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2
마티아스 아놀드 지음, 박현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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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날개에 로트렉이 한 말 중 한 문장이 쓰여있다.

"내 다리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난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다. 이 말 속에서 알 수 있는 건 그림은 로트렉에게 생존 수단이었다. 152센티미터의 키에서 멈춰버린 성장. 신체적 불균형이 그의 재능을 더욱 빛나게 했다. 까뮈의 말대로, 그는 인생을 연소하면서 보낸 것 같다. 아니 까뮈가 많은 예술가들한테서 보았던 것이겠지.

이 책의 단점은 저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강하다. 로트렉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겠지만 문장마다 드러나는 애정은 거슬리기도 한다.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책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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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6
질 랑베르 지음, 문경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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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 속에서 작가의 삶이나 배경을 추적하는 감상법은 일차원적 감상법이라고 하지만 사실 작가의 배경을 아는 것만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감상법도 없다. 이 책은 카라바조의 일대기를 흝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마로니에북스 시리즈의 산만한 편집은 변함이 없다. -.-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카라바조는 당대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아웃사이더라고나할까. 서양 고전 예술은 카톨릭과 기독교의 부산물이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신의 말을 전하고 신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단이란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카라바조가 살았던 시기 역시 종교화 내지는 제단화는 화가로서 피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당대의 예술이 속한 분위기는 카라바조의 적성에는 맞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무계획적이며 감정에 충실하게 살았던 것 같다. 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그러다 싸우기도 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살해하기도 해서 감옥을 들락날락거렸단다. 이 책에 서술된 단편적 사실만으로도 그의 삶이 벽난로에 갇혀 춤추는 불과 같은 형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엇이든 태울 수 있는 강력한 불이 벽난로의 공간 속에서 활활 타오르다 사그러진 사람. 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단 말이지..

불의 뜨거운 비정형성이 그의 그림 속에 녹아있다. 강렬하고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회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명암과 붓질, 색채와 구도, 인물들의 표정에서 발산되는 고유한 아우라는 그림의 뒤(?)를 캐도록 만드는 자극제다.

카라바조의 이력을 알기 전에 강렬한 색채와 그림 속 인물들의 핍진성verisimilitude에 끌렸었는데 인물 속에 담긴 각각의 이야기를 알고나니 원작을 보고싶다. ㅠ.ㅠ

덧. 꼭 카라바조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 예술 전반에 해당되지만 차이와 반복의 미학은 창조의 근원이다. 반복되는 주제를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 독창성으로 이르게 된다. 제임슨의 말대로 스타일은 곧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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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7
애덤 로버츠 지음, 곽상순 옮김 / 앨피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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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에 어떻게 독후감을 쓰겠는가. 제임슨의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읽은 글도 일부만 이해하고 숀 호머와 애덤 로버츠의 설명을 통해 제임슨의 논지들을 이해했는데.

내가 적고싶은 건 제임슨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한 애덤 로버츠의 해설이다.

얼마 전 읽고 싶었던 벤야민의 <일방통행로>가 번역되었다. '교재'라는 제목으로 '대저의 원리들 또는 두꺼운 책의 집필 요령'이란 부제를 단 꼭지가 있다. 

"1. 서술하는 내내 질질 끌면서 요설에 가까울 정도로 원래 구상에 대한 설명을 끼워 넣을 것.

2. 각각의 규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말고는 더이상 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들을 위한 용어를 도입할 것.

3. 본문에서 어렵게 이루어진 개념 구별도 해당 부분의 주석에서는 다시 애매하게 할 것.(중략)"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유를 전개하는  난해한 벤야민식 스타일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하게 벤야민이 해체적 사유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는 해체적 내지는 몽타주적 글쓰기를 하는 사상가들의 글에 인내심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벤야민과는 문체가 완전히 다르지만 제임슨의 글 역시 난해하기도 악명높다. 애덤 로버츠의 설명에 따르면, 제임슨이 몇 번씩 읽어도 불가해한 문장을 구사한 이유는 "기계적 글쓰기나 대량생산되는 상품으로서의 글과 상반되는" 글쓰기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독자가 여러 번 읽고 이해하려는 고통(?!)을 겪으면서 지성이 연마된다고 제임슨은 믿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로버츠는 기본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반론을 제기한다. 제임슨의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은 비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만을 상대로, 자신의 언어를 이해할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만 발언할 수도 있다는 모순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맑스주의자였던 그가 정작 노동계급이 자신의 글에 접근하는 걸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아이러니.

제임슨은 형식에서 무의식을 읽어내려 했으니 난해한 글쓰기 스타일은, 당연한 말이지만 의도된 것이다. 그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난해한 글쓰기를 하는 사상가들의 사유에 접근하는 방법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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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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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도시에 대한 알레고리적 아포리즘이다. 도시가 갖는 여러가지 표정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한다. 이 가상의 도시들은 실재 도시의 파편들이다. 조각나고 흩어져서 실재와 다른 환상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파편 조각을 맞추다보면 익숙한 하나의 도시로 다가온다.

도시의 탄생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다음이다. 도시의 많은 공장들에서 인력을 필요로 했고 농업사회의 인구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급격히 이동했다. 도시에서는 농장 대신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자본을 바탕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빵을 얻는 도시빈민이 출현했다. 도시는 그들을 중심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오늘날의 도시도 한마디로 단순화 할 수는 없지만 이 원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삶은 비슷해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각기 다르다.

