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동문선 문예신서 142
미셸 푸코 지음, 박정자 옮김 / 동문선 / 199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푸코의 1976년 콜레드 주 프랑스강의는 '계보학'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된다. 강의 시작을 알리는 몸 풀기이다. 또한 강의 전체를 지배할 문법에 대한 개괄이다. 푸코는 계보학을 '반과학'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과학적이라고 간주되는 담론이 갖는 고유한 권력 효과에 대항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첫 날 강의에서 '국부적 앎', '앎들의 봉기' 라는 용어를 쓰면서 비판의 국지적 성격에 대해 강조한다. 계보학의 기획의도를 푸코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인식의 과학적 서열화와 그 고유의 권력 효과에 대항하여 국부적 앎들-아마 들뢰즈는 '소수의 앎'이라고 말할 것이다-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  ...  고고학은 국부적 담론성의 분석에 적합한 방법이고, 계보학은 그렇게 묘사된 국부적 담론성에서부터 출발하여 거기서 끄집어 낸 앎들을 작동시키는 전술이다. 

 쉽게 말하면 '당신의 앎이 권력의 자장 안에서 어떻게 틀 지워지고, 상화작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된다.' 는 것이다. '앎'은 결코 '진리' 일 수가 없다.  그렇게 착각되어 지기는 하지만말이다. 특히 푸코에게 타겟은 '계몽사상'이라는 '앎'이다. 푸코와 아도르노가 만나는 지점으로 많이 이야기되는 부분이다. 단순화시켜 보자면 '계몽= 윤리적 선= 진리' 로 가는 구도에 어깃장을 놓는 것이다. 푸코는 강의 중에 이런 작업을 서구 천년의 철학주인인 플라톤주의에 대한 소피스트의 복귀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다분히 푸코에게 가해지던 비판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푸코의 앎과 권력의 문제는 단적으로 우리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에 반영된다. 고등학교 철학교과서의-조금도 의심없는 메인스트림은- '소크라테스-플라톤주의'이다. 소피스트는 소크라테스를 비방한, 곡학아세의 이단아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 라고 "왜 질문을 던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 푸코식 방법이다.  

푸코는 절대적 진리의 문제보다 '담론과 권력의 문제' 에 중심을 둔다. (푸코에 대한 가장 일반화된 비판이 제기되는 곳이 이 지점이다.) 대신 푸코는 권력-권리-진실의 역학 관계를 묻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한다. 총체적인 진리라든가, 헤겔식의 합의적인 총합 개념을 푸코는 거부한다.

권력의 관계들이 진실의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규칙들은 무엇인가? 

푸코는 자신의 가설과 이론이 일반되는 경향을 스스로 거부함다. 즉 분산된 여러 계보학들에 일관성 있는 이론적 토양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푸코를 구조주의적 틀 안에서 이항적 구도로 환원된다는 비판등은 최소한 그의 바람과는 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부분인 것 만은 사실이다. 물론 푸코 텍스트를 독해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자율성이 있지만 푸코로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일단 자신의 권력 연구의 방법론을 정리한다. 푸코 권력론을 바라보는 핵심은 그가 권력의 문제를 -진실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관계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푸코 비판에서 흔히 제기되는 문제이다. 여기에 푸코가 <감시와 처벌>등에서 말한  권력의 총체적 규율사회,훈육사회화를 덧 대면 가장 세속화화된 비판의 방식이 부각된다. 즉 푸코는 스스로 이항적인 체계에 빠져들면서 아도르노식의 전체주의 사회처럼 권력의 자장 안에 피할 곳이 없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다. 심지어 메르키오르같은 이는 '신무정부주의자'라고 불렀다. 이런 비판의 핵심은 푸코가 권력의 저항지점을 말살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코는 또한 실천적인 지성인으로 감옥문제에 관여했고,싸르트르와 거리에서 사진도 찍었고, 또 그의 입으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라는 말도 남겼다.  도대체 그는 파리 좌안의 몽상적인 이론가였을 뿐인가 아니면 실천적 지성인이었을까? ) 푸코는 푸코의 앎의 방식에 따라 가장 정합적으로 움직였다. 그의 권력 이론은 그런 점에서 저항을 포기한 적이 없다. 문제는 유토피아를 가정하지 못하면 싸움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오래된 불안과 그에 동반하는 신학이다. 물론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나아가면 존재론적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으며, 나와 내 행동 주변에 천사 가브리엘이 임재함이 주는 충만감이 있을 수 있다.( 지젝이라면 정치적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철회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푸코는 권력 연구의 방법론을 이렇게 제시한다. 

