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싸우겠다는 것 맞나" 노조 집행부·PD 충돌


"3월 2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 돌입" vs "언론악법 통과된 다음 싸울 건가"


기사입력 2009-02-27 오후 3: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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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KBS) 노동조합(위원장 강동구) 집행부와 KBS PD들이 충돌했다. 한나라당이 신문법·방송법 등 언론 관계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기습 상정한 상황에서, 양측은 'KBS 노조 집행부가 언론악법 반대 투쟁에 나설 의지가 있느냐'를 놓고 고성이 오가는 격렬한 갈등을 보였다.

KBS 노조 "3월 2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 들어가겠다"

KBS 노동조합은 27일 서울 여의도 KBS 사옥 1층 민주광장에서 '미디어악법 날치기 상정 규탄 결의 대회'를 열었다. 점심시간에 이날 대회를 연 KBS 노조 집행부가 12시 45분께 "시간이 없다"며 행사를 마무리하자 이 자리에 모여있던 PD들이 "조합원의 이야기도 듣는 시간을 가지자"고 강하게 반발했다. KBS PD협회는 이날 집단 대휴 투쟁을 벌였으며 2일부터 전면 제작 거부 투쟁을 결의한 상태.

이날 KBS 결의 대회는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 김윤창 노조 중앙위원, 최재훈 부위원장의 발언으로 이어지며 간략히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강동구 위원장은 "언론 악법 저지를 위해 3월 2일 전국 조합원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이날부터 미디어악법 저지 위한 총파업 찬반 투표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KBS 내부에서는 KBS 노조 비대위가 지난 24일 '문광위 직권 상정시 총파업 찬반투표에 돌입한다'는 제안을 부결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KBS노조 집행부는 실제 싸울 의지가 있느냐'는 여론이 격앙된 상태. 특히 다음날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언론 관계법을 기습 상정하고 MBC노조를 비롯한 전국언론노조가 전면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KBS 노조 탈퇴할 수도" 발언에 강동구 자리 박차

결의대회가 시작된 지 채 40분 만에 노조 집행부가 결의 대회를 마무리지으려 하자 PD들은 "조합원의 이야기를 이야기를 들으라", "3월 2일부터 총파업 찬반 투표를 벌여 언제 투쟁을 하겠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KBS 노조 집행부도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앞줄에 앉아있던 강동구 위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하라"고 고함을 쳤다. 또 한 집행부원은 "강동구 위원장이 총파업 찬반투표 하자고 하잖아"라며 격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 KBS PD들이 결의 대회를 마무리하려는 KBS 노조 집행부에게 항의하고 있다. ⓒPD저널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주장을 거듭하던 노조 집행부는 이들의 반발에 "조합원들의 의견 얼마든지 듣겠다"고 마이크를 내줬다. 이에 한 교양국 PD는 "이런 자리에 나온 적도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린 적도 없지만 너무 화가 나서 나왔다"면서 KBS 노조 집행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 진행되는 상황을 묵과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송의 자존심,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을 다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노동조합이 힘이 되고 노조가 앞에 나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미디어법이 본회의에 통과되면, 다 끝나고 나면 그때야 파업 찬반 투표 한다는 것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토의해야 할 상황인데 너무 한가한 것이 아닌가. 조합원들이 다 나가자고 하는데 노조가 제일 앞에 서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 KBS 노조가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PD협회 전원은 노조를 탈퇴할 것이다."

이에 기분이 상한듯 강동구 노조위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KBS 사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에 KBS 조합원들은 한 번 더 반발했고 한 라디오 PD는 "아무리 자기가 싫은 소리가 있다고 해도 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조합원을 '개똥'으로 아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또 조합원이 말하는 도중 일어나거나 조합원이 말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면 위원장은 우리의 위원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강동구 위원장은 KBS 사내게시판이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상윤 PD는 KBS 노조 집행부에게 "우리가 공영방송법과 언론악법을 통합해서 대응한다고 하면 한나라당이 통합해서 처리해주느냐"면서 "결국 KBS 노조 말대로 하면 투쟁 못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 조합원들이 의구심을 갖고 말로만 싸우고 실제는 저쪽과 야합해서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제작 거부라도 해 거리로 뛰어나가서 MBC 노조와 연대 투쟁하고 해야한다"고 했다.


▲ 김덕재 KBS PD협회장이 "PD들의 제작 거부를 부분 파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PD저널

"KBS PD 제작거부, 부분파업으로 인정하라"

결국 KBS PD들의 반발을 김덕재 PD협회장이 정리했다. 김덕재 협회장은 "이런 모양새까지 나와서 곤혹스럽다"면서 "KBS PD들과 노조 의 정세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나서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PD협회는 노조가 진행하는 비상총회와 총파업 찬반투표에 모두 참여할 것이나 KBS PD협회는 자발적으로 2일부터 전면 제작 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면서 "노조에 정식 요청을 드리겠다. PD들이 벌이는 제작 거부를 부분 파업으로 인정해 달라"고 했다.

