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포르의 숙녀들 - The Young Girls of Rochef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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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영화와 완전 좋다. 프랑스 소도시 로슈포르에서 일어나는 운명적 사랑 릴레이를 담은 뮤지컬이다. 취향이라는 게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운명적 사랑을 노래하는 영화도 완소 영화가 될 수 있다.

1. 로슈포르 항구에 있는 까페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모인다. 까페주인은 사랑하는 남자의 이름, Dame가 싫어서 남자를 떠났고 남자를 만났던 로슈포르 항구에서 추억을 껴안으며 산다. 담므란 남자 역시 여자를 만났던 로슈포르에 와서 가게를 한다. 로슈포르에서 썩기에는 다재다능함을 확신하는 쌍둥이 자매, 피그말리온처럼 여인을 상상으로 그리고 그림 속 여자를 사랑하고 찾아 헤매는 해군이자 화가. 뭐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 삼자가 보면 심각하지 않지만 내 문제라면 심각할 수 있는 일들이다. 

2. 뮤지컬로 우아하면서도 색이 어찌나 고운지. 주인공들이 노래를 하는 동안 배경으로 인물들이 춤을 춘다. 그 움직임이 화려하지 않아서 조금 주의를 기울여야지 배경으로보인다. 스냅샷에서 인물 사진 뒤에 놓인 인물 같은 느낌으로 군무가 펼쳐진다. 노래로 처리되는 대사 역시 시끄럽지 않게 살며시 귀에 들어온다.  

3.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건 쌍둥이 자매가 입었던 원피스 시리즈와 신발이다. 완전 심플하고 보조 색이나 약간의 치마 주름으로 강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신발 역시 어찌 보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이 신는 것 같지만 아무 무늬없고 적절한 높이(3-5센티미터)에 색으로 포인트를 준다. 몽땅 사고 싶은 아이템들이다. -.-; 이런 디자인을 요즘은 구하기 힘들다. 유행을 강요하는 한국에서는 더더욱.

4. 카트린느 드뇌브의 포스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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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공주 - Donkey S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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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뻬로의 동화를 영화로 만들었다. 파란 나라 왕이 사랑하는 왕비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재혼 상대자로 마음에 드는 인물이 왕비와 닮은 자신의 딸이다. 딸에게 청혼하지만 딸은 망설이며 요정한테 도움을 청해 달아나서 숲속에 살면서 빨간 나라 왕자를 만나 결혼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기억하는 뻬로 동화들은 잔인해서 19금이 대부분이다.   19세가 넘어서 뻬로 동화집을 접했는데도 허거덕 했다. 그림 동화집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림형제는 어린이 용으로 동화를 각색했다고 한다. 세상의 많은 여자들에게 신데렐라 드림을 심어준 건, 그러니까 다 그림형제 탓이다.

지금과 달리, CG가 없던 시절 동화를 영화로 만드는 게 어떨지 이 영화를 보면 된다. 동화 배경이 되는 성, 숲속, 왕자, 공주, 태양 보다 더 빛나는 드레스 같은 게 어떤 식으로 재현되는지 보고 있노라면 귀여워서 웃음이 저절로 새어나온다.  나름 시대물인 블록버스터다. 빨간 나라 왕자는 빨간 말이 끄는 빨간 말을 타고 다니는데 말은 온통 빨간 물감으로 색칠돼있다. 동물학대가 아닌가 싶다가도 감독의 그 열정을 헤아려보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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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경제학 - 위기의 시대, 유쾌하게 푼 경제의 진실
조준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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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이 들으면 경악하겠지만, 난 경제학만큼 밥맛이고 지루한 학문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물의 이치를 기회비용과 편익, 한계효용 틀 안에 맞추려고 하는 학문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이따금씩 경제학이란 제목을 두른 책을 기웃거리는 이유는, 경제학의 초원칙이 실제 생활에서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난 지금 이 책을 읽고 난 리뷰를 쓰느라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 혹은 케이블에서 내보내는 지난 버라이어티를 보면서 낄낄거리는 휴식 시간을 지불하는 셈이다. 나는 읽는 이 없는 리뷰를 쓰는 데 왜 시간을 보내는가. 리뷰를 쓰는 게 더 유용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저울질을 한다. 그리고 저울이 기울어지는 게 심리적이든 물질적이든, 내게 도움이 있기 마련이다. 경제학의 논리는 여기서 크게 안 벗어난다. 내가 알기로는. 복잡하게 말하면 끝도 없는 게 경제학이지만 단순화하면 그 어떤 학문보다 간단한 게 경제학이다.    