서울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한 도시이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살고 내가 어릴 때부터 나이들어가는 지금까지도 공사중이다. 어딜가도 공사현장-지하철이든 아파트 재건축이든 아스팔트를 다시 까는 도로공사든-과 마주치게 되어 공사현장은 서울의 중요한 배경처럼 여겨진다. 정돈된 서울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정을 넘어서도 곳곳에는 귀가객들과 차량으로 길은 몸살을 앓는다. 지하철 마지막 열차는 소주와 삼결삽 냄새로 가득찬다. 이런 모든 외형은 거꾸로 보면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일종의 단서들이다.

부산하고 번잡하지만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다른 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공항버스를 타고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지방 도시에 갔다가 서울 만남의 광장에 가까이 갈수록 어디서 나왔는지 길에는 차들이 그득하다. 서서히 막히기 시작하고 주변은 각종 간판과 옥수수 알마다 발광하고 있는 것같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환하다. 공기는 매케하다. 이런 풍경이 만들어낸 소음과 매케한 공기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고향의 냄새를 느낀다. 내 부모님이 바다내음이나 소똥 내음에서 고향냄새를 맡듯이 나는 도시가 내보내는 유해한 것들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서울 말고 늘 다른 도시를 꿈꾸고 계획한다. 서울과 다른 도시에 가서 서울을 발견한다. 현재 체험하고 있는 서울은 다른 공간에서 기억을 통해 인식된다. 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기억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기호들을 반복"한다.

이 책은 아포리즘이면서도 형식적 줄거리가 있다. 쿠빌라이 칸에게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본 도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도시들은 가상의 도시들이다. 처음에 칸과 폴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과 상징적 기호들을 사용해 도시 이야기를 하면서 흥미로워한다. 시간이 흐르고 폴로는 칸의 언어를 익혀서 여행한 도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몸짓과 상징에서 추측하는 것만큼 재미가 없어진다. 칸은 폴로가 본 도시보다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도시를 발견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

이 플롯이 도시민이 갖는 삶의 전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테두리에 속해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대해 권태스럽고 나른해서 일탈을 꿈꾸는 것. 칸은 자신의 제국에서 권태를 발견했고 폴로를 통해 일탈을 꿈꾸었다. 나는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로 즐거운 일탈을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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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여행기 - 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4
마크 트웨인 지음, 박미선 옮김 / 범우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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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독서가 저조하고 중대한 결정을 내렸고 휴가를 떠나지 않고 일상을 지켜냈다. 여러가지 악재 속에서 8월 주문한 책들은 몸은 이곳에 있어도 마음은 다른 곳에 데려다줄 여행기에 쏠렸다. 요즘 여행기의 종류가 많다. 긍정적 측면으로 보자면 자신만의 주관을 갖고 여행지에서 느낀 속삭임을 들으며 시야가 넓어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부정적 측면으로 보자면 한없이 가벼운 여행기들은 단지 소비욕망을 부추기는 일종의 광고와 같은 자극제일 뿐이다.

고로 여행기는 누가 썼는가, 어떤 취향의 사람인가가 구매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에게 <톰 소여의 모험>이란 동화작가로 축소되어 알려진 작가가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일단 젠체하지 않으며 솔직하고 위트가 넘친다. 1896년에 쓰여졌으니까 한 세기도 훌쩍 넘긴 이 책을 선택한 데는 마크 트웨인의 기질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19세기에 유럽일주를 하면서 주관적 감정을 서술하고 있다. 서문에 썼듯이 마크 트웨인은 "흥미로운 대상들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였는지" 쓰고 있다. 사람을 가르치려고 하는 여행기만큼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 그런 점에서 트웨인의 "소풍"에 관한 기록은 일단 안심이다.

상권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할애되어 있다. 후반부는 이탈리아에 할애되어 있는데 지금 읽어도 공감할 수 있을만큼 보편적 시각이 눈에 띈다. 르네상스기에 회화에 대한 반응은 귀엽고 <최후의 만찬>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박수를 보낸다.

"<최후의 만찬> 앞에 서서 사람들이 자기들이 태어나기 100여년 전에 이미 그림에서 없어져 버린 경이와 아름다움, 완벽함에 감탄하는 걸 듣고 있자니 바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미 나이든 얼굴에 있었던 예전의 아름다움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말라빠진 그루터기를 보면서 숲을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거기에 있지 않을 떄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이다. 능란한 예술가가 <최후의 만찬>에 쏠려서 암시로만 남아 있는 광채를 되살려서 이젠 없어져 버린 색조를 새로이 부여하여 사라져버린 표정을 복구할 수 있다고 믿으련다. 또 그들은 마침내 그림 속의 인물들이 생명력과 신선함, 정말이지 처음 거장들의 손에서 나온 그 고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채로 번쩍이며 화가 앞에 드러날 때까지 개칠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기적을 행할 수가 없다. 아무런 영감이 없는 다른 방문자들은 할 수 있을가 혹은 할 수 있다고 행복하게 상상만 하는 것일까?"

솔직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대목말고도 이런 구절들이 도처에서 즐거움을 준다. 알랭 드 보통이 말했듯이, 여행이란 안내서에 나온 설명에서 희열을 얻는 게 아니다. 예측하지 못하게 만났던 사소한 풍경, 사물과 에피소드에서 여행은 개인의 역사 속에 각인된다. 비오는 날에 한적한 공원을 걷다 만난 개의 표정이라든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기 전 청소 중인 거리라든지..어떤 도시나 공간을 떠올릴 때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바로 평소에는 무심코 흘려보내는 하찮은 것들이다. 마크 트웨인 덕분에 앉아서, 게다가 크루즈 여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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