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환영 - 회화적 재현의 심리학적 연구
에른스트 H. 곰브리치 지음, 차미례 옮김 / 열화당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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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점에 들렀다 곰브리치의 책을 봤다. '환영'에 완전 꽂혔는데 다 읽고나니 본전 생각이 난다. 환영illusion이라고 표지에 저렇게 커다랗게 쓰여 있는데도 phantom으로 생각했다. 미묘한 차이기는 하지만 착시optical illusion의 뿌리 쯤 되는데 얻은 정보에 비해 책 값이 너무 비싸다. -.-

미술이 역사를 갖는 이유를 인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루었다. 인지 심리학의 한계를 순순히 인정하는 요즘, 그 매력은 이 책이 처음 쓰여졌을 때보다는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쯤 투덜거리고 이 책 내내 곰브리치가 역설한 내용을 요약해보면,

동물이나 인간 모두 '사물의 불변성'에 대한 가정에 기반한 채 세계를 바라본다. 어떤 한 사물은 위치가 바뀌어도 조명이 달라져도 고유의 형태나 색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 확신은 우리의 언어 구조뿐 아니라 인생관 전체에 걸쳐서 학습되어왔다. 그러므로 모호한 사물을 볼 때도 당연히 우리의 인지 배경에 바탕을 두고 모호한 기호를 사회적 기호로 받아들인다. 그림을 볼 때도 우리는 이런 인지 이론을 가동시킨다는 말이 되겠다. 그리하여 사회의 기호가 바뀌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화법 또한 바뀌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에 대한 기대 욕망 수치를 10으로 보았을 때 그 눈금의 4쯤만 채워진 허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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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뇌는 생각하는 용도로 설계되지 않았다!
    from 도서출판 부키 2011-07-22 23:06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지과학자이자 버지니아대학교 교수인 대니얼 윌링햄이 오랫동안 계속해 온 뇌와 학습, 기억에 관한 연구를 교육 현장에 연결한 소중한 성과물입니다. 왜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을까? 시험에 꼭 필요한 기술은 어떻게 익힐 수 있을까? 반복은 유용한 학습 방법인가? 학생들이 과학자나 수학자, 역
 
 
 
Summer in Baden-Baden (Paperback)
Leonid Tsypkin / New Directions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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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문장들이 훨씬 난해하다. 고로 다 읽지 않았고 앞으로 다 읽을 기약이 없다. -.-

번역본과 다르게 영역본은 무지 에로틱하다. 아니 에로틱한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고나 할까.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전혀 기억에 없는 부분들만 눈에 들어와서 마치 다른 책을 읽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한국어 번역본을 찾아봤다. 가령,

"밤에, 그는 아냐에게 '밤 인사'를 하러 갔다. 그들은 다시 함께 '항해'를 시작했다. 손을 리드미컬하게 저으면서 동시에 공기를 마시려고 얼굴을 물 밖으로 내밀었지만, 이제 물살은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함께 먼 수평선의 말할 수 없이 푸른 곳까지 헤엄쳐 가서는, 다시 그녀에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때, 정점이 아래로 향해 있는 어두운 빛깔의 삼각형이 나타났다. 이 정점은 그가 가 닿을 수 있을 것 갗지 않았으며, 마치 구름 속에 잠긴 아주 높은 산봉우리가 뒤집혀 있는 듯했다. 그가 오르려고 하는 그 정점은 비록 아래를 향해 있었지만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보였다. 그 정점, 그 닿을 수 없는 바닥에는, 그로서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심지어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섭고도 달콤한, 그런 해답이 숨어 있을 것 같았다. 그가 그녀에게 보낸 편지들에 썼듯이 그는 일생을 다해서 저 정점, 저 분화구에 한량없이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것은 내내 닿을 수 없는 채로 남아 있었다."(51)

"That night, when he went to kiss Anya, they swam away again together, rhythmically thrusting out their arms from the water and raising their heads to take in gulps of air-and the current did not sweep him away-they swam towards the receding horizon, into the unknown, deep-blue distance, and then he began to kiss her again-a dark triangle appreared, upturned-its apex, its peak, pointing downwards, forever inaccessible, like the inverted peak of a very high mountain disappearing somewhere into the cloulds-or rather the core of a volcano-and this peak, this unattainable core, contained the answer both terrible and exquisite to something nameless and unimaginable and, throughout his life, even in his letters to her, he maintained the incessant struggle to reach it, but this peak, this core, remained forever inaccessible(....)"(13)

