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별자리에 꽂혀서 읽는 글이라고는 별자리에 관한 글. 지난 주에는 타로점도 보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믿고 안 믿고는 전적으로 내 마음에 달려있다. 타로점집에 가서 카드를 뽑은 후 타로 리더가 하는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 내가 여기 왜 와있지 하는 후회를 하면서도 길 가다 타로점집이 보이면 불쑥 들어가곤 한다. 핵심에서 벗어난 뭔지 모를 약간의 일시적 위안(?)의 말을 들면서 나오곤한다. 그리하여 급기야 점성술 싸이트를 뒤지며 친구들 별자리를 묻고 내가 아는 친구들의 성격과 별자리 특성이 맞는지 확인해보는 아주 요상한 짓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으헉.

 

2.

왜 별자리와 타로 이야기를 하냐면, 모든 일이 마음에서 일어난다고 감독은 영화 처음에서 말하고 관객이 스펙터클을 보다 잊었을까봐 또 끝에서 말하기 때문이다. 오프닝에서 일본인 남자가 낚시를 하고 있다. 미끼를 끼워 물에 던져두면 그 미끼를 무는 건 물고기의 마음이다.

 

3.

영화는 두 편을 이어놓은 듯이 이음매가 분명하게 도드라진다. 상업적 흥행을 위한 스페터클 장면들 2시간 자리와 감독이 포기할 수 없는 메시지, 30분 짜리 영화를 이어붙였다. 2시간은 곡성이란 마을공동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 사건과 그 혼란을 스펙터클화한다. 피가 낭자하고 기이한 장면은 연출이란 생각을 하면 그럭저럭 두려움을 떨치고 볼 만 하다. 전작 <황해>에서 잔혹함에 단련되서 그런지 잔인함도 덜 한거 같고. 그런데 난 마지막 30분은 무서워서 거의 귀를 막고 스크린도 못 봤다. 귀를 막아도 아득하게 들려오는 세 사람의 대화만으로도 극장을 나오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

 

내게 누가 정말 귀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비극은 종구 내면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비논리적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종구는 경찰이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이고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객관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다. 하지만 종구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객관적 방법을 버리고  자신의 힘과 육감에 의지한다. 육감이란 게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감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다. 종구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사건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추진력 역할을 한다.

 

귀신 혹은 악령은 믿는 이의 마음에 뿌리내리며 산다. 영화는 조악하지만 천주교를 끼워넣었다. 종구의 아이가 굿을 하다가 죽을 거 같자 굿판을 뒤업고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그리고 종구는 성당의 신부를 찾아간다. 무당은 버렸지만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신부 왈, 의사를 믿으세요, 하는 도움 안 되는, 하지만 당연한 말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제수업을 받는 이가 젊은이 답게 십자가, 즉 이성을 손에 쥐고 일본인 귀신/사람을 찾아간다. 그가 흔들리는 지점은 자신의 신념을 불신할 때다. 아, 인간은 너무 약한 존재. 그래서 어쩌면 신의 존재도 정말 궁지에 몰리면 무용지물일지도.

 

4.

종구는 한편으로 우리 인간을 대표하는 몹시 불안한 캐릭터다. 그는 무언가를 믿을 게 필요한 사람이다. 자신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움을 이겨나가겠다고 다짐해보지만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우왕좌왕한다. 누구를 믿어야하는가, 박수무당 일광인가 하얀 소복을 입은 미치년인가? 그는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불안은 누군가가 알맞은 떡밥을 던지면 덥석 물게 하는 힘이 있다. 물론 종구는 어린 딸의 아비로 딸이 당한 폭력에 이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마을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종구의 마음은 주변에서 들은 소문 조각들을 기워서 그 소문 담요조각에 덥석 올라 몸과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리고 딸아이에 대한 폭행 사건을 대하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불길로 뛰어든다.

 

5.

