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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그램 질로크 지음, 노명우 옮김 / 효형출판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1. 벤야민의 글은, 모호하고 아름답다. 본래 아름다움은 신비스럽나니....다리가 훤히 보이는 미니스커트보다 옆트임이 깊게 있어서 다리가 보였다 보이지 않았다를 반복하는 중국식 옷이 훨씬 자극적이라고, 들었다. 보이지 않을 때 다리를 상상하게 하는 그 힘이 벤야민 글에 있다.
그러니까 난 왜 벤야민의 글들에 끌렸는지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벤야민이 대도시에 가지고 있는 애증이라는 양가적 태도 때문이다. 혼자 벤야민의 수수께끼 같은 글을 (당연히 대충) 읽으면서 혼동스러웠는데 이는 나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저자 역시 이런 양가적 태도에 대해 당혹감을 드러낸다. 벤야민의 텍스트가 해석의 여지가 풍부한 건 이런 모호함 때문이다.
2. 첫부분이 나폴리에 대한 스케치로 시작한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질서정연한 데 비하면 나폴리는 혼돈 그 자체가 당연하다. 나폴리 기후는 거리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걸 부추기고 거리의 활기와 무질서가 나폴리의 독특한 풍경을 이루는 데 벤야민은,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가 살아서 동양을 방문했더라면, 그리고 서울을 방문했더라면, 나폴리의 혼돈 쯤은 아무 것도 아닐 거라고 여겼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서정적 여행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런 감상을 갖게한 건 벤야민의 인용구를 재구성한 질크로 덕분이다.
3. 그리고 보들레르. 벤야민이 프랑스에서 어떤 위지를 지니고 있는지 그닥 아는 바 없지만 아무튼 프랑스는 벤야민에게 감사패 하나쯤은 줘야한다. 파리의 파사주 뿐아니라 보들레를 널리 알린 사람이니까.
후반 삼분의 일은 보들레르 속에 등장하는 군중과 고독을 다시 차용하는 벤야민에 관한 기술이다. 보들레르의 시를 읽지 않고 보들레르론을 읽는 꼴이지만 아쉽게도 집에는 보들레르 책이 한 권도 없다! 그리하여 내가 알고 있는 보들레르의 위치(상징주의 대표시인, 세기말 등등으로 내 뇌 속에는 입력되어 있다)로는 벤야민 해석은 그야말로 반전이다. 물론 시에 벤야민식 해석을 붙이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을 사람도 있겠지만 난 문학이 갖는 서정성보다 사회텍스트적 역할에 훨씬 매혹되는 편이다.
4. 그리하여 보들레르를 다시 읽어보자는 과제를 즐겁게 부과하고, 또 하나는 벤야민 주변을 께속 서성거리는 진짜 이유인데 서울을 어떻게 대립시켜 볼 것인가. 벤야민의 글쓰기 스타일은 장점 없는 내게 대안일 수 있지 않을까. 벤야민 글이 쉽다는 게 절대 아니라 몽타주 기법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해체적이면서도 거칠게 봉합해서 봉제선을 유의미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