그는 "노동조합도 파업을 위해 투표하는 것 아니냐. 결과야 뻔하다"면서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 스피드 아니냐. KBS 전체가 부응하지 못한다면 PD부터 가겠다. 노조 비대위에서 PD들의 제작 거부를 구역별 부분파업으로 인정해달라. 그러면 속도에 부응할 수 있다"고 재차 촉구했다.

그는 PD협회가 26일부터 자체적으로 진행 중인 설문조사 결과도 밝혔다. 그는 "중간 집계 결과 전국의 KBS 피디 약 940명 가운데 618명이 응답했으며 그중 언론 관계법에 대해서는 595명, 96.3%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또 KBS가 파업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46명, 88.3%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KBS PD들의 제작 거부를 부분 파업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에 민필규 KBS 기자협회장도 동의하고 나섰다. 민필규 협회장은 "PD들이 제작 거부에 돌입한 이상 노조는 조합원을 보호하는데 최대한 앞장설 것을 요구한다"며 "지난번 징계 철회 투쟁에서 우리는 봤다. 조합원을 보호하지 않는 조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부분 파업 인정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있고 충분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라고 재차 촉구했다.

이어 그는 "4월 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은 언론 관계법 처리를 3월 임시국회로 넘기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의 처리는 다음주 월요일일 가능성이 높다"며 "집행부는 한나라당이 월요일에 언론 관계법을 통과시킬 경우의 대책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채은하 기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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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서울에 갔다. '퐁피두전','클림트전'을 보러 간 것이다.  오랜만에 매번 아이옷을 보내주는 친구도 만나기로 했단다. 예찬이가 입고 있는 옷의 90%는 아내의 친구집에서 나온 거다. 옷도 모두 괜찮은 브랜드들이고 ,아내 친구의 눈썰미도 나쁘지 않고... 가장 중요한 뭘 입혀도 태가나오는 예찬이 덕에 두루 두루 둘째 아이까지 옷값은 거의 굳었다. 그 친구에게 줄 선물 하나를 가지고 아침 9시 ktx를 타고 올라갔다. 예찬이와 부산역까지 함께 가서 배웅해 주고 왔다. 나는 피곤할테니 하루 자고 오라고 했는데 오늘 밤에 내려올 생각인 것 같다. 장인어른의 고집을 매번 뭐라하면서 본인도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내가 못이긴다.  

낮에 집 앞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갔다. 걸어서 5분거리에 도서관이 하나 있다. 예찬이가 그 동안 도서관에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더니 지난 주 부터 좀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낮시간에 그닥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것 저것 책을 함께 읽고-주로 자동차 책- 세 권을 빌려서 돌아왔다.   

오늘 진짜 오랜만에 토요일 신문을 봤다. 회사에 가지 않는 토요일, 마지막으로 종이신문을 본게 언제적인지 가물가물하다.  

 목점 기세춘 선생의 <묵자>가 다시 모양새를 갖추어 나온 모양이다. 알라딘의 아프락사스님은 '묵자' 팬이다. 아마 그의 페이퍼에도 곧 오르지 않을까 싶다. 묵자를 처음 배웠던게 대학 1학년때다. 동양철학사 시간이었던것 같다. 꽤나 진지하게 묵자에 대해 들었고 또 관련 책도 읽었다. 최근의 아나키즘적인 생태주의같은 것들에서 묵자의 사상적 잔재들을 보곤 한다.최근에 묵자에 대한 바람구두의 지적에-그것은 전통적으로 유가에서 나온 지적이기도 하다- 나는 거의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기세춘 선생의 <노자> 역시 오래전에 읽기로 해 놓고 다시 손대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도 언제나 읽게 될런지 모르겠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 30권째는 <벤야민 & 아도르노>이다. 이 책의 짧은 리뷰가 한겨레에 실렸다. 주로 대중문화를 둘러싼 관점으로 이 둘 사이를 구분한 듯 하다.이런 접근 역시 친숙하다. 대학때 '대중문화사' 시간에 이 둘을 그런 식의 비교를 통해 배웠던 적이 있다. 그 때의 기본 텍스트가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품> 당시에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에 들어있던 내용이었다. 발터 벤야민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비판이론의 선구자였던 프랑크프르트학파 1세대인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대해 무적이나 부정적이었다. 재즈같은 것들은 음악 취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클래식음악과 관련되서는 상당한 수준의 성취를 거두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음악은 사회적이다><말년의 양식>등에서 아도르노의 영향을 계속 강조하는 것도 그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대중문화에 대한 아도르노의 견해를 말하는 것 같다. 그는 대중문화를 거의 대중의식의 몰핀정도로 취급했다. 하지만 요즘의 추세는 대중문화의 '수동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입장이 가장 지배적이다.  

