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불멸의 음반 100 최악의 음반 20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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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 인켈 오디오가 생겼을 때 나는 석 장의 LP를 샀다. 들국화 1집, WHAM의 <Make it big>, 이문세의 2집이다. 오디오라고 해봐야 컴포넌트 시스템이었지만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자동차를 산 후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음반의 역사로 보자면 나는 LP시대부터 시작해서 CD 그리고 MP3의 시대까지 살고 있는 셈이다. 다음에 어떤 포맷이 주류를 차지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음악파일의 형태와 PC를 통한 재생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 흐름들은 이미 대중음악팬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클래식쪽은 사실 이런 변화에 좀 느리다. 클래식 소비자들의 보수성에 기인하는 것이 가장 클 듯 하다.  기술적으로도 음원압축 방식이 가진 음질문제는 클래식 소비자들의 마음을 아직 편하게만들지는 못했다. 이와중에 여름날 잠시 소나기 그리워하는 반응들도 나타나곤한다. 아날로그나 빈티지에 대한 선호층이 생기는 것 말이다. CD탄생기때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사이에는 그런 티격태격이 있었다. 잠정적 결론은 음질이나 음의 풍요로움면에서 아날로그쪽 주장이 승리를 한 것 같다. 그렇다고 CD가 그것때문에 물러날 일은 전혀 없다. CD는 그런 미세함을 양보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여러가지가 있기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로의 퇴행이 주류적 소비방식이 되긴 어려다는 말이다. 결국 앞으로도 소수 매니아들의 소비를 위해 상대적으로 고가의 LP를 찍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주류 음악시장을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장비만 좀 된다면 나도 LP쪽으로 좀 가보고 싶다. 내게도 LP의 기억은 소중하니까..) 앞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CD포맷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정도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CD의 시대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클래식 음반업계는 구음원 덤핑으로 일부 손해를 만회하려는 추세이다. 과거의 훌륭한 음원들이 저가에 풀리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TOP 가격으로 산 음반이 버젯 가격에도 못미치게 나오는 걸 보면 속 쓰리기도 하고 CD도 다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씁슬하다. 

이 책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의 저자가 최근의 'CD덤핑'을 목도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 결론에서 이미 CD의 종언을 선언했기 때문에 덤핑이 비즈니스적으로 당연한 수순임을 저자도 알았을 것이다. 평생을 클래식 음악과 음악평론가로서 살았던  저자는 '눈물의 고별전' 을 앞두고 있는 클래식음반 10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종의 '클래식 음반 추도문'으로서 말이다. 살아생전의 영광과 그 마지막을 증명해야하는 마지막 생존자로서의 의무감같은 것이 들만도 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 책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이다.  

책은 1920년 빌헬름 캠프가 베토벤의 <바가텔>을 연주하며 실황과 레코딩의 차이를 인식하는 대목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슈나벨과 카루소의 녹음, SP시대와 LP 시대의 도래..위기...CD의 등장..인물들의 흥망성쇠....등등 시간적 서술 속에서 작가는 음악가 개인보다는 레코딩을 중심으로 한 음악 비즈니스와 그 주변인물들에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연주자나 지휘자이기 보다는 음반 프로듀서, 레코딩 엔지니어, 음반사 사장 등이다. LP나 CD 자켓에서 곡명, 작곡가, 지휘자,오케스트라, 독주자..그리고 저 밑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에 대표적인 프로듀서들의 이름을 클래식애호가들은 기억한다.) 물론 중간 중간 연주자나 지휘자들과 이들 사이의 상호협력 또는 갈등 관계의 뒷 이야기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어떤 것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들이다. 그런 내용들은 사실 이런 저런 잡지나 책에 듬성듬성 실려있기때문에 언뜻 언뜻 기억날 뿐 하나로 묶여지지는 않는 내용들이다. 일단 음반을 중심으로 책을 쓰면서 저자는 여기저기 실린 관련 일화들이나 인용들을 꽤나 많이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다. 음악평론가를 하며서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나 그와의 편지, 또는 사적인 만남등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렇기때문에 여기에 무슨 역사학의 사료명료성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증언들은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독자는 그냥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관련 인사들의 에피소드나 후일담들을 흥미롭게 '그랫군' 하면서 읽으면 된다. 

이 책에서 SP시대와 LP 초기 시대에는 음반 프로듀서가 주인공이다. 프레드 가이스버그, 월터 레그, 존 컬쇼, 잭 파이퍼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클래식 메이저 음반사들을 중심으로(EMI,DECCA,DG,RCA,CBS,PHILLIPS) 그들의 태동과 발전,또 상호간의 경쟁구도를 이런 저런 야사를 섞어서 들려주고 있다. 몇 몇 음악잡지나 책이 실린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얻게된 정보들도 꽤나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 무슨 사료적인 의미의 절대성 같은 것은 없다. 주변사람들의 평가나 반응같은 것들이 주관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흥미롭게 '그랫군' 하면서 읽으면 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저자 노먼 레브레히트의 영국인 음악가로서의 전통적인 입장이 살짝 묻어 있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팬들은 <그라모폰>지의 취향을 떠올려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6대 메이저에서 데카사운드와 조직운영방식에 가장 호감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거 대놓고 '나는 데카 매니아요'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EMI는 보수적이고 월터 레그의 상술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DG는 결국 후에 음반사의 중심이 되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그 출발부터 못마땅하다. DG의 출발에 나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DG의 모기업이 나치 친위대로부터 노예인력을 사들였다고 비난한다.그러면서 도덕적으로 때묻은 회사가 독일 음악의 부흥을 이끄는데 앞장섰다는 점이 영 못마땅하다는 투로 이야기를 흘린다. DG가 전후 아우슈비치에 수용될 뻔한 엘자 실러를 회사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전후 음악가들의 불편한 심기를 은폐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아이러니 한 것은 DG의 여제가 물러나면서 DG의 실제적 권한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나치 복역문제로 시끄러웠던 황제 카랴얀이었다. 미국쪽으로 보자면 RCA는 대형스타와 웅장한 소리를 지향했고 CBS는 자유분방한 민주당의 이미지에 가까왔다. 그가 가장 호의적으로 말하는 곳은 DECCA이다. 그들은 민주적 게이집단이었다. 권위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소통을 중시했다. 또한 레코딩 엔지니어들의 진취성도 어느 집단보다 뛰어났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포진시켰고 존 컬쇼나 크리스토퍼 래번같은 프로듀서들은 뛰어난 기획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아날로그 매니아들 중에는 60년대 데카사운드를 높이 평가하는 층이 꽤있는 걸로 안다.   