 이런 식이다. 한국어 판본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곳과 영역 판본에 밑줄 그어져 있는 곳이 완전히 다르다. 이런 섹스 장면 묘사를 한국어본으로 읽을 때는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 반면에 영역본에서는 섹스 장면의 묘사만 눈에 들어온다는 것. 강렬한 물의 이미지를 통한 묘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깜짝 놀라곤 했다. 우리 말로 읽으면..음 설명적인데 영문은 그림처럼 다가온다. 굳이 주부와 술부를 찾을 필요없이 쓰여진 단어들을 느끼면 되니까 더 에로틱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건 이 장면은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침표가 하나인데 마흔 줄 후에서 반가운 마침표가 보인다. 꼭 한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아무리 묘사가 아름답더라도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만연체의 진수를 보고 싶다면 모를까 취미삼아 집어든 책이라면 끝까지 읽을 의지가 꺾이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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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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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소설집이 왜 김영하의 소설집보다 안 팔리나를 매번 의아해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작년에 습작한 단편을 한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비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비루함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해. 비록 책 속에서 일지라도. 내 일상과 비슷한 글을 읽는 건 달아나고 싶은 일상과 마주하는 것과 같아서 고통스러워." 친구의 심정을 그때 반만 이해했는데 김경욱의 이번 소설집을 읽고는 완전히 이해하겠다.

나름 팬으로 꾸준히(?) 읽어 온 김경욱의 단편들 주인공들은 평범한 주변인들이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물들에게 닥친 포스트모던하고 신자유주의의 불행을 보면서 안도하는 게 잘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은 이미 현실에 넘치니까.

소설을 찾는 이유는 영화를 찾는 이유와 같을 수 있다. 단 돈 만원 남짓한 기회비용으로 나만을 위한 휴식의 대가를 지불하고 잠시라도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심리적 소비 행위다. 이런 심리적 소비 행위에서 얻고자 하는 건 꿈과 공감이다. 비루한 일상도 살아 볼만하다는 그런 꿈 말이다. 아쉽게도 김경욱의 인물들은 꿈을 갖는 게 아니라 비루함에 잠식당한다.

또 단편의 서사들은 낭만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결혼했어도 아내를 <천년여왕>으로 생각하며 멀게 느끼는 사람이나 결혼 생활이라는 테두리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다시 찾고 싶어한다.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처럼. 소설책을 찾는 이들은 이삼십대 비혼여성이 주류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어도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있다. 이들의 관점에서 사랑의 로망에 관해 말하지 않고 결혼에 대한 현실을 말하는 서사는 한계효용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다.

