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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도시에 대한 알레고리적 아포리즘이다. 도시가 갖는 여러가지 표정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한다. 이 가상의 도시들은 실재 도시의 파편들이다. 조각나고 흩어져서 실재와 다른 환상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기면서 파편 조각을 맞추다보면 익숙한 하나의 도시로 다가온다.
도시의 탄생은 산업혁명이 일어난 다음이다. 도시의 많은 공장들에서 인력을 필요로 했고 농업사회의 인구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도시로 급격히 이동했다. 도시에서는 농장 대신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가 자본을 바탕으로 힘을 얻기 시작했고 노동력을 제공하고 빵을 얻는 도시빈민이 출현했다. 도시는 그들을 중심으로 무럭무럭 자랐다. 오늘날의 도시도 한마디로 단순화 할 수는 없지만 이 원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도시의 삶은 비슷해보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각기 다르다.
서울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특한 도시이다.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살고 내가 어릴 때부터 나이들어가는 지금까지도 공사중이다. 어딜가도 공사현장-지하철이든 아파트 재건축이든 아스팔트를 다시 까는 도로공사든-과 마주치게 되어 공사현장은 서울의 중요한 배경처럼 여겨진다. 정돈된 서울을 상상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정을 넘어서도 곳곳에는 귀가객들과 차량으로 길은 몸살을 앓는다. 지하철 마지막 열차는 소주와 삼결삽 냄새로 가득찬다. 이런 모든 외형은 거꾸로 보면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일종의 단서들이다.
부산하고 번잡하지만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다른 나라에 갔다가 돌아와서 공항버스를 타고 복잡한 도심을 통과하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지방 도시에 갔다가 서울 만남의 광장에 가까이 갈수록 어디서 나왔는지 길에는 차들이 그득하다. 서서히 막히기 시작하고 주변은 각종 간판과 옥수수 알마다 발광하고 있는 것같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환하다. 공기는 매케하다. 이런 풍경이 만들어낸 소음과 매케한 공기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져서 고향의 냄새를 느낀다. 내 부모님이 바다내음이나 소똥 내음에서 고향냄새를 맡듯이 나는 도시가 내보내는 유해한 것들에서 고향의 정취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익숙한 서울 말고 늘 다른 도시를 꿈꾸고 계획한다. 서울과 다른 도시에 가서 서울을 발견한다. 현재 체험하고 있는 서울은 다른 공간에서 기억을 통해 인식된다. 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기억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기호들을 반복"한다.
이 책은 아포리즘이면서도 형식적 줄거리가 있다. 쿠빌라이 칸에게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본 도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도시들은 가상의 도시들이다. 처음에 칸과 폴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 몸짓과 상징적 기호들을 사용해 도시 이야기를 하면서 흥미로워한다. 시간이 흐르고 폴로는 칸의 언어를 익혀서 여행한 도시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몸짓과 상징에서 추측하는 것만큼 재미가 없어진다. 칸은 폴로가 본 도시보다 자신의 상상 속에 있는 도시를 발견할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
이 플롯이 도시민이 갖는 삶의 전형이 될 수 있다. 자신의 테두리에 속해 너무나 익숙한 것들에 대해 권태스럽고 나른해서 일탈을 꿈꾸는 것. 칸은 자신의 제국에서 권태를 발견했고 폴로를 통해 일탈을 꿈꾸었다. 나는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로 즐거운 일탈을 꿈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