저자는 음반산업이 최소한 저 단계에서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은 아니었다고 본다. 상업적인 측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음악 비즈니스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최소한 고급문화의 생산자로서 자부심과 교양같은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팝음악의 득세와 음반사의 과잉투자는  결국 LP시장을 붕괴시킨다. 그나마 CD의 출현은 잠시 클래식 음반에게 빛을 주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음반업계는 새로운 기획보다는 과거의 명연을 다시찍어내는 형태로 빚을 만회하는 형국에 들어서고만다. 저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을 '월스트리트'와 '음악관계자들의 방만'에 둔다. 투자자들에게 음반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자금의 회수와 이윤이다. 어떤 의미있는 기획도, 어떤 훌륭한 연주도 중요치 않다. 최대한 많은 이윤만 창출하면 되는 상품일뿐이다. 즉 그들에게는 '문화생산자'라는 자긍심이나 의미같은 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진중한 기획보다는 한 방에 뜰만한 음반들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크로스오버 음악이나, 각종 기능성 음반 기회들이 나오게 된데는 이런 전체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음악관계자들의 문제에서 저자는 특히 두 사람을 지목한다. 황제 카라얀과 일본 소니의 노리오 오가 회장이다. 카라얀과 오가 회장은 둘 다 과시적이고 독단적이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포화된 상태의 클래식 음반시장에 과잉제작의 광풍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작 비용을 급격하게 상승시켜서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동종업계까지 힘겹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관되게 이 둘의 공모에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낸다. 물론 저자는 이외에도 클래식 몰락을 불러 일으킨 몇 가지 추세 또는 원인들을 이야기 한다. CD의 반영구적 특성, 인터넷의 발전, 다른 매체들의 성장, 음악가들의 창의력 부족,소비층의 한정 등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100년간의 클래식 음반사,음악비지니스계의 뒷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역사는 끝났다'라고 종언을 선언한다. 음반은 사라져도 음악은 남는다는 말로 그 쓸쓸한 퇴장에 송가를 띄운다. 물론 음반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닐게다. 저자 역시 조금 더 수명연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수명연장도 최소한 대형 메이저 음반사들에게는 별로 기댈 것이 없다. 최근에 음반 카탈로그에 등재되는 대형 음반사들의 목록을 보면 과거 그들이 보유한 '아름다운 시절'의 복각,재출시 음반이거나 아니면 가벼운 성악음반들이 대세다. 몇 몇 보유한 스타들에 기대서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들의 고비용구조와 투자자들의 도끼눈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있는 실험적인 도전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요즘 클래식음반 애호가들은 마이너레이블에서 음악듣는 즐거움을 찾는다. 하이페리온, 샨도스, 나이브, 알파, 하모니아문디, 낙소스, ECM 그외 정말 국적 불명의 수많은 마이너 레이블들이 레퍼토리나 연주력,음질 면에서 메이저를 앞선지 오래다. 메이저음반사들은 유명 스타군단의 에이전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다.이 마이너 레이블들이 지향하고 도전하는 방식들을 보자면 각기 칼러가 있었던 과거 메이저 음반업계 청년기 시절이 다양성과 진취성이 엿보이는 듯 하다. 이들에게도 경영에 대한 고민은 없지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들을 대표하는 힘은 메이저 음반 종사자들이 버리고 온 음악에 대한 애정과 깊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고른 '불멸의 명반 100'과 '최악의음반 20' 이다. 불멸의 명반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 상당량되고 최악의 음반 20장 중에는 1장이 있더라...유명한 베토벤 3중협주곡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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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사실 촛불이 변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진보진영 내지 조직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약소자들과의 거대한 합류였다. 촛불은 그야말로 '원군'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사실 작년 촛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 원군이 어디에서도 나타나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촛불은 (데리다적인 의미에서의) 보충대체(supplement)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진정한 의미에서의 데모스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 
나는 작년에 촛불의 중간계급적 성격을 지시하면서,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민중의 지원없이 촛불의 싸움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역설했었다. 참세상에 올렸던 '컨테이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서 내가 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거기에서 컨테이너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 힘이 반드시 요구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폭투냐 비폭이냐의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며, 그 자리에서 단순히 컨테이너를 넘어설 것인가 말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논의가 파업 등을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계급적 촛불 자신이 혼자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할 수 없는 바로 그 때에 노동자들이 나서서 그것을 급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 이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촛불이 스스로 원군을 거부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게 아닌가? 촛불시민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거부하는 어떤 이질적인 것도 시위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함께가 잘한 건 아니지만, 확성기녀 사건 이후로 운동권들은 철저하게 배척받았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시위에 나와도 말없이 촛불시민들이 하는대로 따라다녔다. 지인에게 들은 가장 웃기는 사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저씨들이 촛불시민들을 따라 열심히 경찰을 피해 다니면서 게릴라 시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파이 하나 쥐어주면 경찰은 우습게 뚫어버리는 그 무서운 전투력의 아저씨들이 “깝치지 마라, 운동권!” 정서에 짓눌려 시민들을 따라 뜀박질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촛불시위 전성기의 시위 환경이었다. 촛불시민은 물론 단일하지 않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이라 칭하면서 운동세력과 거리를 두었고 그들을 불순물처럼 취급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재밌었던 것은 운동권들이 그렇게 철저히 촛불시민들의 시위문법에 복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촛불시위가 시들해지자 우리 ‘시민’들이 그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과 운동권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끼어들어서, 혹은 민주노총이 끼어들지 않아서 시위가 실패했다는 식의 얘기는 촛불강경파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여기서 웃기는 점은 크게 세가지다.



1) 자신들은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 운동권 등에 돌리지만, 남들이 촛불시위의 실패의 요인을 분석한다고 말하면 “촛불이 실패했다니!! 이 반동!!!” 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


2) 자신들이 시위에서 운동권을 배제해놓고 시위실패의 책임을 운동권에게 돌린다는 것. 시위를 장악하셨으면 실패(?)의 책임도 스스로 지셔야지.

3)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나는 개인일 뿐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고 하면 성질낸다는 것. 자기가 한 거 아니라면서 성질은 왜?