 책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 돌아봤다. 히말라야에 학교를 지은 등반가의 이야기이다. “한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이방인이다.두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손님이다.그리고 세 잔의 차를 함께 마시면 당신은 가족이다.” 저자는 동생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히말라야에 갔다가 그들의 가족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과의 약속-학교를 지어주겠다라는-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자신의 모든 삶을 쏟아 붇는다. 어떻게 보면 무모하고 감상적인 짓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간의 열정이 아름다운 것은 그 무모함 속에 어떤 기적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80개 이상의 학교를 히말라야에 세웠다. 그리고 그 운동이 자신의 삶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어떤 스포츠 회사의 광고가 생각난다.  "impossible is nothing"  내게 필요한 것도 그게 아닐까. 이 책은 그닥 어려워 보이지 않아서 영어로 읽어보고 싶다. (며칠 전 부터 <The Reder>를 영어로 읽고 있다. 지난 번에 혼자 서울갔을 때 반디엔 루니스에서 샀다. 그 책이 영화로 만들어졌단 이야기를 듣고 책을 펴봤는데 좀 쉬워보였다. 나중에 이게 영문학이 아니라 독문학이라는 걸 알았다는..^^  실제로 별로 어렵지 않다...)   

<재즈문화사>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약력이 정말 간단하다. 거의 아무 약력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점에서 책을 대충 열어봤다. 딱 한가지 떠오르는 생각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아마추어의 열정'이었다. 저자 역시 무슨 대단한 평론가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재즈 애호가라고만 말한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깊은 밤 울려퍼지는... '식으로  감상에만 의존하는 글들은 아닌듯 했다.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감상적이지도 않은 수준의 재즈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듯 하다. 책의 표지는  아니다. 그냥  디자인이 없다면 흰 바탕에 예쁜 까만 글씨로 재즈문화사 라고 쓰는게 훨씬 나았을 정도다.  

<열려라 우리몸>, 오늘 어린이 도서관에서 예찬이화 함께 읽었던 책 중 하나다. 인체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다. 예찬이가 보기에는 좀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안의 구성이 아이들이 직접 움직여볼 수 있어서 부모의 설명만 있으면 즐겁게 놀 수 있는 책이다. 예찬이에게 뼈와 심장, 신경에 대해 설명해 주었는데 조금 있다가 혼자서 다시 책을 넘기면서 '아빠..이건 뼈지요. 이건 신경이지요' 한다. 그래 가는거다. 하버드 의대. 흐흐흐... 돈많이 벌어야겠는걸 ㅜㅜ 

 <108번의 내려놓음>이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108배에 대한 프로그램을 다룬 적이 있었나보다. 생각해보니 재미있는 접근이었다.나는 불교신자가 아닌 고로 태어나서  단 한번도 108배를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기독교를 때려치우며 불교에 관심이 간 적도 있고, 예전에 어설프게 공부를 한 적도 있다. 그저 교양수준의 공부다. 108배가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는 몇 달 전 아내에게 들었다. 아내는 천주교신자다. 완전히 날라리 신자. 연애때는 나 구경시켜준다고 몇번 간 적 있고, 결혼하고 성당에 구경만갔다. 연애할 때 청주 인근에 있는 '내수성당'을 좋아했다. 크지 않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당이다.(몇 년전에 다시 건물을 봉헌한 듯 한데..지금도 아름다울지는 모르겠다) 108배 이야기하다가..왠...김수환 추기경때문이려니...  하여간 108배에 최근에 급관심이 간다. 하루 15분이면 몸과 마음이 좋아진다는데...물론 처음하면 발다리가 욱신거린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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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만료로 인해 회사 노조가 새로운 위원장 선거에 들어간다. 요즘처럼 '무지 잘해도 본전인 상황'에 누가 후보로 나서겠는가? 결국 1차 추천기간을 넘기고 연장 기간을 동안 한명의 후보가 나왔다. 그나마 다행이다. 물밑에서 새로운 집행부 구성이 논의되는 듯 하다. 내게도 제안이 왔다. 사무국장직이다. 노조 내 랭킹으로 보자면 넘버3다. 임단협에도 참석해야하고 위원장이 상급 노조 차원의 문제로 외유가 잦기때문에 실제적으로 역할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언젠가 위원장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아마 선배들 중에서 내가 그동안 왈왈거리니까 할 만하다 싶어서 추천을 한 듯 하다. 문제는 내가 최근 회사는 물론이고 이 회사의 조직운동자체에 상당히 많이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걸 알턱이없다. 나는 가끔 후배와 이야기할 때 과장되긴 하지만 '환멸'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나는 제의를 거절하면서 솔직한 내 현재 상태를 설명해야만 했다.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평소 희생양에게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다. 물론 조직 내에서 내가 최근에 갖는 일조 피해의식 같은 것 일 수도 있다. 복잡한 내용을 모두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전혀 타당성없는 일방적 오해만은 아니다.  

