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에너미 - Public Enem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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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놓치고 DVD를 애타게 기다렸다. 언제 나오는 지 알 수 없고 파일도 안 올라왔었다. 며칠 전, 자막이 이상하다는 댓글에도 다운받았다. 디비디도 안 나오면서 대체 왜 파일로딩을 왜 금지해놨는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마이클 만의 추종자 입장에서 나쁘지 않은 영화다. 몇 가지만 정리해보면, 

1. 범죄영화를 만드는 데 마이클 만이 할리우드 장르 영화들과 다른 점은, 절대 선이나 절대 악으로 스케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게 권선징악이다. 결국 선은 보상받는다, 라는 틀은 21세기에 먹힐 거 같지 않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판타지를 영화가 구현하니, 이게 또 아이러니하게도 먹힌다. 그러니 할리우드는 계속 권선징악을 찍어댄다.  마이클 만은 이런 판타지를 구현하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크리천 베일이 평면적이라는 둥하지만 난 흥미롭게 봤다. 크리천 베일이 맡은 퍼버스는 공공 선의 집행자가 아니다. 그가 죽어라고 존 딜린저를 쫓는 이유는, 자기 경력에 오점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고의 체포율을 자랑하는 팀의 리더로서의 자존심을 위해 사냥감을 포획할 뿐이다. 

2. 마이클 만식 팜므파탈은, 코믹한데가 있다. 사랑에 빠지는 악당은 <히트>에서 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다. 추적당할 뿐 아니라 일정한 거처도 없고 그러니 자기 소유의 침대나 가구가 없다. 매일 밤 '내 침대'가 아니라 다른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게 악당에게 가해지는 벌이다. 뭐든 살 수 있는 돈을 위해 강도질을 하지만 정작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강도는 이미 벌을 받고 있다. 그런 악당에게 유일한 소유물이 여자=사랑이다. 마이클 만 영화에서 이 부분이 대놓고 마초근성을 드러내 불편하게 하는 부분이기도하다. 쫓기는 중에도 딜린저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전화를 하고 여자가 걱정을 하는 말을 하자 당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해보라고 한다. 여자 왈, "I know you'll take care of me." 이런 식이다. 여자는, 마이클 만 영화에서 개체로서 비춰지기보다는 가장자리에 내몰린 남자 혹은 인간에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대상이다. 그래서 남녀의 소통을 보여주는 사랑이 아니라 굉장히 생경해지고 코믹해진다. 난 이런 관점도 좋다.^^;; 한국영화 정서가 가족이란 테두리에 집착하는 반면 가족에 대한 연대가 희미한 미국에서 여자에 대한 연대로 대체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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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한마디 - Una Palabra Tuy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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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에서 개봉 프리뷰를 위해 개최하는 유럽영화제에서 본 영화다. 보고 싶은 영화라기 보다는 시간이 되고 표가 있는 영화였다. 그닥 떠오르는 말은 없지만 잊지 않기 위해 몇 줄 기록해둔다.    

어린 시절,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사는 로사리오는 주변에서 냉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몹시 감정이입되는 부분이다..^^;;) 냉정함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는 방어기제다. 이 부분에서 잠시 멈칫한다. 나, 역시 이성적이라는 평가를 주로 받는다. 난 뭘 감추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걸까.....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천성을, 대체로 나는 천칭좌라는, 내 운명으로 돌리는 편이다. 객관적으로 이성적인 인간이 비이성적 태도를 갖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로사리오는, 모든 사람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고 대한다. 그녀에게 절친이나 남친의 개념은 일반적이지 않다. (요것도 몹시 공감된다 @.@)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부분이 이성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필요할진대, 그녀가 이성을 버리고 감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좀 지루하게 설명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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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 - Little As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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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 근교 출신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짧은 생애를 담은 영화다. 제목만 보고 살바도르 달리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더 흥미롭게도 로르카의 이야기다. 스무 살 무렵, 달리를 보고 첫 눈에 반한다. 달리에 대해 우정이라는 도덕과 사랑이라는 욕망이 동시에 휘몰아친다. (이 부분은 꽤 놀랐는데 달리가 밝힌 바에 기초한다는 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두 시간 분량으로 압축하는 일은, 보람없는 일처럼 보인다.