촛불시위가 운동세력 때문에 타락했다는 얘기는 일부 촛불강경파와 조선일보가 같이 하는 얘기다.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김지하. 최원 님의 얘기는 물론 김지하의 얘기와 정반대다. 그리고 나는 그 얘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원 님도 운동권이 촛불시민들의 ‘외부’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래야 했다고 말한다면 동의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권은 촛불시위대의 내부에서, 자신의 색깔을 죽이고 숨죽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운동권이 유입되면서 촛불시민도 변하고 운동권도 변해야 했다. 물론, 그런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의 대체적인 의식은 그 ‘변화’를 순수함의 상실로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촛불강경파와 김지하가 만나는 것이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 그 무엇보다도 촛불 자신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기륭 현장에서 저 유명한 82cook 회원분들을 몇 명 만났다. 기륭을 위한 회의를 할 때 그분들이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 촛불시위대와 82cook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떠나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이고 정치적인 설득보다는 정서적인 공명을 강조하는 쪽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분들은 말했다. 촛불시위보다 한발 더 내딛어 기륭으로 온 그분들은 소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나는 어차피 이런 운동은 소수가 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논리적이니 정서적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힘이 센 상대편의 정책(?)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촛불시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들은 차라리 이런 분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운동권’의 탄생이다. 



촛불시위를 그 자체로 다중의 봉기로 예찬하려고 하는 조정환 류(정서적으로 조정환에게 공명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에게 해야 할 말은 이런 거다. 촛불에서 한발 더 내딛은 이분들은 촛불시민인가, 아니면 촛불시민이 아닌가? 그분들은 스스로를 촛불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어떤 촛불들은 그들을 불순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촛불이기도 하고 촛불이지 않기도 한 것이 아닌가? 촛불이 가야 할 길도 결국 이렇게 촛불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 길이 아닌가? 촛불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촛불의 긍정성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런 변화의 에너지를 가로막아 촛불을 박제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김지하의 촛불 예찬과 조정환의 촛불 예찬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것일까? 조정환이 촛불시위의 존재론적 승리를 운운할 때 그것은 일견 형이상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촛불의 스펙터클에 대한 현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7-8.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촛불이 패배한 시점은 정확히 민주노총의 파업이 흐지부지된 그 시점이었다. 바로 그 전에 백만을 동원하면서 명예가 걸린 마지막 전투를 치렀지만, 곧바로 촛불은 가시적으로 사그라져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촛불 자체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촛불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기층 운동들이 그만큼 붕괴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백승욱 교수와 같은 경우,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문제의 그 글에서 촛불이 87년보다도 못했던 것은 그것이 789 노동자들의 진출과 같은 것조차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정말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그 열린 공간에서 숟가락으로 떠주는 밥도 먹지 못한 것이 바로 기존의 운동진영들이었다. 87년에 노동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6월 항쟁이 열어놓은 정치공간 속으로 일거에 진입해 들어왔었다면, 2008년에 노동자들은 (이후 벌어진 조직내 성폭력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조직들의 파산을 향해 이미 나아가고 있었고(지금도 나아가고 있듯이), 이 때문에 그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촛불의 한계란 말인가?“ 



--> 그런데 촛불 자체가 이미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기존 운동권들을 무시한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시 자체에 대해 딱히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촛불시민 스스로가 그 운동권들을 갈구고 자기 내부에 편입시키면서 운동을 전개했다면, 당연히 촛불시위 정국의 한계는 촛불의 한계다. 촛불이 문제라서 뭐가 안됐다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 촛불밖에 없었고 촛불이 뭔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한계를 논한다는 것이다.



(운동권들이 무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에겐 "열린 공간"이 아니었고 그들은 밥그릇은커녕 숟가락도 지급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에 대한 분석과 별개의 문제다. - 참고로 내가 촛불시위 정국에서 가장 높이 치는 좌파의 활동은 칼라티비가 아니라 일부 촛불 시위대를 기륭으로 끌어들인 '릴레이 동조 단식'이란 기획이다.)


촛불의 한계를 심심해서 논하겠는가? 촛불을 통해 사회가 어느 정도 변했으면 좋았겠는데, 충분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이 없다면 손석춘 류의 ‘촛불정당’ 운운하는 코미디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조정환은 촛불시위가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는 것이며 존재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뇌내망상에 의한 정신승리로밖에 볼 수 없다. 촛불시위대가 거리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겠다는 지향을 피력한 것도 아닌 이상, 그네들의 요구는 권력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조건을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진 거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한편으로 조정환은 이명박 정부가 잠깐 스톱했고 조중동이 타격을 받았네 하면서 촛불의 성과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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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글은 최원의 글이고 다른 건 한윤형의 글이다. 강조는 두 사람의 생각 중 내 생각과 닿는 부분이다. 최원의 글에 대해서는 한윤형이 거칠지만 할 말은 했다. 하지만 최원의 글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기존 운동권을 탐탁케 생각치는 않지만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경계선 밖으로 몰아야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외에도 촛불에 대해서는 나도 몇 마디 거들고 싶은 말은 좀 더 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안쓰겠다. 저 이야기들을 예전에 어떤 형태로든 했었던 것들이다. 이 말은 '촛불'이 별볼일 없었다거나 '촛불'이 별반 쓸모없는 한 번의 액션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촛불을 이간하려는 것도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중한 뜻에 침을 뱉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노동자로서 촛불에 참여했었고,또 생태주의 지지자로서 참여했었고, 그냥 아이의 아빠로 아이와 함께도 참여했었고...하여간 왠갖 경험을 빌미로 발언권을 갖을 정도의 물질화된 나의 투쟁의 토대를 만들 짓은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에서 되뇌였던 구절이다.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자청한 내 고난도.." 일상을 살며 투쟁해야 했던 시민들에게 촛불이 엄청나게 고난스러운 행군은 아니었다. 알아서 요령껏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물론 생업에 물적,심적 피해는 없을 수 없다. 그건 자랑스러워해야할 일은 아니고 당연히 감수해야할 필요조건이다. 그 정도의 피곤함의 누적과 지속적 분노상태로 인한 정서적 분열, 잡혀갈 수도 있다는 모종의 불안감마저 없는 시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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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동문선 문예신서 142
미셸 푸코 지음, 박정자 옮김 / 동문선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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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1976년 콜레드 주 프랑스강의는 '계보학'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강의 시작을 알리는 몸 풀기이다. 또한 강의 전체를 지배할 문법에 대한 개괄이다. 푸코는 계보학을 '반과학'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과학적이라고 간주되는 담론이 갖는 고유한 권력 효과에 대항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첫 날 강의에서 '국부적 앎', '앎들의 봉기' 라는 용어를 쓰면서 비판의 국지적 성격에 대해 강조한다. 계보학의 기획의도를 푸코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인식의 과학적 서열화와 그 고유의 권력 효과에 대항하여 국부적 앎들-아마 들뢰즈는 '소수의 앎'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  ...  고고학은 국부적 담론성의 분석에 적합한 방법이고, 계보학은 그렇게 묘사된 국부적 담론성에서부터 출발하여 거기서 끄집어 낸 앎들을 작동시키는 전술이다. 

