점이 있지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봐 주고 등을 두드려주는 이가 친구라고 생각하기에. 

아카데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들 대부분은 사실 진부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휴머니즘을 갖고 있다. 이 영화 역시 런닝 타임 내내 지루했지만 마지막 연설을 하는 과정을 담은 몇 분만이 살아있는 씬이다. 조지6세가 핸디캡을 극복하고 라이오넬 로그한테 my friend, 하고 말할 때 주책맞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조지6세의 핸디캡이 평생 좋은 친구를 얻는 기회가 됐다. 처음에 왕 서열 넘버 원과 치료사가 만난다. 치료사가 계급을 무시한 채 왕 서열 넘버원에게 친구와 동급으로 대하고 사생활까지 누설하라고 하는데, 왕 서열 넘버원은 낯설어하다 위기를 함께 겪고 티격태격하면서 정이 들고 진짜 친구가 되어간다. 

그러고보면 이성간의 사랑이든 우정이든 티격태격은 필수요소이다. 사랑이나 우정이 금이 가는 건 티격태격이란 필수요소을 잘 못 넘겼을 때인데 관계에서 장애를 극복하는데 믿음은 훌륭한 방패다. 상대가 어떤 상처주는 말을해도 믿음이란 방패를 가지면 창 같은 말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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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04-05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식 농담과 브리티시 잉글리쉬를 오래만에 들으면서 즐거웠던 영화였어요. 아무도 웃는 사람이 없어 저혼자 웃기가 민망했지만 말이에요.
 
이노센트 - The Innocen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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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소재도 우리나라 드라마 단골 메뉴다. 남편이 바람을 피고, 정부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을 아내한테 토로한다. 아내는 고통을 참다가 시동생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이런 과정들이 일일이 열거된다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일 것이다. 영화는 이런 일은 모두 생략하고 그 후의 이야기를 한다. 아내가 바람 피는 것을 안 남편은 아내한테 새로운 사랑을 느낀다. 사랑은 대상을 소유할 수 없을 때 샘 솟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남편 툴리오처럼 소유욕이 강한 이기적 인물은 더 소유하지 못한 것에 집착한다.과거보다는 현재를, 가진 것보다는 가질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물이다. 툴리오가 아내의 불륜을 알아 챈 후 툴리오의 태도는 바뀐다. 아내 줄리아노의 관심, 혹은 감시를 하기 위해 정부도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있는 걸까. 두 사람의 애정전선이 다시 쾌청하자마자 시련이 닥친다. 아내가 애인의 아이를 출산한다. 아내의 현재는 사랑하지만 아내의 과거 흔적은 용서할 수 없어서 괴로운 남자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 

이렇게 줄거리를 적으면 흔해 빠진 치정극인데 화면으로 만나는 인물들이 변하는 과정은 흥미롭다. 많은 부분이 인물들의 시선처리를 통한 암시로 내용이 전달된다. 아내와 아내의 애인이 만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안 나오고 아내의 애인과 펜싱을 한 후 샤워장에서 쳐다보는 살의에 찬 남편의 시선을 통해 아내의 애인의 육감적 육체를 보여준다. 아내와 아내의 애인이 처음 알게 되는 것 역시 시선을 통해 앞으로의 일을 짐작 할 수 있다. 남편이 아내의 비밀을 알고 아내를 좆는 시선을  통해 아내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영화적 장치들 때문에 익숙한 이야기도 새롭고 창조적이 된다. 클리세를 비트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창작이며 창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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