 1) 모세혈관처럼 가는 끄뜨머리에서부터 권력을 포착 2) 권력을 의도나 결정의 차원에서 분석하지 말것 3) 권력을 전면적이고 동질적인 지배의 현상으로 간주하지 말것.-"권력은 개인들에게 면세통과될 뿐 그들 중 누구에게도 달라붙지 않는다." "육체를 관통하는 권력의 민주적,무정부주의적 배급은 없다." 4) 권력에 대해 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분석 5) 섬세한 메커니즘 속에서 행사되는 권력은 교육이나 앎의 순환장치의 조직, 또는 그저 단순히 앎의 장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앎의 장치들은 이데올로기적 구조물도 안고 그것의 동반자도 아니다.    

본격적으로<사회를 보호해야한다>의 강의에서는 권력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쟁'이라는 역사적 요소를 끌어들인다. 푸코가 하는 일은 먼저 <전쟁론>의 클라우제비치를 뒤집는 방식이다. 클라우제비치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정치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푸코는 클라우제비치의 이 말에 앞서 그가 전유했던 다른 개념이 있다는 것을 가설로 설정한다. 즉 클라우제비치가 그 멋진 말을 남긴 건 그 전에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전쟁-정치'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푸코는 클라우제비치의 말을 "정치는 다른 수단에 의해 지속되는 전쟁이다." 라고 재전유한다. 이것은 역전된 개념을 재역전 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푸코는 '영구적 사회관계로서의 전쟁, 모든 관계와 모든 권력제도들의 소멸할 수 없는 토대로서의 전쟁에 대한 담론' 을 강조한다. 푸코는 "전쟁은 바로 평화의 암호이다." 라고 말한다. 침울한 담론인가? 사람들이 가능한한 멀리해야 하는 담론인가?  그렇다. 최소한 주도적인 철학-법 담론은 이 자격을 박탈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법으로 출발하려면 이런 '영구전쟁담론'은 말살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자기의 가설이 '빨치산의 담론'이라고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푸코의 정치적 저항성은 이런 두더쥐의 담론일 뿐, 정치적 허무주의나 정치적 저항의 토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었다.   

푸코는 철학-법 담론의 반대편에 역사-정치담론을 배치한다. 그리고 분석을 영국과 프랑스에 한정하여 이야기 한다. 그는 역사-정치담론의 출발을 1630년경 영국의 청교도 혁명즈음과 17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4세 말기 프랑스 귀족들의 정치투쟁으로 본다. 

이 때부터 전쟁은 확고하게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분명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사회를 두 개로 분리시키는 전쟁, '종족간의 전쟁'의 역사가 가시화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푸코는 이런 '종족전쟁'의 원형이 발전된 것을 부르주아 혁명, 계급 투쟁, 인종주의 전쟁까지 확장한다. 물론 맥락적인 차원에서 이런 투쟁들은 개별성을 갖는다. 다만 푸코의 의미는 계보적인 원형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 하다.

  영국-프랑스의 17세기 18세기에 대한 분석은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영국의 경우 프랑스 출산의 기욤이 영국을 정벌하고 종족전쟁의 역사,정복의 역사를 은폐하고자 했던 역사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프랑스의 경우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골족과 게르만족의 관계, 갈로로만 시대 형성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을 소개하며 정복-동화관계에 있어서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이 구성되어 있음을 말한다.(영국-프랑스의 역사에 대해서는 책을 읽는 동안 검색 사이트를 통해 확인하며 넘어가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듯 하다. 최소한 왕조 흐름이라도 말이다.) 