일단 내가 너무 완강하니까 잠시 물러서긴 했다. 그리고 한 선배는(그나마 그동안 나랑 가장 의견이 같았던 선배다.) 내게 소박한 이런 문자를 남겼다. "너의 고민이 인간에 대한 애정과 노동에 대한 긍정의 토대에서 함께 하길"  

좋은 말이다. 내게 만약 6개월전에 이런 제안이 들어왔다면 나는 수락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좀 지쳤고 누적된 실망에 몸살이 났다. (격려나 위로는 필요없다. 몸살은 그냥 쉬면 낫는 병이다.)  

 사실 내게 반MB나 촛불집회등은 기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설득이 필요없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당연스러움'의 부분은 내게 '강조점'이 아니다. 내게는 그런 다음의 '성찰'이 더나아가야 하는 지점일 뿐이다. 그런데 가끔 나를 흥겹게 만드는 것은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와서 '반MB하세요' 라고 전도하는 거다. 이건 마치 '독실한 기독교인에게 '예수 믿으세요. 주일에 교회 꼭가세요. 천당갑니다.' "라고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조직운동을 하는 것은- 노조든 시민단체든 일단의 운동조직에 들어가 있는 것은 - 시위대에 끼여 있거나 틈틈히 정치후원금을 내는 것과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히 개인의 의지/조직의 선택 사이에서 간극이 발생할 때 무척 피곤해진다. (몇 달전인가 나는 알라딘에 한 분에게 그런 류의 전화를 받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단 이미 답을 본인이 알고 있다는 것 정도만 일깨워 줄 뿐이었다. 그 답을 스스로 명징하게만 만들면 되는 거다.)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기때문에 이런 선택의 상황에 예술적으로 대처를 해야한다. 조직운동에 있어서 가끔은 '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길을 지지하고 추진해야 할 때도 생긴다. 그 타협의 폭이 너무 커지면 그 조직운동 내에서 견디기 힘들어진다. 나는 아마 이런 걸 이미 예견하고 피하는 것같다. 특히 내가 별로 이 회사에 애정이 없다는 것과 구성원들의 답답한 수준같은 것들도 영향을 미쳤다.  

분명 이 지점은 정치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지점임을 나는 안다. 조직운동을 하려면 유연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타협의 길을 가야한다. 또한 구성원들의 성향이 늘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 때로는 반동적이라는 것 역시 담고 가야한다. 그 모든 '토대'를 인정하고 가야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게 바로 '믿음과 애정'이다. 문제는 최소한 내가 이 조직에 그런 '믿음'도 '애정'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상에서의 전투에서 외연으로 물러나는 거다. 결국 가까운 적들과는 싸우지 않고-높은 놈들은 머리에 똥이 차고 사욕으로 더럽고 치사한 거고 가까운 놈들은 못미더우니까- 국운을 걸고 멀리 있는 MB를 몰아세우는 '촛불의 투사' 내지는 '성찰적 키보드 워리어' 가 되어주면 된다. 그게 뭐 그렇지 라고생각하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내 스스로 이런 부분에서 약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이성적으로 말이다. 높은 놈들이 똘보수여서 어쩔 수 없는 공간도 있다. 맞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나직히 있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야지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몸을 최대한 낯추고 있더라도 변명으로 낮추고 키보드의 워리어가 되는 것과 부끄러움으로 낮추고 투사가 되는 것은 다르다. 몸살이라는 변명과 부끄러움이라는 변증법 사이에서 그길로 가려고 하는 거다. 그러니 이 아니 부끄럽겠는가.  이 아니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겠는가.

나같은 자유주의자들-언젠가 내가 자유주의를 비판해 놓고 스스로 자유주의자라고 한다는게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유의 개념파악이 잘 안된거다. 내가 비판한 '자유주의'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말이다. 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여러 가치 정체 중에 하나이다. 자유민주주의 내에서는 이걸 '자유주의'대 '공동체주의'로 나누어 이야기를 한다. 거기서 '자유주의'의 극단에 '상인적 자유주의'가 있다. 그러니까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좌파인 척 하는 내가 '자유주의'란 말을 하니 이해가 안될 거다. 그런 논리로 따라가면 좌파는 몽땅 '집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 이해가 잘 된다. 내가 말한 '자유주의'의 '자유'는 소극적이면서도 인간실존의 근거가 되며, 또  미학적이기도한 '자유'이다. 쉽게 말해 '리버럴 소셜리즘'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스탈린처럼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것 만이 좌파가 아니란 거다. 마르크스가 사회해방이라는 측면에서 누구보다 '자유'를 중요시했다는 걸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알면 알고 말면 말고) 내가 학교 다닐때 아주 작살나게 싫어했던게 운동권 내의 그런 집단주의적 맹아들이었다.  