 쉽게 말하면 '당신의 앎이 권력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틀 지워지고, 상화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된다.' 는 것이다. '앎'은 결코 '진리' 일 수가 없다.  그렇게 착각되어 지기는 하지만말이다. 특히 푸코에게 타겟은 '계몽사상'이라는 '앎'이다. 푸코와 아도르노가 만나는 지점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단순화시켜 보자면 '계몽= 윤리적 선= 진리' 로 가는 구도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푸코는 강의 중에 이런 작업을 서구 천년의 철학주인인 플라톤주의에 대한 소피스트의 복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다분히 푸코에게 가해지던 비판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푸코의 앎과 권력의 문제는 단적으로 우리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에 반영된다. 고등학교 철학교과서의-조금도 의심없는 메인스트림은- '소크라테스-플라톤주의'이다.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를 비방한, 곡학아세의 이단아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 라고 "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 푸코식 방법이다.  

푸코는 절대적 진리의 문제보다 '담론과 권력의 문제' 에 중심을 둔다. (푸코에 대한 가장 일반화된 비판이 제기되는 곳이 이 지점이다.) 대신 푸코는 권력-권리-진실의 역학 관계를 묻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다. 총체적인 진리라든가, 헤겔식의 합의적인 총합 개념을 푸코는 거부한다.

권력의 관계들이 진실의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규칙들은 무엇인가? 

푸코는 자신의 가설과 이론이 일반되는 경향을 스스로 거부함다. 즉 분산된 여러 계보학들에 일관성 있는 이론적 토양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푸코를 구조주의적 틀 안에서 이항적 구도로 환원된다는 비판등은 최소한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부분인 것 만은 사실이다. 물론 푸코 텍스트를 독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자율성이 있지만 푸코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일단 자신의 권력 연구의 방법론을 정리한다. 푸코 권력론을 바라보는 핵심은 그가 권력의 문제를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관계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푸코 비판에서 흔히 제기되는 문제이다. 여기에 푸코가 <감시와 처벌>등에서 말한  권력의 총체적 규율사회,훈육사회화를 덧 대면 가장 세속화화된 비판의 방식이 부각된다. 즉 푸코는 스스로 이항적인 체계에 빠져들면서 아도르노식의 전체주의 사회처럼 권력의 자장 안에 피할 곳이 없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르키오르같은 이는 '신무정부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런 비판의 핵심은 푸코가 권력의 저항지점을 말살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코는 또한 실천적인 지성인으로 감옥문제에 관여했고,싸르트르와 거리에서 사진도 찍었고, 또 그의 입으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라는 말도 남겼다.  도대체 그는 파리 좌안의 몽상적인 이론가였을 뿐인가 아니면 실천적 지성인이었을까? ) 푸코는 푸코의 앎의 방식에 따라 가장 정합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권력 이론은 그런 점에서 저항을 포기한 적이 없다. 문제는 유토피아를 가정하지 못하면 싸움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불안과 그에 동반하는 신학이다. 물론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나아가면 존재론적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나와 내 행동 주변에 천사 가브리엘이 임재함이 주는 충만감이 있을 수 있다.( 지젝이라면 정치적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철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푸코는 권력 연구의 방법론을 이렇게 제시한다. 

 1) 모세혈관처럼 가는 끄뜨머리에서부터 권력을 포착 2) 권력을 의도나 결정의 차원에서 분석하지 말것 3) 권력을 전면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말것.-"권력은 개인들에게 면세통과될 뿐 그들 중 누구에게도 달라붙지 않는다." "육체를 관통하는 권력의 민주적,무정부주의적 배급은 없다." 4) 권력에 대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석 5) 섬세한 메커니즘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은 교육이나 앎의 순환장치의 조직, 또는 그저 단순히 앎의 장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앎의 장치들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물도 안고 그것의 동반자도 아니다.    

본격적으로<사회를 보호해야한다>의 강의에서는 권력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쟁'이라는 역사적 요소를 끌어들인다. 푸코가 하는 일은 먼저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치를 뒤집는 방식이다. 클라우제비치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정치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푸코는 클라우제비치의 이 말에 앞서 그가 전유했던 다른 개념이 있다는 것을 가설로 설정한다. 즉 클라우제비치가 그 멋진 말을 남긴 건 그 전에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전쟁-정치'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클라우제비치의 말을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전쟁이다." 라고 재전유한다. 이것은 역전된 개념을 재역전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영구적 사회관계로서의 전쟁, 모든 관계와 모든 권력제도들의 소멸할 수 없는 토대로서의 전쟁에 대한 담론' 을 강조한다. 푸코는 "전쟁은 바로 평화의 암호이다." 라고 말한다. 침울한 담론인가? 사람들이 가능한한 멀리해야 하는 담론인가?  그렇다. 최소한 주도적인 철학-법 담론은 이 자격을 박탈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법으로 출발하려면 이런 '영구전쟁담론'은 말살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기의 가설이 '빨치산의 담론'이라고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푸코의 정치적 저항성은 이런 두더쥐의 담론일 뿐, 정치적 허무주의나 정치적 저항의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푸코는 철학-법 담론의 반대편에 역사-정치담론을 배치한다. 그리고 분석을 영국과 프랑스에 한정하여 이야기 한다. 그는 역사-정치담론의 출발을 1630년경 영국의 청교도 혁명즈음과 17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4세 말기 프랑스 귀족들의 정치투쟁으로 본다. 

