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 - 불멸의 음반 100 최악의 음반 20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티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방에 인켈 오디오가 생겼을 때 나는 석 장의 LP를 샀다. 들국화 1집, WHAM의 <Make it big>, 이문세의 2집이다. 오디오라고 해봐야 컴포넌트 시스템이었지만 얼마나 쓸고 닦았는지 자동차를 산 후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음반의 역사로 보자면 나는 LP시대부터 시작해서 CD 그리고 MP3의 시대까지 살고 있는 셈이다. 다음에 어떤 포맷이 주류를 차지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음악파일의 형태와 PC를 통한 재생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런 흐름들은 이미 대중음악팬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이다. 클래식쪽은 사실 이런 변화에 좀 느리다. 클래식 소비자들의 보수성에 기인하는 것이 가장 클 듯 하다.  기술적으로도 음원압축 방식이 가진 음질문제는 클래식 소비자들의 마음을 아직 편하게만들지는 못했다. 이와중에 여름날 잠시 소나기 그리워하는 반응들도 나타나곤한다. 아날로그나 빈티지에 대한 선호층이 생기는 것 말이다. CD탄생기때부터 아날로그와 디지털사이에는 그런 티격태격이 있었다. 잠정적 결론은 음질이나 음의 풍요로움면에서 아날로그쪽 주장이 승리를 한 것 같다. 그렇다고 CD가 그것때문에 물러날 일은 전혀 없다. CD는 그런 미세함을 양보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여러가지가 있기때문이다. 즉 아날로그로의 퇴행이 주류적 소비방식이 되긴 어려다는 말이다. 결국 앞으로도 소수 매니아들의 소비를 위해 상대적으로 고가의 LP를 찍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주류 음악시장을 넘볼 수는 없을 것이다. (장비만 좀 된다면 나도 LP쪽으로 좀 가보고 싶다. 내게도 LP의 기억은 소중하니까..) 앞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는 CD포맷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가 정도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CD의 시대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 최근에 클래식 음반업계는 구음원 덤핑으로 일부 손해를 만회하려는 추세이다. 과거의 훌륭한 음원들이 저가에 풀리는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TOP 가격으로 산 음반이 버젯 가격에도 못미치게 나오는 걸 보면 속 쓰리기도 하고 CD도 다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 씁슬하다. 

이 책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의 저자가 최근의 'CD덤핑'을 목도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 결론에서 이미 CD의 종언을 선언했기 때문에 덤핑이 비즈니스적으로 당연한 수순임을 저자도 알았을 것이다. 평생을 클래식 음악과 음악평론가로서 살았던  저자는 '눈물의 고별전' 을 앞두고 있는 클래식음반 10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일종의 '클래식 음반 추도문'으로서 말이다. 살아생전의 영광과 그 마지막을 증명해야하는 마지막 생존자로서의 의무감같은 것이 들만도 하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이 책 <클래식, 그 은밀한 삶과 치욕스런 죽음>이다.  

책은 1920년 빌헬름 캠프가 베토벤의 <바가텔>을 연주하며 실황과 레코딩의 차이를 인식하는 대목부터 시작한다. 이어서 슈나벨과 카루소의 녹음, SP시대와 LP 시대의 도래..위기...CD의 등장..인물들의 흥망성쇠....등등 시간적 서술 속에서 작가는 음악가 개인보다는 레코딩을 중심으로 한 음악 비즈니스와 그 주변인물들에 촛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연주자나 지휘자이기 보다는 음반 프로듀서, 레코딩 엔지니어, 음반사 사장 등이다. LP나 CD 자켓에서 곡명, 작곡가, 지휘자,오케스트라, 독주자..그리고 저 밑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에 대표적인 프로듀서들의 이름을 클래식애호가들은 기억한다.) 물론 중간 중간 연주자나 지휘자들과 이들 사이의 상호협력 또는 갈등 관계의 뒷 이야기들이 숨어있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중에 어떤 것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들이다. 그런 내용들은 사실 이런 저런 잡지나 책에 듬성듬성 실려있기때문에 언뜻 언뜻 기억날 뿐 하나로 묶여지지는 않는 내용들이다. 일단 음반을 중심으로 책을 쓰면서 저자는 여기저기 실린 관련 일화들이나 인용들을 꽤나 많이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만이 아니다. 음악평론가를 하며서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나 그와의 편지, 또는 사적인 만남등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들도 등장한다. 그렇기때문에 여기에 무슨 역사학의 사료명료성같은 것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증언들은 보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다. 독자는 그냥 여기에 등장하는 수많은 음악관련 인사들의 에피소드나 후일담들을 흥미롭게 '그랫군' 하면서 읽으면 된다. 