그러나 변혁운동에서 '조직'은 또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한다. '조직'이란 말이 구태의 냄새가 난다면 '단체'라고 하자. 어떤 목소리들은 그런 결사의 형태를 통해 반영된다. '다중'에 대한 왜곡되고 몰지각하고 비현실적 이해는 '조직부정론'이다. 직접적으로 '다중론'이 조직부정론으로 간 적은 없다. 대신 다른 강조점을 말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좀 변화되는 경향성을 말한 것이다.그렇기때문에 너무 강조하다보면 도를 지나쳐서 나아갈 수있는 함정도 있는 법이다.포스트 포드주의 시대에 그런 새로운 주체양식이 나온다하더라도 노동현장에서 또 조직 내부에서 '저항 세력'으로서의 '대항 조직'의 역할은 마비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까운 내 일상 투쟁의 거점이 된다면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스스로 몸살을 핑계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무너진 집이라서 못하겠다는 꼴이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뭐가 잘된 집안이라면 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쪽팔린 거다. 그런데 좀처럼 이 놈의 회사와 조직에 애정이 안생긴다. 그러니 계속 좋은 책이나 읽고 리뷰나 쓰고, 노조 뒷줄에서 가끔 손이나 들고,알라딘에서 거국적 차원의 분노에도 참여하고 할테다. 그나마 변명되는 것은 그동안의 회사 노조는 '타협적인 단체'였다는 것이다.노조 집행부역시 노조를 '이익단체'정도로만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다르다고 늘상 초기에는 말하지만 결국 욕안먹은 노조위원장이 없다. 임협하다가 안풀리니까 그 중대한 순간에 대충 도장찍고 1주일간 휴가를 가버린 위원장도 있었다. 오죽하면 자기가 잘했다고 늘상 떠벌이는 노조위원장 출신 모인사는 지난번 파업결정때(실제 아무것도 한건 없지만) '너네들 그런 식으로 해봐'라는 투로 팀원들에게 말을 했다. 그러니까 여기 노조가 내가 말하는 그런 운동의 전위로 작동한적은 단 한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우리 회사 노조에 삐딱하더라도 덜 미안하긴 하다. 어쨋거나 그럴싸하게 이야기하면 두 개의 층위의 싸움 중 하나로 부터의 퇴각이다. 그런데 폼 나게 이야기해도 쪽팔린 건 가시지 않는다. 편안한 싸움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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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리즘의 문화정치
스튜어트 홀 지음, 임영호 옮김 / 한나래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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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처'를 처음 보려고 했을 때 현재적 의미의 작용점은 MB정부였다. 물론 오래전 역사의 이불 속에 들어있는 추억을 다시 꺼내는게 현재 무슨 도움이 될 것이냐는 생각도 있었다. 또한 우리와 다른 정치환경 속에서 발생한 일인데 어떤 적용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읽기'를 한 것은 30년전 영국에서 발생한 일을 그대로 가져와서 한국이라는 주형에 억지로 맞추기 위함은 아니다. '타산지석'을 '나는 그렇지 않지만 남들은 다른 산의 돌을 그대로 가져다 옮겨놓는다.'라고 이해하는 방식은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것이다. 러시아 혁명이든 68혁명이든 아니면 어떤 역사든 우리가 읽고 공부하는 것은 그것으로 아이디어를 얻고 성찰하려는 것이다. 결코 그것의 클론을 이 땅에 이식하려는 행동은 아니다. (일부에서 그런 이식작업으로 밥벌어 먹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를 읽다보면 커다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그것은 대처와 MB를 직접 대입하려는 유혹이다. 기본적으로 MB는 대처가 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대처가 실시한 정책과 철학의 큰 틀은 MB의 그것과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기업하기 좋은 사회, 민영화, 복지정책의 축소 등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처읽기'를 하다보면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자꾸 연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이자- 또한 희망은- MB가 대처만큼 '헤게모니적'이지 않다는것. 그만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여간 '대처리즘'과  MB노믹스'의 유사한 점을 중심으로 폭로성 리뷰를 쓰고 싶어지기도 한다. 나를 유혹한 방식은 그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마 알라딘의 추천이 몇 개는 더 늘겠지만 나는 그런 유혹을 물리친다. 이유는 스튜어트 홀이 이 책에서 그람시를 경유하여 그런 기계적 대입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세와 국면'이란 것이다.  

이 책의 글들은 '철의 여인'이 몰락한 제국을 지배하던 시기에 씌여진 현장성 있는 글들이다. 때문에 후반부에가면 중복되는 느낌을 받을때도 있다. 스튜어트 홀은 먼저 대처리즘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전에 '대처읽기'에서도 몇 번 쓴 내용이어서 자세히 반복하지는 않겠다. 스튜어트 홀은 대처리즘을 두 가지의 모순적 결합체로 이해한다. '퇴행적 근대화'와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이다. 앞의 것을 상징하는 구호가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가자'였다. 경제 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라는 개방 정책을 택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과거의 전통적 가치를 수호하는 도덕운동 성격을 갖는다.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은 스튜어트 홀이 풀란차스의(이 책에서는 풀랑자라고 번역한다.낯설다.) '권위주의적 국가주의'라는 개념에서 빌어온 것이다. 풀란차스의 개념은 '민주적 계급 지배의 외형들은 건드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스펙트럼에서 강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강제/동의의 새로운 조합'(p300) 을 말한다. 스튜어트 홀은 이 개념에 몇 가지 국면적 비판을 가하고 난 이후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authoritarian populism)이란 용어를 만든다. 