이런 이유들이 김경욱 소설집의 진가를 덮고 있다. 행간에 숨어있는 통찰력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짜릿한 즐거움은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 덕분이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그는 상상력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의 상상력은 철저하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관찰자의 신분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의 소설집을 읽고 한 살 반도 더 먹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이유는 내 나이 탓이 아닐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경욱표 단편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한계효용 그래프에서 높게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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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동 2008-10-16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북한강 십리뻘에 먼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그곳은 광나루 다리를 건너 한참을 걸으면 문화촌을 지나서 펼쳐져있는 넓은 대지였다. 그곳엔 복숭아밭이 펼쳐져 있었고 밑으로는 딸기가 심어져 있어서 깔려진 짚 사이로 올라오는 딸기의 새싹은 어여쁘기만 했다. 한쪽 옆으로는 창고가 있는데 난 그창고에 들어가 놀기를 좋아했다. 그속엔 토끼가 있었는데 매우큼직하고 털이 매끄러워 신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밍크라고 불렀다. 밍크 너무 예쁜 이름이였다 그러고 보니 어느 영화배우의딸 이름이 밍크라든데 그럼 난 스토베리라고 해야지 스토베리.
여덟시 부터는 수업에 들어가는데 선생님은 무척이나 무서웠고 영어발음도 정확하게 하였다 칠판을 가르키며 브랙보드 라고 발음을 할때는 입안에 바람을 가득넣어 양볼을 통통하게 만들어 발음을 하는것이 못내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려는걸 참느라고 애먹었다.
그의 부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부인이니 피앙세라고 불러줘야 하겠다.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은 매우 현숙하게 생기셨고 고급스럽게 엄하셨다. 나는 누군가가 버린 칫솔을 보고 멀쩡한걸 왜 버렸을까 하고 의문을 품으며 끓는물에 소독을 하였다. 피앙세님은 그걸 보시더니 너 뭐하니 소독하는구나 난 그냥 빙그레 웃었다. 당연한것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조금은 겸연쩍었다 손가락에 빻은소금을 뭏혀 이를 닦는것 보다는 휼륭한 도구라고 생각을 하였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은 몰려나가 밍크가 먹을 아카시아잎을 따기도 하고 딸기밭에 풀을 봅기도 하였는데 나는 이모든것이 즐겁기만 하였다. 동이트는 아침이면 우물가로 가서 뽐뿌질을 하는거나 수건을 목에 두른채로 체조를 하는 모습들은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가기에 아주 잘생긴 ㅋ키가큰 오빠가 있었는데 그는 우리반이였다 난 절대로 오빠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냥 반 친구정도로 여겼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하루 결석을 하여 선생님이 일으켜 세워 이유를 묻자 빨래를 씻다가 감기가 들어서 아팠노라고 갱상도 사투리로 말을 하여 우리들을 웃겼다. 그야말로 갱상도 촌놈이였다. 왜그렇케 웃은이 나던지 신기하여 자꾸만 그가 무슨말을 하나 귀귀울이기도 하였다. 우리들은 식사시간이면 식당에서 당번이 종을 들고 뛰다니며 알리는게 참으로 좋았다. 당번아이는 딸랑대는 종을 들고 막 뛰여다니는데 나는 언제나 당번을 해보나 하고 기다려 졌다. 식당에는 여러 엄마들이 일을 하는데 특히 구멍이 숭숭 뚫린 빵이 나오는날은 참으로 맛이 있었다. 하루는 아이셋 딸린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서 일을 하는데 다른 아이들과 차별하여 자기아이들을 편애 한다고 누가 그랬는지 좇겨 가면서 우는것을 보면서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만큼 교육애 편애는 금물 이였다. 그곳엔 머리가 길고 아름다운 쳐녀 선생님이 가끔 찿아 오는데 그럴때마다 어린 아이들은 모두 뛰여나가 매달리며 응석을 부렸다. 내가 봐도 아주 예쁘고 매력적인 선생님이였다.

먼동 2008-10-17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날씨가 따뜻하고 청명하던 어느날 오전공부를 끝내고 오후엔 딸기를 딴다고 하여 밭으로 나갔다. 바구니에 빨갛게 익은 딸기를 따는것이 왜그렇케 재미 있는지 딸기를 따며 크고 먹음직 스러운것이 나오면 냉큼 집어 먹었다. 선생님은 보시고도 아무말씀 아니 하셨다. 어자피 너희들이 먹을건데 먹어라먹어 라고 하신건 아니시지만 꼭 그러시는것 같았다. 난 그날 하루종일 입에서 술냄새가 나서 애를 먹었다.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그후로 나는 먹는것에 욕심을 절대로 내지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녁이면 네명씩 자는 기숙사 방으로 들어와 나란히 공부를 하는데 건방지게도 나는 교과서 아닌 소설책 읽기를 좋아했고 공부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성경과목은 왜그리 신기 하던지 특히 시편과 아가서 를 읽을때면 내가 딴세상에 온것처럼 행복하고 도 행복했다. 일요일이면 살짝 교문밖으로 나가 근처 과수원을 걷기도 하는데 몇몇 친구들은 과수원을 한바퀴 휙 돌아보는것으로 휴일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문화촌이 지금도 어디엔가 많이 있어서 가정이 해체되여 갈곳없는 어린이들과 모자가정이 도움을 받아 청소년들이 밝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도 귀에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래소리 북한강 십리뻘에 먼동이 트니~~~.
 
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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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신문 헤드 라인으로 보는 대공황에 준하는 상황은 사실 조지 오웰이 묘사한 전시상황보다도 더 긴박하다. 시국만큼이나 마음도 뒤숭숭하고 책도 손에 잘 잡히질 않았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이럴 때 썩 어울리지 않지만 어쨌든 인내심을 갖고 오랜 기간 동안 읽어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책이 필요했는 데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져버렸다.

