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정이 쏠리는대로 살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2
<종이 달>은 감정에 따라 사는 한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부자들 집에 방문해서 저축을 현금으로 받아오는 은행 직원이다. (견물생심인데 이런 직업이 90년대에 일본에 존재했었다니 놀랍다) 성실하고 조신한 여자가 어느 날, 자린고비 고객의 손자한테 끌리고(이게 사랑인지 육욕인지는 모르겠다) 어린 남자의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고객의 예금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어린 애인의 후원자가 되면서 고객의 돈을 횡령하기 위해 문서위조, 거짓말 등등을 해낸다. 흔히 말하는 유흥비로 탕진하는 생활을 하는데 처음에 갖게 되는 망설임은 사라지고 대담함과 자연스러움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때맞춰 남편은 상하이로 가고.
거짓말과 위선으로 가득찬 생활은 곧 그 실체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마도 사랑하는 어린 애인은 다른 또래 여자가 생기고 은행에서는 의심을 받기 시작하고 남편은 상하이에서 돌아온다. 총체적 난국인데 이럴 때마다 여자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고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성 세계에서 이탈한 여자에게 멈춤 신호는 없는 것처럼. 그러나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마른 다리로 페달을 밟는 힘찬 질주에는 불안이 담겨있다. 유니폼과 질주라니, 안 어울리는 짝궁에서 파생되는 불안한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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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은행에서 발각되고 횡령 규모에 모두 놀란다. 평생 은행원으로 살아온 또 다른 여인이 있다. 두 여인의 대화 중 인상적인 부분. 평생 직장에 몸바친 여자가 소원이라고 말하는 게 밤을 새는 일이다. 대체 밤을 새는 게 무슨 소원인가 싶은데 그녀의 변은 이렇다. 밤을 새면 다음 날 출근해서 피곤하니까 밤을 샐 수 없다고. 은퇴하면 밤을 한 번 새보고 싶다고. 그러면서 내키는대로 사는 여자한테 말한다. 당신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보지 않았냐고... 뭉클한 장면이었다.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두 사람. 하고 싶은 걸 환경에 맞추느라 억제하면 살아가는 사람은, 범죄일지라도, 그 호탕함을 몰래 부러워한다. 사회 규범을 어기면서 하고 싶은대로 질주하는 여자는, 고장난 브레이크를 장착해서 자신을 파괴할 때까지 달리고 또 달린다. 이 영화의 미덕은 질주하는 여자를 다시 가두기보다는 거짓 삶을 살아도 질주에 방점을 둔다. 여자는 달아나서 복잡한 인도 시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녀의 삶은 인도 시장통 만큼 혼돈스럽지만 여기서도 여자는 멈추지 않고 인파를 뚫고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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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어린 시절, 기부금을 채우기 위해 아버지의 지급에서 돈을 슬쩍하고 당당하게 말한다.기부를 위해서는 아버지 돈을 슬쩍하는 게 정당할 수 있다고. 그녀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반칸트적 인물이다. 천성이 반칸트적인데 자신이 동의 못하는 사회 질서 내에서 살아갈 수 없다. 사회 질서, 즉 법제도에서 탈주하는 걸 용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비난을 해야할까. 분명히 이성은 비난을 해야한다고 말하지만 감정은 쾌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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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쏠림을 두려워하고 균형을 유지하느라 애쓰는데 안정을 느끼는, 나는 그녀의 불안하지만 호기로운 삶을, 그녀의 동료처럼 흥미롭게 바라본다. 질서에 의문없이 순종하는데 답답증을 느끼지만 질서를 깨고 나올 수 없도록 오랫동안 길들여졌다.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더 질서에 갇히고. 이따금씩 내 틀을 깨보고자 작은 시도를 하지만 나는 질주를 두려워하고 틈만 나면 브레이크를 밟는다. 출발은 했지만 정신차려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발견한다. 다른 길로 들어섰다가도 얼른 익숙한 길로 돌아와버리는 습성. 이렇게 평생 사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