스튜어트 홀의 '대처리즘 분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대처리즘을 '헤게모니 전략 프로젝트'로 이해한것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튜어트 홀의 이데올로기 개념에 대한 선 이해가 필요하다. 홀은 '이데올로기 간의 인정투쟁과 헤게모니를 얻는 과정'을 (광의의)정치로 본다. 즉 대처는 단지 집권을 하고, 신자유주의를 영국사회에 이식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처와 당시 집권 세력의 꿈은 그것보다 원대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영국의 재구성', '상식의 재구성'이다. '대처리짐의 역사적 프로젝트는 정치지형의 재구성,재정의 하고,정치 세력들 간의 균형을 바꾸어 놓으며,새로운 종류의 대중적 상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이를 통해 시장,사적,소유적,경쟁적, '인간/남성'이 미래에 어울리는 유일한 방식들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p397 )  이를 위해 대처는 아주 긴 시간동안 그리고 집요하게 이 문제를 추진해왔다. 그리고 대처의 집권기동안 영국은 어떤 형태로든 변한다. 이제 그 변화는 좌파든 우파든 현실로 인정하고 갈 수 밖에 없는 토대가 되어 버린다. 대처 후 블레어의 동당은 상당부분 대처리즘 하의 노동당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스튜어트 홀의 기본적인 목적은 '좌파의 갱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홀의 작업은 대처가 숙성할 수 있었던 영국 사회의 토양과 노동당 내부와 좌파의 경직성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덴다.  

영국은 전후 '조합주의'가 하나의 사회적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기본적으로 정도는 나르지만 케인스주의라는 휘장아래 손을 잡았다. 문제는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노동당의 이념이 '대중'으로 부터 멀어진 '의회주의'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에는 파비안주의의 흐름이 강했다. 파비안주의는 그람시가 말한 위로부터의 혁명 즉 '수동혁명'의 변형판이다. 결국 노동당은 정도는 다르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빠졌던 가장 큰 함정인 '국가주의'에 함몰되고 만다. 변화하는 사회구성체의 성격을 외면한 노동당의 국가주의는 '관료제'성격을 띠게 된다. 여기에는 당연히 비효율의 문제와 정책집행기관과 대중 사이의 괴리가 발생한다. 대처는 이 지점을 놓치지 않는다. '집단주의'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인의 힘'을 강조하는 '자유'의 가치를 가지고 대중들의 상식을 장악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대처는 노동당 보다 오히려 더 그람시의 '블록'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노동당이 경제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고 홀은 지적한다. 즉 '노동계급=노동당'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만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정책의 집행방식 역시 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홀은 -계급을 부정하진 않지만-그람시를 인용하여 여러가지 욕망과 이해의 상관관계가 불균형하게 규합되는 '역사적 블럭'을 대입한다. (가끔 분기탱천한 이런 류의 글을 본다.  왜 '계급투표'를 하지 않지? 답답하네...라는 식의 댓글들 말이다. 대개 전통좌파의 설명방식은(또는 계급 개념에 별 생각 없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 조차) '대중들이 스스로 계급의식이 부족해서.또는 지배집단이 헤게모니작업을 통해 그들이 올바른 생각을 갖는데 방해를 하고 있기때문에..라는 식이다. 그러니까 '거품'을 물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지적이 전혀 거짓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계급'문제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왜 다른 계급에 투표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사실 좌파들이 그람시의 블럭개념을 모를이 없다. 그런데 그런 대답을 하는 것은 지키고 싶은 다른 무언가에 대한 욕망때문이다.물론 이는 내가 가진 '비본질주의적'입장에서 하는 말일 뿐이다.) 노동당이 전통적 좌파의 중심인 남성중심의 노동자 지지층에 기댄 반면 대처는 이미지 표상의 선두에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내세운다. 대처 스스로 그런 집안 출신이었기때문에 누구보다 강한 흡입력이 있다. 그리고 대처는-가장 능했던 방식인데-맥락의 단순화와 부정적 극단화를 통한 개념의 재배치구도로 만들어낸다. 즉 나른하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국가의 틀에서 안주하고 파업이나 하려는 노동자들과 맘모스처럼 거대해진 국가적 기업들 속에서 자기의 가정과 성공,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 이런 식의 대결구도 말이다.  말이 안되는 이데올로기적 장난질이다. 그런데 이 안에는 일단의 진실이 있고 물질화하기 쉬운 대중 이미지를 만든다. 결국 이런 구도가 만들어지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어..하다' 가 끌려가는 것이다.대중들과 좌파들은 이런 대처의 작업에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스튜어트 홀의 이론들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에서는 그런 비판에 대한 스튜어트 홀의 반비판도 만날 수 있다. 홀에 대한 비판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그가 '이데올로기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것, 계급 문제에 대해 흐리멍텅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 대처에게 있지도 않은 어떤 일관성을 부여했다는 것 등등이다. 엘린 메이신즈 우드의 <계급으로부터의 후퇴>에서는 NTS, 즉 '뉴 트루 소셜리즘'이라고 해서 '신사회운동가'로서 스튜어트 홀을 직접 언급하며 '전통적 좌파'시각에서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이 비판은 스튜어트 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문화연구를 비롯해서 68년 이후 유럽 좌파내에서 힘을 받은 '신좌파'들에 대한 성찰적 비판이다. 