겉에서 본 전쟁과 안에서 본 전쟁 간의 간극을, 오웰은 소리높여 비판한다. 전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이들은 실제로 총알을 맞을 위험이 없는 치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에는 주검이 되고 이념은 시간이 흐를수록 모호해지고 연합이라는 전략은 누굴 위한 것인지 전쟁이 지속되면서 헷갈리기만 할 뿐이다.

반전을 다룬 작품들은 많이 있다.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에 비길만한 감동적 작품을 아직까지 난 만나지 못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가슴 속에 박히기기 보다는 오웰이 의도했던 것, 즉 5,11장의 정적적 견해가 필요했기 때문에 읽었다. 그러면서도 오웰의 태도에는 거리를 두게 된다. 혁명을 지지하는 오웰은, 그래도 행복했던 것 아닐까? 21세기는 혁명 따위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주가지수와 환율, 유가가 지배하는 시대다. 혁명이 주가지수를 끌어올리고 환율을 안정시키며 유가를 낮출 수 있지 않는한 역사 속에나 존재하는 낡은 어휘, 또는 이따금씩 향수를 자극하는 어휘로만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혁명을 이루려고 애썼던 이들의 마련해 준 세계에서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길로 질주하고 있다.

나 역시 지극히 개인적 이유에서 스페인 내전에 대한 브리핑이 필요했다. 오늘 아침에 2천원에 육박하는 유로를 보고 스페인행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찾아왔다. 오웰의 책을 읽고도 거시적 불안보다는 개인의 미시적 불안을 더 고통스럽게 여기는 내가 싫다. 책이 개인의 삶의 뿌리를 바꾸는 일이 가능하긴 할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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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스탕달의 이탈리아 미술 편력
스탕달 지음, 강주헌 옮김 / 이마고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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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펴낸 <파르마의 수도원>을 읽다 버려두었다. 거친 번역 때문에 스탕달에게 다가가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내 게으름도 있겠지만 일차적 원인은 번역 탓을 하고 싶다. 거침없고 솔직한 스탕달의 독특한 문체를 살리기는 커녕 작가의 목소리가 거슬리게 만든다.

강주헌이 번역한 이 책은, 에세이인데도 매끄럽게 번역되어 스탕달에 대한 꺼졌던 애정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온다고 할 수 있겠다. 굉장히 독특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책인데 알라딘에서는 절판이지만 중고로 반값에 구입했다. 사랑스런 알라딘*.*

출판사 편집부의 해제와 옮긴이의 말까지 서설이 길어 대체 어떤 책이길래, 하면서 읽어갔다. 피렌체 화파 연보부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스탕달의 즐거운 '편력'이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그 어떤 미술사 책과도 바꾸지 않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에세이다.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알고 싶다는 이가 있다면 주저없이 스탕달의 책을 권해주련다.

감탄은 이쯤하고,

서양 예술의 거름과 영양제는 교황과 부르주아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스탕달은 그 문화권이니 교황의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갖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교회가 만들어진 신의 완벽함과 선함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고 교황의 권력에 대해 혐오는 하지만.

스탕달의 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황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군주들이나 왕도 교황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신을 능가하는 절대적 존재다. 그리하여 자신의 조각상이나 무덤을 장식할 묘비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다. 물론 이런 교황들의 사치가 있었기에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볼 수 있지만 말이다.

또 하나는 미켈란젤로의 삶이다. 그 기행적 삶이 단편적으로 알려져있는데 재능을 지니고 시대를 앞선 천재는 누구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의 재능으로 교황들의 총애를 받자 주변은 시기로 가득했나보다. 정작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데.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기하다.

스탕달의 편력에 전적으로 동의만 할 수는 없지만 그의 통찰력과 직관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감동이란 게 그 예술가와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은, 예술에 대한 내 기본적 태도이기도 하다. 더불어 스탕달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게 계속 천재라고 부르는데 , 스탕달님, 제 보기에는 당신도 천재에요.

천재가 또 다른 천재를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는 충분히 독서욕을 자극한다. 늘상 천재의 이야기를 읽기만 해야하는 내 삶이 비루해보이기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마다의 운명이 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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