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 Flandr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허진호 감독이 <호우시절>을 착상한 계기가 쓰촨성의 폐허를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갔다고 한다. 브뤼노 뒤몽 감독 역시 이 영화를 찍기 전에 플랑드르 지방을 먼저 결정했단다. 감독들은 대단하다. 뭘 말해야할지를 어디서든 떠올리니...그의 말대로 전쟁이란 주제를 익숙하게 다뤘다면 이 영화가 눈에 띌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의 피폐함을 다루는 방식 때문에 이 영화가 기억되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의 이라크전 파병시점으로 영화 속에서 짐작할 수 있다. 눈 쌓인 겨울에도 플랑드의 목초지는 푸르다. 고요하고 풍요로운 마을 출신의 남자들이 이라크 전에 참전한다. 사막지형이고 폐허고 사람들은 마르고 앙상하다. 군복이 아닌 민방위대쯤 돼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민가를 덮치고 닥치는대로 총을 쏜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마을 출신의 젊은이들은 피에 굶주린 듯이, 성찰이나 자기반성을 금기시한다. 대열에서 낙오된 그들에게 삶을 위한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들이 죽인 사람이 고향에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걸 아는 순간, 그들은 죽을 수 밖에 없다. 할리우드라면 이런 지옥을 난무하는 총질과 미장센으로 승부를 봤겠지만 브뤼노 뒤몽 감독은 개인의 행위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평화로운 그들의 고향에 남겨진 젊은 여자들이 겪는 내적 변화에 주목한다. 전쟁은 참전한 사람이나 남겨진 사람 모두의 정신을 흔든다.  

유일하게 살아돌아온 앙드레는 건조한 시선을 유지했다. 마지막에 친구의 죽음을 담담하게 말하고 자신이 부정했던 가치를 인정하면서 목소리가 떨린다. 그는 확실히 변했다. 영화는 전쟁이 플랑드르 사람들의 변화만을 담지만 영화 밖 이라크 사람들 역시 변했을거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그들은 그 변화를 지금도 이겨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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