<대처리즘의 문화정치>는 2,30여년전에 씌여진 글이다. 앞서 말했듯이 상이한 정치적 토대와 불균등한 자본주의 발전 국면에서 그의 논의를 그대로 이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런 국면적인 문제를 제외하고도 꽤나 설득력있는 아이디어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자유/평등이냐 묻는 질문등에 대해서와 같은...뒤에 설명하자.) 스튜어트 홀이 좌파의 재구성,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제안하는 말은 현재의 우리가 보기엔 어느 정도 통속적인 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의미한 것은 이것이 제대로 실천해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선 그는 일단의 세계사적 변화의 길들을 정확히 인식할 것을 요구한다. 대처리즘에게도 그가 일단의 진실이 있다고 말했다면 대처는 그 길목의 어떤 지점들에서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좌파가 '보증받은 사회주의'를 버릴 것을 요구한다. 이어서 '급진적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라고 주문한다. 마르크스의 '사회혁명'으로서의 사회주의를 환기시켜야 한다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좌파의 '국가주의'에 맞서서 오히려 '국가'에서 사회로의 이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 계급 중심성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소수계층을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등이다. 결국 좌파의 성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종류의 역사적 블럭'들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고 그것은 다양한 욕망의 결을 따라 이를 통합해낼 수 있는 정치의 역능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좌파는 스스로의 '용어'를 가져야 한다. 이 용어들은 대중들의 상식에 바탕을 두고,또 새로운 상식을 만들어 나갈 비전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 좌파에게 부족한 것은 결국 '능동성' 이다. 반대는 반대로서 훌륭한 가치이지만 생산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대중은 생산의 정치를 원한다.  

P.S) 가끔 '자유/평등' 중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이 질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도덕 교과서 '더 생각해볼 문제'에도 나오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런 질문은 연원도 깊고 논의도 심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철학에서 '자유주의/공동체주의'도 따지고 보면 이런 근간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사회주의도 그런 문제에 대답하는 한가지 형식이다. 그런데 이런 본질적인 질문을 받으면 좀 난감하다. 왜냐하면 질문이 어떤 '선택'을 요구하고 있기때문이다. 대처가 가장 즐겨쓰는 방식이 일면의 진실을 극단화하여 배열하는 '선택요구'이다. 나는 예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돌파구로서 지젝이 '반유태주의'에 대해 말한 '질문의 거부'하는 방식이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런 질문 자체는 질문으로서 의미가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이데올로기적 배열에 의해 구획시켜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자유'를 선택하면 '자유주의자=민주주의자' '평등'을 선택하면 '공동체주의=(확장하면)사회주의' 라는 식이다.  스튜어트 홀은 대처가 '자유'의 이념을 어떻게 도용하는지 보여준다. 

 '자유 이념의 특정한 버전(신자유주의에 해당)을 전유하고 다른 반동적인 이념들과 연결시킴으로써 하나의 전체적인 철학을 만들어 우파의 강령과 세력들 속에 연계지었다. 이들은 소극적 자유라는 이념을 '시장의 자유'와 같은 것이고 거기에 의존하는 것이며 따라서 필연적으로 평등 이념과 대립되는 것처럼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사회적 해방이라는 더 폭넓은 의미에서 소극적 자유나 적극적 자유는 좌파의 철학에서 항상 핵심적인 요소였다. .... 시급한 것은 소극적 자유개념을 다시 탈환한 후 민주적 삶 전체의 심화라는 맥락 안에서 거시에 대안적인 접합을 부여하는 일이다.(p435) 