 

달리가 루이스 부뉴엘을 따라 파리로 가면서 둘의 관계의 소원해진다. 학창시절 친구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길로 들어가는 자연의 섭리대로 두 사람은 점점 다른 곳을 향해 질주한다. 로르카는 참여문학의 길로, 달리는 탐미적이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한다.

 

영화는 소재를 제외하면 관습적이다. 연대기 순이며 달리, 로르카, 부뉴엘이 등장하지만 세 사람을 평면적으로 묘사했다. 각 인물의 특성만을 잡아서 단편적으로 담았다. 부뉴엘은 다혈질이고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고, 달리는 편집증을 지닌 피터팬처럼 보인다. 세 거장을 영화 한 편에 담으려는 부작용처럼 보이기도 하고.

 

로르카의 이야기니, 종종 등장하는 로르카의 시구절들이 미덕이다. 어제 영화를 보고 와서 로르카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을 다시 펼쳐봤다. 스무살에 남부지방을 여행하면서 쓴 기행문인데 이 영화가 주로 다루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물과 풍경을 바라본 인상을 묘사하는 글모음이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들 속에서 부서지는 햇살처럼, 로르카의 문장들은 눈부시게 투명하면서도 적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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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 음반에는 말이 필요없으며 리뷰는 더더욱 필요없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조이 디비전의 음반은, 자판을 두드리고 싶게 만든다. 모던 락하고는 깊이가 다르다. 모던 락이 대체로 기분을 업시켜 주는 효과가 있는데 조이 디비전의 곡들을 듣고 있노라면 끝없는 심연으로 끌려들어가는 기분이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전체적 사운드와 이따금씩 두드러지는 드럼과 기타소리, 그리고 이안 커티스의 목소리....빠른 비트 속에서 공명하는 우울은, 시월 볕의 밝기와 바람 세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요즘..우울하다.

2. 

조이 디비전을 알게 된 건 <컨트롤>이란 영화를 통해서였다. 이안 커티스의 일대기를 담은 흑백영화다. 음악영화라는 게 다른 요소들이 후져도 음악 하나만으로 일단 기본 점수는 깔고 들어간다. 이 영화 역시 완성도가 뛰어나진 않지만 이안 커티스의 매력과 조이 디비전의 음악에 대한 찬사를 끌어내기에는 충분하다.   

 

3.  

재킷 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짐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을 비디오 클립같기도 하고 트뤼포의 <쥘 앤 짐> 장면 같기도 하다. 아래쪽 여분이 많고(눈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쪽에 피사체를 오밀조밀하게 몰아넣은 구도, 나도 한 번 따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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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 Marie-Antoi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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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는 2% 부족하다. 전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도 아주 형편없진 않지만 공감하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낯선 땅에서 혼자라는 감정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불안과 초조는 충분히 설득력있었다. 그러나 이 설득력을 깔아뭉갠 게 동양을 스펙터클화했다. 일본에서 맞닥뜨린 언어장벽을, 우스꽝스럽게 카메라에 담는다. 물론 유머지만 위트는 빠져서 동양인의 관점에서는 좀 불편한 유머다. '아륀지' 운운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일본인의 발음을 조롱하는 게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 무슨 갑작스런 연대감인가, 도 싶지만 낯선 나라에 대한 애정이 보이질 않는다.

이 영화 역시 기획의도나 시도는 꽤 신선하다. 부르봉 왕조의 몰락 중심에 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재조명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다른 관점으로 접근한다. 여성 감독답게 왕비 이전에 한 집안의 딸이며 한 남자의 아내라는 보편적 시선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를 바라본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볼모로 프랑스 왕실에 시집와서 남편의 냉대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지름신의 충실한 신도로 거듭난다. 눈은 즐겁지만 미국영화의 전형이며 또 감독이 미국인, 그것도 영화 왕족 출신이라는 걸 환기시킨다. 씨네21 한 블로거가 '소녀적 취향'이라고 했는데 완전 동의한다.  

두 편의 영화를 봤을 때, 소피아 코폴라는 근본적으로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힘든 일 혹은 권태를 이겨내는 방법으로 쇼핑이나 사랑을 택하는 걸 보면 좀 더 연륜이 쌓여야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성찰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쌓이는 게 아니니(대표적 인물이 명박되시겠다) 소피아 코폴라는 감독, 혹은 예술가로서 중요한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 신은 공평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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