다시 별자리 이야기. 그러니까, 나도 별자리 이야기를 탐독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별자리는 언제나 드리워진 미끼고 나는 필요한 때 그 미끼를 덥석 물었다. 물고기가 미끼를 물면 물 밖으로 나와서 냉동처리 되서 밥상에 올라오는 과정을 거친다. 냉동처리 되기 전에 미끼를 놔야지. 하지만 그 적절한 시간을 몰라서 놓칠 수 있다.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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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장고원 2016-06-04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넙치님 글은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네요~

넙치 2016-06-06 21:02   좋아요 0 | URL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만든 제작사 젠트로파에서 제작된 영화라는 홍보문구를 사용하는 영화다. 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제작사란 수식어구가 필요했는가. 일단 스웨덴 영화고 집단 폭력을 다루는 영화인데 친절하지 않다. 제목 그대로 히어here 혹은 데어there 비포before는 알 수가 없다. 영화는 사건 (아마도 누군가를 죽였을 수도 있는) 17살 소년이 일상으로 돌아온 후 학교, 마을, 심지어 가족이 한 소년한테 가하는 집단적 폭력을 다룬다. 미국영화라면 구체적 사건을 이미지화해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자극적으로 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웨덴 영화다.

 

소년이 소년원에 가게 된 이유를 생략한 채 소년을 대하는 모든 등장인물의 태도로 정황을, 관객이 추측하게 한다. 출소해서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아마도 피해자의 엄마일 가능성이 높은 여자가 소년을 구타하는 격한 장면이 등장한다. 분노를 표출하는 직접적 방식에 아마도 가해자였을 소년은 소극적으로 대처한다. 그 후 소년이 주로 생활하는 학교 공간이 등장하고 학교 학생들의 집단 린치를 보여준다. 소년의 전학을 요구하는 부모와 학생들의 서명까지 등장하고. 소년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의문이 드는 건, 소년의 태도이다. 소년이 억울함을 언뜻 말하는 장면이 있다. 즉 소년은 자신이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억울한 누명을 썼을 수도 있지만 감독은 그런 부분을 다루지 않는다. 소년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유일한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전학 온 여학생이다.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이 다른 의견을 갖기 얼마나 힘든가를 에둘러 설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한번 믿음을 갖게 되면, 그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끼워맞추는 우둔함에 갇힌다. 집단 지성이 때로는 유용하지만 얼마나 맹점이 많은지.

 

주변의 핍박 속에서 소년을 믿고 지지해야할 아버지마저도 소년을 저버리는 언행을, 결국 하게 된다. 소년의 집안은 3대로 이루어져 있는데 치매 걸린 할아버지, 아버지, 소년과 남동생. 엄마나 할머니가 부재하는 남자로만 이루어진 가정이다. 치매걸린 아버지를 돌보고 어린 두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는 심적으로 아들을 비난하는 지역공동체의 일원에 속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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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교에 따르면 사랑의 본질은 질투다. 누가 사랑을 온유하며 참는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나. 사랑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속성이 있다. 특히 이성간에 작동하는 사랑에는 포용이 들어갈 수 없다. 포용은 신이 인간에게 베푸는, 혹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사랑의 유형이다. 이성간에 사랑은 신과 신도 사이의 사랑이 아니기에, 무수히 들어온 가르침대로 온유를 가장하는 체 할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이성간의 사랑에서 키워드는 격정이다.

 

<45년 후>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다. 45주면 결혼 기념일 파티 일주일 전에 노부부의 일상을 흔드는 소식이 날아든다. 남편의 첫사랑이 죽었다는 소식. 아내와 평지도 산책 안 하는 남편이 첫사랑 시신을 찾았다는 소식에 알프스 산에 가겠다는 말에 아내는 발끈한다. 남편의 과거를 겉으로는 쿨하게 인정하는 아내. 그리하여 남편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 척해보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다. 남편의 과거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45년 전, 자신을 만나기 전 남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한테 마음이 온통 가 있었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어한다. 객관적으로 이 무슨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인가 싶지만 사람은, 특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대상한테 쿨할 수 없다. 쿨해진다는 거 자체가 그 대상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므로.