이 책에서 SP시대와 LP 초기 시대에는 음반 프로듀서가 주인공이다. 프레드 가이스버그, 월터 레그, 존 컬쇼, 잭 파이퍼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클래식 메이저 음반사들을 중심으로(EMI,DECCA,DG,RCA,CBS,PHILLIPS) 그들의 태동과 발전,또 상호간의 경쟁구도를 이런 저런 야사를 섞어서 들려주고 있다. 몇 몇 음악잡지나 책이 실린 이야기들도 있겠지만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가 얻게된 정보들도 꽤나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다. 물론 여기에 무슨 사료적인 의미의 절대성 같은 것은 없다. 주변사람들의 평가나 반응같은 것들이 주관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흥미롭게 '그랫군' 하면서 읽으면 된다. 특히 이 책에서는 저자 노먼 레브레히트의 영국인 음악가로서의 전통적인 입장이 살짝 묻어 있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팬들은 <그라모폰>지의 취향을 떠올려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6대 메이저에서 데카사운드와 조직운영방식에 가장 호감을 가지고 이야기한다. 물론 저자거 대놓고 '나는 데카 매니아요'라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EMI는 보수적이고 월터 레그의 상술을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DG는 결국 후에 음반사의 중심이 되고 지금도 그렇지만 저자 입장에서는 그 출발부터 못마땅하다. DG의 출발에 나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DG의 모기업이 나치 친위대로부터 노예인력을 사들였다고 비난한다.그러면서 도덕적으로 때묻은 회사가 독일 음악의 부흥을 이끄는데 앞장섰다는 점이 영 못마땅하다는 투로 이야기를 흘린다. DG가 전후 아우슈비치에 수용될 뻔한 엘자 실러를 회사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전후 음악가들의 불편한 심기를 은폐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아이러니 한 것은 DG의 여제가 물러나면서 DG의 실제적 권한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나치 복역문제로 시끄러웠던 황제 카랴얀이었다. 미국쪽으로 보자면 RCA는 대형스타와 웅장한 소리를 지향했고 CBS는 자유분방한 민주당의 이미지에 가까왔다. 그가 가장 호의적으로 말하는 곳은 DECCA이다. 그들은 민주적 게이집단이었다. 권위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고 소통을 중시했다. 또한 레코딩 엔지니어들의 진취성도 어느 집단보다 뛰어났다. 훌륭한 음악가들을 포진시켰고 존 컬쇼나 크리스토퍼 래번같은 프로듀서들은 뛰어난 기획력을 보이기도 했다. 실제 아날로그 매니아들 중에는 60년대 데카사운드를 높이 평가하는 층이 꽤있는 걸로 안다.   

저자는 음반산업이 최소한 저 단계에서는 단순한 돈벌이 수단은 아니었다고 본다. 상업적인 측면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음악 비즈니스계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최소한 고급문화의 생산자로서 자부심과 교양같은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팝음악의 득세와 음반사의 과잉투자는  결국 LP시장을 붕괴시킨다. 그나마 CD의 출현은 잠시 클래식 음반에게 빛을 주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음반업계는 새로운 기획보다는 과거의 명연을 다시찍어내는 형태로 빚을 만회하는 형국에 들어서고만다. 저자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을 '월스트리트'와 '음악관계자들의 방만'에 둔다. 투자자들에게 음반사업의 가장 큰 목적은 자금의 회수와 이윤이다. 어떤 의미있는 기획도, 어떤 훌륭한 연주도 중요치 않다. 최대한 많은 이윤만 창출하면 되는 상품일뿐이다. 즉 그들에게는 '문화생산자'라는 자긍심이나 의미같은 것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진중한 기획보다는 한 방에 뜰만한 음반들이 중심을 이루게 된다. 크로스오버 음악이나, 각종 기능성 음반 기회들이 나오게 된데는 이런 전체적인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음악관계자들의 문제에서 저자는 특히 두 사람을 지목한다. 황제 카라얀과 일본 소니의 노리오 오가 회장이다. 카라얀과 오가 회장은 둘 다 과시적이고 독단적이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포화된 상태의 클래식 음반시장에 과잉제작의 광풍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리고 제작 비용을 급격하게 상승시켜서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동종업계까지 힘겹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관되게 이 둘의 공모에 탐탁치 않은 시선을 보낸다. 물론 저자는 이외에도 클래식 몰락을 불러 일으킨 몇 가지 추세 또는 원인들을 이야기 한다. CD의 반영구적 특성, 인터넷의 발전, 다른 매체들의 성장, 음악가들의 창의력 부족,소비층의 한정 등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100년간의 클래식 음반사,음악비지니스계의 뒷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역사는 끝났다'라고 종언을 선언한다. 음반은 사라져도 음악은 남는다는 말로 그 쓸쓸한 퇴장에 송가를 띄운다. 물론 음반이 당장 사라지는 것은 아닐게다. 저자 역시 조금 더 수명연장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 수명연장도 최소한 대형 메이저 음반사들에게는 별로 기댈 것이 없다. 최근에 음반 카탈로그에 등재되는 대형 음반사들의 목록을 보면 과거 그들이 보유한 '아름다운 시절'의 복각,재출시 음반이거나 아니면 가벼운 성악음반들이 대세다. 몇 몇 보유한 스타들에 기대서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그들의 고비용구조와 투자자들의 도끼눈에 어떤 식으로든 의미있는 실험적인 도전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요즘 클래식음반 애호가들은 마이너레이블에서 음악듣는 즐거움을 찾는다. 하이페리온, 샨도스, 나이브, 알파, 하모니아문디, 낙소스, ECM 그외 정말 국적 불명의 수많은 마이너 레이블들이 레퍼토리나 연주력,음질 면에서 메이저를 앞선지 오래다. 메이저음반사들은 유명 스타군단의 에이전시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상태다.이 마이너 레이블들이 지향하고 도전하는 방식들을 보자면 각기 칼러가 있었던 과거 메이저 음반업계 청년기 시절이 다양성과 진취성이 엿보이는 듯 하다. 이들에게도 경영에 대한 고민은 없지 않겠지만 아직까지는 이들을 대표하는 힘은 메이저 음반 종사자들이 버리고 온 음악에 대한 애정과 깊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고른 '불멸의 명반 100'과 '최악의음반 20' 이다. 불멸의 명반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것들이 상당량되고 최악의 음반 20장 중에는 1장이 있더라...유명한 베토벤 3중협주곡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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