이 때부터 전쟁은 확고하게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분명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사회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전쟁, '종족간의 전쟁'의 역사가 가시화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런 '종족전쟁'의 원형이 발전된 것을 부르주아 혁명, 계급 투쟁, 인종주의 전쟁까지 확장한다. 물론 맥락적인 차원에서 이런 투쟁들은 개별성을 갖는다. 다만 푸코의 의미는 계보적인 원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영국-프랑스의 17세기 18세기에 대한 분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영국의 경우 프랑스 출산의 기욤이 영국을 정벌하고 종족전쟁의 역사,정복의 역사를 은폐하고자 했던 역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프랑스의 경우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골족과 게르만족의 관계, 갈로로만 시대 형성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을 소개하며 정복-동화관계에 있어서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이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영국-프랑스의 역사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 검색 사이트를 통해 확인하며 넘어가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하다. 최소한 왕조 흐름이라도 말이다.) 

이런 계보적 분석을 통해 결국 푸코가 판독하고자 한 것은 영구적 종족 전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은폐되고 지속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푸코의 권력 분석은 먼저 '경제적' 가설과의 결별을 말한다. 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전자는 권력을 상품. 모든 개인이 무언가 권리를 보유하고 양도하고 이전된다. 후자는  경제적 기능주의가 강하다. 정치권력이 경제에서 존재이유를 찾는방식이 문제가 되며 이 또한 권력을 생산-교환의 방식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푸코는 '비경제'적 가설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거나 확장시킨다. 먼저 권력 억압설이다. 프로이트-라이히의 가설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푸코의 권력론의 핵심인 '권력은 억압적이기만 한가?' 는 이런 가설에 대한 푸코의 답변이다. 다음으로 권력대치설이다. 이는 니체의 가설로 권력관계의 토대가 힘들의 호전적인 대치로 보는 관점이다. 니체와의 관계에서 푸코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니체가 계몽에 대한 긍정을 예찬한 반면 푸코는 니체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물고 늘어졌다는 점이다. 푸코는 억압가설과 대치설이 결코 비양립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푸코는 억압과 전쟁을 관찰하고 이를 수정하여 "권력에서 작동된 메커니즘은 억압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라는  '생산하는 권력' 이란 개념을 만들어낸다.

 푸코는 과거의 정치사상의 중심인-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계약-압제' 가설에서 가장 먼저 폐기시켜야할 것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지목한다. 홉스는 선험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이에 대한 양도가 가능하다는 가설을 통해 이를 적용시켰다. 푸코는 '만인에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홉스의 자연상태는 가상적인 것일뿐 실제적인 힘들의 직접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즉 홉스의 전쟁상태는 일종의 '의지의 대립'일뿐이고 , 조정되어야하는 외교의 대상일뿐이다. 
푸코는  홉스가 실제로 제거하고자 했던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정복의 문제였다. <리바이어던>에는 언제나 계약이 있고 신민들의 겁먹은 의지가 있다.  홉스가 모든 전쟁과 모든 정복의 뒤에 계약을 다시 놓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이론을 보존했던 것은 바로 이 투쟁과 영구 내전의 담론을 교묘하게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홉스의 가장 큰 적은? 전쟁이고 저항이다. 푸코는 권력관계는 법이나 주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배안에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널리 펼쳐진 한없이 두텁고 많은 지배관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역사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앞서 말했지만 이 문제는 푸코 스스로도 주체의 자기실현을 통해 해결하려는 문제였고, 또한 비판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푸코의 텍스트 안에는 실천적 의지를 통한 해방의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푸코는 홉스 대신에 조금은 낯선 불랑빌리에라는 프랑스 귀족학자를 분석한다. 불랑빌리가 분석한 프랑스는 왕과의 권력 투쟁에 2개의 전선-즉 귀족/부르주아지가-이 동시에 존재한다. 골족부터 시작되는 계보학적인 권력의 상호관계와 전쟁,지배,동화,재역전의 문제(골족의 멸망한 귀족이 앎을 통해 어떻게 재역전되는지 재미있다.푸코의 저항담론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재역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흥미롭게 따라읽어도 좋은 내용이다.

 그는 불랑빌리에의 현재적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한다. 

1)전쟁의 우위성 부여 '어떤 형태의 사회건 그 어떤 사회에도 자연법은 없다.' '자연의 평등법칙은 역사의 불평등법칙 앞에서 허약하기 짝이 없다.' '자연의 힘보다 역사의 힘이 훨씬 크다' 상호간에 아무런 지배관계도 없는 개인들 사이의 자유,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완전히 평등한 그런 자유, 이 자유와 평등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고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일 뿐이다. 

2)전쟁이 한 사회체에 자국을 남기는 것은 더 이상 침략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군사제도의 교대를 통해 모든 민간 질서에 전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푸코의 개념 '내적 제도로서의 전쟁' 

3) 침입과 전투에 의해 표출된 어떤 특정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조금씩,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역전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푸코의 개념 '전복의 내적 메커니즘'-->순환론적인 결정론이 아니라 영구적 권력순환 

4)불랭빌리에는 전쟁관계를 모든 사회적 관계 안에 잡아넣었다. 그러나 그의 전쟁은 일반화된 전쟁이다. 그것은 개인들의 전쟁이 아니라 그룹에 대한 그룹의 전쟁이다. 

푸코는 역사-정치담론으로서 '전쟁'의 중요성은 대혁명 이후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18세기 귀족들이 주체로 부각시킨 '민족'이라는 개념을 부르주아지가 재부활시켰다. 귀족적 반동으로 쓰인 민족은 '왕과의 일체'가 중심적인 핵이었다. 반면 이제부터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왕이 아니고 다른 민족과 싸우기 위해 왕을 세우는 새로운 '민족'개념이 재가동된다. 민족은 국가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어서 부르주아지는 인민이 되고 국가가 된다. 
  

 이제 푸코는 '권력과 국가'의 문제를 '국가 인종주의' 발전 도상까지 왔다. 17-18세기 신체에 집중된 권력 기술이 18세기 말 신체가 아닌 '생명'을 대상으로 바뀐것이다. 푸코의 권력 개념중에 중요하며 자주 인용되는 '생물정치'(생정치,삶정치 등등으로 번역된다.)란 단어가 나온다.
'생물정치'(바이오 폴리틱스)는 육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간을 향해 행해지는 권력문제에 관심을 둔다.권력과 앎의 상관관계로 보자면 인구통계학,우생학,공중보건학, 멀리는 사회보장제도가 이런 바이오폴리틱스와 관련을 맺는다. 물론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의 기술과 생명에 작용하는 것 사이에는 대립적이지 않는 관계가 설정된다. 푸코는 생물권력이 작동하는 정치제도 안에 인종주의가 개입되고 이는 근대국가에서 행사된다. 도덕주의나 프로파간다의 문화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대목이겠지만 그는 근대 인종주의의 특성은 의식 구조,이데올로기,권력의 거짓등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권력의 기술하고만 관계한다.즉 이 말은 근대국가는 어느 경계선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안에 이미 인종주의적 맹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나치의 생물권력과 절대군주가 결합된 방식을 '근대국가 기능 안에 새겨진 절대군주의 기제가 도달하는 최종지점'이라고 말한다. 