 

남편은 아내의 이런 마음을 알 턱이 없다. 영화는 전적으로 아내의 미묘한 심리적 출렁임을 다루고 있다. 무익해보이는 이런 질투 아닌 질투는 입 밖으로 말하면 찌질한 내용이기에 말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아내는 고상하고 45년 간 남편의 사랑을 받아왔다. 45년 간 받은 사랑의 크기는 아내한테 중요하지 않다. 아내는 45년 간의 사랑이란 틈 속에 섞여있을 수 있는 이물감이다. 어쩌면 이 이물감은 남편이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이 무덤까지 해로하면서 갔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한 영화기도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근본적 시각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남자한테 과거는 삶을 이루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다. 하지만 여자한테 (특히 남자의) 과거는 균질성을 흔드는 커다란 사건이다. 사랑을 바라보는 남녀의 차이는 노인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말하는 영화기도. 그런 격정적 감정의 흐름 속에서도 아내는 그동안 유지되어온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편을 의심하면서도 파티날 연주할 음악 선곡 전화를 받았을 때, 곡 리스트를 말한다.

 

밋밋한 영화인데 클라이막스는 파티 장면에서 남편이 축사를 하는 장면이다. 45년 전 이 날, 결혼하자고 아내와 장모를 설득한 게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일이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감동적 축사인데 아내는 다른 이유, 즉 분해서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춤을 추는 의식이 이어지고 춤곡이 끝났을 때, 남편의 손을 뿌리치면서 냉랭한 얼굴의 아내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영화가 끝난다. 남편은 아내의 감정 동요를 알 길이 없고 아내와 관객만이 감정의 깊은 파고를 감지한다. 사랑에서 상대를 더 사랑하는 이가 약자다. 아내는 약자라고 부를 수 있고, 남편은 무의식적 무심으로 강자의 위치를 차지한다. 흥미로운 건 남편은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파생되고 남자와 여자가 다른 별에서 산다는 말이 나온다.

 

결혼 45년 후에도 이런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부부라니,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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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감정이 쏠리는대로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2

<종이 달>은 감정에 따라 사는 한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부자들 집에 방문해서 저축을 현금으로 받아오는 은행 직원이다.  (견물생심인데 이런 직업이 90년대에 일본에 존재했었다니 놀랍다) 성실하고 조신한 여자가 어느 날, 자린고비 고객의 손자한테 끌리고(이게 사랑인지 육욕인지는 모르겠다) 어린 남자의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어린 애인의 후원자가 되면서 고객의 돈을 횡령하기 위해 문서위조, 거짓말 등등을 해낸다. 흔히 말하는 유흥비로 탕진하는 생활을 하는데 처음에 갖게 되는 망설임은 사라지고 대담함과 자연스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때맞춰 남편은 상하이로 가고.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찬 생활은 곧 그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마도 사랑하는 어린 애인은 다른 또래 여자가 생기고 은행에서는 의심을 받기 시작하고 남편은 상하이에서 돌아온다. 총체적 난국인데 이럴 때마다 여자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성 세계에서 이탈한 여자에게 멈춤 신호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마른 다리로 페달을 밟는 힘찬 질주에는 불안이 담겨있다. 유니폼과 질주라니, 안 어울리는 짝궁에서 파생되는 불안한 기운.  

 

3

드디어 은행에서 발각되고 횡령 규모에 모두 놀란다. 평생 은행원으로 살아온 또 다른 여인이 있다. 두 여인의 대화 중 인상적인 부분. 평생 직장에 몸바친 여자가 소원이라고 말하는 게 밤을 새는 일이다. 대체 밤을 새는 게 무슨 소원인가 싶은데 그녀의 변은 이렇다. 밤을 새면 다음 날 출근해서 피곤하니까 밤을 샐 수 없다고. 은퇴하면 밤을 한 번 새보고 싶다고. 그러면서 내키는대로 사는 여자한테 말한다. 당신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보지 않았냐고... 뭉클한 장면이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 하고 싶은 걸 환경에 맞추느라 억제하면 살아가는 사람은, 범죄일지라도, 그 호탕함을 몰래 부러워한다. 사회 규범을 어기면서 하고 싶은대로 질주하는 여자는, 고장난 브레이크를 장착해서 자신을 파괴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이 영화의 미덕은 질주하는 여자를 다시 가두기보다는 거짓 삶을 살아도 질주에 방점을 둔다. 여자는 달아나서 복잡한 인도 시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녀의 삶은 인도 시장통 만큼 혼돈스럽지만 여기서도 여자는 멈추지 않고 인파를 뚫고 걸어간다.