이 책은 정체성이 좀 모호하다. 경제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시국을 논하는 책이다. 미디어에서 나온 정보를 모아놓고 그 부조리를 대충, 쉽게 설명한다. 어떤 글은 시장경제를 옹호하는가 하면 어떤 글은 시장경제를 몰아붙인다. 일관되지 않은 게 아주 헷갈리지만 저자의 말은 모두 옳다. 또 저자가 SKY출신이고 (실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유명세를 타는 경제학자라면 이런 유쾌하하고 페이지마다 박수치고 싶은 글은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유명세란 기회비용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장경제는 왜 부조리한가. 인간의 비합리성 때문이다. 조지 에커로프, 로버트 쉴러가 쓴 <야성적 충동>이 인간의 비합리성이 어떻게 시장에서 작용하나를 유식하게 이야기하려 했다면, 이 책 저자는 인간은 원래 합리적이지 않다는 전제로 시장을 바라본다. 그럼 해결책은? 상도덕이다. 조폭이나 사기꾼과 상인이 다른 점은 바로 상도덕의 유무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조폭이고 상인은 자신이 파는 것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받으려는 사람이다. 아주 간단해서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데 19세 이상인 성인은 종종 이 사실을 까먹는다.  

내가 손해를 보면 불의로 여기고 내가 기득권을 지닐 때, 다른 사람이 불의라고 하면 불쾌해한다. 우리사회의 속앓이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모두가 기득권층에 들고 싶어하지만 기득권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하기를 꺼린다. 블로그를 통해 본 네티즌은 모두 정의롭고 기득권에 저항하고 기꺼이 사용료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국민은 그렇지않다. 네티즌과 국민은 다른가. 아이러니다. 물론 온오프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온오프가 어긋나있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럼 온라인에서 하는 말은 가식이고 거짓인가. 그렇진않다. 생각은 올바른 방향으로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이익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가치관대로살려고 모두 노력한다면 더 이상의 경제학 책은 필요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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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이.조:전쟁의 서막 - G.I. Joe: The rise of Co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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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영화지만 이병헌이 나온다길래, 그리고 그 비중도 크다길래, 시간도 기다리지 않아도 바로 들어가면 되길래 봤다.-.-;

 영화는 먼저 유치하다. 북극에 해저 기지를 만들고 인간이 갑옷같은 걸 입으로 로봇처럼 달리고 구르고 싸운다. 자동차는 앞에는 창, 옆에는 작은 로켓이 단추만 누르면 나온다. 몇 사람이 파리를 아주 쑥대밭을 만든다. 만화에서나 가능한 컨셉이 동영상으로 마구 펼쳐진다. 이런 고도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이병헌은 칼을 들고 등장한다. 다른 인물들이 최신 병기로 무장했는데 그의 무기는 아날로그 방식인 무술과 칼이다. 다른 인물들은 엄청난 기계들과 씨름하고 있는 동안 그는 칼에 찔려 죽는다. 그것도 북극 해저에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시츄에이션인가.

또 한편으로 할리우드의 기술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기능들을 시뮬레이션화하는 기술과 자본력이라니....할리우드에서 영화는 철저한 오락이면서 기술의 실험 수단이다. 20세기 초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D.W. 그리피스는 <인톨러런스>에서 바빌로니아 시대를 재현하려고 당시에 상상을 초월한 세트를 짓고 촬영했지만 흥행에 실패해 파산했다. 할리우드는, 그리피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곳이다. 빈곤한 서사력이지만 기술적 실험을 해내는 곳이다. 할리우드의 기술성은 관객 수로 보상 받는다. 극장에 가면 매번 가장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는 것도 할리우드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의 장점인 보편성이 난 싫지만 보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영화가 인간사를 다루어야 한다는, 내 관점과 다를 뿐이다. 맥락없이 사람을 죽이고 도시를 폭발시키는 걸 보면서 감동을 얻으려고 영화표를 사는 사람을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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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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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지 않았고, 아마도 다 못 읽을 거 같다. 어쩌다 더운 날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시기가 안 좋다. 선선해지면 언젠가 다시 읽어보기로 하고 리뷰라기보다는 잡담 좀 적을까 한다.  

르 클레지오야 올 초, <황금 물고기>로 노벨수상을 해서 떠들석했지만 별 관심이 안 갔다. 노벨상 수상작은 사실 재미는 없다. 문학의 여러 가지 기능 중 제일 재미없는 이념이나 관념에 무게를 두는 게 노벨상의 코드규범이다. 물론 문학의 중요한 역할이 소외된 작은 세계를 다루고 집중해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만 노벨수상작들은 훌륭하지만 관심과 감정 이입을 불러오는 데는 좀 약하다. 게다가  알랭 로브그예의 <지우개>이후로 현대 프랑스 문학에 대한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잡다한 지극히 주관적인 이런 데이타로 르 클레지오는 전혀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신문에서 르 클레지오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친한국 작가며 그간의 이력이 독특했다. 한국에 머물면서(이대 교환교인가로 있단다) 서울에 관한 환상소설을 구상중이라는 말에 그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조서>는 그의 첫 작품이고 책 내용 소개를 보니 솔깃했다. 현실 속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는 묘사는 마치 중얼거림처럼 들린다. 바람의 움직임이 주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롱 테이크를 쓰는 영화처럼, 인물의 내면을 외부의 사소한 사물의 존재와 치환시켰다. 사물에 대해 하품날 정도로 자세한 묘사는, 내 의식을 책 속으로 들어가도록 이끄는 게 아니라 딴 생각을 하게 이끈다. 적막하고 열기로 가득 찬 곳에서 빠져나와 내 의식이 어떤 통제를 받지 않고 떠돌도록 내버려두는, 그 순간에 도달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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