누군가 '자유/평등이냐? '묻는다면 장난스럽게 응하지 마라. 그리고 잠시 숙고후 질문지를 수정하라. 1)소극적 자유 2)적극적 자유 3) 사회적 자유 4) 기회의 평등 5) 분배의 평등 6).... 7)....  이렇게 하고 여러 개에 동그라미를 친다면 좀 답하기가 쉬워진다. 질문을 거부하면서 다시 주체적인 질문을 만듦으로서 이분법을 통한 '선택'의 이데올로기로부터 피하는 거다. 그리고 동그라미 친 가치들에 대해 꾸준히 실천해 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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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안가본지 오래되서 어떤 말들이 오고갔는지 모르겠다. 진중권의 기사를 보고 알았다. 진보가 대중에게 몰리는 방식의 여러가지 가능태를 보여준다. 진중권의 원문을 대충봤는데 평소처럼 도발적으로 쓰긴 했다. 화용론과 시기론을 드는 것 까진 좋은데 자칫 비판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식으로 달려드는 것도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어떤 종류의 김수한 추기경 비판이 발단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가진 팩트와 그에 대한 전통적인 좌파식 반응을 결합해보면 나올 비판의 맥락들이 뻔해 보인다. 그런 식의 비판이었다면 나는 진중권의 말에 일견 동의한다. 김수한 추기경은 누구보다 선한 노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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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판의 몇몇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낙태반대'는 굥황청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건 추기경 개인이 선택할 견해의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이게 답답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황우석 사태 때 우리 사회에서 카톨릭이 거의 유일하게 난자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지요. 그 역시 교황청의 공식 입장입니다. 신부들 개개인이 선택할 문제가 아니라요. 이런 측면이 있는가 하면, 저런 측면도 있고, 원래 종교란 그런 겁니다. 그들은 인간의 생과 사를 주관하는 것은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근데 그것도 문제 삼아야 하나요? 

좌파라면 종교에 반대해야 한다고요? 저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대단히 많이 덜 떨어진 좌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무슨 칼 맑스가 살던 시대입니까? 종교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유한성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답하는 방식 중의 하나지요. 죽음 앞에서는 과학도 무력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알량한 정치의식이 그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다고 믿으세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도, 심지어 과학자들까지도 BC 4년의 기술 수준으로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처녀생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거죠. 

비판할 것은 하자구요? 비판은 심심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화용론적 맥락이 있어야 합니다. 추기경이 살아계셨을 뭔가 잘못된 언행을 했다면, 그때 비판을 했어야 합니다. 그것도 그의 발언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크게 오도한다고 판단될 경우에 말이지요. 지금 돌아가신 분이 또 뭘 할 수 있다고 비판을 합니까? 93년 이후의 발언들이 맘에 안 든다구요? 비판은 그저 맘에 안 든다고 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의 견해에 반대한다면, 반대하는 근거를 들고 그 견해만 반박하면 그만입니다. 그것도 그 견해가 표명된 바로 그 시점에서 말이지요. 

결국 님들이 하는 비판은 무슨 화용론적 맥락이나 사회적 유의미성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한 마디로 그냥 인물평이지요. 그 인물평일랑은 일단 장례부터 치르고나서 전기 작가들에게 맡겨두십시요. 그의 인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신문기사 쪼가리 몇 개 들어 그의 인생을 통채로 평하겠다는 겁니까? 그러는 당신 인물은 얼마나 잘 났습니까? 굳이 인물평을 하겠다면, 천세를 누리다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여러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시면서 하셔도 안 늦겠네요. 그러는 여러분은 김 추기경만큼 살 자신 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분만큼 살 자신 없습니다. 

도대체 김수환 추기경이 무슨 잘못을 그렇게 많이 해서 추모를 해야 할 시기에 비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옵니까? 70년대 80년대 그 엄혹한 시절에 운동권 끌어안아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박정희한테 짓밟힐 때, 전두환한테 짖밟힐 때, 그나마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준 것이 김 추기경과 카톨릭 교회 아니었나요? 그때 저도 카톨릭으로 개종을 해서 영세를 받았습니다. 명동 성당에서 정부 비판하는 마당극 하고 나서 신부님들이 보호해주는 가운데 두 줄로 늘어선 형사들 사이를 빠져나오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 대한 감사를 벌써 잊어야 하나요?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저 자신들의 이념에 100% 드러맞지 않는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가볍게 취급하는 것이 정말 소름끼치네요. 국가보안법 존치에 찬성하는 사람의 삶이라고 가치가 없는 게 아닙니다. 설사 입에 조중동의 논리를 물고 다니는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의 삶 전체가 가볍게 취급받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늘나라에 있다는 영혼저울의 한쪽에 허접한 이념 서적 몇 권 읽고 형성된 머리와 입을, 다른 한쪽에는 김추기경이 몸으로 살아온 인생을 올려놓는다면, 저울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웬만큼 머리가 안 도는 사람도 알 것이라 믿습니다.

ps.

그러고 보니 제정구씨 생각나네요. 학생 시절 카톨릭 학생회 행사에 그 분이 연사로 오셨었지요. 그때 우리들은  대학3학년의 설익은 이념으로 그를 마구 질타했습니다. 변혁의 전망이나 혁명의 전략도 없이 그저 빈민을 돕는다는 알량한 휴머니즘 뒤로 숨어버린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얄팍한 개량주의자일 뿐이다....  철 들고 나서 얼마나 미안하던지. 다시 만나면 꼭 사과를 드리려고 했는데, 그만 돌아가셨지요. 내가 죽고 나서 행여 다시 뵙게 되면, 꼭 사과를 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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