 

4

그녀는 어린 시절, 기부금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의 지급에서 돈을 슬쩍하고 당당하게 말한다.기부를 위해서는 아버지 돈을 슬쩍하는 게 정당할 수 있다고. 그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반칸트적 인물이다. 천성이 반칸트적인데 자신이 동의 못하는 사회 질서 내에서 살아갈 수 없다. 사회 질서, 즉 법제도에서 탈주하는 걸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비난을 해야할까. 분명히 이성은 비난을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감정은 쾌감을 느낀다.  

 

5

천성적으로 쏠림을 두려워하고 균형을 유지하느라 애쓰는데 안정을 느끼는, 나는 그녀의 불안하지만 호기로운 삶을, 그녀의 동료처럼 흥미롭게 바라본다. 질서에 의문없이 순종하는데 답답증을 느끼지만 질서를 깨고 나올 수 없도록 오랫동안 길들여졌다.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더 질서에 갇히고. 이따금씩 내 틀을 깨보고자 작은 시도를 하지만 나는 질주를 두려워하고 틈만 나면 브레이크를 밟는다. 출발은 했지만 정신차려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발견한다.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도 얼른 익숙한 길로 돌아와버리는 습성. 이렇게 평생 사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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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영화를 보면서 서글픔의 쓰나미가 밀려왔다. 정말 화려한 출연진들인데, 조지 클루니, 틸다 스윈튼, 프랜시스 맥도먼드, 심지어 스칼렛 요한슨까지 죄다 늙었다. 프랜시스 맥도먼드 얼굴의 주름을 보는 순간, <파고>에서 독특한 발성으로 사투리를 구사하던 보안관의 목소리의 희미한 잔영은 있는데 얼굴이...


아무튼 나는 인물들이 모두 독특하게 말하는 코미디를 보고도 슬픔을. 찬바람이 계속 이어졌던 회색 도시 서울에서 봄볕이 제 역할을 하면서 개나리, 목련, 벚꽃이 사이좋게 무채색 도시를 물들이는 요즘이다. 길을 걸으면서 마치 꽃을 처음 보는 것처럼 유심히 꽃잎을 본다. 멀리서 보면 무채색 도시를 파스텔톤으로 바꾸는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목련 꽃잎은 갈색빛을 띤 것도 있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흉하기까지 하고 벚꽃 역시 바람에 흩날려 꽃잎이 떨어진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다. 꽃을 보면 이쁘다는 생각과 함께 덧없다는 생각에 자꾸 서글퍼지는데, <헤일, 시저!>에 출연진 모두 봄날의 꽃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2

영화는 1951년을 배경으로 텔레비전이 등장하는 시기다. 텔레비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영화는 비극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극장은 극장이고 텔레비전은 텔레비전이다. 카메라의 출현으로 그림이 초상화에서 풍경화로 방향을 틀었듯이 영화는 스케일이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저었고 아직도 건재하다.


하지만 텔레비전 등장 초기에 맞서야하는 영화 제작자들의 두려움을 이 영화는 다룬다. 코엔 형제답게 영화가 과연 예술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며 공장에서 제작하는 하나의 공산품으로 바라본다. 배우는 돈을 위해 납치 자작극을 꾸미고 제작자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격무에 시달린다. 시끌벅적하고 다혈질의 감독들과 콧대높은 배우들과의 트러블은 코믹한 일상으로 묘사된다.


어찌보면 메타 영화인데 영화 속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을 꽤 정교하고 화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잠깐씩 <헤일, 시저!>란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잊고 영화 속 영화를 보고 있게 된다. 영화의 힘은 이런 거다. 현실은 문제도 많고 번잡하지만 문득문득 삽입된 영화촬영 장면을 보다보면 웃기도 하고 현실을 잊을 수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계속 제작되고 존재하는 이유다. 여전히 마음이 위안이 되는 매체다. 적어도 내게는. 어두운 극장 안에 앉아 있는 두 시간 남짓은 크나큰 안정감을 준다. 봄꽃을 보면 덧없어 슬픈데 영화는 영원할 거 같은 착각에 심한 위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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