<사회를 보호해야한다>의 뒷장에는 이 책이 푸코 지적 여정 속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즉 일종의 휴지기이며 이행기인 상태에서 나온 강의라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과 <성의 역사1권: 앎에의 의지>를 탈고한 이후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두 책에서 다루어진 문제들-권력과 앎의 문제, 규율권력-생체권력의 문제 등이 저자의 입을 통해 비교적 친절하게 다루어진다. 푸코가 근대정치사상에 기여한 지점에 관심이 있다면,또한 푸코의 전복적인(이제는 그렇지도 않지만) 접근방식에 관심이 있다면 푸코의 육성으로 그의 생각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만한 책이다. 특히 냉전 이후 '일상의 전쟁화'가 코드화된 한국에서 푸코의 접근은  이해되기 쉬운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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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시 방심하는 사이...대우버스가 열흘 전에 파업타결이 되었다는 것 알았다.정말 정말 축하할 일이다. 노무현의 소환문제로 부산경남이 온통 시끄러워서 가까이 있는 나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내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야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승리라고 해도  일단은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내가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보는 알라딘에 대우버스 관련된 글이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 모르고 있었다. 나는 포털 뉴스검색은 안봐도 하루에 한번 서재 업데이트 목록은 본다.특히 그맘때 너무 일이 바빠서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파업 타결 전주인가...한 낮에 서면으로 갈일이 있었다. 운전하고 가는데 양정 근처부터 경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위대였다. 금속노조와 대우버스의 노동자인듯 했다. 한 차선은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구호를 외치며 평화롭게 서면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대개 당사자외에는 초기에 관심을 갖다고 점차 일상화된 장면으로 기억한다. 대우버스에 대해서 내게 딱 그랬다. 

예찬이가 다니는 어린이 집에서 만난 친구네가 대우버스와 관련이 있다. 우리 동에 사는데 가장이 조업중단으로 수개월째 월급을 받지못하고 살고 있었다. 아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해서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어제 아내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하며 함께 기뻐해 주었다. 예찬이네 친구네 집 이야기 아닌가 ^^   

대우버스의 승리가 또다른 승리를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

쌍용자동차 문제는 아직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조금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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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심금 울린 쌍용차 노동자 아내 배은경씨  


"남편이 청춘 바친 회사, 누가 어렵게 만들었나요?"
쌍용차, 2646명 해고 예정…노동자 40% 생계대책 없어
노사 접점 찾지 못한 가운데 5월 22일 회생 여부 결정  


“꼭 정리해고밖에 방법이 없는 건가요? 회사가 시킨 대로 일만 했던 노동자들에게 대안을 찾는 노력도 없이 일방적 희생을 전가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지 정말 묻고 싶어요.”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아내 배은경(40)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이같이 반문했다. 지난주 배씨는 쌍용차 사태에 대해 심경을 정리한 편지 글을 인터넷 언론에 띄워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며 화제가 됐다.

21일 평택 자택에서 만난 배씨는 난생 처음 기자와 인터뷰를 한다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남 앞에 나서기 싫어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배씨가 용기를 내 인터넷 언론에 편지를 올리고, 본지와 인터뷰를 하기까지는 ‘벼랑 끝’이라는 절박감이 있었다. 11살, 30개월 된 아들 둘을 키우는 전업 주부 배씨에게 위기는 자주 찾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중국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할 때도 가슴이 철렁했지만,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경제 불황이 겹쳐 ‘마지막’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감에 피가 마른다.

쌍용자동차는 전체 직원 37.1%에 해당하는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예고하고, 희망퇴직을 신청 받고 있다.

이 같은 인력 감축 규모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수치로 노조가 총파업을 예고해 지난 2001년 ‘전쟁’을 방불케 한 대우자동차 사태의 재현이 우려되고 있다. 이는 평택만이 아니다. 대우일렉트로닉스 1000명, 대우버스 507명, 위니아만도 97명 등 곳곳에서 정리해고 태풍이 불고 있다. 그나마 노조가 있는 정규직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지만, 조직화되지 않은 비정규직은 소리 소문 없이 얼마나 해고되는지 통계조차도 잡히지 않는다.

쌍용차 사태는 노사가 접점을 찾지 못해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 회사는 2646명 감축, 자산매각, 5개 신차 개발 등을 회생 방안으로 제시했다. 반면, 노조는 ‘정리해고 철회’를 전제로 3조 2교대 등의 근무형태 변경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신차 연구개발 기금 1000억원 담보, 비정규직 기금 12억원 출연 등을 요구했지만 아직 협상 테이블조차 꾸려지지 못했다.

하지만 노조는 쌍용차 회생 여부가 산업은행 등 채권단 및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어 파업 카드도 섣불리 꺼낼 수 없다. 5월 22일 법원과 채권단은 쌍용차의 자구 노력을 평가해 기업회생의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이같이 상황이 답보 상태에 머무는 가운데, 지난해 12월부터 임금이 체불돼 대리운전 등 투 잡을 뛰는 노동자들의 생활고도 한계에 달해 신용불량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노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 결과 86.8%가 가계부채가 있고, 향후 생계대책이 없는 조합원이 40.4%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배씨 또한 예외가 아니다. 30개월 된 아들을 맡길 곳이 없어 적금과 보험을 깨고 임시로 돈을 빌려 쓰고 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대출금도 갚지 못한 집을 팔 계획이다. 이처럼 집안 살림도 어려운데, 배씨는 건강도 좋지 않은 남편이 노조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을 처음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뉴스에서 노조, 투쟁, 구조조정 같은 소식을 접할 때면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그였다. 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현실’로 닥치니 회사도, 노동자도, 그들의 가족도 함께 살리자는 남편의 말이 온몸으로 이해가 됐다. 배씨는 노조 활동을 하느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집에 들어와 탈진해 잠드는 남편을 보며, 홀로 싸우지 않게 하겠노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천성이 강하지 못한 사람이라며 인터뷰 내내 계속 눈물을 보이던 배씨는 회사가 집으로 보낸 희망퇴직 신청서를 기자에게 내밀며 물었다.

