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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평점 :
김경욱의 소설집이 왜 김영하의 소설집보다 안 팔리나를 매번 의아해했다. 이번 소설집에서 그 이유를 찾아냈다.
작년에 습작한 단편을 한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나처럼 비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비루함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해. 비록 책 속에서 일지라도. 내 일상과 비슷한 글을 읽는 건 달아나고 싶은 일상과 마주하는 것과 같아서 고통스러워." 친구의 심정을 그때 반만 이해했는데 김경욱의 이번 소설집을 읽고는 완전히 이해하겠다.
나름 팬으로 꾸준히(?) 읽어 온 김경욱의 단편들 주인공들은 평범한 주변인들이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주변의 상황에 따라 삶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이들에게 일어난 일은 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물들에게 닥친 포스트모던하고 신자유주의의 불행을 보면서 안도하는 게 잘 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은 이미 현실에 넘치니까.
소설을 찾는 이유는 영화를 찾는 이유와 같을 수 있다. 단 돈 만원 남짓한 기회비용으로 나만을 위한 휴식의 대가를 지불하고 잠시라도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심리적 소비 행위다. 이런 심리적 소비 행위에서 얻고자 하는 건 꿈과 공감이다. 비루한 일상도 살아 볼만하다는 그런 꿈 말이다. 아쉽게도 김경욱의 인물들은 꿈을 갖는 게 아니라 비루함에 잠식당한다.
또 단편의 서사들은 낭만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결혼했어도 아내를 <천년여왕>으로 생각하며 멀게 느끼는 사람이나 결혼 생활이라는 테두리에서 혼자만의 고독을 다시 찾고 싶어한다. <고독을 빌려드립니다>처럼. 소설책을 찾는 이들은 이삼십대 비혼여성이 주류일 것이다. 이들에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없어도 사랑에 대한 환상은 있다. 이들의 관점에서 사랑의 로망에 관해 말하지 않고 결혼에 대한 현실을 말하는 서사는 한계효용 가치가 현저히 하락한다.
이런 이유들이 김경욱 소설집의 진가를 덮고 있다. 행간에 숨어있는 통찰력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짜릿한 즐거움은 작가의 탁월한 관찰력 덕분이다.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그는 상상력으로 글을 쓴다고 했는데 그의 상상력은 철저하게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있는 관찰자의 신분에서 태어나는 것 같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의 소설집을 읽고 한 살 반도 더 먹었다.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이유는 내 나이 탓이 아닐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김경욱표 단편들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한계효용 그래프에서 높게 올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