이런 계보적 분석을 통해 결국 푸코가 판독하고자 한 것은 영구적 종족 전쟁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은폐되고 지속되어 왔는가 하는 점이다. 

 푸코의 권력 분석은 먼저 '경제적' 가설과의 결별을 말한다. 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전자는 권력을 상품. 모든 개인이 무언가 권리를 보유하고 양도하고 이전된다. 후자는  경제적 기능주의가 강하다. 정치권력이 경제에서 존재이유를 찾는방식이 문제가 되며 이 또한 권력을 생산-교환의 방식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푸코는 '비경제'적 가설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거나 확장시킨다. 먼저 권력 억압설이다. 프로이트-라이히의 가설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푸코의 권력론의 핵심인 '권력은 억압적이기만 한가?' 는 이런 가설에 대한 푸코의 답변이다. 다음으로 권력대치설이다. 이는 니체의 가설로 권력관계의 토대가 힘들의 호전적인 대치로 보는 관점이다. 니체와의 관계에서 푸코의 다른 점 중 하나는 니체가 계몽에 대한 긍정을 예찬한 반면 푸코는 니체보다 훨씬 부정적으로 물고 늘어졌다는 점이다. 푸코는 억압가설과 대치설이 결코 비양립적이지 않다라고 말한다. 푸코는 억압과 전쟁을 관찰하고 이를 수정하여 "권력에서 작동된 메커니즘은 억압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이라는  '생산하는 권력' 이란 개념을 만들어낸다.

 푸코는 과거의 정치사상의 중심인-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계약-압제' 가설에서 가장 먼저 폐기시켜야할 것으로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지목한다. 홉스는 선험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이에 대한 양도가 가능하다는 가설을 통해 이를 적용시켰다. 푸코는 '만인에대한 만인의 전쟁'이라는  홉스의 자연상태는 가상적인 것일뿐 실제적인 힘들의 직접관계가 아니라고 말한다.즉 홉스의 전쟁상태는 일종의 '의지의 대립'일뿐이고 , 조정되어야하는 외교의 대상일뿐이다. 
푸코는  홉스가 실제로 제거하고자 했던 것은 필연적으로 존재했던 정복의 문제였다. <리바이어던>에는 언제나 계약이 있고 신민들의 겁먹은 의지가 있다.  홉스가 모든 전쟁과 모든 정복의 뒤에 계약을 다시 놓고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이론을 보존했던 것은 바로 이 투쟁과 영구 내전의 담론을 교묘하게 회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홉스의 가장 큰 적은? 전쟁이고 저항이다. 푸코는 권력관계는 법이나 주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지배안에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널리 펼쳐진 한없이 두텁고 많은 지배관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역사에서도 벗어날 수 없다.(앞서 말했지만 이 문제는 푸코 스스로도 주체의 자기실현을 통해 해결하려는 문제였고, 또한 비판이 되기도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푸코의 텍스트 안에는 실천적 의지를 통한 해방의 가능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푸코는 홉스 대신에 조금은 낯선 불랑빌리에라는 프랑스 귀족학자를 분석한다. 불랑빌리가 분석한 프랑스는 왕과의 권력 투쟁에 2개의 전선-즉 귀족/부르주아지가-이 동시에 존재한다. 골족부터 시작되는 계보학적인 권력의 상호관계와 전쟁,지배,동화,재역전의 문제(골족의 멸망한 귀족이 앎을 통해 어떻게 재역전되는지 재미있다.푸코의 저항담론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재역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흥미롭게 따라읽어도 좋은 내용이다.

 그는 불랑빌리에의 현재적 의미를 몇 가지로 정리한다. 