“남편이 15년 동안 청춘을 바쳐 일했던 쌍용자동차를 어렵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요?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한 노동자들은 해고로 가족과 길거리에 나앉는데, 경영진은 이 사태에 어떤 책임을 지고 있나요?”라고. 이제 그 공동 책임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쌍용차 노사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다. 이 험난한 여정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편안한 마음으로 집 앞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고기를 구워 먹이고, 햇볕 내리쬐는 따뜻한 곳에서 남편이 낮잠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요.” 이 싸움 끝에 배씨가 이루고 싶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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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많이 있음. 스포일러 싫은 분은 보지 않기를 권고함.

박찬욱은 B급 영화감독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B급 영화의 정서에 동화적인 인물이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볼 때 그는 B급 영화의 경계선을 통과하며 독자적인 박찬욱표 영화를 만들어 오고 있다.  

 박찬욱의 영화는 B급 정서에 공감을 보내기는 하지만 '하드고어'하지는 않다.그런 면에서 A급에서 활동하며 B급의 정서를 호시탐탐 넘보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특히  B급 정서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텍스트와 형식의 사변성과 혁신성 그리고 탈규범성에 대해 박찬욱은 지속적으로 눈길을 준다.  

영화<올드보이>의 상업적, 미학적 성공은 박찬욱의 대표작을 <공동경비구역JSA>,<올드보이>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영화<올드보이>는 스토리텔링의 고전성과 스타일리쉬한 영상의 완벽한 조합으로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영화이다. 그렇지만 <올드보이>는 박찬욱의 '복수영화' 삼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었다. 복수 삼부작이 '시리즈물'처럼 어떤 인위적인 연속성의 구속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앞선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파악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박찬욱의 영화세계는 물론이고 최신작 <박쥐>도 이해하기 용이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게 박찬욱의 대표작은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이다. 특히 '복수'는 박찬욱 스타일의 출발점이며 지금까지 그의 작품의 근간이 된다. 영화<박쥐> 역시 연속선상에서 보면 흥미롭게 중복되는 좌표가 지도위에 나타난다. 

영화<박쥐>를 보면서 나는 이 작품이 박찬욱의 이행기적인 작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한다. 물론 아직 새로운 빛은 나오지 않았고 어둠의 미명이 희뿌옇지만 이 경계와 어떤 단절을 기대케하는 정적이 있다. 영화팬으로서 '복기의 자기순례'가 끝나고 나서 등장할 새로운 국면에 대한 모종의 기대감같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영화<박쥐>는 그런 면에서 '시작이며 끝'인 어떤 점이 되어주었면 하는것이 나의 바람이다. 

영화<박쥐>의 도입부는 사건의 개연성이 중심역할을 맡지 못한다. 마치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보듯이 장면은 툭툭 넘어간다. 사건 전개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나 인과관계 등에 무심하다는 듯 관객을 단절된 듯 보이는 시퀀스들의 빠른 진행으로 끌고 간다. B급 영화에서 즐겨 쓰는 방식이며 또한 <올드보이>에서 감금되기 전까지 사건의 진행이 이루어진 스피디한 방식이다. 도대체 왜 송강호가 뱀파이어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것은 오로지 성경 구절 나레이션 밖에 없다.  마치 불교의 지방보살의 현현처럼 '희생자들 속에 남아 있을 희생'에 대한 강독 같은 것 말이다. 

이제 사건은 수요 마작방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고아로 자란 송강호를 친구로 대해준 신하균의 집이다. 박찬욱은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따뜻한 우정의 관계로 설정하지 않는다. 부상당한 어린 짐승들의 필요적 연대의 느낌이 훨씬 강하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둘을 묶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부재'라는 빈 공간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영화 내내 '아버지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부터 송강호를 보아온 원장 신부쯤 되보이는 박인환 역시 영화 후반 뱀파이어 송강호에게 살해당한다. 신하균의 엄마로 나오는 김해숙의 대사는 인상적이다. "상현이..아니 신부님. 기억나시지요. 제가 라면 끓여주고..우리 애가 워낙 착하잖아요." 이 대사는 억지로 어떤 인연을 상기시키려는 비굴함과 상투성이 묘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그런데...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답이 뒤에 숨어 있을 것처러 말이다. 영화의 사건은 한복점이자 살림집인 신하균의 집을 무대로 발전한다. 이 곳은 송강호와 김옥빈이 만나는 곳이고 모든 애욕과 음모,살인,죄의식이 뒤얽히는 공간이다.박찬욱의 공간 미장센은 과거 70년대 영화에서 자주 쓰였던-나는 한국형 고딕이라고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2층 거실방이다.갈색 베니아판, 좁은 테이블, 키치적인 인테리어,복도로 연결된 몇 개의 방들, 이런 상투성과 폐쇄성은 좁은 복도를 따라가는 소실점 구도로 바뀌어 자주 영화에 등장한다. 영화 후반부에 박찬욱은 이런 베니아판의 상투성을 사방이 하얀방으로 또다른 상투성으로 바꾼다. 밤에만 활동하는 뱀파이어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지만 이 흰색 방은 살인의 상징인 피를 시각적으로 선명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공간/뱀파이어의 공간을 이원적으로 구분해주는 역할을 한다. 즉 마지막 카니발이 끝나고 나서 인간/비인간의 층위에서 정치적 선택을 하던 원조 뱀파이어 송강호는 그런 휴머니즘적인 개량 투쟁이 결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즉 '뱀파이어와 인간'은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역설적이게도- '휴머니즘적인 자기희생'의 돌파구가 결정되는 공간이다. 송강호가 살육의 카니발에서 살육에 참여하지 않지만 흰색 방의 창문을 닫아 주며 묵인하는 행위와 필리핀인 신부의 목숨을 구제해주는 행위 사이에는 '근대적 휴머니즘'이 담고 있는 역설적인 딜레마가 들어 있다.  

