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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ㅣ What's Up 4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08년 8월
평점 :
80년대 서구에서 포스트모던 담론이 한창이었다. 우리는 80년대 포스트모던 담론을 받아들였다. 포스트모던 담론과 함께 우리는 서구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눈다는 착각을 했다. 그리고는 90년대가 막을 내릴 때쯤 IMF가 터졌다. 우리는 휘청거렸다. 포스트모던 담론을 함께 논하던 동지들은, 우리의 국제 신용도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IMF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고 참여정부에 이르러 정치 민주화는 가시적인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우쭐했고 동시에 무질서했다. 우리는 다시 공안정국을 원했다. 포스트모던 담론을 논하다가 계몽주의로 다시 역행했다. 퇴행이 일어날 때까지 우리는 비극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이유를 나는, 부재한 근대에서 찾는다. 근대modernity는 계몽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우리는 계몽주의 한계를 벗어나는 고통없이 바로 근대가 던져 준 풍요의 겉모습만을 사랑하는 탈근대로 직행했다. 우리는, 요즘 근대를 진정으로 겪고 있는 것 같다. 일괄적 계몽이란 억압을 직면하고 우리는 다시 근대적 자유를 그리워하고 있다. 풍요와 정체성 사이에 괴리를 직시하고 극복하고 나면 우리는 다른 범주로, 마법이 일어난 것처럼 이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바우만은 근대를 '쓰레기'란 키워드로 풀어쓰고 있다. 쓰레기waste는 중의적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는 폐기물, 존재하지만 가치가 없는 잉여outcast에 대한 신랄하고 통쾌한 고찰이다. 근대는 자본주의에 대한 예찬과 함께 자본주의/소비주의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오늘은 유용하고 필수불가결한 물건들도 극히 일부의 예외를 빼면 내일은 쓰레기가 된다. 어떤 것도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은 임박한 죽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고, '사용기한' 딱지가 붙어 생산 라인을 떠난다.....유동적 현대는 과잉, 잉여,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의 문명이다."
그러니까 풍요는 쓰레기를 낳는 운명이다. 작은 내용물의 물건도 포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회. 하나의 물건이 팔리기까지 생산자과 소비자의 관계 속에 운송과 유통, 마케팅이라는 여러가지 사다리를 거쳐야한다. 화려함에 유혹당하고 실속없는 알맹이에 실망하고 다시 유혹당하고 실망하는 주기가 점점 가속된다. 쇼핑을 하면할수록 공허해지는 이유다. 모든 계몽과 선전에는 이면이 있나니 이면을 보는 눈을 가진 자는 잉여라는 딱지와 함께 공허한 순환에서 이탈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으니, 바우만의 쓰레기론을 읽고 얻을 수 있는 위안이라 하겠다.
덧. 바우만의 시각이 새롭기 보다는 바우만의 글쓰기 스타일이 흥미롭다. 에세이 형식인데 표현력이 죽인다. ㅋ 글감이 없다고 찡찡대는 건, 관찰력과 통찰력이 부족하다는 걸 드러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