1)전쟁의 우위성 부여 '어떤 형태의 사회건 그 어떤 사회에도 자연법은 없다.' '자연의 평등법칙은 역사의 불평등법칙 앞에서 허약하기 짝이 없다.' '자연의 힘보다 역사의 힘이 훨씬 크다' 상호간에 아무런 지배관계도 없는 개인들 사이의 자유, 그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완전히 평등한 그런 자유, 이 자유와 평등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고 아무런 내용이 없는 것일 뿐이다. 

2)전쟁이 한 사회체에 자국을 남기는 것은 더 이상 침략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군사제도의 교대를 통해 모든 민간 질서에 전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푸코의 개념 '내적 제도로서의 전쟁' 

3) 침입과 전투에 의해 표출된 어떤 특정의 힘의 관계가 어떻게 조금씩,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역전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푸코의 개념 '전복의 내적 메커니즘'-->순환론적인 결정론이 아니라 영구적 권력순환 

4)불랭빌리에는 전쟁관계를 모든 사회적 관계 안에 잡아넣었다. 그러나 그의 전쟁은 일반화된 전쟁이다. 그것은 개인들의 전쟁이 아니라 그룹에 대한 그룹의 전쟁이다. 

푸코는 역사-정치담론으로서 '전쟁'의 중요성은 대혁명 이후 축소되었다고 말한다. 
18세기 귀족들이 주체로 부각시킨 '민족'이라는 개념을 부르주아지가 재부활시켰다. 귀족적 반동으로 쓰인 민족은 '왕과의 일체'가 중심적인 핵이었다. 반면 이제부터 민족을 구성하는 것은 왕이 아니고 다른 민족과 싸우기 위해 왕을 세우는 새로운 '민족'개념이 재가동된다. 민족은 국가라는 이름을 얻는다. 이어서 부르주아지는 인민이 되고 국가가 된다. 
  

 이제 푸코는 '권력과 국가'의 문제를 '국가 인종주의' 발전 도상까지 왔다. 17-18세기 신체에 집중된 권력 기술이 18세기 말 신체가 아닌 '생명'을 대상으로 바뀐것이다. 푸코의 권력 개념중에 중요하며 자주 인용되는 '생물정치'(생정치,삶정치 등등으로 번역된다.)란 단어가 나온다.
'생물정치'(바이오 폴리틱스)는 육체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종으로서의 인간을 향해 행해지는 권력문제에 관심을 둔다.권력과 앎의 상관관계로 보자면 인구통계학,우생학,공중보건학, 멀리는 사회보장제도가 이런 바이오폴리틱스와 관련을 맺는다. 물론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의 기술과 생명에 작용하는 것 사이에는 대립적이지 않는 관계가 설정된다. 푸코는 생물권력이 작동하는 정치제도 안에 인종주의가 개입되고 이는 근대국가에서 행사된다. 도덕주의나 프로파간다의 문화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대목이겠지만 그는 근대 인종주의의 특성은 의식 구조,이데올로기,권력의 거짓등과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권력의 기술하고만 관계한다.즉 이 말은 근대국가는 어느 경계선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 안에 이미 인종주의적 맹아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코는 나치의 생물권력과 절대군주가 결합된 방식을 '근대국가 기능 안에 새겨진 절대군주의 기제가 도달하는 최종지점'이라고 말한다. 

<사회를 보호해야한다>의 뒷장에는 이 책이 푸코 지적 여정 속에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즉 일종의 휴지기이며 이행기인 상태에서 나온 강의라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과 <성의 역사1권: 앎에의 의지>를 탈고한 이후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두 책에서 다루어진 문제들-권력과 앎의 문제, 규율권력-생체권력의 문제 등이 저자의 입을 통해 비교적 친절하게 다루어진다. 푸코가 근대정치사상에 기여한 지점에 관심이 있다면,또한 푸코의 전복적인(이제는 그렇지도 않지만) 접근방식에 관심이 있다면 푸코의 육성으로 그의 생각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만한 책이다. 특히 냉전 이후 '일상의 전쟁화'가 코드화된 한국에서 푸코의 접근은  이해되기 쉬운 대목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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