영화에서 송강호의 캐릭터는  전형적이며 엘리트적이다. 그는 가끔 억울함을 호소하기는 하지만 있는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고 그것에 대한 통제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반면에 캐릭터의 굴절이 심한 것은 김옥빈이다. 김옥빈은 '트라우마적인 아내 혹은 며느리'에서,'성을 통해-또는 성으로 인해-자기해방'의 가능성을 점치는 여자로, 그리고 '남편 살해'를 도모하는 팜므 파탈로, 죄의식의 주체이자 자기해방의 외인적인 힘에 대해 부정하는 이중적 주체로, 그리고 다시 부활한 뱀파이어로, 마지막에는 창조자를 위협하고 살해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비인격적 존재로 변모한다. (김옥빈의 캐릭터의 변신 과정만 가지고도 충분히 텍스트적으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려낼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나는 송강호-김옥빈의 캐릭터에서 사실 '지식인-민중'이라는 이항적 도식을 꾸려낼 수도 있다고 보인다. 자기 해방의 주체역능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외부적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혁명사에서 들어본 말 아니던가? 그리고 혁명은 그런 민중주체를 역사의 우두머리로 보지만 실제로 민중적 주체는 다분히 모순적이다. 김옥빈은 죄의식에 시달리다 결국 송강호에게 "왜 우리 셋이 잘 살고 있었는데... 너 같은 악마가 나타나서 다 망쳐버렸어.불쌍한 우리오빠.." 라고 말한다. 자기변명이자 자기퇴행의 일면이다. 결국 이것은 송강호의 폭발적인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송강호의 존재가 세속화의 극점을 치면서 폭발하는 장면은 뛰어나다. 영화 내에서 갈등을 일시에 폭발시키는 장면이자 또다른 전환의 신호점이다. 신부를 그만 두었을 때도, 살인을 저질렀을 때도 송강호는 자기의 존재출발점이 된 성직자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송강호는 아주 상스러운 방식으로 일시적인 단절을 보여준다. 물론 송강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애욕과 인간성에 의탁하여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부활시킨다. 

영화에서는 과거 박찬욱이 던졌던 질문들과 주제의식들이 간간히 표피에 뛰어 오른다. 박찬욱이 단절시키고 싶었던 것은 분명히 '밀납화된 도덕주의'이다. 물론 이것은 종교의 외피를 쓰고 있다.<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너나 잘하세요'라고 했다면 영화<박쥐>에서 송강호는 성기를 노출한다. 자기를 성자로 취급하는 병든자들에게 마지막 보시를 한 셈이다. 송강호는 위악적인 방식을 택했고 그런 위악은 병든 자들을 돌들게 했다. 송강호는 씨익 웃으면서 위악의 성취를 즐거워한다. 상당히 진부하고 조악한 방식으로 송강호는 계몽주의적 아이템을 전달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위악이 아니라 그들의 문제에 개입하려는 박찬욱의 의지와 그것의 표현양식이다. 여기에 성기노출은 다분히 박찬욱 개인의 현실적인 불쾌함이 있는 것 같다. 영화적으로 보자면 굳이 감독이 성기를 노출하지 않고도 설명은 가능했다. 성기 노출이 꼭 필요했다면 그것은 다분히 '물질성'의 각인을 위한 효과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전에 박찬욱이 제작했던 영화<홍당무>에 대한 '청소년관람불가'에 대한 박찬욱의 개인적 항거가 들어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 영화는 몇 가지 장면과 극중 대사의 자극성으로 인해 의심쩍게도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다. 박찬욱도 당시 감독이었던 홍경미도 모두 의외의 반응이라고 여겼다. '어차피 쟁쟁한(?) 정사씬으로 청소년 관객은 포기한 마당이니 그럼 한번 가보자..어떻게 할건데? ' 라는 박찬욱의 선동적인 저항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미학적 의미에서든 정치적의미에서든 두 부분에 대해 박찬욱의 결정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착한 것들의 착각'에 대하여서도 박찬욱은 생각날때 마다 한번씩 들추어낸다. 송강호는 영화에서 이런 말을 간혹 꺼낸다. "내가 뭔 잘못이 있어. 난 그냥 그들을 도우러 갔다니까?" 뱀파이어가 된 자기를 꺼려하는 이들을 보고 송강호가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영화<복수는 나의 것>에서 개울가 씬과 묘한 울림을 갖는다. 그 영화에서 송강호는 신하균에게-신하균은 '복수'에서는 칼침 먹고 물에 빠져서, '박쥐'에서는 호수에 빠져서 죽는다- 이렇게 말한다. "나도 안다. 네가 착한 놈인거"  영화적으로 보면 화자는 동일 배우이고 답과 질문이 도치되었다. 이 두 대사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박찬욱의 영화세계에서 돌고 있다. 흔히들 사람들은 말한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어디있어요?' 그렇다. 세상은 그런 착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망치고, 그들이 탐욕하고, 그들이 힘을 부리고, 그들이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한다. '착함'은 아무런 형식도 내용도 갖지 못한 펄럭이는 깃발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박찬욱은 B급의 상투적 표현으로 관객을 불편하게 하면서 또한 '막연한 착함'이라는 동경을 후벼파고 있다. 관객은 시각적 잔혹극에 불편하고 심리적 괴롭힘에 불편하다. '착하기 때문에 착하다'는 식의 도덕주의적 순환에 대한 박찬욱의 답변이다. '그래 나도 안다. 네가 착한 놈인거.' 이 영화에는 B급의 전매특허인 오이디푸스, 죄의식, 서구의 뱀파이어 신화, 반복되는 송강호식 유머, 몇 몇 영화들의 패러디 들이 등장한다.개인적으로는 송강호가 김옥빈을 살리기 위해 상호 수혈하는 장면은 상당히,매우 인상적이다. 뱀파이어 영화에 그다지 전문적인 지식은 없으나 그동안 봐온 어떤 영화에서도 이런 혈맹적인 피의 순환을 그린 장면은 없었던 것 같다. 마치 나의 혈관과 타인의 혈관이 흡혈행위를 통해 그래도 연결되어 소통되는 듯한 쾌감을 준다. 나는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문명/야만'의 상호작용인가? 육도순회의 무한공간인가? 피라는 상징을 통한 육체/이성의 전일적인 소통인가? 하여간 이 장면은 좋다.  

전체적으로 영화<박쥐>는 과거에 비해 조금 더 풍자적이고 스타일리쉬하지만 형식은 신화적인 양식으로 치장되어 있다. 박찬욱이 박찬욱을 탐구하는 영화같기도 하고 자가 복제를 통해 재생하려는 의지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이 박찬욱의 필모그라피에서 그의 대표작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그렇게 되려면 다음 작품에서 영화<박쥐>에 대한 주제와 양식의 변증법적인 통합이 아니라 일종의 연속선상의 사건적인 전환이 있어야 그 의미가 다시 전유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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